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3
133
명계는 삭막한 세상이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없는, 영혼마저 에는 냉풍이 향시 몰아닥치는 곳.
그럼에도 사령술사는 특유의 적막함이 마음에 들었다.
‘익숙한 느낌이란 말이야.’
발을 거닐 때마다 신발 위로 부서지는 사토의 감각도 마음에 든다.
조금 걷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 석관에 걸터앉아 있었다.
“자네. 용케 살아남았군.”
“쉽진 않았습니다.”
“목숨을 건진 게 어딘가.”
목덜미를 훑은 토드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성물을 빼앗긴 건 뼈 아픈 손실이었지요.”
“그자가 그걸 가져갔다고?”
“예. 눈썰미가 좋더군요.”
오드람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상황이 묘해졌군.”
“암살자가 그걸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불가할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성물은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자가 사용할 수 없네.”
주술사는 꺼림칙한 듯, 낮게 읊조렸다.
“더군다나 성물을 내리신 분이 누군질 생각해보면··· 아마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재액이 닥칠 걸세.”
“그런 것치곤 어머니께서 진노하시는 기색은 없으시던데요. 제가 못나서 은혜를 타자에게 빼앗긴 게 아닙니까.”
“자네에게 불이익이 가는 일은 없을 걸세. 내가 괜히 상황이 기묘해졌다고 말한 게 아니네. 넘겨준 성물이 오히려 목줄처럼 그자를 옥죄게 된 꼴이니. 자네가 여기까지 의도했는진 모르겠지만, 묘수로 작용했군.”
토드가 속삭였다.
“당분간 암살자의 운신에 제약이 걸릴 정도일까요?”
“장담하지. 당사자가 여기 없으니 구체적으로 어떤 형벌을 받는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일···”
오드람은 말을 하다말고, 미간을 좁혔다. 이내 그의 입가에 교묘한 미소가 걸렸다.
“아하. 마침 당사자도 왔으니, 생생한 증언을 들어볼 수 있겠군.”
사박.
모래 밟는 소리에 즉각 토드는 고개를 돌렸다.
가벼운 옷차림의 여인이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당신은···.”
“시발, 뭐야 이건! 네가 왜 나와?!”
얼굴을 일그러트린 라노는 가시를 바짝 세우듯 굴었다. 토드는 그녀의 목에서 흔들리는 광채를 목격했다.
“왜, 왜 내가 여기 있지? 이건 또 무슨 개 짓거리야. 이것도 네 거지 같은 주문이냐?”
심히 당황한 라노 못지않게, 토드 역시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오드람. 어떻게 저 녀석이 여기 들어올 수 있는 거죠?”
주술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걸 보니 비로소 의문이 풀리는군. 아무래도 여긴 자네의 심상이 구현된 의식계인듯하네.”
“명계가 아니고요?”
“사자의 영토는 물질계와 다른 법칙으로 구현된 곳이지. 자네는 사령술사인 데다, 영안까지 틔웠으니 자네를 이루는 무의식이 동시에 존재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네.”
명계 속 나만의 세상이라는 건가.
“여기가 명계의 일부라면 그림 리퍼가 드나드는 것도 이상하진 않습니다. 당신이야 까마귀 신의 전령으로서 활동하는 망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저건 불청객이 아닙니까?”
오드람은 라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가리켰다.
“보아하니 저 목걸이가 매개로 작용한 것 같군.”
영혼 목걸이는 흐릿한 연녹빛을 사방에 흩뿌리고 있었다.
“저 녀석이 영혼 목걸이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군.”
토드와 오드람을 번갈아 보던 라노는 품에 잡히는 게 없으니 모래까지 쥐어 든 채 으르렁거렸다.
“대체 뭔데? 간만에 겨우 잠들었더니만, 뭐 이딴 거지 같은 꿈을···!”
토드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민 채 읊조렸다.
“그 목걸이, 순순히 내놓는 게 좋을 겁니다.”
행색을 보아 자다가 졸지에 끌려온 것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일신의 무력을 무시할 순 없다.
토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마력을 끓어 올렸는데, 정작 라노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내놓으라고? 그래! 가져가! 제발 가져가라! 이 씨팔 놈의 목걸이!”
