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미술전시회(1)
3주 후.
“그래도 집합은 어렵지 않네.”
수현은 도서관에 앉아 수학의 정석에 파고들었다.
수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던 참고서. 성문 영어와 함께 아침 자습 시간이면 애들이 자동으로 펼쳐두던 책이었다.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하, 그래도 수능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서 다행인가.’
수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방학 동안 수현의 시간표는 분 단위로 촘촘하게 계획됐고,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를 제법 달성시켰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가장 걱정하던 수학의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히면서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실기만 가지고는 입시에 성공할 수 없어. 상위권 대학의 입시는 실기와 학과의 비중이 반반 정도니까. 내신 관리도 수능 대비도 꼼꼼히 해야겠지.’
한숨을 내쉰 수현이 손바닥만 한 다이어리를 펼쳐 8월의 계획을 점검했다.
이제 내일이면 긴긴 여름방학도 모두 끝이다.
그림과 공부에 매진하는 건 다를 바 없겠지만 전시회 전담반 수업이 주 5회에서 1회로 줄어들게 된다는 건 큰 차이.
“이제 일주일에 하루네.”
수현이 금요일이란 글자에 여러 번 동그라미를 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방학 보충수업이 이어진 3주 동안, 오전은 소묘, 오후는 전시회 전담반이 운영됐다.
2학기부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 3시까지 학과 수업이, 이후 늦은 저녁까지 실기 수업이 진행될 예정.
월, 화는 소묘 수업, 수, 목은 전공 수업, 그리고 전시회 전담반 수업은 금요일 하루로 정해졌다.
“묘하단 말이야.”
수현이 가만히 턱을 문질렀다.
수현의 알던 과거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나비효과로 일어난 변화도 상당했다.
전시회 전담반이 개설된 것도 전엔 없던 일.
그리고 미술 전시회의 규모가 커진 것도 달라진 부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3등까지만 주어지는 행사였는데, 특선 둘에 입선 셋을 더 준다고? 게다가 방식도 특이해.”
바로 어제, 전담반을 맡은 김윤수가 긴 교사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전한 소식은 수현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 미술 전시회는 그랑프리인 1등과 2등, 3등 외에 특선 2명, 입선 3명을 더 뽑아 총 8명이 수상하게 될 거라는 것.
그리고-.
“심사위원 점수에 관객 점수를 더해 종합평가를 내린다고 하네. 음, 그리고 관객 점수는 전시회 마지막 날 열릴 경매로 결정한다는데, 이건 세부적인 내용이 조율되면 다시 알려주도록 할게.”
경매라니, 아주 뜬금없는 이벤트가 생겼다. 자세한 얘길 듣지 않아도 어쩐지 수상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행사.
“흠. 어쨌든 지켜보면 알겠지.”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곤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벌써 11시.
기숙사 소등 시간이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
“한수현! 너 몇 반이야?”
다음 날 아침.
2교시 수업이 끝나고 수현의 교실 뒷문이 우당탕 열리더니 박선화가 쏟아지듯 들어왔다.
“어? 뭐가?”
“전공 실기 반 말이야. 너 뭐 뽑았어?”
“아.”
수현이 씩 웃으며 오전에 뽑은 쪽지를 펼쳤다.
“조소 B반.”
“와, 정말?”
잠깐 어벙한 표정을 짓던 박선화가 가만히 자기 손에 들려있던 쪽지를 펼치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왜?”
“으아아아! 같은 반이야! 나, 너랑 같은 반 됐어!”
박선화가 발을 구르며 기뻐했고-.
“어으. 진짜야? 너도 B반이야? 왜?”
이미 같은 반이 된 기분을 한차례 만끽한 차윤희가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냐는 표정으로 수현과 박선화를 번갈아 보았다.
“와, 확률 게임, 대박! 안 그래도 전시회 전담반 횟수가 일주일 1번으로 줄어서 한수현 보고 싶은데 어쩌지 했는데, 미쳤다. 미쳤어. 꺄아! 같은 반 됐다!”
