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63
063
“놈의 이름은 드레토모스. 지옥의 투사일세.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대번에 이스라가 안광을 세차게 태웠다.
【호오, 투사라고! 싸워봄직한 상대겠군!】
오드람이 고개를 저었다.
“놈은 오롯이 내가 상대하겠네. 자네들의 기량으론 역부족이야.”
【아니! 붙어보지도 않고, 어찌 싸움을 장담할 수 있나?】
분개하는 이스라를 토드가 만류했다.
“유감이지만, 놈에게 덤벼봤자 털끝도 못 건드리고 쓸려나갈 겁니다. 우리의 실력으론 뼈도 추리기 어렵습니다.”
【허어. 놈이 그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본인의 수양이 부족한 탓이니 안타깝군!】
비록 입맛을 다시긴 했어도 안광의 빛으로 보아 호승심은 짙어진 듯 보였다.
“비록 드레토모스가 제물을 섭식했더라도, 내가 새긴 상흔을 완전히 수복하진 못했을 걸세. 아마 지금쯤 놈의 수족들이 부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겠지.”
쇠렌이 표정을 찡그렸다.
“악마 놈이 상처에다 붕대를 감거나 술을 부을 것 같진 않은데. 뭔 수로 회복시킨다는 거요?”
“당연히 인신공양을 통해 살점을 얻네. 아마 지금도 요른카리에서 제례가 이어지고 있을걸세.”
“···이런, 제기랄.”
토드가 물었다.
“요른카리의 규모를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의 생존자들이 도시에 갇혀있겠군요.”
“그럴 테지.”
토드 일행만으론 요른카리의 생존자들까지 구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악마가 강림한 도시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위태로울 텐데, 일일이 사람들을 빼내오는 게 가능할 리 없다.
토드는 어물쩍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당신, 에다리크로 가서 원군을 청하세요.”
“에다리크? 거긴 연고가 없는 스칼바냐르인을 잘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오드람은 눈 속에 파묻혀있던 자갈을 집어 들었다. 그가 힘을 일으켜 작게 읊조렸다.
한 마디를 떼자 자갈의 표면에 신비로운 무늬들이 새겨졌다. 두 마디를 떼니 자갈은 신통력이 깃든 토템이 되었고, 세 마디를 뗀 후에는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그 위에 내려앉았다.
까악.
울음소리가 그치고 어느샌가 까마귀는 사라진 뒤였다. 놀란 사내 앞에 오드람이 토템을 내밀었다.
“이걸 가져가서, 내 이름을 대게. 그리고 요른카리에서 벌어진 일을 성주에게 알려주게나.”
조심스레 돌멩이를 건네받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 후단의 시선이 머물기를 빌겠소.”
피난민 무리는 눈보라 너머로 걸어갔다.
그들을 지켜보며 토드가 중얼거렸다.
“과연 저들이 살아서 무사히 에다리크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제가 조금만 손봐준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크흠.”
“농담입니다.”
“농담이라기엔 눈빛이 조금 살벌했던 것 같네만.”
어깨를 으쓱인 토드는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그나저나 토템에 정령을 부여하는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한 겁니까?”
“내가 창안해낸 잔재주네.”
토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직접 창안했다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이미 자네도 느끼지 않았나. 이 세상은 우리가 알던 게임의 규칙을 따르고 있지만, 완벽히 준수하진 않네. 그중엔 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추가된 것들도 있지.”
오드람이 마차 바닥을 쓸어내리자, 판자의 일부가 토템이 되어 솟구쳤다가 꺼졌다.
“이처럼 적정선에서 법칙을 임의로 변형하거나, 서로 다른 기술을 융합해서 고안하는 것도 가능하네. 나는 이걸 고유 기술이라 칭하고 있고.”
토드가 감탄했다.
“고유 기술이라. 저는 데이터베이스에 있던 스킬 트리만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응용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군요.”
주술사가 픽 웃었다.
“자네도 여기서 몇십 년 동안 살다 보면 잡다한 걸 알게 되네.”
“그런데 적정선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요.”
“그건 기술마다 어떻게 호환이 되는지 일일이 알아봐야 하네. 자네와 나는 계통이 다르니 어떨진 잘 모르겠군.”
데이터베이스에 없던 스킬을 직접 창안해서 사용한다니. 그런 게 되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적어도 오드람은 토드보다도 몇 년은 앞서 이 세상에 떨어진 인물이었다. 토드는 스스럼없이 가르침을 청했다.
오드람에 따르면 고유 기술은 데이터베이스에 없던 스킬을 만들거나, 수정하거나, 융합하는 예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결정적인 전제 조건이 있었다.
특히 오드람은 토드의 레벨 업 방식을 지적했다.
“헌데, 은혜를 하사받는 식이라면··· 자네가 섬기는 신의 개입력이 더 강해져야 하네. 그건 자네가 사명에 충실할수록 자연히 깨우치게 될 걸세.”
토드의 사명은 흑색 학파의 재건이다.