그녀는 거칠게 목걸이 줄을 흔들어대며 발악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좆같은 지 알기나 해?! 틈만 나면 속삭여대질 않나, 여태껏 죽인 놈들이 꿈에서 나오질 않나, 길 가다가 똥바가지를 처맞지를 않나, 주사위에선 말도 안 되는 숫자가 튀어나오고!”
오드람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무래도 마음고생을 적잖게 한 모양일세.”
악을 쓰고 목걸이를 잡아 뜯으려던 라노는 손을 풀어헤치며 씩씩댔다.
“게다가 점수까지 뺏어간다고! 이게 말이 돼? 누군 겨우 개고생해가며 손에 피 묻히고 싶은 줄 알아?”
왜 피의 업이 자꾸만 쌓이는가 했더니, 라노가 축적한 업보의 일부가 들어오는 거였나.
“그렇다면 그걸 미련하게 차고 있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토드의 지적에 답답한 듯, 라노가 가슴을 쳤다.
“시발, 이걸 몇 번이고 버렸어! 근데 이, 이 썅놈의 것이, 계속 날 따라온다고.”
그녀의 절규에 오드람이 속삭였다.
“아무래도 우리의 속성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군. 대개 저런 유물이나 성물은 한 명의 주인에게 귀속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영혼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들이 아닌가.”
그는 라노의 목에 걸린 영혼 목걸이를 가리켰다.
“소유권은 넘어갔지만, 자격이 충족되지 않았으니 혜택은 볼 수 없고, 불이익만 받는 기묘한 상태에 놓인 걸세. 결과적으로 자네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만.”
게임이 현실화되면서 일부 규칙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어떤 것들은 달라졌다. 하물며 원작은 싱글 RPG를 표방한 만큼, 동일 명의의 캐릭터가 공존하는 상황은 판정이 복잡해지는 것.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개같이 꼬였네.’
영혼 목걸이는 단단히 묶여, 라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다가 토드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쳐 뒤져. 왜 꿈속에서까지 그 재수 없는 쌍판이 튀어나오는진 모르겠는데.”
여기서 사령술사를 죽인다면 속박으로부터 해방될지도 모를 일.
그녀가 손을 휘젓는가 싶더니, 살기등등한 표정은 곧바로 무너졌다.
“뭐야. 왜···!”
마치 아무런 권능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암살자는 허공에 대고 허우적댔다.
‘왜 저러는 거지? 저번에 떨어졌던 루카스는 여기서도 잘만 마법을 사용했었는데.’
의아해하는 토드를 향해 오드람이 속삭였다.
“자네가 목줄을 단단히 쥐고 있어서 그런 거라네. 가뜩이나 여긴 자네의 심상이니.”
지면에서 솟아오른 뼈 무더기가 창의 형태로 굳어졌다.
“여기서 죽이면, 현실에서도 죽을까요?”
“이런 심상 세계에서의 죽음은 정신에도 꽤 타격이 가겠지만, 아마 죽진 않을 걸세.”
“전에 흑마법사를 이곳에 떨어트린 바 있습니다. 그때 그자는 완전히 사망했고요.”
“경우가 다르네. 저건 성물이 불러들인 의식의 편린에 지나지 않아. 성물은 자네들을 잇고 있네.”
집중해서 관찰해보니 목걸이에서 새어 나온 빛이 토드를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옭아매라.”
콰드득!!
바닥에서 솟구친 뼈들이 철창처럼 라노를 구속했다. 꼼짝없이 갇힌 암살자가 고성을 질렀다.
“놔, 이 씹새끼야!”
목걸이만 빼내려 하는데, 무형의 구속력에 걸린 것처럼 손댈 수 없었다.
토드의 손길이 향하자 라노는 비명을 지르며 격하게 바둥댔다.
“갸아악! 꺼져, 꺼지라고!”
“···아무래도 여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거둬가야 하는 모양이군요.”
토드가 손을 휘두르자 라노를 가두던 뼈들이 허물어졌다. 속박에서 벗어난 암살자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을 기어갔다.
“시발, 차라리 귀신들 튀어나오던 꿈이 낫지. 이건 악몽이야. 왜 아직도 내가 이런 상황에···”
절대자에 이른 뒤로 수모를 당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그녀는 연신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토드는 슬쩍 소매를 걷으며 물었다.
