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31
231
팽팽한 파공음이 울린다. 토드에겐 날아드는 사슬을 낚아챌 만한 순발력이나 완력도 없었다.
완벽히 피하기엔 늦었고, 마력을 펼쳤다.
파삭-!
간신히 머리만 내밀었던 유골이 뼈도 못 추리고 으스러졌다.
‘그레첸이었나. 어쨌건 풀려났으니 호상입니다.’
토드는 연신 잿가루를 뿌리며 물러섰다.
‘헤드윅, 잉그마르, 카자. 명복을. 다음 생엔 흑마법 말고 떳떳한 일거리 찾아보시고요.’
끝끝내 교화되기를 거부한 잔당들이다. 비로소 해방된 영혼들이 희열에 찬 메아리를 흘렸다.
【사령술사아···! 네놈-】
한 맺힌 울분은 완성되지 못하고 그친다. 악령들은 영문도 모르고 단말마를 지르며 소멸했다.
앞뒤 안 가리고 토드를 죽이려 드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불행히도 눈이 뒤집힌 악마에게 동지를 알아볼 만한 눈썰미는 없었다. 놈은 날파리 찢어 죽이듯 사슬을 후려쳤다.
나름 엄선한 악령들임에도 한 구당 1초를 견디지 못할 줄이야. 토드가 혀를 찼다.
‘그래도 시간은 벌어줬어.’
토드는 입가에 손을 모으곤, 깊이 숨을 뱉었다.
“여섯 번째 징조는 갑충의 도래였나니.”
사방에 흩어진 분진이 온갖 갑충의 형상으로 변모한다. 군집을 이룬 딱정벌레 떼가 앙갈라툼을 덮쳤다. 가죽을 물어뜯고, 연약한 살갗을 도려낸다.
앙갈라툼은 입에서 불을 뿜어 단숨에 무리 떼를 녹여버렸다.
그 와중에 토드의 입술은 쉬지 않고 달싹인다.
“다섯 번째는 악질로 징계함이라. 네 발굽으로부터 종기가 돋고···.”
앙갈라툼은 저주에 맞대응하느라 토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급기야 제 살까지 태우며 발을 내디디려 시도했지만, 이번엔 파리가 눈 앞에서 윙윙댄다.
―성가신 잔재주가 많구나!
악에 받친 고함이 온갖 독충들을 터뜨렸다. 지형이 좋지 않다. 무저갱의 열기가 놈에게 씌워진 저주를 걷어낼뿐더러, 권능까지 증대시켜주는 게 분명했다.
홈그라운드 버프치곤 좀 지나친 게 아닌가 싶지만, 도리어 토드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그럼 가용 마력을 두 배 끌어다 쓰면 그만.’
분개한 악마가 손아귀를 뻗었다. 머리를 노리고 뻗쳐오는 사슬.
토드는 손가락을 비틀며 용골 지팡이를 휘둘렀다. 무형의 권능이 앙갈라툼의 다리를 분질렀다.
―그아아!!
덕분에 사슬은 훑고 지나가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어깨가 뽑혀나갈 것만 같은 격통에 토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적당히 맞아주면서 싸운다는 건 성전사나 가능한 얘기야.’
이 정도 움직인 것만으로도 벌써 숨이 차지 않나. 본의 아니게 노 히트 공략에 도전하게 된 셈이었지만 토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앙갈라툼은 사령술사의 주변에서 요동치는 격류를 인지했다. 사슬로 내치려 했으나, 막상 거둬들인 끄트머리가 녹아내린 뒤였다.
미미하게 스친 혈액. 거기 함유된 독소가 유황불로 달군 가닥을 살라 먹고 있다.
사슬을 내버린 악마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너··· 층계를 넘어섰군.
“아직은 인간입니다?”
앙갈라툼이 제 등뼈에서 도끼를 뽑아냈다.
아, 이제 좀 익숙한 무장을 꺼내시네.
원작 재현에 충실한 모습이라 반갑기까지 했다.
