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7
137
암실은 사령술사가 차린 임시 실험실과 비슷한 분위기였으나, 곳곳에서 허덕이는 소리가 음산함을 더했다.
끓어오르는 증기, 쉼 없이 축퇴를 반복하며 자라나고, 피조물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 이하의 존재들이 꿈틀거린다.
추종자들은 얼굴 가죽을 뒤집어쓴 채 불결한 배양의 장을 거닐었다.
철컹!
묵직한 소음에 실험에만 전념하던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실험실에 들어온 이가 분개에 찬 목소리를 쏟아냈다.
“아직 라이히슈타크까지 기한이 남았는데, 누가 은혜를 퍼뜨렸나!”
추종자들이 눈치를 보는 가운데, 손을 가지런히 모은 흑마법사가 나섰다.
“데믈러 님, 이틀 전 토드 셰우드가 뫼를렌푸르트에 당도했습니다. 저희로선 불가피하게 거사를 감행할 수밖에···”
인상을 찡그린 사내는 흑마법사를 윽박질렀다.
“그 시체 닦는 놈이 두려워서? 네 독단이 모든 계획을 그르쳤다! 클라우스!”
데믈러가 손을 휘두르자 그의 망토에서 솟구친 사슬이 클라우스의 안면을 할퀴고 지나갔다.
찢어진 볼을 움켜쥔 채로 흑마법사가 대꾸했다.
“사, 사령술사는 충분히 위협이 될만한 존재입니다. 심지어 판가우의 루카스마저 그에게 살해당했고요.”
눈동자를 굴리던 클라우스가 겁에 질린 음성으로 답했다.
“게다가 그놈은 시신을 부리지 않습니까. 놈의 주박에 걸려들면, 육신을 통한 우리의 승천이···”
멱살을 움켜쥔 데믈러의 눈이 이글거렸다.
“놈은 형제 지파들을 와해시킨 원흉이야. 그렇다면 만전을 기해 대계를 신중히 진행시킬 것이지, 이렇게 어설프게 일정을 앞당겨? 자칫 마탑에 있는 놈들이 튀어나오면?!”
“케켁, 포섭해둔 내부자가 있지 않습니까! 도시에서 소요가 벌어지는 동안, 마탑은 개입하지 못할 겁니다!”
사슬에 매달린 채로 클라우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미 토드 셰우드는 형제들의 전초 계획을 어그러트린 전과가 다분한 만큼, 놈이 개입하기 전에 거사를 실행하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습니다···!”
절그렁!
거칠게 클라우스를 내동댕이치곤, 데믈러는 사방에 부리부리한 눈빛을 뿌렸다.
“새로 만들어진 은혜는 얼마나 파종했나.”
목을 부여잡은 클라우스가 힘겹게 답했다.
“이미 상업 지구와 곡물 시장에 충분한 숫자가 살포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론 공양물이 부족해! 존귀하신 분께서 만족할만한 수확을 거두려면 뫼를렌푸르트의 절반을 바쳐야만 한다!”
“이번 인자 선별에는 특히 공을 들였으니, 불신자들의 저열한 수준으론 쉽게 대처하지 못할 겁니다. 더욱이 데믈러 님께서 안배하신 권능 덕에 이틀이면 이 알량한 도시를 거두기에도 충분할 테고요.”
데믈러의 손에 찬 반지가 일렁였다. 손을 감춘 흑마법사는 클라우스를 몰아붙이며 으르렁거렸다.
“대공과 사전에 약조한 바는 라이히슈타크에 맞춰 뫼를렌푸르트를 몰락시키는 거였다. 아직 선제후들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반쪽짜리 성과를 거둔다 한들, 이게 무슨 의미냐.”
클라우스가 히죽 웃었다.
“데믈러 님도 아시다시피, 어차피 대공은 저희를 내세워 알량한 공을 차지할 생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의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강림을 진행하고, 그분께서 내리시는 성사를 받으시지요.”
