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69
169
말문이 트였던 순간은 희미하나, 처음으로 배웠던 가르침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너는 위대한 혈통의 후예다. 언제나 자긍심을 가지고, 저들 앞에서 위엄을 보이거라.”
아버지는 내가 당신의 명성에 걸맞는 자식으로 자라나길 원하셨기에 그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셨다.
아직 어린아이가 깨우치기엔 다소 버거운 짐이었을지 모르나, 당시엔 그게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르다는 건,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 그 특별함이 나를 지탱했다. 자부심을 양분 삼아 나는 자라났다.
“명예는 대단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평소의 생활과 마음가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걷는 것에 익숙해졌을 땐, 어떻게 걸어야 품위를 지킬 수 있으며, 하인들과 다르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허나 나는 천성적으로 꼼꼼함과는 거리가 멀어, 자주 실수를 하곤 했다. 내가 미숙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아버지는 엄격하게 혼을 내셨고, 매번 풀 죽은 나를 어머니가 달래주셨다.
‘일라리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란다.’
혼이 난다는 건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 사실이 너무나 분했다.
“아버지가 또 혼내셨어요. 예법에 틀리게 행동했다고.”
‘실수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니. 사람은 실수하면서 배워나가는 거야.’
“전 실수 없이 배우고 싶어요. 혼나는 건 싫단 밀이에요.”
매번 응석을 부려도 어머니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나를 보듬었다.
‘사랑스러운 우리 딸. 네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지만, 이따금 네가 자라나는 아이라는 걸 잊는 모양이더구나. 너는 훌륭하게 자라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렴.’
아버지도 대공가의 주인으로서 자식을 완벽히 양육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던 게 틀림없다. 어머니는 이를 알고 나와 아버지를 중재하셨던 거겠지.
나는 어머니의 품에서 속삭이곤 했다.
“저도 엄마처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머니가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어른이 되면 실수를 하지 않고, 완벽할 테니까요. 우리는 사자의 후예이니, 항상 완벽해야 하잖아요.”
아이의 불안함에 어머니는 조곤조곤 속삭이셨다.
‘내 딸. 어른이 된다고 해서 사람은 완벽해지지 않는단다.’
“네? 하지만··· 엄마는 저와 달리 실수도 하지 않으시고, 완벽하시잖아요.”
어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셨다. 행동가지 하나하나에 있어 기품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어리숙한 철부지에게 어머니는 생소한 물건을 내려놓았다.
‘일라리스,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떠니?’
갈색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책은 아이가 들기엔 무거웠다. 낱장을 가득 채운 생소한 글자, 어려운 것들.
어머니는 나를 친히 품에 앉혀두곤 같이 책장을 넘겨주셨다. 아직 내가 읽지 못하는 활자들 대신, 어머니는 다채로운 색상과 그림으로 묘사된 장을 짚으셨다.
‘어디, 여기를 볼까?’
어리숙한 아이가 보기에도 책장 너머에 묘사된 세계는 흥미로웠다.
어머니 덕분에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빨리 책을 접했다.
모르는 단어나 생소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집요하게 캐물었고, 어머니는 자상하게 가르쳐주셨다.
책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대공령의 본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세계가 저 밖에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히 왜 내가 특별한 것인지, 왜 나는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태어난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시종장인 알윈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가문의 서고에 있는 서책들도 가져갔다.
여태까지 읽었던 서책이 아닌, 끈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들. 오래된 피혁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좋았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찬장에서 꺼내도 따스한 온기가 서려 있다.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아득한 선조는 헤젤이라는 땅의 편자공이었다. 우리는 태생부터 말을 타던 평원의 기수들이었으며, 먼 옛날, 척박한 고토를 떠나 풍요로운 이 땅에 지배자로 군림했다.
쾨니디툼의 사람들과 우리의 생김새가 다른 것은 그 탓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고개 숙이는 사람들은 검은 곱슬머리에 까무잡잡했다. 나는 그들이 정말 흙을 파먹고 살아서 그런 줄만 알았었다.
“엄마. 이번에 읽은 책에는 기수라는 말이 있던데, 기수는 무슨 뜻이에요?”