―오만이 지나치구나! 하루살이야!!
격노를 분출한 대악마는 도끼를 내리찍었다. 토드는 놈의 눈알에 파리를 뿌리며 뒷걸음질 쳤다.
―모든 악의가 솟아나는 처소에서.
온갖 저주를 뒤집어쓰고도 앙갈라툼은 연신 고목 뿌리만 한 도끼를 휘둘렀다. 파여나간 자갈이 솟구치고, 그을음이 사방에 번졌다.
―이 앙갈라툼을 상대로 여유를 부리겠다고!
내장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격렬하게 몸을 움직인 게 얼마 만이던가. 어쩌면 이 몸뚱이론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토드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럭저럭 피해지긴 하네?’
토드는 측면으로 파고들어 지팡이를 내질렀다. 진녹색 섬광을 터뜨린 옆구리가 물어뜯기듯 산화했다. 대악마가 상처를 감싼 채 주춤거렸다.
공방을 거듭할수록 빈약한 신체에도 적잖은 부하가 누적된다. 점점 일그러지는 앙갈라툼과 달리, 사령술사의 입가는 호선을 그렸다.
‘···즐겁다.’
궁지에 몰린 앙갈라툼도 권능을 발산했다. 용광로처럼 달궈진 육신이 사방에 번뜩이는 불길을 쏟아낸다. 토드는 급히 망토를 둘렀지만, 불꽃 쐐기는 그늘녘 망토를 뚫고 들어올 정도로 맹렬했다. 화상 정도야 나쁘지 않지. 적어도 사지가 떨어져 나간 건 아니니까.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태연히 털어내는 모습에 앙갈라툼이 거친 숨을 토했다.
“흔히 과한 쾌락은 고통으로 인지된다고 하더군요.”
―······.
“그러면 거기서 발상의 전환! 적당한 고통은 쾌락이 아닐까요?”
토드에게 있어 앙갈라툼과의 일전은 게임의 연장 선상이었다. 목숨을 건 줄타기는 짜릿한 희열을 동반한다. 상대방의 높아진 고성, 구겨진 표정은 비틀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산다는 건 이토록 즐거움으로 가득한 일인데. 이걸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앙갈라툼이 뇌까렸다.
―필멸자들의 생애는 짧은데, 그마저도 대부분이 고통이지.
녹이 슨 판갑을 쥐어뜯은 대악마는 도끼를 바로잡으며 으르렁거렸다.
―지상에 있는 모두가 네놈처럼 생각할까? 아니. 우릴 영영 없애진 못해.
“적어도 당신들을 밟아놓으면 당분간은 그들의 삶이 윤택해지겠죠.”
토드는 양팔을 벌리며 익살스럽게 덧붙였다.
“우리 옛날 기억 좀 떠올려볼까요? 그땐 분명 즐거웠잖아요.”
다소 일방적인 추억인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효과는 있었다. 격노한 앙갈라툼이 전력으로 달려들었으니까.
정면으로 권능이 부딪치고 사그라들길 반복했다. 그들이 디딘 지반이 요동치고, 안으로 짓눌린 압력이 폭발로 분출되면서 우레 같은 굉음을 자아냈다.
―으아아!!
고함에 피부가 저릿저릿해진다. 연녹색 불빛과 유황불이 뒤엉키며 파문을 일으켰다. 충돌한 권능이 반발하며 마법의 폭풍우를 무저갱에 불러들였다.
가장 고요한 분노로 들끓던 땅이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토드가 사자의 서에 기록된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불길 위로 그림자가 짙어졌다. 냉기가 스며들수록 앙갈라툼은 욕지거리를 뱉었다.
대악마가 지껄이는 상스러운 언어들은 그 자체만으로 사이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토드 역시 온몸의 혈액이 말라붙는 감각을 느꼈다.
“흐흐.”
전신을 할퀴어대는 주문은 무시한다. 낭송을 거듭한다.
