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최초의 그랑프리(1)
강당에서 열리는 경매는 제법 격식을 갖춘 행사였다.
실제 경매에서처럼 참가자들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 후 패들(경매번호판)을 받아 들었다.
경매를 진행할 인물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명훈 경매사를 데리고 왔다.
세현예고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번 작품은 1학년 윤정호 학생의 [꿈>입니다. 경매 시작가 10만 원에서 시작하고, 5만 원씩 올리겠습니다. 시작합니다. 10만 원, 있으신가요? 감사합니다. 15만 원 있으신가요? 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경매가가 올라갔다.
학생들의 작품이라 경매 시작가는 10만 원으로 고정된 상태.
그러나 어느 집 자식의 그림이냐에 따라 호가가 달라졌다.
“70만 원입니다. 더 없으신가요? 네, 70만 원 낙찰입니다!”
탕!
시작가 10만 원에서 70만 원까지 올라가는 데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작품부터 이어지는 10개 정도의 작품까지가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열기는 뜨거웠고 나오는 작품마다 호가를 기록하며 박수를 받았다.
현장을 밀고 당기며 능수능란하게 경매를 진행하는 김명훈 경매사는 중간중간 객석에 농담을 던지거나 간단한 작품 설명을 곁들이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엄청나다.’
그 행사를 지켜보던 학생들은 그야말로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개중엔 경매장에 직접 가 분위기를 익힌 애들도 있었으나, 자기 그림이 팔린 경험은 전무하니 묘한 흥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수현도 마찬가지였다.
“어마어마한데?”
강당 2층, 학생석에 앉은 수현과 박선화, 차윤희가 속닥거렸다.
“그러게. 70만 원, 80만 원, 아까 정주은 거는 100만 원에 낙찰됐지?”
“통 크다. 암만 자선행사라고 하더라도 100만 원씩 턱턱 던지는 걸 보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야.”
“근데 웃기는 건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 그림을 사주는 게 대부분이란 거야. 이거 너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지 않아?”
“그야 그렇지만 세현예고가 어떤 곳이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기도 하네.”
수현이 싱긋 웃어 보이자 박선화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벌써 놀라면 안 되지. 아직 시작도 안 한 건데.”
“어?”
“잘 봐봐. 좀 전까지 나온 그림들. 솔직히 그렇게 눈에 띄던 것들은 아니잖아.”
박선화의 말대로였다.
경매에 나온 첫 그림부터 10개 정도의 그림은 전부 비슷비슷한 수준의 작품들.
경매에 큰 액수를 지른다고 수상 가능성이 생기는 게 아니니 학부모들도 체면을 구기지 않을 선에서 경매가를 정하는 느낌이었다.
“진짜 웃겨. 윤주랑 성호, 유진이네는 셋이 짜고 왔나 봐.”
“어?”
“적당히 70 정도까지 가격을 올리자고 약속한 것 같은데? 저 세 분이 70만 원 언저리까지 쭉 경매가를 올리고, 낙찰은 부모가 하는 걸로 짠 게 분명해.”
“와, 넌 그게 보여?”
“그게 내 재능이라.”
드물게 눈을 빛내며 경매가 이루어지는 강당 안을 신나게 살피는 박선화.
제법 근거 있는 소리를 하는 통에 수현은 박선화의 중계를 재미있게 들었다.
“어쨌든 경매 행사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학부모들도 있을 거라 더 낮은 가격에 팔리거나 유찰될 작품도 있겠지만.”
박선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중반 이후부터는 열기가 엄청날 거야. 100만 단위는 우스워질걸?”
박선화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작품 번호가 40번 대 이후로 넘어가자 강당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120만 원! 또다시 호가입니다! 이제 10만 원씩 경매가 올려보겠습니다. 130 있으신가요? 감사합니다! 140! 150! 가보겠습니다. 두 분 감사합니다! 160,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160. 160입니다. 160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탕!
경매사의 망치가 허공을 갈랐다.
경매 초반 70만 원 언저리의 가격을 형성하던 작품가는 어느새 100만 원을 훌쩍 넘고 있었다.
50번 대로 가면서는 200만 원, 300만 원을 기록한 작품까지 나타났다.
“와.”
차윤희가 기가 막힌단 얼굴로 박선화를 바라보았다.
“왜?”
“아주 새롭게 보여서.”
“내가?”
“어. 솔직히 나 그동안 네가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
“뭐?”
“근데 오늘은 달라. 너 좀 멋있어 보인다.”
“하아.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솔직한 감상이지.”
“어? 잠깐만. 이제 53번이야. 차윤희, 네 작품 순선데?”