‘기수란, 말 타는 사람들을 의미한단다. 네 아버지처럼 명예로운 기사들을 말하는 거야.’
“기사···!”
더욱이 내가 처음 배웠던 글자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명예였다.
명예로운 사람들이라니. 아버지가 그토록 누누이 강조하시던 명예를 갖춘 사람들.
완벽한 사람.
내 눈빛을 읽은 어머니가 작게 속삭이셨다.
‘기사들에 대해 알고 싶니?’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여태껏 읽었던 책들에 비하면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그림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어머니를 졸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위해 기사들이 등장하는 소설과 모험담들을 읽어주셨다.
여전히 유일한 자식이 나뿐이라는 건 아버지에게 적잖은 압박으로 작용하셨던 모양이다.
점점 배워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나가기 싫어도 만나야 하는 약속도 많아졌다.
한창 바타뉴와의 국경 분쟁이 심화되면서 어머니도 대공 부인으로서 눈 뜰 새 없이 바쁘셨겠지만, 매번 잠들기 전에 내게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주셨다.
······엄마와 책을 읽던 때가 그리워.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내게 대공령에서의 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부족함 없이 자라났다.
반대로 어머니는 나날이 야위어가셨다.
“엄마, 왜 요즘은 같이 책을 읽어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명백히 어머니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계신 날이 많아졌고, 낯빛은 창백해졌으나, 그때의 난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때도 적잖게 고생을 하셨던 전력이 있어 아버지는 극도로 신중하시려 했으나, 가신들과 친척들이 압박을 가하던 상황이었다.
내 앞에서 어머니는 그런 기색을 내색하지 않고 웃으셨다.
‘서운해하지 마렴. 내 사랑스러운 딸. 여기 귀를 대보겠니?’
어머니는 자신의 배에 나를 이끌었다.
아주 가냘프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고동.
‘네 동생이 여기에 잠들어 있단다.’
“동생···! 저한테도 동생이 생기는 거예요? 책에서 봤어요! 정말 황새가 새벽에 물어다 줬어요?”
‘그럼. 하지만 아이는 약하고, 조심스럽게 보살펴줘야 한단다. 네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들뜬 나를 차분히 달래며 속삭이셨다.
‘일라리스, 네 동생을 잘 돌봐줄 수 있겠니?’
어쩌면 어머니는 이미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알고 계셨는지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헤젤슈마흐 대공가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니까요! 저처럼 동생도 완벽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나중에 엄마랑 같이 책도 읽고, 놀러 갈 수도 있겠죠?”
장난스럽게 웃으며 걸었던 새끼손가락이 누군가의 앞에서 처음으로 한 맹세였다.
열 달 뒤, 어머니는 동생을 낳고 돌아가셨다.
동생은 나와 마찬가지로 여자아이였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는 걸 봤다. 한 번도 내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시던 분이, 아이처럼 흐느끼고 계셨다.
그 뒤로 아버지가 운 걸 본 적은 없다.
내가 여섯 살 때의 일이다.
유아는 어떻게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생존을 담보 받을 수 있으므로.
유년기를 거치더라도 본질 자체는 동일하다. 양상이 조금 달라질 뿐. 인정 욕구는 생을 향해 발버둥 치고자 하는 힘의 원천이다.
사람은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좌지우지되던 시기를 지나면 나아가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길 바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무엇이든지 남들보다 빨리, 완벽하게 배웠다.
돌이켜보면 난 특출나게 똑똑한 게 아니었다. 단지 칭찬을 받고 싶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도 몰래 촛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나를 가리켜 영특하다며 칭찬해줬다. 헤젤슈마흐 가문의 신동이라며 추켜세우기 일쑤였다.
반대로 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다.
“사내아이였어야만 했는데.”
“······.”
동방에서 전쟁이 터졌다고 한다.
황제의 가신인 아버지 역시 소집령에 응해 오랫동안 집안을 비우셨다.
드넓은 본궁에는 나와 내 동생, 알레시아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동생은 내가 지켜야만 했다. 어머니와 한 약속이었다.
책만 읽어선 동생을 지킬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줄곧 읽었던 책들을 떠올렸다.