“대공을 배신하라고.”
묵직한 뇌까림에 클라우스가 속삭였다.
“일찍이 데믈러 님께서 강조하셨듯, 불신자와의 약속은 영영 신뢰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선수를 치시지요. 우리가 여기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면, 형제 지파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겁니다.”
클라우스를 굽어보던 데믈러는 사슬을 거둬들였다.
“···여태껏 쌓아온 네 공로를 감안하며 목을 치진 않으마. 허나 네 독단이 자칫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수확을 성공시키면, 필히 데믈러 님께서도 무저갱 권좌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하실만한 공이실테죠!”
데믈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격의 상승.
악마들에게 영혼을 저당 잡혀 살아가는 처지인 흑마법사들로선 평생의 숙원이다.
클라우스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부복했다.
“기필코 대계를 완수하겠습니다.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데믈러가 수조에 담긴 덩어리를 가리켰다.
“···마탑의 움직임을 봉쇄해야 의식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내가 표본들을 이끌겠다.”
클라우스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허면 수를 얼마나?”
“당연히 모두 동원해야지. 마법사 놈들이 호락호락할 거라 생각하느냐?”
“하오나, 데믈러 님. 이들을 모두 데려가시면 이곳의 방비가 취약해집니다.”
그의 요청에 데믈러가 싸늘하게 반문했다.
“네놈 입으로 이번 은혜는 공들여 자아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럼 쉽사리 은신처를 노출될 일도 없을 터.”
가뜩이나 날카로워진 성미를 건드렸다간 화를 입을까 싶어, 클라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데믈러의 지휘하에 추종자들이 수조에서 사슬을 풀어냈다.
“기뻐하라! 승격을 이룰 날이 머지않았다. 이번 기우제를 성공시킨다면, ‘비 내리는 장엄자’께서 우리를 치하하실 것이니!”
그의 독려에 추종자들이 한목소리로 암송했다.
“우리는 육신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은혜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리라!”
고무된 분위기가 무색하게, 데믈러가 출정한 직후 클라우스가 추종자를 붙들고 속삭였다.
“비상 탈출구 쪽을 열어놔.”
“예? 탈출구를요? 그럼 의식은 어떻게 합니까.”
얼굴을 일그러트린 클라우스가 중얼거렸다.
“의식은 차질없이 진행하되, 살아나갈 구석은 있어야 할 거 아니냐. 표본이 있어야 시간이라도 벌 수 있는데, 이대로 사령술사 놈이 여기 들이닥쳤다간 끝장이다!”
“저, 정말 그놈이 여길 찾아낼 거라 확신하십니까?”
클라우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곱씹었다.
“놈이 지옥의 투사를 격퇴했다는 소문까진 요행일지 몰라도, 루카스를 죽인 건 결코 우연이 아냐! 그 먼 동부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분명 그 반지를 노리고 있는 거겠지···.”
흑마법사들 사이에선 흑색 학파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 사령술사가 흑마법사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종래엔 자신의 육신마저 공양하여 승천해야 하는 흑마법사들 관점에서 시신을 지배하는 사령술사는 공포의 대상.
“어차피 의식이 성공하면 우리도 호혜를 입는 거고, 실패하더라도 마냥 죽을 순 없잖아.”
“예, 예. 알겠습니다···.”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자신의 안위만큼은 누구보다도 신경 쓰는 놈이다.
추종자를 떠나보낸 클라우스는 빈 배양조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데믈러, 내가 갖다 바친 반지만 아니었어도 삼류 떨거지에 불과했을 놈이.’
클라우스가「역병반지」를 획득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데믈러는 단번에 반지가 유물임을 간파했고, 그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클라우스는 불가피하게 반지를 진상할 수밖에 없었다.
권능이 강대한 데믈러와 달리, 클라우스는 흑마술 자체에는 재능이 미진했지만, 연구와 심계에 능했기에 그럭저럭 한미한 흑마법사 조직을 이끌 수 있었다.