결국 학파원을 더 늘리거나, 슬슬 학파가 제대로 된 거점을 잡고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 제가 모시는 분은 교세가 미약합니다. 실질적으로 섬기는 신도는 저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요.”
“사령술사가 섬기는 신이라. 죽음을 관장하나?”
“그렇습니다.”
“아마 자네의 신께선 딱히 신도를 많이 필요로 하진 않을 걸세. 죽음은 개념만으로 필멸자들이 우러러보니.”
오드람은 그를 가리켰다.
“그분께선 자네만 신자로 둬도 별 상관없으실 거네. 오롯이 자네의 과업에만 달린 셈이지.”
경배받을 필요가 없는 신이라.
조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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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가까이 이동하면서 점점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분명 산세는 험해지고 있는데, 오히려 눈보라가 그친다.
“스승님. 어쩐지 공기가 따뜻해진 것 같지 않나요.”
산시아의 물음에 오드람이 대신 답했다.
“악마가 강림한 곳은 저 아래의 무저갱과 비슷한 환경으로 변모한다네. 요른카리에선 따로 외투를 걸칠 필요도 없을걸세.”
곧 마차가 멈춰섰다. 마부석에 있던 쇠렌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선 더 나아가기 어려울 것 같소.”
요른카리. 주술사의 요람이자, 스칼바냐르에서 시작하는 클래스들의 첫 번째 거점.
원래라면 거대한 설산이 휘감고 있어야 했지만, 거대한 화산이 되어 새카만 연기를 연신 뿜어댄다.
도시 곳곳은 파괴된 흔적이 역력했고, 이따금 갈라진 지면 틈새로 마그마 특유의 붉은 빛이 아른거렸다.
피에트가 탄식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군.”
도시의 중앙에 세워졌던 후단의 대전당은 온데간데없었다. 일대의 지면이 무너졌는지, 거대한 구덩이가 꺼져있고 거기서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엇보다 압권은 도시 전체에 피의 업이 물결치다 못해, 잠긴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었다.
거기에 절로 반응해 산시아의 발톱이 자라난다. 그녀는 애써 망토 자락으로 손을 감췄다.
“흑마법사들이 도시를 점거하고 있군요. 문을 돌파하는 게 쉽지 않겠습니다.”
놈들은 방책에 경계병까지 세워두고 사역마를 비롯해 토템, 가시덩굴까지 일으켜 접근을 막고 있었다.
“내가 정면을 뚫겠네. 조금 소란스러워질 테니, 시간을 두고 따라오게나.”
오드람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아마 레벨 79의 주술사 정도면 조금 소란스러워지는 정도에서 그치진 않을 것이다.
“업이 뭉쳐진 지점을 보니 도처에 제단을 쌓아둔 모양이군요. 저희는 제단을 파괴한 뒤에 합류하겠습니다.”
오드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저 구덩이 밑에 있을 테니 나는 곧장 그쪽으로 향하겠네.”
“그럼 거기서 뵙죠.”
이스라는 그을린 요른카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악의 손아귀에 떨어진 도시. 마귀의 압제로부터 북부인들을 구하는 이방의 기사! 이 얼마나 명예로운가!】
죽음의 기사는 츠바이헨더를 걸친 채로 의지를 불태우고, 산시아 역시 별말 없이 토드의 지시를 기다린다.
토드의 시선이 두 소시민에게로 향했다.
말없이 도시를 바라보던 쇠렌이 중얼거렸다.
“···사령술사 양반. 이제 와서야 여기 남아있으란 말은 하지 마쇼. 어차피 못 볼 꼴은 진작에 다 봤으니까.”
토드가 어깨를 으쓱이자, 덩달아 눈치를 살피던 피에트가 입을 우물댔다.
그를 향해 쇠렌이 툭 말했다.
“영감은 그냥 여기 있으쇼.”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사람이···.”
“아니긴 뭐가 아녀.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잖소. 저긴 진짜 잘 못 들어갔다간 뼈도 못 추릴 텐데.”
“저런 곳이 쉽지 않은 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쇠렌은 히죽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거, 그래도 내가 왕년에 칼 좀 잡아본 놈인데. 영감과는 다르게 내 몸 하나는 간수할 자신은 있소. 영감은 들어갔다간 마귀 놈들이 곧장 잡아다가 솥에다 넣고 끓여버릴걸?”
“내가 무슨 애새끼인줄 아나! 그런 걸로 겁을 먹게?”
“엥? 겁먹은 거 아니셨소?”
“아니네!”
쇠렌은 입맛을 다셨다.
“쩝,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려곤 안 했는데. 영감이 따라와봤자 짐이나 다를 거 없소. 차라리 여기서 마차나 지키고계쇼.”
“알고는 있네만··· 그래도 여기까지 내가 함께했는데, 어찌 자네들만 사지로 보내는 걸 지켜보고만 있겠나.”
쾨흘링 때를 돌이켜보면 적지 않은 심경의 변화였다. 토드가 그를 향해 물었다.
“피에트 씨. 저기까지 따라온다고 해서, 제가 별도의 보수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관없네.”
