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소동(1)
“이게 말이 돼?”
“어이가 없네, 진짜.”
친구들과 수현이 함께 듣기로 한 전공 공통 수업 강의실.
수업 시간보다 일찍 모여 빈 강의실을 차지한 수현의 친구들이 씩씩대고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창구로 문제의 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었다.
“그만큼 관심을 받았다는 얘기니까, 나쁘진 않은 거 아닐까?”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수현은 태연했고, 그게 답답했던지 이번엔 박선화가 나섰다.
“당연히 좋은 일이지. 화제가 됐다는 건 네 그림이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단 거니까. 근데, 그 찬사를 엉뚱한 사람이 받는 게 문제인 거잖아.”
쇼케이스 그림들은 주말 간 더 많은 장소에 노출됐고, 그림을 향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린 작가를 밝히는 쪽으로 몰렸는데, 엉뚱하게 백현대 미대 안에서는 그게 회화과 인간 줄자 서지훈이란 소문이 크게 나버린 거다.
“그 선배가 직접 자기 그림이라고 말하고 다니진 않았을 거야.”
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아니라면 밑도 끝도 없이 서지훈이 쇼케이스의 주인공이란 소문이 왜 났겠어? 분명 뭔가 있는 거야.”
오유나가 의심스럽단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도 그래. 만약 자기가 낸 소문이 아니라면 헛소문을 정정하기라도 했어야지.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걸 빤히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 긍정하는 거잖아. 즐기는 거 아니냐고.”
차윤희도 열을 냈다.
“내 그림이라는 건 결국 전시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오픈될 일이야. 쇼케이스 기간에는 아무 정보 없이 그림만 노출하기로 했으니까…….”
“그래, 알아.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거. 근데 답답하니 그렇지.”
“맞아. 그 사람 오티 때 환영사 했던 그 선배지? 인간 줄자. 하, 딱 봐도 관심에 목마른 인간 유형이던데, 난 이 소문도 본인이 냈을 수 있다고 본다.”
“에이, 중심을 즐기는 사람인 건 맞는데, 그 정도로 막 가는 사람은 아니라니까.”
“됐어. 한수현. 너는 너무 관대해.”
“그래, 그 선배를 언제 봤다고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사람 속은 모르는 거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수현이 볼 때 서지훈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이나 계략을 꾸밀 성격은 아니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받은 인상으로는 뒤에서 공작을 펴기보단 차라리 앞에서 산통을 깨는 게 어울릴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어쨌든 왜 이런 소문이 났는지는 아직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수현의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거였고.
‘고마운 일이야.’
수현이 피식 웃었다.
친구들이 수현의 일에 누구보다 더 열을 내며 대신 화를 내주는 게 새삼 고마웠다.
과거, 자신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수현은 한편, 어쩐지 질린다는 감정도 느꼈다.
창작자로 살면서 작품의 표절, 아류, 강탈 같은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적이 있었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문제가 툭툭 불거졌다.
어쩌면 앞으로도 몇 번이나 겪게 될 일, 그리고 유명세를 탈수록 심해질 수 있을 일이란 생각에 입맛이 썼다.
“어쨌거나 확실하지 않은 일인데 더 이야기하지 말자. 그럼 엉뚱한 소문 낸 사람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어휴. 누군지 나한테 걸렸어야 하는 건데. 그럼 내가 가만 안 뒀을 거야.”
“그러니까. 하, 근데 사람들도 그래. 그 선배가 쇼케이스 그림을 그렸다는 게 말이 돼? 그걸 믿는다고?”
삐이익-.
그때였다.
수현과 친구들이 모여 있던 빈 강의실의 문이 빼꼼 열리더니 다시 천천히 닫혔다.
“뭐야? 바람이야?”
“누구지?”
수현과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와, 시계 봐! 벌써 한 시가 다 됐네. 좀 있으면 수업 시작하겠다.”
“진짜네? 하. 여튼 나중에 더 얘기하자.”
“어, 화장실 갈 사람?”
