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00
200
의외로 교전 중에 발생하는 사상자는 그리 많지 않다. 화기가 보편화되었어도 여전히 전장식 장총의 대인 저지력은 지엽적이다.
대단위 광역 주문이 진형 한가운데에 떨어진다 한들, 벼락불에 그을리거나 서릿발로 동사하는 인원조차 많아 봐야 수백 정도.
수만 명이 동원되는 상황을 감안해보면 그들의 죽음조차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맞붙기도 전에 운 없이 포격에 휩쓸리거나, 대부분은 패주 중에 죽어나가지.’
더군다나 인간은 상대를 전멸시키기 위해 전투를 벌이지 않는다.
어지간한 대제후의 재력으로도 생산성이 전무한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들의 대금은 대체로 부유한 조합이 부담했다.
실질적으로 전쟁은 채무와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쪽이 먼저 파산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땅에선 노동력은 곧 생산성의 핵심이므로 농민 한 명조차 제후에겐 귀한 자산이다.
인당 시세를 싸게 후려쳐도 은화 반 푼은 받을 수 있고, 자유시에서 고용된 용병이나 마법사, 귀족 등은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친다.
구태여 전부 잡아 죽이느니, 포로로 잡아들여 전비를 충당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악마들은 물질계의 동전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아.’
무너진 담벼락엔 갈가리 찢긴 내장 조각들이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간신히 등을 기댄 채 어린 짐승처럼 헐떡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머지않아 대부분은 숨이 끊어질 것이다.
다분히 악의적인 집요함이 엿보인다. 악마의 수하들은 제 주인과 마찬가지로 교활한 성미를 갖추고 있었다.
놈들은 포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처럼.’
토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로지 피조물들의 영혼에 고통을 새겨넣는 게 목표다. 그게 고스란히 그들의 힘으로 돌아올 테니.
네크로폴리스와 마찬가지로 무저갱의 군세는 전쟁의 근간을 뒤흔드는 집단이었다.
사령술사로선 강력한 경쟁업체의 출현이 영 달갑지 않았다.
‘사실상 참칭파는 이번 일로 궤멸된 거나 다름없군.’
그토록 철통같던 요새의 방비조차 악마의 발톱으로부터 병사들을 지켜주진 못했다.
‘공포가 문제야.’
악마들에겐 피조물들로 하여금 공포의 정서를 유발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붉게 타오르는 눈이나 우레 치듯 으르렁거리는 육성, 몸뚱이에서 풍기는 지독한 유황 내음은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했다.
토드와 달리 뭇인간들의 정신력으론 견딜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혹독한 군율로 단련된 집단이라 하더라도 훈련된 전사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봉역령에서 징발한 농사꾼들에 지나지 않는다.
전열이 흐트러지면 제아무리 좋은 무기로 무장해도 쓸모가 없다.
‘악마들에게 대항하려면, 공포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지키는 병사들이 필요하지.’
그렇다고 참칭파의 남은 생존자들을 모두 망자로 만들어버릴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토드라도 1만에 육박하는 포로를 망자로 수급했다간 세간의 평판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향후 카이저의 위신을 고려해서라도 자중해야겠지.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사령술사는 연신 입술을 훑었다.
내가 보기엔 망자들보다 악마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병력은 없는데.
【토드! 요새 내부를 모두 진압했네.】
전신에 혈흔을 뒤집어쓴 파멸의 기사가 소악마의 머리통을 내던졌다. 군화에 짓밟힌 머리통이 으지직, 잿가루로 바스러진다.
“수고했습니다. 참칭파 수뇌부들에 대한 포박은요?”
【그건 마르커스가 알아서 도맡고 있더군. 그러고 보니 외곽에서 구경만 하던 성전사 놈들도 잡은 것 같네만···.】
멀찍이서 수수방관만 하던 놈들이던가.
이스라가 장검을 거머쥔 채 음침하게 웃었다.
【이 김에 마르커스에게도 동지들을 만들어주는 게 어떤가?】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여기 제가 긴히 데려가실 분이 계셔서 말입니다. 이분을 먼저 모신 뒤에 그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할게요.”
