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36
136
수감실을 빠져나온 토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 살다 보니 에스터리츠 양에게 신세를 지는군요.”
“나불대지 말고, 일단 따라 나오기나 해.”
태연히 요제핀의 시선을 흘려넘긴 카리나는 경비대에게 압수당한 물건들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렇게 감옥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그녀가 숨을 몰아쉬었다.
“넌 어째 매번 철창신세를 지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지요. 여전히 사람들은 통념상 사령술사를 거부하니.”
“그걸 알면서도 순순히 잡혀 왔다고?”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저는 뫼를렌푸르트에서 주시받고 있으니, 분명 상급자와 만날 기회라고 생각했었지요.”
카리나는 표정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어. 만약 책임자가 널 만나주지도 않고, 저 녀석이 고문만 시도하려 했다면.”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전 나름 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는데, 뫼를렌푸르트 측의 그렇게 융통성 없이 대응했다면야···”
사령술사의 입가에 걸린 미소에 카리나는 진저리를 냈다.
“가뜩이나 여기 상황도 어지러운데, 너까지 거기서 난리를 피웠다간 어쩌려고!”
“에스터리츠 양도 사전에 그걸 알고 와계셨던 게 아닙니까.”
문득 미간을 좁힌 채 토드의 말을 헤아리던 카리나는 사령술사가 이미 모든 상황을 읽고 조율한 것임을 깨달았다.
“너, 어차피 네 소식이라면 내가 뛰어올 줄 알고···!”
돌연 열기가 거세지자 토드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전에는 안 보이던 봉을 쥐고 계시던데, 에스터리츠 양의 지팡이입니까? 멋있는데요.”
어차피 이 녀석과는 말싸움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안다. 혀를 찬 카리나는 봉을 갈무리하며 답했다.
“마지스터에 도달하면서 내가 만든 권표(權標)야.”
“에스터리츠 양만의 고유한 상징이군요! 그런 것치곤 라우터바흐 양은 같은 마지스터임에도 권표가 없는 것 같던데요.”
요제핀과 덩달아 묶는 게 불쾌했던지, 카리나는 눈을 흘겼다.
“불을 피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그걸 마법사의 의지 하에 완벽히 길들이고 통제하는 건 다른 범주지. 넌 내가 그 녀석이랑 동일 선상에 있다고 생각해?”
“아, 당연히 그건 아니죠. 우리는 쾨흘링에서 고난을 해쳐나간 동지 아닙니까. 누구보다도 제가 에스터리츠 양의 솜씨를 잘 알죠.”
머리를 짚은 카리나가 입술을 뾰족하게 세웠다.
“이제 와서 아부는 됐어. 아까 봐서 알겠지만, 뫼를렌푸르트는 특히 사령술사나 흑마법사들한테 호의적이지 않아.”
“근처에 적색 마탑이 있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고, 뫼를렌푸르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하거든. 도시에 소속되지 않으면 배척당하는 경향이 강해.”
카리나는 작은 체구임에도 제법 발걸음이 빨랐는데, 토드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겨우 보조를 맞췄다.
토드가 슬쩍 처진 사이, 앞서 카리나와 걸어가던 이스라가 물었다.
【본인이 보기에 그 불꽃 요술쟁이는 좀 이상해 보이더군. 원래 자네가 속한 탑의 사람들은 다 그런 건가?】
“홍염 마탑은 원래 전투 마법사들을 양성하던 곳이었으니까. 다들 성향이 호전적일 수밖에 없어.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고.”
고개를 끄덕인 파멸의 기사가 안광을 흩뿌렸다.
【확실히 요술쟁이치곤 투지가 느껴지더군. 그 여자와는 언젠가 충돌할 거란 예감이 드네.】
“요제핀이랑은 가급적 상종하지 않는 게 나아. 괜히 마탑의 투견이라 불리는 게 아니니까.”