그러나 애들은 곧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업 시간을 확인하며 자리를 정돈했다.
흥분으로 자기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도, 그게 복도를 지나는 몇몇 예민한 애들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는 것도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다.
***
같은 시각 강의실 복도 끝 계단.
“진짜야?”
“내가 똑똑히 들었다니까?”
“어머. 애 괜찮게 봤는데, 그런 구석이 있었어?”
좀 전 강의실 문을 살짝 열어 말소리의 주인공들을 빠르게 스캔해 간 회화과 촉새 하나가 비슷하게 입이 가벼운 동기들을 모아놓고 들은 얘길 퍼 날랐다.
“서지훈 선배 욕은 그렇다 쳐. 근데 쇼케이스 그림을 한수현, 걔가 그린 거라고 했다고?”
“확실해? 좀 안 믿기는데.”
“문밖에서 들은 얘기라 똑똑하진 않았는데 그런 뉘앙스였어. 어쨌든 얘기하는 내용이 심각해서 내가 진짜 큰맘 먹고 문 열어서 얼굴까지 확인하고 온 거라니까?”
“어이가 없다. 어쨌든 서지훈 선배 욕을 한 건 확실하고, 그게 새내기들이었다는 거지? 거기 한수현이 있었고?”
“건방지네, 진짜. 듣기만 해도 기분 별론데?”
97학번 회화과 학생 넷.
좀 전 강의실 문을 열고 수현과 친구들의 얼굴을 확인한 촉새를 비롯, 나머지 모두가 하필 2학년 서지훈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품은 애들이었다.
그러니 쇼케이스의 주인공이 서지훈이 아니라는 말이나, 도리어 그 주인공이 1학년 한수현이라고 했다는 말이 나왔단 소리에 인상들이 험악해졌고.
그 불쾌한 감정은 다시 뜬금없는 소문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회화가 1학년이 그랬다고?”
“선배 그림을 자기 거라고 사칭했다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다음 날 5교시 미술사 수업.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공통으로 수강하는 과목이라 수업은 계단형 대형 강의실에서 진행됐다.
워낙 인원이 많아 평소에도 수업 전엔 분위기가 어수선한 편이었는데, 이날은 정도가 더했다.
어제 강의실에서 수현과 친구들이 나눈 얘길 부풀려 전하는 애들, 그리고 밤부터 학교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에 대한 얘기로 뜨거웠던 거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가운데, 수현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묘하게 날이 선 시선들이 수현을 향했다.
‘뭐지?’
조금 얼굴을 익혔다고 생각한 애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슬금슬금 피하는 기분, 2학년과 3학년 선배 중엔 대놓고 수현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애들도 있었다.
자리에 앉은 수현은 잠시 이 분위기가 자신의 착각은 아닐까 생각했으나-.
탁.
자기 앞에 기세등등하게 선 97학번 선배의 얼굴에서 뭔가 있다는 걸 확실히 알아차렸다.
“네가 한수현이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네. 말씀하세요.”
“너, 혹시 서지훈 선배 욕하고 다녔니?”
“네? 그게 무슨 얘기예요?”
황당한 질문에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선배가 팔짱을 끼며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얼마 전 백현대 앞 전광판에 나왔던 쇼케이스. 그거 서지훈 선배가 그린 게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냐고.”
대학에 오면 좀 나아지려니 생각했는데, 열아홉이나 스물이나, 스물이나 스물하나이나 별 차이는 없는 건가?
눈을 부릅뜬, 아마도 서지훈 선배의 추종자로 추정되는 선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수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얘기 한 적 없는데요.”
“그래? 그럼 너. 서지훈 선배 그림을 네가 그린 거라고 말한 적은?”
“그런 일도 없어요.”
물어오니 대답해 주었으나 무례한 태도가 거슬렸다.
수현이 나직한 목소리로 다시 강조했다.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 없어요. 제가 왜 그런 얘길 하겠어요?”
“하.”
수현의 단호하고 간결한 답에 선배도 더는 할 말이 없었는지 알았다며 자리로 돌아갔고, 곧 수업이 시작됐다.