데믈러는 반지를 얻은 뒤로 막대한 권능을 부리게 되었고, 명맥만 이어가던 살점 도서관은 추종자들을 늘리며 황소대공과 협력 관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살점 도서관이 여기까지 이른 데엔 순전히 자신의 수완이라고 생각했다.
‘이 김에 데믈러를 내치고, 새로이 조직을 개편할 수만 있다면···.’
탁자를 부여잡은 흑마법사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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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병들이 삼엄한 태세를 갖추고 거리를 통제하고 있었으나, 카리나를 확인하곤 일제히 물러섰다.
“에스터리츠 양도 나름 출세하셨군요.”
“뫼를렌푸르트에서나 통용되는 권위지. 너야말로 변경백에게서 봉토까지 하사받았다며?”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서나 대접받는 정식 마법사에 비하면 아직 한미한 작위지요.”
“겸손한 척하긴. 하워드라는 촌스러운 성씨도 셰우드라고 그럴싸하게 갈아치웠으면서. 네 행보만 보면 남작위에서 만족할 건 아니잖아.”
“뭐··· 명성이야, 제 행보에 따라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거겠죠. 굳이 연연하진 않습니다.”
거들먹거리는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는지, 카리나가 표정을 찡그리며 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토드 일행은 돌다리를 지나 건너편의 구역에 도달했다. 오가는 사람은 없고, 병사들이 들것에 실린 시신을 나르고 있었다.
카리나가 지나가던 부사관을 잡아 세워, 경비대의 동향을 물었다.
“하수로를 위주로 수색하고 있다고요?”
“보통 역병이 퍼지는 경로가 대개 그렇지 않습니까. 시장님의 명령으로 흑마법사들이 숨어있을 만한 지하와 빈민가를 대대적으로 수색 중입니다.”
토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 병은 수인성이 아닙니다. 물을 통해서 퍼지지 않아요. 그놈들이 물가에 숨어있진 않을 겁니다.”
쓸데없는 인력 낭비다.
“차라리 대로변과 거주 지구 위주로 수색 인원을 늘리라 하십시오. 현재로선 흑마법사들의 은신처가 특정되지 않으니, 도시에서 수상한 동향을 보이는 자들을 단속해야 합니다.”
부사관은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게 시장님 선에서 내려온 지시입니다.”
혀를 찬 토드는 그를 지나쳐 경사진 입구를 올라갔다. 토드의 오감이 주변의 경관에 집중되었다.
이곳은 물살을 받아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제분소뿐만 아니라 박피 공장, 축융소, 제지를 만드는 공방까지 있어 발밑에 울리는 진동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맥각과 유사한 증상. 곰팡이를 매개로 확산되는 병.’
토드는 굳게 잠긴 제분소의 덧창 앞에 섰다.
“이스라.”
그의 명령에 파멸의 기사가 힘차게 발을 내질렀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널이 부서졌다.
“거긴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기겁한 부사관의 외침을 가뿐히 무시한 토드는 어둠이 드리워진 제분소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내부에는 마땅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거대한 맷돌만이 돌아가고, 주변에 너저분하게 널린 자루들은 비어 있었다.
제분소의 규모로 보아 상당한 양의 곡물을 정제했을 곳이다. 게다가 물레는 아직도 돌아가는데, 이만한 곳에서 나온 곡물들은 어디로 향한 걸까.
주변을 살피고 온 이스라가 외쳤다.
【토드, 이곳은 쥐새끼 한 마리 없네. 이곳에 비하면 그 다락방에서도 그토록 생쥐가 많이 나왔거늘, 이상하군.】
무릎을 굽힌 토드는 바닥에 떨어진 밀알을 쓸어올렸다.
‘알곡을 이렇게 흘려놨는데, 주변에 쥐가 없을 리가.’
맥각은 무색무취인 탓에 어지간한 인간이 감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을 뛰어넘는 감각의 소유자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몸을 일으킨 토드가 제분소 밖에 서 있던 카리나를 향해 외쳤다.