소설 속 기사들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명예롭게 행동했다. 명예로우려면 검을 들어야만 한다.
다만 소설 속 기사들은 사내들이고, 나는 연약한 계집아이.
─사내아이였어야만 했는데.
아버지의 한마디가 내 반발심을 끌어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길 갈구했다. 원정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이 아니더라도, 해낼 수 있노라고.
교본의 삽화에 묘사된 자세를 따라 하고, 몸을 단련하는 방법을 읽었다. 낮에는 대공가의 아가씨로서 익혀야 할 소양을 익히고, 밤에는 뒤뜰로 나가 목검을 잡았다. 마땅히 집안에는 나를 제어할 어른이 없었기에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2년여가 흘러, 아버지는 원정에서 귀환하셨고, 아버지를 도와주신 명망 높은 기사를 손님으로 데려오셨다.
응접실로 들어선 일행들 앞에 고했다.
“지글러 경께 대련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표정을 구기셨다.
“일라리스! 귀빈께 이게 무슨 무례냐?!”
“지글러 경은 검술의 대가로서 이름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비록 여아이나, 엄연히 헤젤슈마흐 가문의 사람이니만큼 적어도 제 안위만큼은 지키고 싶습니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내 포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미안하네. 저리도 철이 없을 줄이야··· 교사들과 하인들에게 훈육을 맡겨뒀더니, 괜히 자네에게 추태만 보였군. 에크하르트! 뭐하나? 당장 방으로 데려가지 않고.”
아버지의 호통에 도리어 기사분은 고개를 저었다.
“흐흠, 아니올시다. 이제 11살이라 하지 않았소? 한창 뭣도 모를 나이이니 이해하오.”
문득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히죽 웃었다.
“헌데 따님이시라더니, 검을 쥔 자세가 제법 그럴싸하더군. 나만 하더라도 저땐 목검도 겨우 들었는데, 장검을 쥐고 있다니.”
세르지오 경은 내 노력을 알아봐 주셨다.
“전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여기서 묵는 동안 따님을 가르쳐봐도 되겠소이까? 아주 잠깐이지 않소.”
그는 아버지의 은인이었다. 더욱이 무구의 달인에 등극한 대단한 기사인만큼, 차라리 내가 현실을 빨리 깨우치고 공상에서 깨어나길 바라셨던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승낙하셨지만,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검을 쥐는 법, 휘두르고, 걸음을 재는 감각에 이르기까지.
카앙!
“오호! 방금 일격은 좋았네! 꼬마 아가씨!”
“정말요? 세르지오 경?”
“허나 그렇게 힘만 실어서 휘둘러선 아니 되네!”
세르지오 경이 맞댄 검을 비틀자, 나는 맥없이 엎어졌다.
“방금 건 아저씨가 힘을 줘서 절 밀어낸 게 아니고요? 아저씨는 저와 다르게 어른이시잖아요?”
어깨를 들썩인 세르지오 경은 날 일으켜 세웠다.
“명심하게. 아가씨. 검술은 힘이 세다고 해서 마냥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세르지오 경은 내 손에 다시 장검을 쥐여주곤, 손끝으로 날을 훑어내렸다.
“장검의 날은 칼끝에 가까운 쪽을 약점, 가까운 쪽을 강점으로 구분한다네.”
그는 직접 내 검을 내리누르며 장검술의 묘리를 체득시켰다.
“보게나! 내가 아무리 힘을 실어도, 아가씨의 검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러게요···? 지금 일부러 힘 빼신 건 아니죠?”
“에잉! 본좌를 의심하다니! 보라! 이번엔 반대로 해보세! 내가 검을 세 손가락만으로 잡아도···”
아무리 양손으로 그의 검을 내리눌러도, 세워진 날은 굳건하게 견뎌냈다.
“···받아낼 수 있지 않은고? 이처럼 힘과 체력이 전사의 기초가 될지언정, 검객으로서 능사는 아니올시다!”
그는 히죽 웃으며 내가 쥔 장검을 두들겼다.
“자신이 쥔 무기에 대한 이해, 상대방의 수에 대응하는 감각을 익히시게나.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이 있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지 않겠는고?”