앙갈라툼의 살점이 몽우리처럼 피어오른다. 갈라진 틈새가 뒤틀린 형태로 변모하고, 다채로운 빛깔의 곰팡이를 배양하더니, 온갖 향기로운 악취로 만개한다.
“앙갈라툼, 앙갈라툼, 앙갈라툼.”
앙갈라툼의 눈이 뜨였다. 그는 태초에 피조물들이 자신에게 바쳤던 첫 번째 대접을 떠올렸다.
돌출된 안구 너머로 그가 거닐었던 땅이 보였다.
“죽지 못하는 불쌍한 그림자야.”
대악마의 육신이 죽어가는 동물처럼 떨렸다. 내가 죽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 이 또한 놈의 기만이다.
“네 유구한 생의 마지막 숨을 내가 거둬가나니.”
끊임없이 자신의 불멸성을 되뇌던 사념체 앞으로 석관이 떨어졌다. 거기엔 그가 지상에서 불렸던 이름, 구렁텅이에 떨어진 이후에 따라붙었던 이명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부정하던 앙갈라툼은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난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고!
놈은 기어코 자신을 속박하던 주문을 떨쳐냈다. 튕겨 나간 토드가 바닥을 굴렀다.
“씁··· 거의 다 됐는데.”
놈의 생에 대한 집착이 이토록 강렬할 줄 몰랐다. 의지력만으로 죽음을 거부하다니.
낭송이 끊긴 여파로 핏덩어리가 입안에 한가득 맺혔다. 폐부까지 핏물로 물든 것처럼 가슴팍이 먹먹했다. 왈칵 각혈하는 사령술사 앞으로 대악마가 다가섰다.
―이토록 나약한 놈 주제에.
앙갈라툼의 눈엔 경멸과 더불어 두려움도 서려 있었다. 적어도 지금 사령술사는 무방비해 보였다. 당장 달아나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고, 대악마가 접근했다.
도끼날을 내리치면 저 증오스럽고도 기괴한 존재를 끝장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 덕분에 확실히 알았어요.”
그림자가 물결치듯 흔들린다. 앙갈라툼은 눈앞의 표적에 현혹되어 눈치채지 못했다.
“이렇게 키워놔도 1:1이 안된다니. 역시 사령술사는 상향이 필요해.”
한 발자국.
앙갈라툼은 찰나에 토드의 입 모양을 읽었다.
그래도.
넌, 나, 못 이겨.
“개소리도··· 작작해야지!”
발치에서 솟구친 쇠줄이 악마의 팔을 도려낸다. 순식간에 파고든 칼날은 힘줄을 난도질하곤, 단숨에 목을 그어버렸다.
쾅!!
애꿎은 곳에 꽂힌 도끼날과 더불어, 머리가 지면에 떨어졌다.
유려하게 착지한 그림자가 또렷해지더니 암살자의 윤곽을 갖춘다.
“애당초 내가 필요했던 건 맞아? 그냥 일방적으로 갖고 놀던 거 같은데.”
토드가 머리를 긁으며 대꾸했다.
“사령술사가 야금야금 갉아먹기엔 좋은데, 결정타가 없어서요.”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던 라노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켰다.
“그래. 괜히 모자란 애 괴롭히지 말고 놔줘라. 쟤도 얼마나 열 받겠어.”
그 와중에 잘려나간 머리가 지껄인다.
―지금이다···! 어릿광대의 무희. 놈은 무력해. 그토록 증오하던 놈이잖나. 당장 죽여···! 놈을 거두면, 너가 그토록 바라던 귀환을.
라노는 손에 쥔 단검을 번갈아 보다가, 불쑥 토드를 향해 들이밀었다.
―그래! 그거다! 네가 염원하던 숙원을 성취하는 길이···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앙갈라툼이 본 건 미세하게 칼끝을 긋곤 고양이처럼 핥아대는 암살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저건 어떻게 할 거야. 보아하니 영구적 삭제가 불가능한 더미 같은데?”
“방금 주문만 완성했다면 명계로 산지직송을 보낼 수 있었는데요.”