“에스터리츠 양, 제 동행인이 여관에 머물고 있을 겁니다. 수소문을 부탁드립니다.”
빠르게 당도한 산시아는 제분소의 공기를 헤아리다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흔적이 옅어서 맡기 어렵지만, 쓴 냄새가 나요. 탄 맥주나 묵은 담뱃잎에서 날 법한 느낌.”
“흔적을 쫓을 수 있겠습니까?”
“네.”
어느새 제자의 귀가 뾰족하게 서 있었다.
“마지스터 에스터리츠! 광장 쪽에서 사람들이 대거 쓰러졌습니다!”
카리나를 찾는 다급한 목소리에 토드가 미소를 지었다.
“인기가 많으시네요. 에스터리츠 양.”
“···마법사라고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만능은 아닌데 말이야.”
쾨흘링 분쟁 이후로 많은 걸 느꼈던지, 자신의 마법 실력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똘똘 뭉쳐있던 때완 다른 모습이었다.
“마지스터 라우터바흐가 검역을 실시하신다면서, 광장 구석에 불을···!”
대번에 카리나의 눈이 뒤집혔다.
“아, 진짜! 그 또라이가! 어디에요! 당장 안내해요!”
급히 토드를 돌아본 카리나가 다급히 외쳤다.
“일단 난 그년을 막으러 갈게! 상황이 수습되는 대로 따라붙을 테니까!”
“염려 마시길.”
곁에 붙어있던 산시아가 나직이 속삭였다.
“스승님, 도시에 피의 업이.”
“예, 저도 보입니다.”
곳곳에서 짙게 깔린 살생의 죄가 요동치고 있다. 악마들은 필멸자들의 고통을 양분 삼아 물질계에 출현한다.
“바우어 양은 여관에 잘 있고요?”
“그 아이가 눈치만큼은 빨라요. 여관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겠다고 했어요.”
토드가 빙긋 웃었다.
“좋습니다. 안내하세요.”
대앵-
정오를 알리는 종탑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두 사령술사, 두 기사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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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은 순조롭습니다. 내부의 지침에 따라 경비대는 지휘에 혼선이 생겼고, 정육 시장에도 은혜가 살포되었습니다.”
추종자의 보고에 클라우스는 도리어 초조해졌다.
‘생각보다 일은 수월하게 풀리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막연한 불안감이 자꾸만 엄습한다.
분명 거점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곳에 구축되었다.
‘어차피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모두 끝난다. 그때까지 여길 찾아낼 순 없을 거야.’
카앙─!!
날카로운 금속음에 클라우스의 몸이 멈춰섰다.
구부정하게 등을 숙인 인영이 유유히 걸어오더니, 추종자들을 돌아보며 고했다.
“여기들 숨어계셨군요! 바로 위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시청이 있는데.”
히죽 웃은 사내가 양팔을 벌렸다.
“어찌 보면 숨어있는 게 아니라, 대놓고 업장을 차리신 거니. 배짱이 대단하신데요?”
대답 대신, 사방에서 악의를 담은 주문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쏟아져 나간 주문 다발이 사내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
침묵하던 흑마법사들이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서자, 클라우스가 외쳤다.
“접근하지 마! 시체로 온갖 조화를 부리는 놈이다!”
그러자 갈가리 찢긴 고깃덩어리 속에서 가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법, 눈썰미는··· 있으시네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편이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했다.
입구로 돌아오는 통로를 찢어발길 정도의 폭발력에 흑마법사들이 당황했다.
어안이 벙벙한 그들 앞에, 새하얀 포자가 둥실둥실 날라온다.
“저놈, 병에 걸린 시체를?”
그들을 살피던 사령술사가 히죽 웃었다.
“어디, 자기들이 만들어낸 역병엔 어떻게 대처하는지 볼까.”
더욱이 저긴 통풍과는 거리가 먼 밀폐된 환경.
빠져나갈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