“······이해했어요.”
“좋아! 그럼 다시 검은 들어 올리고!”
세르지오 아저씨와 검을 배우던 시간은 어머니가 기사 소설을 읽어주던 때만큼이나 즐거웠다.
“아가씨가 본 구결은 라인슈테커 검술에 근간을 두고 있으니, 자세의 숙달도 거기에 맞추겠다! 우선 황소(Ochs)!”
언제나 그렇듯, 즐거운 시간은 거품처럼 흩어진다.
“천장(vom Tag)!”
환희는 찰나에 그치나, 유달리 고통은 짙게 상흔을 남기고 가는 이 땅에서.
“쟁기(Pflug)!”
우리는 한 줌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연명한다.
“···광대(Alber) 자세. 제법이군! 꼬마 아가씨! 이거, 수년 뒤엔 제국에서 검으로 나를 넘어설 기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는걸?”
나는 땀을 훔치며 되물었다.
“정말요?”
“하하! 허나 백화의 지글러가 아직 팔팔하게 살아있는 한, 아직 10년은 이르도다! 그 뒤에 찾아오도록!”
“치.”
세르지오 아저씨는 나를 성심성의껏 가르쳤다. 가식이나 부려대는 친척들과 달리, 나에겐 그가 정말 삼촌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쉽게도 아저씨는 내게 무인으로서 기초를 알려주고 떠나가셨다.
대외적으로 내 신분은 헤젤슈마흐 대공가의 장녀.
나는 내 직위와 혈통에 맞는 품위를 유지하고, 아버지의 명예에 걸맞게 처신해야만 했다.
대부분 사람은 내가 세르지오 경 슬하에서 검술을 수련했던 걸 두고 치기 어린 시절의 일시적인 행동 정도로 치부한다.
그 뒤로도 나는 몰래 검술서와 교본을 사들이며 수련했다. 하지만 점점 장검을 휘두를수록, 한계만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아무리 스스로 수련을 거듭하더라도, 태생적인 한계를 넘을 순 없다.
나는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다.
내가 보던 기사도 소설에서도, 아가씨는 기사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뿐, 누군가를 구할 수 없다.
나약하므로.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고 줄곧 수련에 매달렸지만, 결국 아버지께 들키고 말았다.
“언제까지 그리 철없이 행동할 거냐.”
“······제가 사내아이길 바라셨잖아요.”
아버지는 나를 묵묵히 응시하셨다.
“그래서 검을 든 거냐?”
“···네.”
옅게 한숨을 흘리신 아버지는 낮게 속삭이셨다.
“일라리스. 넌 내 딸이다. 누구보다 영특한 너라면 네게 주어진 의무를 잘 알고 있을 텐데, 아직도 미련하게 검을 잡고 있더냐.”
“비록 전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시던 아들은 아니더라도, 그 몫은 해낼 수 있어요.”
검을 부여잡은 내 모습을 보곤, 아버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렇다면 도나투스를 상대해봐라. 마침 네 또래이니, 저 녀석을 꺾으면 이 문제로 더는 널 책망하지 않으마.”
도나투스. 아버지의 호위기사인 에크하르트 경의 아들. 그는 조심스럽게 목검을 집어 들었다.
나는 인상을 구겼다.
“도나투스. 장검을 들어.”
“예? 하오나, 아가씨. 자칫 다칠 수도···”
아버지가 턱을 까딱였다. 눈치를 살피던 그가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도나투스, 네가 승리하면 호위기사단에 입단할 수 있도록 조치하마.”
아버지의 제안에 도나투스는 장검을 다잡았다.
나도 그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에크하르트 경의 아들이라 하나, 아직 기사가 되지 못한 소년.
더욱이 나는 세르지오 경한테서 인정받은 만큼, 승산은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카가각!!
도나투스는 검집에 칼날을 밀어 넣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가씨.”
다소 허무한 결판.
“······.”
격차는 명백했다.
아버지가 단호히 고했다.
“앞으론 틈틈이 무도회에도 참석하고, 너와 혼약을 원하는 가문의 자제들과 만나거라.”
나는 검을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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