【하, 하! 하. 요술쟁이의 불꽃이 뜨겁다 한들, 본인의 열의에 미칠 수 있을까!】
“꿈도 꾸지 마. 너희가 붙는 순간 도시의 구역 하나가 날아갈 텐데, 그랬다간 마탑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할 거야. 차라리 교수대에 매달리는 게 나을걸.”
카리나의 엄포에 토드가 의아해했다.
“거기까지 가야 마탑에서 개입하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 사태만으로도 마탑이 움직일 만도 한데, 정작 현장을 돌아다니는 건 당신과 라우터바흐 양뿐이군요.”
한숨을 흘린 카리나가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왜겠어. 이런 귀찮고 성가신 일들은 말단에 도맡아서 시키는 거지. 괜히 고명하신 마도사들을 풀어놔봤자, 도움도 안 돼.”
문고리를 쥐고 안간힘을 쓰던 카리나는 다소 힘겹게 문을 열어젖히며 중얼거렸다.
“역병이 퍼졌다는 걸 알면, 어지간한 구역들을 죄다 소각해버릴 거야. 뫼를렌푸르트는 과거에도 그런 식으로 붉은 열병에 대처했으니까.”
“과격하지만, 확실한 방식이군요.”
“난 그런 방식은 원하지 않아. 난 내가 가진 힘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어. 넌, 어때? 토드.”
토드는 미소를 흘리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이번에도 우리의 뜻이 일치하는 것 같군요.”
고개를 끄덕인 카리나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턱을 까딱였다.
“그 대공이라는 자가 벌이려는 일은 대강 알겠어. 그럼 네 계획을 말해봐.”
“우선 사망자로부터 표본을 채취하여 역병을 파악할 생각입니다. 정체를 알아야 대응책도 강구할 수 있겠죠.”
카리나가 눈썹을 오므렸다.
“병을 알아내는 게 쉽진 않을 텐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아?”
“충분한 공간과 장비만 있다면 단기간에 가능합니다. 더욱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병이 아닌, 흑마법사들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여긴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야. 바로 옆에 창고가 있으니, 쌓아둔 것들만 좀 치운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어.”
카리나가 데려온 방은 섬세한 관리가 닿은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으나, 제법 널찍했다.
온도나 습도는 마음에 들었다.
“혹시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지냅니까?”
“여긴 뫼를렌푸르트에서 인가받은 인원이 임시로 쓰는 숙소야. 아직 라이히슈타크가 열리기 전이니 마땅히 머무르는 사람은 없어.”
“환상적이군요! 그럼 여기에 임시로 실험실을 차리면 되겠습니다.”
눈자위를 번뜩이는 모습에 카리나는 한숨을 흘렸다.
“부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상식선에서 일을 벌였으면 좋겠지만··· 그런다고 네가 들어먹을 인간도 아니고.”
손을 싹싹 비빈 토드는 창고로 넘어가 각종 잡동사니를 늘어놓았다.
“혹시 냄비와 플라스크도 있습니까?”
“아마 선반에 있을 것 같은데, 난 손이 안 닿아서···”
댕그랑!
여러 자재가 요란하게 바닥을 뒹굴더니, 이스라가 먼지 붙은 솥을 꺼내왔다.
【마침 큼직한 게 있군! 사령술사! 이 정도면 되겠나!】
“오, 넉넉할수록 좋지요! 여기다가 놓아주세요. 에스터리츠 양은 불을 부탁합니다.”
“···여기다 연금술 공방이라도 차릴 생각이야?”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미미하게 일어난 불똥이 냄비를 달궜다.
“제가 비록 납으로 금을 만들진 못하더라도, 사람이 어떤 연유로 죽음을 맞이했는진 알아내는 게 어렵진 않습니다.”
벌써 정체불명의 약병들을 냄비에 풀어헤치는 토드를 보면서, 카리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마 나니까 널 이해해주는 거지, 다른 사람들도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토드는 어디서 챙겨왔는지 주걱 대신 뼈마디로 냄비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런가요? 홍염 마탑에서도 시약 연구를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불을 다루는데 익숙한 만큼 물약 연구도 활발하지만, 너처럼 시체에서 떼어낸 살 조각에 매달리진 않아···. 보통 몸이 아프면 사람들은 교회를 찾아가거나 연금술사의 비약을 사들이니까.”
