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5
005
먹을 것은 충분했다.
마차에는 10명이 넘는 인원이 타고 있었던 데다가, 죽은 탈영병들에게서 노획한 약탈품에는 건량도 있었다.
토드는 수저 끝에 달라붙은 이끼를 손톱으로 긁어냈다. 파슬리 대용 토핑이라 여기기엔 쉰내가 지독했다. 오래 묵은 개밥 냄새가 이랬던 것 같은데.
저녁의 메인 요리는 피에트가 온갖 재료를 솥에 때려박아 만든 스튜였다.
보부상이라 이런 야영에 익숙한지, 누린내를 감안하더라도 맛이 썩 나쁘진 않았다.
쇠렌은 이미 게걸스럽게 퍼먹고 있었지만, 카리나는 여전히 경계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그릇을 받아들고 있었다.
가시돋친 고슴도치를 보는 것만 같다.
“독 같은 건 안 넣었으니 안심해도 되네. 마법사 양.”
피에트가 쓴 웃음을 흘리며 말을 건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토드가 떠먹는걸 본 뒤에야 깨작깨작 수저를 놀렸다.
역시 배때지에 뭔가 들어차야 사람은 누그러진다. 일행이 정신없이 배를 채운 뒤, 대화가 물꼬를 틀었다.
“흑마법사들은 영아를 산 채로 먹고 날벌레들이 간식이라 들었다만. 그쪽을 보니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쇠렌의 편견섞인 말에 토드가 밑바닥에 남은 건더기를 긁어모았다.
“제가 돈이 없어서 쓰레기통을 뒤진 적은 있어도, 아이를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하! 쓸데없이 인간적이군.”
어느 곳을 가도 그렇겠지만, 잘 알지 못하거나 이질적인 존재들은 배척받는다.
여기 세계관에선 사도(邪道)를 걷는 자들이 원체 패악질을 많이 부린지라, 사령술사를 비롯해 비주류 계열 클래스들에 대한 인식은 밑바닥을 뚫다 못해 내핵에 처박혀 있는게 대부분이다.
“마법사들은 금전적으로 부족할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흑마법사는 다른가?”
피에트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망자를 일으키는 게 좋은 시선을 받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평소엔 장례 일을 치러주면서 삯을 받고, 겨우 풀칠이나 합니다.”
“나참. 주머니 사정이 쪼들리는 흑마법사라니. 내가 올해 들었던 농담 중에 제일 참신했어.”
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네.
토드는 피식 웃고 말았다.
괜히 난이도가 전설적이겠는가.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진 지 1년까지 토드는 살아남는데 급급했다.
네크로맨서라는 게 밝혀지면 교수형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교회 지하에서 땀내나는 심문관 아저씨들이 고문 바퀴로 온몸을 말아줄테니.
“토드, 여태껏 장의사 행세나 해왔다는 건···. 자네가 흑마법사라는 게 밝혀지면 안되는 거 아닌가?”
“그런 셈이지요.”
눈살을 찌푸린 피에트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럼, 우리 앞에서 보여준 건···”
“이젠 굳이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겠지.”
그릇을 내려놓은 카리나는 토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렇게 꿍꿍이 가득한 인간이 우리를 선의로 살려뒀을거라 생각해? 절대 아닐걸. 뭔가 속셈이 있는 게 첫 번째고···”
뒷말을 흐린 마법사가 침을 삼켰다.
“일이 수틀리면 그냥 여기서 우릴 다 죽이고 묻어버릴 작정이겠지. 그 정도 자신은 있으니 우릴 살려둔 거 아냐?”
“명석한 학생이로군요.”
가늘게 웃으며 던지는 칭찬이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유들유들 웃는 낯은 호의를 가장한 교활한 가면이다.
카리나가 지내던 적색 마탑은 하나같이 괴팍한 성정의 마법사들로 가득했지만, 적어도 뒤끝은 없다. 저렇게 겉과 속이 다른, 독사같은 사람은 드물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유형의 인간이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경종을 울려댔지만, 현 상황에선 선택의 여지가 마땅히 없었다.
저 자는 홀로 탈영병들을 모조리 죽였다.
한숨을 흘린 카리나가 팔짱을 꼈다.
“네 목적을 말해봐. 그럼 나도 말할게.”