“차라리 리퍼를 불러서 처리할까요?”
“사신의 낫도 자네들의 결속을 끊어내진 못할걸세. 저건 신의 권능이 닿은 결과물이니.”
쯧, 혀를 차던 사령술사는 뼈창을 내리꽂았다.
콰직!
“끄아악!!”
추가로 어깨까지 뚫어버리자, 암살자는 바닥을 뒹굴었다. 토드가 속삭였다.
“목걸이. 잘 간직해두고 있어. 어차피 떼어내지도 못하겠지만.”
“씨, 팔···!”
라노의 이마를 쓸어내린 토드가 입가를 이죽거렸다.
“그간 나 대신 피의 업이나 잘 쌓아두고 있으라고. 다시 마주치면, 죽이고 가져갈 테니까.”
“니 애─”
푹.
쐐기가 라노의 이마를 꿰뚫었다.
꿈틀거리던 육신이 축 늘어지더니,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덩달아 끌려가는 목걸이를 애달프게 응시하던 토드는 손을 털고 일어섰다.
“오우, 꽤 열 받았을 것 같네만.”
“그래도 영혼 목걸이, 돌려받아야지요. 보아하니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으니까요.”
“이제 저자는 자네의 기술들을 파악했네. 비록 여기선 무력하게 당했지만, 자신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곳에선 이야기가 다를 거야.”
분신을 죽인 거라 별 영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업이 소소하게 들어온다.
업을 헤아리던 토드는 손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그러니 저도 대비를 해둬야겠죠.”
그는 오드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마침 이번에 경지가 상승하면서 저만의 주문을 창안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권능을 구상할 수 있습니까?”
작게 감탄한 주술사가 팔짱을 끼었다.
“허면 자네는 어떤 상황에 적합한 기술을 생각하고 있나?”
토드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물리력을 주로 사용하는 적을 상대할 주문입니다.”
턱을 문지르던 오드람이 시름했다.
“물리력이라···. 자네의 특성을 고려하면 영체들을 활용하는 게 좋을 듯한데.”
“지금도 휘하에 망령은 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좀 더 결정적인 한 방이 절실하고요.”
토드의 말에 고민하던 오드람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다면 군령이 적합하겠군.”
“이미 와일드 헌트를 복속시킨 바 있지만, 통제가 어렵더군요. 마력도 지나치게 남발하고요.”
“자네만의 재정립이 필요하네. 이런 건 말로 풀이하느니,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군.”
오드람은 바닥에 흐트러진 뼛조각들을 모아 조잡한 토템을 만들어냈다.
“잘 보게.”
우르릉···!
고요하던 세상에 우레가 울린다.
적막을 찢고 나타난 영수(靈獸)들이 오드람의 주변을 뛰놀며 활개 친다.
주술사가 발휘한 이적에 토드가 신음했다.
“「벽력토템」에, 「수호자의 질서」를 합친 겁니까? 게다가 여긴 정기도 없는 땅인데, 어떻게 정령이···.”
푸른 수사슴의 뿔을 쓸어내린 오드람이 답했다.
“너무 규칙에 얽매일 필요는 없네.”
토드는 어느새 발치에 풀이 자라나 있음을 목격했다. 싱그럽게 피어난 새싹들은 오드람으로부터 뻗어나, 사방을 휘감고 있었다.
상식을 개변하는 광경에 사령술사의 입이 도무지 다물어지질 않았다.
“토드. 이 세상의 본질을 되새겨보게. 이곳은 가공의 세상이지만, 현실보다도 자유로운 공간이었네. 그런 점 때문에 자네나 내가 매혹된 게 아니었나.”
오드람의 속삭임에 토드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보였던 권능은 얼핏 닿지 못할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영안을 틔우고, 소리의 서를 탐독하며, 레벨 50에 등극한 이후로 토드의 안목은 높아졌다.
‘지금은 보인다.’
DB까지 뜯어볼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게임.
최적의 주술사 빌드를 찾기 위해 내부 데이터까지 뜯어보던 때가 떠오른다.
특유의 집요할 정도로 최적화된 마력 배열.