쇠렌도 거들었다.
“하물며 저기 죽어가는 사람들은 내 동포라지만, 영감은 아무 상관도 없잖소.”
“자네들이랑은 내가 상관이 있지 않나!”
“이번엔 정말 죽을 수도 있습니다.”
토드의 경고에 피에트가 침을 삼켰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거 늙은이, 고집도 참.”
쇠렌이 난처하게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가 손뼉을 쳤다.
【하, 하! 하. 이 얼마나 피가 끓어오르는 광경이란 말인가! 암! 이게 동료애고, 낭만이지!】
“···좋습니다. 피에트. 그럼 저걸 다룰 줄 압니까?”
토드의 손짓에 산시아가 따로 보관하고 있던 물건을 건넸다. 스칼바냐르로 건너올 때 해적 선장이 지니고 있던 권총과 납탄이었다.
그걸 받아든 피에트가 침음을 흘렸다.
“···무기를 취급해본 적은 있었어도. 이만한 걸 직접 써본 적은 없었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총을 놓지 않았다.
“적어도 폐는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봄세.”
“좋습니다.”
어느새 오드람은 성문까지 근접했다. 보초들도 그를 발견했는지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술사가 손으로 지면을 짚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서 무형의 기운이 분출되고, 지면이 요동쳤다.
그걸로 모자라 하늘에선 벼락이 수차례 내리꽂히고, 성벽에 피워놨던 가시넝쿨이 도리어 저들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보초들을 휩쓸어버린 오드람은 외마디 포효를 내질렀다. 곧 사내의 육신은 거대한 곰으로 거듭났다.
―구오오!!
오드람은 그대로 성문을 거세게 두드리더니, 급기야 허물어트리고 곧장 안을 내달렸다.
그가 향하는 곳마다 토템이 내리꽂히고, 벽력에 휩싸인 수족들이 쓰러졌다.
과연 고렙 주술사답게 스킬의 위력이나 외형도 압권이지만, 토드는 간격마다 빈틈없이 채우는 효율에 감탄했다.
한바탕 성문 일대를 휘저은 오드람은 순식간에 요른카리 중앙으로 향했다. 온갖 병력이 거기로 몰려갈 즈음, 토드가 제안했다.
“이제 우리도 들어갑시다.”
마경이 되어버린 도시 속으로.
당장 토드의 기감에 잡히는 제단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저쪽 골목으로 올라갑시다.”
쿠르릉-!!
도시 중앙으로부터 굉음이 울려 퍼진다.
오드람이 착실하게 어그로를 끌어주고 있으니, 그사이 재빠르게 제단을 모조리 파괴한다.
그런데 모퉁이를 향해 이스라가 가리켰다.
【토드! 앞쪽에서 열 명 넘게 오네!】
“돌아가는 길이 여의치 않습니다. 뚫고 가죠.”
【다들 귀 막게!】
이스라의 외침에 모두가 바짝 고개를 숙였다.
죽음의 기사는 바닥을 내리치며 힘껏 고함쳤다.
【전-】【율-】【하-】【라-!】
토드는 상당한 양의 마력이 빨려나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정면에서 망자의 귀곡성에 노출된 전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뒤엉켰다.
그들을 향해 이스라의 대검이 날아들었다.
콰직!!
“내가 그대를 부르나니. 일어나라. 전사여.”
이스라가 쓰러트리는 족족, 토드는 망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주변을 살피던 산시아가 눈을 좁혔다.
“스승님. 뒤쪽에서 낯선 자들의 체취가 나요.”
여기서 소란을 들었으니, 이대로 제단까지 나아간다.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
앞에선 이스라가 길을 뚫고, 시체들이 뒤따른다. 골목길을 달리던 와중에 돌연 야만전사 하나가 뛰쳐나왔다.
“도나르-!!”
기겁한 쇠렌이 급히 칼을 받아냈다.
“이런, 씨벌! 이새낀 뭐야!”
귀신이 들렸다는 증언대로, 전사는 입에 거품을 문 채로 연신 칼을 휘둘러댔다. 사방에서 야만전사들이 튀어나와 토드 일행을 에워쌌다.
별수 없이 발톱을 뽑아 든 산시아도 싸움에 휘말렸는데, 맞붙는 족족 전사들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
“일어나라!”
피범벅이 된 채로 널브러진 시체가 벌떡 일어난다. 어찌 좁은 골목길을 뚫고 제단까지 도달했지만, 눈앞엔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놈들이 서 있었다.
저들이 먼저 토드를 향해 말했다.
“사령술사 토드.”
“저를 아십니까?”
“그대에 대해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쾨흘링부터 그림켈, 에다리크까지 우리가 공모한 일에 모두 훼방을 놓았는데.”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유감입니다만, 그렇게 됐습니다.”
망토 쓴 놈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섬기는 분은 관대하시네. 지금이라도 우리와의 적대를 멈추게. 우리는 자네와 협력할 용의가 있네.”
이건 또 무슨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