“좋습니다. 저는 변경백이나 이리공, 둘 중 한쪽의 종군마법사로 합류할 생각입니다.”
대번에 카리나가 싸늘하게 웃었다.
“제국이 말세긴 한가보네. 이런 사특한 족속들이 대놓고 제후의 분쟁에 돈까지 받으며 끼어들겠다니.”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저희같은 이들에겐 기회인 셈이죠. 무수한 생명들이 스러지는 전장이라면 안성맞춤이고요.”
인상을 구긴 카리나가 중얼거렸다.
“악질이야.”
가만히 토드를 바라보는 카리나의 눈매에 언뜻 푸른색 빛이 스쳐지나갔다.
머릿속으로 셈을 굴리는지, 잠시 침묵하던 마법사가 토드의 스펙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부릴 수 있는 언데드는 저급한 놈들이고. 동시에 조종할 수 있는 개체의 한계는 대략 30기. 유지 시간은 개체당 5분? 그 외에 얄팍한 잔재주가 몇 개 있나본데, 변칙적이지만 크게 대단하진 않아.”
토드의 입가가 씰룩였다.
“계산이 제법 예리하시군요.”
아직 토드의 성취가 얕은 건 사실이다. 나름 잘 꿰뚫어봤다.
허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으니.
이 땅에서 사령술사를 비롯해 불결한 흑마법 족속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건 자신의 기운을 숨기는 일이다.
눈을 트일 때부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마력을 내보이고 당당히 활보하는 원소 마법사들과 달리.
“전장은 수백 명이 격돌하는 무대야. 단순히 머릿수만 밀어붙인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요인이 정교하게 맞물려서 빚어내는 수 싸움이라고.”
마탑물을 헛으로 먹은 건 아닌 듯, 콧대가 뻣뻣하다.
“거기서 멍청한 시체들 열댓 명 끼어든다고 판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제후들이 흑마법사를 끌어들였다는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너를 등용할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역시 적색 마탑에서 파견되신 분답게 통찰력이 깊으시군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카리나가 으르렁거렸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비꼬는 것처럼 들리니까, 괜히 딴소리하지 말고 본론이나 얘기해.”
아니,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한 거였는데.
“당연히 저울이 기울어진 쪽에선 저를 받아들여주지 않겠지요. 하지만 반대쪽은 어떨까요?”
토드의 저의를 알아들은 카리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궁지에 몰린 자는 악마의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배당률에 높은 쪽에 걸어야 리턴이 큰 법.
가방끈이 짧은 쇠렌은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피에트는 오묘한 얼굴로 토드와 카리나를 번갈아봤다.
“슈테판 변경백이 미련한 사람이긴 해도, 대외적인 평판을 도외시하진 않아. 게다가 휘하의 가신들이나 교회의 추궁은 어떻고.”
“변경백 정도면 충분히 방패막이가 될만한 사회적 지위가 아닙니까?”
“자기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 거 같은데.”
입가의 옅은 미소가 뚝 그쳤다.
“사령술의 힘을 낮잡아 보시는군요. 에스터리츠 양.”
사뭇 토드의 검녹색 눈동자가 음산한 빛을 흘린다.
“세상 밖에는 눈으로 보이는 것, 활자로 적힌 지식 이상의 것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걸 익히라고 당신의 스승께서 과업을 내린 게 아닙니까?”
사령술사가 은연중에 흩뿌리는 기세에 카리나는 하마터면 마력을 발산할 뻔했다.
가까스로 충동을 억누른 마법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경험의 부족함을 꼬집으면 카리나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사령술 또한 카리나에겐 바깥세상의 미지와 다를 바 없는 영역이었으니.
“···좋아. 그게 터무니없는 허풍일지, 진담일진 두고 보면 밝혀지겠지.”
“물론입니다.”
토드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깃든다.
“그나저나 에스터리츠 양. 마지스터라고 하셨지요. 그렇다기엔 약간 곤욕을 치르셨는데, 그래서야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으십니까?”
“아깐 방심해서 그런 거야! 난 원래 대인전이 아니라 대광역 고위 주문에 특화되어 있다고.”
씩씩거린 카리나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맞받아쳤다.
아아, 아무래도 「캐스팅 감소」가 아니라 「원소 피해」를 먼저 찍은 모양이었다.
대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초보자들이 딜뽕에 취해 저지르는 실수였다.