“골치 아프네. 딱 봐도 대기시간 짧은 주문 같진 않고···.”
앙갈라툼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인상을 찡그린 라노가 머리통을 후려 차며 중얼거렸다.
“이게 실성했나. 뭘 쪼개? 허접 새끼야.”
―네놈은 목숨보다도 그 알량한 세상을 소중히 하지.
죽어가는 육신임에도 안광만큼은 형형하다.
―나는 반드시 돌아오겠다. 살아서 널 꺾지 못하겠다면, 네가 그토록 아끼는 세상을 불태워서라도.
“음, 그래그래. 네가 하루살이 필멸자 나부랭이한테 두 번이나 관광 당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라노가 빈정대니 앙갈라툼이 악에 받쳐 외쳤다.
―못으로부터 돌아오리라! 네가 지상에 남긴 자취를 비롯해, 모든 걸···!
한숨을 흘린 토드가 품을 뒤적였다.
“제가 이것만큼은 안 쓰려고 했는데.”
아마포에 소중히 감싸놨던 신체. 그리고 만에 하나 챙겨뒀던 천사의 눈물까지.
말과 달리 토드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당신은 명계보다 더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앙갈라툼.”
분노에 뒤덮였던 앙갈라툼조차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짓을.
정갈한 약병을 꺼내든 사령술사는 전신의 근육이 끊어진 몸뚱이를 향해 읊조렸다.
“앙갈라툼, 분노의 자손아. 네 죄는 크다.”
이러면 업을 얻진 못하겠지만, 괜히 후환을 남길 일은 없겠지. 저쪽 업계가 지상의 사정에 무심할진 몰라도, 단속만큼은 철저한 곳이니.
“···허나 아버지의 자비 역시 크도다.”
앙갈라툼이 눈자위를 부릅떴다. 이제서야 기행을 눈치챈 악마가 크게 동요했다.
―넌 사령술사잖아! 네놈에겐 권능이 없다! 거미 종자 주제, 태양을 입에 담아?!
경건하게 축도문을 읊조리던 토드는 눈웃음을 지었다.
“이래 봬도, 전전전전 대교구장이었거든요.”
여전히 이직 요청도 들어오는 몸이라고.
토드의 넉살과 별개로, 돌연 천장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들었다. 광선에 비친 악마의 표정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다. 놈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나, 머리통만 남은 마당에 암살자가 양 뿔을 틀어잡았다.
“어우, 독한 놈.”
“피만을 마시며, 먼지만 먹고, 분노 가운데 기거하며 영원히 살던 족속아.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누구 맘대로 용서해?! 앙갈라툼의 울분은 더 이상 육성으로 나오지 않았다.
격하게 꿈틀거리던 앙갈라툼이 멎었다. 마치 토드의 어깨너머, 임재한 누군가를 목격한 것처럼 샛노란 눈동자가 한없이 커졌다. 토드는 놈의 횡설수설을 무시하며 킥킥댔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앙갈라툼은 엄숙한 목소리들을 들었다. 이내 까마득한 파도가 거산을 자갈로 만들었을 때와 같은 힘이 그를 휩쓸었다. 토드는 대악마의 통곡을 들었다. 공포와 좌절로 가득한 메아리는 평원에 낱낱이 울려 퍼졌다.
잠시나마 들여보았던 주마등조차 보이지 않았다. 광명은 너무나도 눈부셨다.
가장 깊은 구덩이에 드높은 곳의 입구가 잠시나마 열렸고, 누군가를 거둬갔음이라.
그렇게 대악마 앙갈라툼은 휴거의 은혜를 받았다. 이를 목격한 악마의 군세는 누구 할 것 없이 달아나기에 바빴다.
혀를 내두른 암살자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방역 효과는 확실하겠네. 네가 살아있는 한은 말이야.”
토드는 힘없이 웃으며 이마를 쓸어내렸다.
“살아있는 동안엔 말이죠···.”
어느새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
일찍이 오드람이 경고했던 대로, 성물을 남발했던 반향이 슬슬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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