자신을 축으로 명계의 토양 속성값을 바꾸고, 기존의 스킬 코드들을 재정립하여 최적의 시너지만 발휘하도록 고안했다.
오드람은 토드가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생명력과 제일 거리가 먼 땅에서 자신의 권능을 발현했다.
극명한 대비 속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대비.
토드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해체하고, 구조를 더듬어나갔다.
오드람이 미소를 흘렸다.
“잘 보았나?”
토드는 정령들이 흘리는 휘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예···. 보는 것만으로도, 영감이 솟는. 신묘한 광경이었습니다.”
뿔잔을 들이켠 오드람은 껄껄대며 토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서둘러 돌아가, 주문부터 짜게. 늙은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여기까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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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명계에서 돌아온 토드는 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하고, 양피지와 깃펜을 집어 들었다.
주술사와 사령술사는 힘의 근간을 이루는 체계는 상이하지만, 토드는 오드람이 보여준 이적에 사고의 틀이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었다.
‘일단 최적화는 필수야.’
오드람이 발현한 권능은 거창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어찌 보면 서문은 평이했다.
‘하지만 응용에선··· 본격적으로 비틀지.’
기존에 있던 스킬들의 간단한 변조로부터 파생되어, 줄기처럼 뻗어 나가 동일 계통뿐만 아니라, 상극에 놓인 것들로부터 취합한다.
주술사, 나아가 자신의 클래스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산시아도 자신의 강점에 주력하여 자신만의 하수인을 만들어냈지.’
그렇다면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토드는 일단 깃펜을 부여잡았다.
양피지에 대고 끊임없이 적합한 낭송문을 휘갈기고, 지워버렸다.
‘여기선 부른다, 고 써야 하나?’
문장의 배열을 노려보다가, 직접 소리를 내어 읊어보기도 했다.
“속삭이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막상 육성으로 들어보니 강세가 부족한 것 같다.
꾸깃꾸깃.
‘아냐, 여기선 호소하는 듯한 어조가 아니라. 일갈하듯이 외쳐야 할 것 같은데.’
소리의 서까지 들고 와서 실린 낭송문들을 훑어보고, 대조했다.
문득 옆에 켜둔 양초가 사그라져, 다른 초를 꺼내오려던 참이었다.
찌직.
“······?”
무언가가 네크로폴리스를 보호하는 역장에 부딪쳤다. 토드는 재빨리 하수인들을 대동한 채 방첨탑으로 향했다.
바닥을 살펴보니 전서구가 혀를 내민 채 죽어 있었다. 쪽지를 확인한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크뤼거가 보냈나.’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폐하께서 붕어하셨네. 3주 후, 뫼를렌푸르트에서 제국 의회가 소집된다더군. 자네는 미리 그곳으로 향해 동향을 둘러봐주게.
크뤼거가 선제후는 아니지만, 유력 제후이니만큼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다.
토드는 전서구의 깃털을 뽑아, 선명하게 새겨넣었다.
─거기서 뵙겠습니다.
“일어나라.”
후두둑···!
토드의 마력이 미친 전서구의 몸에서 깃털과 살점이 쏟아졌다. 쇠렌이 봤다면 기겁했을 광경이었는데, 뼈만 남은 비둘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녹색 안광을 껌뻑댔다.
녀석의 발에 깃털을 묶어준 토드는 비둘기를 쓰다듬었다.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
죽은 비둘기가 울부짖는다.
【끼-이-익.】
골조만 남은 몸으로 비행하는 게 위태로워 보이긴 해도, 썩은 몸을 이끌고 에베르호펜까지 날아갔다간 시취가 다른 포식자들의 이목을 끌어들일 것이다.
‘나머진 가는 길에 완성해야겠는걸.’
대도시는 무수한 이들의 사념이 응집된 곳.
그런 장소에서 비롯되는 감상은 또 남다를 것이다.
어쩌면 주문을 완성할 계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가급적 도시 관광만 하다가 오면 좋겠지만.’
꼭 이럴 때 평이하게 넘어갔던 적이 있던가? 이젠 재해가 자신에게 닥치는 것인지, 자신이 재해를 찾아 나서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도 대공은 가만히 놔둘 수 없어.’
대공의 탐욕은 토드가 아끼는 세상의 파괴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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