마법이나 신성처럼 권능이 익숙한 세계니, 자연히 해부학이나 생리학 분야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토드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그렇군요. 어쩐지 사람들이 20년 넘게 끓인 솥단지 요리를 먹고도 다들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같더니만, 저만 음식에 고생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령술사로서 교회를 방문하는 건 쉽지 않고, 은둔 생활로 근근이 버티는데 값비싼 비약은 어림도 없었다.
【하, 하! 하. 모두가 그런 건 아니네. 사령술사. 마법사 양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니 가능한 소리지, 그렇지 못한 이들은 버티며 사는 거라네!】
카리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틀린 말은 아냐.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네가 모르는 거겠지.”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가혹한 땅.
새삼 최근에 나이진 처지 탓인지 이곳의 본질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흑색 학파가 이 땅에 자리 잡을 돌파구가 될지도.’
사령술은 죽음의 본질에 관해 탐구하는 속성 탓에 필연적으로 송장을 비롯하여 그로부터 파생된 부산물에도 해박해질 수밖에 없다.
원치 않아도, 하수인을 제대로 다루려면 망자와 그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만 했다.
토드는 입가에 헝겊을 둘러매며 말했다.
“중탕을 거치면 독성이 약해지겠지만, 혹시 모르니 에스터리츠 양도 입을 막아주세요.”
화들짝 놀란 카리나가 황급히 망토 자락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거 정말 괜찮은 거 맞는 거지?!”
약병에 담긴 토사물은 여전히 점성으로 가득했다. 어찌나 맹렬한지, 굳게 닫힌 약병이 증기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저도 확신은 못 합니다. 저나 이스라는 괜찮겠지만, 아직 이 병이 어떻게 작용하는진 모르니까요.”
창틀부터 열어젖힌 카리나는 슬금슬금 문틀에 선 채 답했다.
“이렇게 하면 치료제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야?”
한 움큼을 떠내 냄비에 떨구자,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던 표본은 이내 희석되어 잠잠해졌다.
우선 물에 반응하지 않는다.
“치료제를 만들려면 시간이 지나치게 소요됩니다. 병이 퍼지는 경로와 방식을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럼 적어도 확산을 방지할 수 있죠.”
일부를 플라스크에 담아 추가로 확인했지만, 수인성 질병일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럼 어떤 식으로 이걸 전염시킬 생각인 걸까.
카리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을 막은 채 우물거렸다.
“그럼 내가 지금 도울만한 건 없어?”
“음. 불은 이 정도가 적당합니다. 꺼지지만 않게 잘 주시해주세요.”
적당한 성냥 취급에 심기가 긁히긴 했어도, 토드의 신중한 모습에 카리나는 찍소리도 못했다.
일단 수중에 있는 시약으로 검증을 해봤지만, 생각보다 한계에 봉착한 시점이 이르다.
‘금속 원소도 부식시킬 정도로 강한 산성이야. 이걸 어떻게 체내에서 배양하는 거지?’
직접 독성을 시험해볼 표본이 절실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몸에다 실험하자니 이 빈약한 몸뚱이는 내구와 신뢰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병에 걸리진 않더라도, 이만한 독성이라면 단숨에 위중해질 수 있다.
찍찍.
찬장에서 울리는 미약한 소음.
놓치지 않은 토드가 읊조렸다.
‘이스라.’
단숨에 이스라가 제자리에서 도약했다.
콰앙!!
“힉! 뭐, 뭐야!”
느닷없는 돌발 행동에 카리나가 기겁한 사이, 이스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손아귀에 바둥대는 쥐들을 들어 보였다.
【터뜨리지 않고 산 채로 포획했네! 어떤가! 본인의 섬세한 완력 조절이!】
“훌륭합니다! 마침 생체 실험을 거칠 견본까지 있다니.”