그러나 박선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현을 마구 끌어안으며 방방 뛰었다.
“어우, 숨 막혀. 좀 놔봐.”
수현이 박선화를 진정시키며 싱긋 웃었다.
‘이것도 전이랑 다르네.’
세현예고 미술과는 2학년부터 동양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 4개의 전공 중 하나를 선택해 입시를 준비하게 된다.
1학년은 전공 선택에 앞서 반 학기씩 4개의 전공을 돌아가며 경험하는데, 수현은 1학기엔 동양화와 회화를 수업했고, 2학기엔 조소와 디자인 수업을 받을 차례였다.
로테이션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보니 138명의 미술과 애들이 무작위로 섞여 실기 반이 만들어졌다.
박선화와 차윤희 역시 1학기에 회화와 동양화 수업을 끝내뒀던 터라, 같은 반이 될 확률이 높긴 했지만 조소 수업 안에서만 A, B, C 세 개의 반이 운영되다 보니, 셋이 다 같은 반이 된 건 꽤 운이 따른 일이었다.
“나, 설레.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심장이 막 두근두근한 거 있지.”
“야, 주접떨지 말고 이제 너희 반으로 가줄래? 수업 시작하거든?”
“차윤희, 나 너한테 말 건 거 아닌데?”
“어우. 귓구멍을 닫을 수가 없어서 다 들리는데 어떡하라고?”
“아, 짜증 나. 너 내가 여름방학 때 베풀었던 호의를 좀 기억해라. 하여간 머리 검은 짐승은 이래서 거두는 법이 아니라더니.”
“거둬? 네가 날 거둬? 와, 많이 컸다, 박선화?”
“어, 안 그래도 나 여름에 3센티 컸거든? 넌 언제 클래?”
2학기엔 전공 실기 반이 떠들썩하겠구나.
티격태격하는 둘을 본 수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수업 종이 치긴 했어. 선화야, 그만 가고 이따가 보자.”
“어? 그래? 알았어. 참! 우리 실기동 넘어가기 전, 쉬는 시간에 매점 갈래?”
“매점?”
“햄버거 새로 나온 거 있는데 엄청 맛있대. 아까 음악과 애들이 얘기하는 거 들었어.”
“아까면…… 1교신데? 그때 벌써 햄버거를 먹은 애들이 있단 말이야?”
“그만큼 엄청 맛있대. 참치비빔밥이랑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고 난리더라.”
신이 나서 더 떠들려고 하던 박선화는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3교시 과목 선생님이 들어오자 후다닥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여튼 이따가 봐!”
여러모로 소식이 빠른 박선화였다.
그리고,
박선화가 수집하고 다루는 정보들은 비단 매점의 신메뉴뿐이 아니었는지.
“한바탕 난리가 났었대.”
학과 수업이 모두 끝난 오후 3시.
수현과 차윤희를 매점으로 끌고 온 박선화가 신상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또 다른 소식을 전했다.
“뭐가?”
“우리 이번 전시회, 갑자기 규모가 커졌잖아.”
“어?”
마침 수현이 의문을 품고 있던 부분이었다.
차윤희도 찝찝했던 바인지 귀를 쫑긋 세우며 박선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안 그래도 이상하더라. 갑자기 왜 바뀐 거래?”
“그게 대외적인 명분은 충분해. 그랑프리는 매년 없던 거나 마찬가지였고 2등 상이랑 3등 상만 주어졌잖아.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 사기가 떨어지고, 전시회 분위기도 처지니까 이번엔 특선이랑 입선을 만들자고 했다는 거야.”
“음. 그럴듯하네.”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이게 웃겨. 가만히 들여다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가능성이 크거든.”
우물우물. 심각한 얼굴로 햄버거를 씹다가 꿀꺽 삼킨 박선화가 수현과 차윤희를 가운데로 모으며 말했다.
“그간은 심사위원 점수로만 수상작을 정해왔잖아? 이번엔 관객 점수를 더해서 전시회 분위기를 띄워보자고 했다는데, 그 기준이 하, 충분히 조작이 가능하겠더라고.”