【흠! 알겠네! 본인은 그놈들이 허튼짓 못 하도록 옆에서 감시하겠다!】
“일단 교회 측 사자들이니 피는 좀 닦고 가세요. 제 체면이 있지 않습니까.”
대충 건틀렛에다 문대려다 뜨끔했는지 파멸의 기사가 헛기침했다.
【자네는 나날이 잔소리만 느는구만! 에잉!】
툴툴거리면서도 이스라는 기름 먹인 아마포를 받아든 채 떠나갔다.
토드는 온통 널브러진 시신들을 넘어, 부러진 장대가 기울어진 공터로 건너갔다.
‘찾았다.’
딸랑···.
유해룡에 올라타면 돌격만 거듭하는 이스라와 달리, 토드는 높은 고도에서 비롯되는 시야를 활용하는 데 주력하곤 했다.
특히나 이런 난전 구도에선 무력이 특출나지 않고서야 돋보이기가 어려운데, 참칭파 측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간은 한 명뿐이었다.
토드는 무릎을 굽힌 채 목이 부러진 시신을 굽어살폈다.
“당신이로군요. 고지대 용병들을 통솔하던 지휘관이.”
모두가 아볼루온의 출현에 압도되었을 때, 신속하게 병력을 통솔하여 콘라트를 인계하려던 움직임은 인상 깊게 지켜봤었다.
듣기론 교전을 회피하고 권역령 곳곳에 분란을 일으키는 참칭파의 방침도 이자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라 들었다. 비록 자신이 남쪽 무역로를 털면서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토드는 용골 지팡이를 두들겼다.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생전의 잔영으로 얽매인 자. 못다 이룬 미련에 몸부림치는 중생이여.”
뿌드득.
꺾인 목이 거꾸로 돌아가며 섬뜩한 소리를 흘렸다. 정작 자신은 탈출하지 못했으면서, 제 주인만은 끝내 내보낸 충직함이라.
“스트레이커, 네크로폴리스의 주인 앞에 눈을 뜨라.”
뭉개진 눈두덩 사이로 진녹색 안광이 맺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망자가 낮게 속삭였다.
【···나를 왜 불러낸 것이오.】
“네크로폴리스에겐 장군이 필요합니다.”
토드는 선명한 미소를 흘렸다.
“당신처럼 노련한 야전 지휘관이요.”
스트레이커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흐, 이제 전쟁이 다 끝났는데, 무슨 지휘관이 필요하단 말인가? 지상에서 내 사명은 끝났거늘.】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읊조렸다.
【난 쓸모를 다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소.】
“하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스트레이커.”
망자를 둘러싼 짙은 향연이 무저갱에서 기어 올라오는 악마들의 환상으로 거듭났다.
“저들의 게걸스러운 허기가 느껴지십니까? 장차 놈들은 메뚜기처럼 이 땅을 휩쓸 겁니다.”
【······.】
“혹여 혈육이 있으신지요.”
【별안간 그건 왜 물어보시오.】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당신에게 남겨진 일말의 미련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제 호령에 응해 일어서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보아하니 당신은 그리 물욕이나 명예욕에 목마른 것 같지도 않고, 그럼 남은 건 눈에 밟히는 핏줄 문제 아니겠습니까.”
스트레이커가 침묵을 고수하자 토드는 빙긋 웃으며 부서진 판석을 탁탁 두드렸다.
“어차피 시간도 넉넉하겠다. 지금 말할 용의가 없으시다면 기다려드리지요. 이대로 요새의 모든 백골이 삭아서 없어질 테까지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토드의 너스레에 부들부들 떨던 스트레이커가 이내 한숨을 토했다.
【포젠탈에 조카사위네가 살고 있소.】
“포젠탈이라. 용병대를 통솔하시면서 제법 많은 재산을 축적하셨을 텐데요? 그런 것치곤 조카분이 변방에 지내시는군요.”
