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소동(2)
어쩌다 보니 일행은 수현의 집을 향하게 됐다.
이경민이 당당하게 안내한 돈가스집은 꽤 인기가 좋았는지 빈자리가 없었고, 수현과 친구들, 선배들까지 아홉이나 되는 인원이 우르르 카페에 가기도, 그렇다고 호프에 가서 떠들기도 애매했던 거다.
마침 후문에선 수현의 집이 가까웠고, 괜히 이리저리 헤맬 바에야 집에서 조용히 이야길 나누는 게 낫겠단 판단이 들었다.
생일파티야 잠시 뒤로 미뤄도 될 문제였으니까.
“와, 집 진짜 좋다. 학교랑도 엄청 가깝고.”
“허. 1층을 아예 개인 작업실로 꾸민 거네? 채광도 훌륭한데?”
“물감 냄새 봐라. 수현 후배, 작업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이경민과 선배들이 1층에 마련된 수현의 작업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오늘 아침, 마저 완성된 그림들을 2층 창고에 모두 올려둔 덕에 1층엔 밑색을 깔아둔 캔버스 정도 외엔 유출될 만한 작품이 없었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수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냉장고에서 마실만 한 걸 꺼냈고, 그 사이 친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의자와 테이블을 배치해 이야기하기 좋은 공간을 만들었다.
몇 번 드나들었다고 다들 제법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어쨌든 뭘 따지거나 물으려는 건 아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찾아왔던 거야.”
대충 둥그렇게 둘러앉은 자리에서 학생회장 이경민이 먼저 입을 뗐다.
“학교라는 공간이 그래. 다들 공부랑 자기 작업만 열심히 하면 좋은데, 혈기들이 왕성해선지 한 번씩 사건 사고가 터지거든. 별별 희한한 소문이 돌기도 하고. 대부분 가만두면 조용해지긴 하는데, 이번엔 한참 시끄러울 것 같아서 나섰어. 어쨌든 난 이번도 발단은 아주 사소했을 거라고 봐.”
이경민은 수현을 찾아오기 전, 벌써 몇 명을 만나 이런저런 얘길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며칠 전, 빈 강의실에서 수현과 친구들이 했던 얘기가 소문을 키운 것 같다는 얘길 꺼냈고.
“허. 우리가 하는 얘길 누가 들었다고요?”
“맞아. 그때 앞문이 잠깐 열렸다가 닫혔잖아. 강의실 잘못 찾아온 사람인 줄 알았더니, 설마.”
“와, 소름. 그럼 복도 밖에서 우리 얘길 엿들었다는 거야? 그러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이경민의 말에 수현의 친구들이 흥분하며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수현은 애들에게 흥분하지 말란 눈짓을 보내고는 이경민을 향해 말했다.
“들어보니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했겠네요. 그런데 애들이 고의로 누굴 험담한 건 아니었어요. 쇼케이스에 관한 소문이 미술대학 안에 돌았던 걸 잠깐 얘기했던 정도고요.”
“흠. 지훈이 얘길 했던 건 사실인 거지?”
“네. 쇼케이스 주인공이 서지훈 선배란 소문이 있어서, 그 얘기가 나오긴 했죠.”
이경민이 미간을 좁히며 수현을 바라보았다.
보통 억울한 상황에 처하면 없는 말도 끌어다가 자길 변명하는 게 보통인데, 오히려 말을 아끼는 모습이 의외이기도 궁금하기도 하단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소문이 부풀려진 건 사실이겠는데, 어쩐지 수현 후배는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이네?”
이경민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지만,
“선배님 말씀대로 대부분의 소문은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지기 마련이고, 뒤늦게라도 진실은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상관없어요.”
수현은 오히려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근거 없는 비방이나 험담 같은 게 돌아서 괜히 과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건 영 별로라, 한동안 나랑 여기 친구들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할 거야. 그러니까, 언제든 혹시 도움이 필요하거나 할 얘기가 생기면 찾아와.”
“네, 감사합니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이경민과 선배들은 어정쩡한 얼굴이 됐다.