“조작?”
“어떻게?”
박선화의 말에 수현과 차윤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작이라니. 1학기 말 소묘 시험 뽑기통 사건으로 이미 공정성에 의심을 받은 미술과에서 방학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음모가 펼쳐진다고?
대체 누가 이런 일을 꾸미려는 걸까.
“미술 전시회 마지막 날에 경매를 열 거라고 했잖아. 학부모와 외부 사람들이 참여하게 할 거고.”
“어, 맞아. 경매한다는 얘긴 윤수 쌤이 해주셨잖아. 근데 아직 구체적인 건 결정된 게 없다며. 그게 왜?”
차윤희가 감이 안 온다는 투로 묻자 박선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표만 안 한 거지, 이미 결정은 나 있어. 응찰자가 얼마나 많은지, 낙찰된 금액이 얼마나 큰지를 보고 그걸 관객 점수로 반영할 거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뭐? 진짜?”
“허.”
박선화의 말에 수현이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빤히 그려졌다.
그러니까 자기 자식 그림에 확실히 돈지랄 하는 부모가 트로피를 가져가겠구나.
대놓고 자기 자식 그림값을 올리긴 어려울 테니, 외부 손님들을 끌고 오는 사람도 많겠고.
그렇게 경매 행사가 북적북적해지고, 호가가 터지면 학교 측에도 나쁠 게 없겠지. 결국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룰루랄라 트로피를 기념품으로 가져가게 될 테니 선화 말대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구조였다.
“야, 이게 말이 돼?”
차윤희가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봐도 부정한 방법이잖아. 막말로 돈 주고 상을 사는 건데,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겠다. 전시회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건.”
“그래서 실기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는데, 문제는 학교장이 승인을 했다는 거야.”
박선화가 목이 막히는지 콜라를 한 모금 넘기고는 말을 이어갔다.
“교장 선생님이?”
“어. 경매 행사가 단순히 경매로 끝나면 반박할 여지가 크겠는데, 이걸 자선행사와 연결하겠다고 제안했나 봐.”
“자선행사랑? 바자회처럼?”
“그렇지. 그림 딱 나오잖아. 전시회 그림들을 경매에 부처 그 수익금을 좋은 곳에 기부한다. 세현예고의 이미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
“하. 욕심나는 행사가 된 거구나.”
“누군지 기가 막히게 짰네.”
들을수록 놀랍고 불쾌해지는 얘기였다.
수현은 점점 여름방학이란 짧은 기간, 누가 이런 판을 벌인 건지 궁금해졌다.
설마 이번에도 최형욱 선생일까.
답은 곧바로 나왔다.
“그래서 아주 눈꼴 시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박선화가 미간을 찡그리며 턱짓했다. 그 방향을 따라가니 매점 한쪽 테이블에 김하영과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 등이 둘러앉아 신나게 떠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하영이 벌써부터 지가 그랑프리를 먹은 것처럼 주접을 떨고 다니더라고.”
“김하영이?”
“쟤 과시욕이 엄청나잖아. 그런데 방학 전에 수현이 네 그림 따라 그린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했었거든.”
“웃겨.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따라 그린 거 맞잖아?”
“어쨌든, 저게 방학 동안 뭘 그렸는지 아주 기고만장해졌더라고. 그림 오픈할 날이 되면 애들이 다 깜짝 놀랄 거라면서 허풍이 장난 아니야.”
“지겹다. 또 쟤들이라니.”
차윤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고,
“그럼, 이번에도 최형욱 선생님이 연관돼 있다는 거네?”
수현은 이제는 확실해진 사건의 주모자를 지목하며 박선화를 바라보았다.
“응. 경매 기획도 최형욱 선생님이 제안한 거라고 들었어.”
박선화가 드물게 웃음기가 걷힌 얼굴로 답했다.
“이거 알고도 당해야 하는 거야?”
차윤희가 열을 내자,
“당연히 그럴 순 없지.”
박선화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수현, 아무래도 네가 좀 힘을 내줘야겠다.”
그리고 박선화가 전에 없던 진지한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