이날은 6교시까지만 시간표를 채워뒀던 터라, 미술사 수업을 마친 후엔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수현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 그림을 좀 더 그렸다.
학교에서의 일이 찜찜하긴 했으나, 수현이 나서서 풀 이유는 없었고, 어차피 진실은 드러나는 법이니 초조할 이유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이 점점 흐려져 오래된 일처럼 멀어지기도 했고.
그러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다음 날인 수요일 오후.
이번엔 다른 무리가 수현에게 그 일을 핑계로 접근해왔다.
“아니, 선배님이 왜요?”
“몰랐으면 모를까. 들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
미술대학 실기동 앞 벤치.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수현 앞에 회화과 학생회장 이경민과 선배 둘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어차피 학교 근처에서 밥 먹을 생각인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안 그래도 오늘 수현 후배, 밥 좀 사주려고 했어. 마침 생일이라니 더 잘됐네. 우리가 밥 사줄게. 여기 후배님들도 같이. 가자. 어? 그래도 되겠지?”
3월 11일 수요일.
이날은 마침 수현의 생일이었다.
박선화와 차윤희, 오유나, 박준영, 그리고 스티브까지 함께 간단한 생일파티 겸 저녁을 먹기로 약속해둔 날이었고, 먼저 학교에서 하나둘 모여 동선을 정하고 있는 와중에 회장 이경민이 자기 친구 둘을 대동하고 나타난 거다.
“아뇨. 안 되겠는데요? 친한 친구들끼리 프라이빗하게 즐기려던 건데요?”
오유나가 까칠하게 나섰으나 이경민은 껄껄 웃으며 수현에게 한 번 더 양해를 구했다.
“어제 미술사 수업 시간 때, 있었던 일 좀 전에 들었어. 익명 게시판 글도 그렇고, 박해인, 걔가 왜 너한테 까칠하게 굴었나 싶어서 내가 좀 알아봤거든. 근데 명쾌하지가 않아. 그래서 수현이 너랑도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서 그래. 너도 찜찜할 거 아니야. 선배 그림을 자기 거라 했다느니, 괜히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시달리는 거 기분도 안 좋을 테고.”
이 정도 오지랖은 있어야 학생회장을 하는 건가.
이경민은 쇼케이스에 얽힌 이런저런 말들이 과에 시끄럽게 번지는 걸 듣고 사건을 정리하려 나선 모양이었다.
일의 전말을 알아보던 중, 수현이 어떻게 얽힌 건지 궁금해진 듯했고.
“미술사 수업? 왜?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선배 그림을 자기 거라고 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익명 게시판은 또 뭐고?”
“뭐야? 무슨 일인데?”
수현이 딱히 말하지 않아 과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몰랐던 친구들이 학생회장의 말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수현을 재촉했다.
“별일 아니야. 게시판은 나도 지금 처음 듣는 얘기고.”
“별일 아니긴. 딱 들어도 별일인데.”
“아니, 선배님이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인데요?”
화르륵 불타오른 아이들.
안 그래도 쇼케이스 주인공이 엉뚱한 애로 소문나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태라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다들 진정하고, 여기서 말하긴 그렇잖아. 조용한 장소로 이동하자. 괜찮지?”
이경민이 수현과 애들을 둘러보며 눈짓했고,
“어쩔 수 없네요. 썩 내키는 건 아니지만 이쪽 일이 더 시급해 보이니까.”
좀 전, 수현의 생일파티에 합류해도 되겠냐는 제안을 칼같이 거절했던 오유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 의견인지 대충 시선을 교환하며 의견을 모았다.
“음. 그럼 후문 쪽으로 내려가면 돈가스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이 있거든? 얼굴만 한 돈가스에 스프도 엄청 많이 주고, 아주머니 솜씨가 진짜 좋으셔. 그리로 갈래?”
이경민이 성큼 앞장서며 후문을 향했고, 수현과 친구들이 그 뒤를 하나둘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