눌러앉아 생일 파티를 같이하기는 아무래도 어색한 분위기.
“그럼, 우린 먼저 갈게.”
“그래. 일어서자.”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는데, 집으로 오게 돼서 기회를 놓쳤네. 이거 달아뒀다가 다음 기회에 꼭 쓰자. 진짜 맛있는 거 한 번 사준다.”
“하하. 기억해둘게요. 진짜로요.”
선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수현도 배웅을 하려 일어났다. 그러던 중 선배 하나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부탁을 했다.
“저, 미안한데 화장실 한 번만 써도 될까?”
“아, 이쪽인데 지금 누가 들어갔나보네요. 2층에도 화장실이 있어요.”
수현이 계단 위를 가리키자 선배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급하게 올라갔다.
참고 참다가 안 됐던 얼굴이었다.
생리 현상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수현이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볼일을 마친 선배가 개운한 얼굴로 다시 수현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정신없네.”
“그러게. 폭풍우가 지나간 느낌이야.”
“어, 근데 진짜 찜찜하다. 수현, 너 우리한테 왜 이 얘기 안 했어?”
“맞아. 너 혹시 과에서 왕따 당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설마. 우리 한수현이 그런 걸 당할 애야? 행여 누가 헛짓거리를 해도 신경도 안 쓸 정신력의 소유잔데.”
선배들이 사라지자 친구들은 아까 꺼내지 못한 말을 와르르 쏟아내며 수현을 둘러쌌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익명 게시판 같은 건 있는지도 몰랐고. 아직 학과 게시판 내용도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거든.”
미술사 수업 시간에 황당한 취조가 있긴 했으나 그럭저럭 잘 넘겼고, 선배들도 신경 써 준다고 했으니 일이 더 크게 번지진 않을 거라 애들을 안심시키며 수현이 활짝 웃었다.
“그런 거면 다행이고. 어쨌든 찝찝한 일 생기면 꼭 우리한테 말해.”
“그래. 어떻게 보면 우리가 떠든 일 때문에 소문이 번진 것 같은데 그걸 왜 네가 혼자 감당하고 있어.”
“하. 그냥 속 시원하게 그 그림 한수현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한 방에 해결인데.”
“나도, 나도. 그냥 오늘 술 한잔 먹고 확- 떠들어버릴까? 야! 백현대 앞 전광판 그림 사실 한수현 거다! 이렇게?”
애들이 그렇게 입을 삐죽거리고 있을 때, 딩동- 현관벨이 울렸다.
“스티브인가 본데?”
“이 자식, 굼뜨네. 작업실에서 여기까지 코앞인데 이제야 온다고?”
“아냐. 우리 처음에 잡았던 약속 장소로 혼자 가서 기다리고 있었대. 아까 회화과 선배들이 갑자기 와서 여러 말 하는 바람에 갑자기 돈가스집 갔다가 수현이네로 온 거잖아.”
“헐. 아무도 스티브한테 연락 안 해준 거야?”
“어, 수현이가 뒤늦게 연락했대. 그러니까 아무 말 하지 마. 우리 잘못이야.”
철컥.
잠시 후 현관이 열렸고, 케이크와 커다란 선물 상자를 안은 스티브가 잔뜩 부은 얼굴로 들어왔다.
“생일 축하해, 수현아.”
그렇게 수현의 생일파티가 시작되었다.
***
“재밌었다.”
몇 시간 후, 늦은 밤.
애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수현이 저녁의 일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계획했던 게 어그러진 바람에 처음엔 김이 샌 분위기였는데, 맛있는 배달 음식과 수다가 더해지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흥겨운 시간이 만들어졌다.
과가 다른 친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학 생활에 적응해가는 것도, 친구들이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 희한한 선배들, 괴짜 같은 교수들의 스타일에 대해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다들 잘 성장하고 있어.’
애들이 첫 번째 과제를 두고 작업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이 수현이 보기엔 기특하고 예뻤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적 동지애를 느끼는 친구 사이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싶었고.