【이만한 대형 용병대를 운영하려면 자금 사정은 항상 빠듯하지. 그럼에도 급여의 반절 정도는 매번 부쳐준다오.】
“이대로 가면 조카분의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마저 송두리째 짓밟히겠군요.”
자칫 망자의 눈동자가 험악해지기 전에 토드가 황급히 덧붙였다.
“물론 무저갱의 침공을 저지하지 못한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를 겁박하려는 거요? 아니면 패잔병에게 안식마저 허락하지 아니하고 모멸감을 주려는 거요.】
“둘 다 아닙니다. 스트레이커.”
토드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 역시 무저갱의 침탈자들에 맞서고자 합니다. 네크로폴리스의 병사들을, 불사자들의 군대를 이끌어주세요.”
망자를 응시하는 사령술사의 눈동자에 강렬한 열망이 일렁였다.
“저는 사령술을 비롯한 온갖 흉계엔 능통하나, 군략엔 일천합니다. 당신 같은 노병의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죠.”
눈썰미를 좁힌 스트레이커가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우리를 충분히 궁지에 몰아넣지 않으셨소. 게다가 마귀들을 상대로 과연 내가 야지에서 축적한 잔꾀가 통할지도 의문이로군.】
“저들은 오랫동안 지상을 노려왔습니다. 저조차 쉽사리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일뿐더러, 본격화된 침공에 대적하려면 대군이 필요할 텐데, 당장 직전에 대군을 운용해본 경험자가 제 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토드가 재차 속삭였다.
“저뿐만 아니라 제 하수인들에게도 도움을 주시지요. 스트레이커. 당신이야말로 내 군세를 이끌 적임자입니다.”
죽음을 거스르고 일어선 것도 혼란스럽지만, 스트레이커에겐 토드의 적극적인 구애가 당혹스러웠다. 그간 용병 출신이라며 따라붙던 꼬리표가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설움이었던가.
“···악마들과의 전쟁이 끝나면, 당신에게 안식을 약속해드리겠습니다. 더불어 눈을 감기 전에 조카분에게 안부도 전하고 떠나셔야죠.”
망자의 안광이 꿈틀거렸다.
“비단 저나 당신의 사익뿐만 아니라, 이 땅에 남겨진 채 살아갈 이들을 위해서.”
입가에서 핏물을 뚝뚝 떨군 스트레이커는 마지못해 손을 맞잡았다.
【···비록 이 몰골로 당장 찾아가진 못하겠지만. 언젠가 얼굴이라도 보고 떠나보내 주겠다는 것. 약속한 거요!】
토드가 히죽 웃었다.
“물론입니다.”
사령술사는 그를 향해 용해 반지를 내밀었다. 망자는 기꺼이 입을 맞췄고, 그를 감싼 피육들이 녹아내렸다.
피 흘리고, 나약한 육신의 잔재들은 벗어던진다.
‘소생하기 전에 악마의 발톱에 베인 부위들은 추후 수복이 불가능해. 전부 걷어낸다.’
쇠락한 노인의 껍데기는 강산으로 녹여 소거한다.
토드는 손을 뻗어 끊임없이 그의 뼈를 벼려내고, 담금질했다.
잉걸불에 그을렸던 뼈마디는 더 탄탄하게 형체를 고정하고, 마력을 덧씌워 결속을 강화한다.
전소한 갑옷을 뼛가루와 섞어 신체 부위의 연장선처럼 자연스럽게 덧댄다.
“···일어나라. 스트레이커.”
하수인 조형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보니,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게 나왔다. 온통 칠흑빛이 감도는 망자가 몸을 일으켰다.
“나의··· 흑단 기사여!”
무력에 능력치가 쏠린 죽음의 기사와 달리, 이쪽은 휘하 하수인 지휘와 강화 오라에 특화된 고위 망자다. 일신의 무력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장차 대규모 군세를 내다본다면 자신의 지휘 부담을 덜어줄 소중한 재원이다.
“그대는 앞으로 네크로폴리스의 군세를 조율하는 지휘관이 될지어다. 생전에 지녔던 지혜와 죽음을 극복하며 확장된 안목으로 말미암아 나를 잘 보필토록 하라.”