토드는 생쥐들을 상자에 옮겨 담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이런 장소를 찾아내다니. 에스터리츠 양의 유능함에 감탄이 나오는군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카리나는 쾨흘링에서 앓았던 두통이 재발할 것만 같았다.
“그냥 감옥에 놔두는 게 답이었나···?”
생명의 무게는 피조물의 여하에 상관없이 무거운 법. 토드는 비명을 지르며 떠는 쥐들의 몸을 쓸어내렸다.
“축생들이여. 두려워 말라.”
이따금 불안이 극에 달한 생쥐가 토드의 손을 물어뜯기도 했으나, 토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읊조렸다.
“비록 너희의 숨은 여기서 멎을 것이나, 너희들의 살점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수를 구할 것이니.”
단검에 표본을 바른 토드는 생쥐의 옆구리를 그어냈다.
찍, 찍찍!
“살생의 죄는 내가 지고 가겠다. 너희는 떠나가라.”
작은 미물이 바둥거린다.
생쥐는 인간에 비해 신진대사가 빠른 만큼, 반응을 보기에도 적합하다.
토드는 개별적으로 생쥐들을 나누어 끊임없이 감염시키고, 분리해놓거나 합사시켰다.
그사이 파멸의 기사는 끊임없이 찬장과 벽을 뒤지며 생쥐를 구해왔고, 부글거리는 냄비는 쉼 없이 증기를 쏟아냈다.
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는 토드의 모습에 도리어 카리나도 진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부쩍 핼쑥해진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다.
토드는 배를 까뒤집은 채 널브러진 생쥐를 응시했다.
단검으로 개복을 해보니, 온몸의 장기가 죽처럼 녹아내린 채 점성으로 엮여 꿈틀거리고 있었다.
‘잠복기가 길지 않다. 체내에 순식간에 번지는군.’
이 상태에서 어떻게 확산하는 걸까? 토사물을 통한 접촉 전염은 너무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호흡기를 기반으로 번지는 것도 애매한 게, 폐가 이미 녹아내려 뒤틀린 상태.
그 와중에 생쥐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병자를 살아있는 담즙 그릇으로 만들어버리는 악의에 토드조차 치가 떨릴 정도였다.
밤새 유리병만 들여보던 토드는 벌게진 눈을 비볐다.
‘벌써 해가 떴네.’
이 가련한 피조물의 고통이라도 덜어줄 생각에, 토드는 생쥐의 머리를 찔렀다.
그리고 생쥐의 숨이 끊어진 순간, 끓어오르던 육신에 변화가 생겼다.
‘······!’
보랏빛에 가깝게 변색한 생쥐의 사체에서 가느다란 가닥이 자라나더니, 멍울이 맺혔다.
그 모습이 마치 버섯의 포자와 닮은 생김새였다. 토드는 급히 마력을 퍼뜨려 주변에 번지는 걸 막았는데, 홀씨처럼 흩날린 분말들이 가루처럼 떨어졌다.
‘곰팡이였구나.’
조심스레 분말을 담아내 생쥐들에게 옮겨주니, 녀석들은 돌연 움직임이 활발해지다가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저러다가 몸이 액화되어 포자를 퍼뜨린다.’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스터리츠 양, 보입니까?”
“어. 쥐들의 행동을 보니까 약간 맥각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간혹 전통 방식을 흉내 낸답시고 맥각을 복용하는 얼간이들이 있거든.”
옛 마녀들은 맥각을 환각제로 활용하여 의식을 행했다고 들었다. 균류를 기반으로 감염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희생자를 직접적으로 살펴봐야겠군요. 시신은 어디에 안치해뒀답니까?”
카리나가 난색을 표했다.
“일단 역병으로 보고된 이상, 보관하려는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거야. 아마 수거된 직후에 소각되었을걸.”
이럴 것 같아서 미리 토사물을 채취해뒀지만, 사료가 너무 적다. 곤란하던 차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마지스터 에스터리츠! 제빵사들의 골목에서 대거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토드가 나직이 속삭였다.
“한두 구 정도는 빼 올 수 있겠죠?”
카리나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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