그러면서 수현 역시 대학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동기, 선배들과 좀 더 가깝게 연대를 다지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오리엔테이션까진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최근 소문에 시달리면서 어색해진 면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조바심을 낼 일은 아니다 싶었다. 아직 신학기고, 시간은 충분하니까.
“서두를 건 없지.”
수현이 자리에 앉아 친구들이 주고 간 생일 선물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풀어보며 정리했다.
그렇게 차분히 마음을 정리한 수현이었으나, 사건은 수현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며 해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백현대 앞 호프.
밍밍한 500cc 맥주를 앞에 놓은 회화과 학생회장 이경민과 두 친구가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짜야? 확실해?”
“내 눈 몰라? 진품명품, 내가 언제 틀린 적 있었어?”
“그렇긴 한데, 너무 믿기지 않는 말이니까 그렇지.”
“하. 나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너무 급해서 화장실 문인줄 알고 벌컥 열었는데, 그림들이 잔뜩 있더라고.”
“근데 그 그림이, 전광판에서 본 그 그림이었다?”
“어. 확실해.”
아까 수현의 집에서 나오던 길에 화장실을 잠깐 쓰겠다고 부탁했던 95학번 선배 문주환이 아무래도 봐서는 안 될 걸 본 모양이었다.
“정리해보자. 그럼 쇼케이스의 주인공이 진짜 수현 후배란 얘기지?”
“그거 말곤 답이 없지.”
“와. 충격인데.”
“그러니까. 솔직히 그 그림이 지훈이 자식이 그린 거란 말이 과에 돌았을 때, 우리 다 알았잖아. 지훈이가 그 정도 실력은 아니라는 거. 당연히 헛소문이라 생각했고.”
“그랬지. 서지훈이 좀 그리긴 해도 자기 그림을 완성한 작가급이라 볼 순 없으니까.”
“그러다가 뜬금없이 서지훈이 아니라 한수현이 쇼케이스 그림을 그린 거란 말을 하고 다녔단 소문이 돌아서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어처구니없게 그게 진짜였단 거네?”
“큰일났다, 진짜.”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네. 그러니까 수현 후배가 진짜 그림의 주인공이고,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이유가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다. 이거 맞지?”
“그런 거 같다. 와, 어쩌지? 쇼케이스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도 결국엔 작품의 주인이 누군지 밝혀질 거고, 그때 가면 헛소문 냈던 애들 얼굴 들고 학교 다닐 수가 없겠는데?”
“모르지. 뻔뻔한 애들은 알면서도 자기를 기만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네.”
이경민과 친구들이 목이 타는지 밍밍한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켰다.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수현 후배한테 폐가 될 거 같고, 아무래도 얘길 좀 더 나눠봐야겠는데?”
“그래. 일부러 본 것도 아니고 화장실인줄 알고 열어봤다가 알게 된 건데, 수현 후배도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을 거야.”
“은밀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정리해야겠다. 일이 잘못 커졌다가는 정말 애들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있을 거야.”
“수현 후배랑은 경민이 네가 내일 좀 더 얘길 나눠보는 게 어때?”
“그래. 잘 얘기해볼게. 근데, 수현 후배랑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않냐?”
이경민의 말에 두 친구가 눈을 끔뻑였다.
“누구?”
“이 모든 사건의 발단.”
“……?”
“서지훈 말이야.”
“아.”
“그렇지. 서지훈이 어찌 보면 시작이었지?”
“대체 2학년 애들은 왜, 쇼케이스 그림이 서지훈 작품이라고 말했던 거야? 그 바람에 꼬이고 꼬여서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설마 지훈이 놈, 지가 그렇게 말하고 다닌 건 아니겠지?”
“없는 말이나 거짓말할 성격은 아닌데, 어쨌든 뭔가 있긴 있을 거야. 직접 물어보자.”
“그래. 불러내자.”
“지훈이 작업실이 정문 근처지? 잠깐만 내가 통화 한번 해야겠다.”
회화과 학생회장 이경민이 비장한 얼굴로 PCS폰을 꺼내 들고는 서지훈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