이 게임은 언제, 어디서 비명횡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요소들로 가득하다.
따라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주문의 시전 속도를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일단 주문이 딜레이 없이 나가야 「방호막」으로 생존하고, 「점멸」로 거리를 벌린 다음, 「불꽃쐐기」로 대응할 것 아닌가!
마법사, 스킬 그렇게 찍는 거 아닌데···!
항상 최적화 빌드만 깎는 토드로선 훈수가 마려웠지만, 꾹 참았다.
그 뒤로도 카리나는 장장 10분에 걸쳐 자신의 실력에 대해 통한의 성토를 이어나갔다.
비가 와서 화염 마법에 부적합했느니, 조금 지친 상태라 집중이 안 됐다는지, 등등···
쇠렌은 그 사이 졸고 있었고, 피에트는 나뭇가지를 불 속으로 던져넣었다.
카리나의 발작 버튼을 끈 건 토드의 한마디였다.
“결국 정리하자면 아직 정식 마지스터는 아닌 셈이군요.”
“그윽, 그! 그건···”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던 카리나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모양이었다. 헛기침을 한 그녀가 목에 힘을 줬다.
“직전이야. 직전! 이번 일만 끝내면 나도 마탑의 간부 지위에 오르는 거라고.”
갓 마지스터에 오른 5서클 마법사라고 해봐야, 간부 중에서도 끝자락일 것이다.
사실상 학파 소속원과 경계가 모호하다.
그래도 꽤 앳되 보이는 카리나의 액면가를 감안하면, 그녀가 재능 있는 젊은이라는 사실은 분명해보였다.
“···나는 어떻게든 슈테판 변경백 측에 합류해야 해. 이 분쟁을 변경백의 완전한 승리로 종결할 것. 그게 스승님이 내게 주문한 과업이야.”
이제야 좀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의외군요. ‘마탑은 세간의 일에 불간섭한다.’ 여태 고수한 원칙 아닙니까?”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언제까지 관망만 하겠어? 아무리 정치적 중립을 표방한다고 한들, 결국 탑이 박혀 있는 곳이 제국 땅인데.”
아무리 첨탑의 현인들이라고 하더라도,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애초에 각종 조언자나 서기관, 용병으로 인력을 파견하면서 운영 자금을 확보하는 마탑이 정치사에서 완전 중립이라는 건 허상이었다.
듣기만 하고 있던 피에트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차라리 승기를 잡은 이리공의 뒷배를 봐주는게 낫지 않나? 이미 분쟁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네만···.”
“더 자세한 건 말하기 싫어. 난 반드시 변경백을 이기도록 만든다. 그게 다야.”
딱 잘라 말하는 카리나의 태도에 피에트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거기서 마침 잠이 깼던지, 쇠렌은 하품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우린 적인가? 젠장. 이쪽은 배불뚝이 늙은이랑 퇴물 칼잡이인데, 상대가 흑마법사와 불꽃쟁이인 건 불공평하잖아.”
대번에 피에트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이, 이보게. 난 아직 누구 밑에 들어간다고 확정 짓진 않았네!”
어지간히 목숨에 미련이 많으신 양반이군.
킬킬거린 토드가 중재에 나섰다.
“어쨌거나 쾨흘링까지 가는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일단은 거기까지 동행을 하고, 그 뒤에 어느 진영에 합류할진 알아서 정하는 거로 합시다.”
그가 손뼉을 치자, 모닥불이 일렁인다.
비가 그친 뒤 얼마 되지 않아 제법 쌀쌀한 바람이 숲을 쓸고 지나간다.
“물론 갈라설 땐 좋게좋게 보내줍시다. 어떻습니까?”
카리나가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 애초에 우리한테 선택권이 있긴 했어? 그냥 떠들고 싶어서 괜히 말을 길게 늘어트린 건 아니고?”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심 대화가 그리운 토드였다.
언제까지고 해골바가지만 붙잡고 떠들어대거나, 곡소리만 내는 유족들 앞에서 추도사만 읊어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좋네.”
“에잉, 졸다가 잠 다 깼네. 일단 불침번은 나부터 할테니, 순번은 알아서들 정하셔.”
피에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쇠렌은 초번초를 자청했다.
그렇게 자칭 장의사, 보부상, 장물아비, 마법사.
쾨흘링까지 향하는 4인의 기묘한 일행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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