스트레이커는 안광을 감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네크로폴리스의 주인에게 충성하겠소.】
A급 책사, 등용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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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커스는 연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결박당한 성전사들을 흘겨봤다.
“놋그릇수도회 소속이라··· 왠지 들어본 이름 같은데요.”
동향 사람 아니야?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은 토드가 슬쩍 시선을 흘리자, 마르커스는 단호히 고개를 돌렸다.
【난 그들을 모른다!】
무저갱의 존재를 보고도 맞서려 들지 않았다는 게 어지간히 눈엣가시 같았던 걸까. 이젠 아예 생전의 소속 집단마저 부정하려는 마르커스였다. 새삼 그의 변화가 우습기도 해서 토드가 낄낄거렸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있던 쪽에서 선수를 쳤다.
“당신은··· 심판관 마르커스가 아닙니까?”
가뜩이나 망자로 일어난 데다, ‘살아있는 계시’로 격이 상승하면서 인상이나 분위기가 일변했음에도 여전히 그는 심문관 시절 착용하던 갑주를 차고 있었다. 용케 형상만으로 성전사가 자신을 알아보니 마르커스는 혀를 찼다.
“혀, 형제여··· 대체 어쩌다가 이런 꼴이!”
【하, 하! 하.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밤낮을 새워도 모자랄 걸세! 그렇지 않나? 심문관?!】
걸걸하게 웃은 이스라가 어깨동무를 걸자 안광을 구긴 마르커스는 신경질적으로 그녀를 떨쳐냈다.
【떨어져라. 파멸의 기사. 내게 마귀들의 불결한 피를 묻히지 마라.】
아연실색한 성전사는 온통 망자들로 가득한 주변의 일당을 돌아보곤 아득바득 소리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십시오! 마르커스 형제! 주께선 당신의 죄를 용서하실 겁니다!”
그러자 성검을 거머쥔 마르커스가 으르렁거렸다.
【회개? 누가 누구더러 회개하란 말이냐.】
말릴 틈새도 없이 그는 우악스럽게 멱살을 부여잡았다.
【역겨운 놈들. 네놈들은 구주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 이 땅에 악마들의 강림을 방조했다!】
“켁, 켁···.”
가뜩이나 포박당하기 전에 흠씬 두들겨 맞아 퉁퉁 부은 얼굴이 샛노랗게 물들었다.
“마르커스, 지금 죽이면 안 됩니다. 놓아주세요.”
와락 인상을 구긴 마르커스는 자기보다도 거구의 성전사를 가볍게 내던졌다.
부리부리한 안광을 불태운 심문관이 성검을 내치며 중얼거렸다.
【날 형제라 부르지 마라! 추잡스러운 배교자들아.】
그가 망자로 전락했다는 것보다도, 성전사들은 마르커스의 손에 들린 성검에 맺힌 백염을 보고 더 놀란 눈치였다.
반면 그들의 목에 걸린 광륜표나 장검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슬쩍 눈웃음을 흘린 토드가 그들 앞으로 나아갔다.
“자, 여러분. 한 번 차근차근 알아봅시다.”
토드 옆에 나란히 선 마르커스는 성검을 거머쥔 채 씩씩거렸다. 그가 손짓이라도 하면 망설임 없이 저들의 머리를 날려버릴 기세였다.
“콘라트는 흑마법사들을 거느렸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 그토록 경멸하는 용까지 전쟁에 끌어들였죠. 결국 그놈의 수하가 거하게 사고를 쳤고요.”
성전사들은 저들끼리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토드가 손을 까딱였다.
마르커스를 형제라 불렀던 성전사의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허억!”
성전사 하나가 미처 숨을 들이켜기도 전에, 토드는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신네는 누구보다도 흑마법 행위를 혐오하면서, 이 땅에 악마가 기어들어 오려는 정황은 왜 묵인합니까?”
미약한 추측. 사실 교회는 누구보다도 지옥의 도래를 반기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15년 가까이 쫓겼던 입장으로선 무척이나 궁금하거든요.”
사령술사는 싱글벙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