“헉. 진짜네. 아. 어떡하지?”
차윤희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바다, 그리고 추억>.차윤희는 이번 전시회에 소라고둥을 모티브로 한 설치 미술을 선보였다.
크기가 다른 각각의 소라 오브제는 디자인도 예뻤지만 거기에 달린 버튼과 녹음된 소리, 그를 통해 관람객이 추억을 떠올리고 감상에 빠지게 하는 일련의 연결 과정이 새로운 체험을 하게 만든단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하아. 모르겠다. 우리 아빤 경매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나 차윤희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차수혁이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조각가를 아버지로 두고 있으니 자랑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그 그늘에 가려 자신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어 수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과거 차윤희는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해 여러 번 괴로워했다.
가정형편이 안 좋아져 결국 미술을 포기하게 됐을 때도 후련한 마음이 반이란 말을 하기도 했고.
‘어쨌든 윤희도 이번엔 저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할 텐데.’
수현이 애틋한 눈으로 차윤희를 바라볼 때였다.
“300! 300만 원 나왔습니다. 와, 경쟁이 치열하네요. 경매가 20만 원으로 올리겠습니다. 320만 원, 340만 원, 360만 원 있으신가요? 네, 380, 400만 원입니다!”
호가가 터졌다.
“뭐야? 차윤희 엄청난데?”
박선화가 놀란 눈으로 무대와 차윤희를 번갈아 봤고, 차윤희 역시 믿기지 않는단 얼굴로 굳어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경매 과정을 지켜보는 차윤희.
그러나 잠깐 흥분하던 얼굴은 얼마 안 가 차분해졌다.
“아빠 영향인가 봐.”
“어?”
“우리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경매가를 올리는 느낌이 들어. 지금 호가 부르는 아줌마랑 아저씨들. 하아. 전부 내가 아는 분들이야.”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차윤희.
그의 말대로 차수혁 작가의 영향력이 작용하긴 했겠지만, 차윤희의 작품이 저평가받을 수준인 건 또 아니었다.
‘좀 달래줘야하나.’
수현이 위로의 말을 전하려 할 때였다.
퍽!
박선화가 차윤희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냅다 후려쳤다.
“아얏! 왜 이래? 너 미쳤어?”
“이거이거. 나약해 빠져가지고, 야. 그럼 네가 뭐 얼마나 대단한 작가라고 저 돈을 주고 작품을 사겠냐? 당연히 너희 아버지를 보고 사는 거지.”
“뭐?”
“너뿐이야? 지금 낙찰된 그림들, 다 똑같아. 작품만 보고 사람들이 덤벼드는 게 아니잖아. 자선행사에 기부도 하고, 이왕이면 자기 자식 그림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호가를 부르는 거지.”
“아, 그거야 그렇지.”
“다들 잠깐 기분만 내는 거야. 진짜 경매라면 이 중에 몇 장이나 팔릴 거 같아? 가격은 또 얼마나 될 거고. 어휴.”
아예 어린아이를 보듯 고개를 젓는 박선화의 모습에 차윤희가 발끈했다.
“아니, 나도 안다니까?”
“근데 왜 실망한 얼굴인데? 너 속으로 조금 기대했던 거냐? 네 작품을 정말 사람들이 좋아해 주길 바라면서 말이야.”
“아, 그거야 당연하지. 그게 솔직한 맘 아니야?”
“응. 당연해. 근데 아직 일러. 우린 아직 학생이고, 프로의 세계로 진입할 준비는 안 됐으니까.”
“하아.”
똑 부러지는 박선화의 말에 차윤희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정. 네 말대로 내가 잠깐 착각했나 보다. 전시회를 하고 경매도 연다고 하니까 진짜 작가라도 된 것처럼 들떴어. 아직 그 단계까지 가려면 갈 길이 먼데 말이야.”
“뭐, 깨달았음 다행이고. 어쨌든 주눅들 필욘 없단 얘길 해주려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네가 아버지 그늘 벗어나서 성장할 게 아니라면 배경을 잘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봐.”
“어?”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차윤희가 박선화를 바라보았다.
“감사하게 생각하라구. 인맥도 배경도 어찌 보면 이 세계에선 능력인 거니까. 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몰라서 그래?”
박선화의 말에 뭔가 깨달아진 걸까. 차윤희가 수현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고. 내가 정말 배부른 소리 한 게 아니거든? 수현아, 진짜 오해하면 안 돼.”
“어. 알아. 그니까 둘 다 그만해. 너무 과몰입했어. 우린 지금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니까. 와! 저기 봐, 윤희야. 네 작품 낙찰됐다.”
탕!
경매사의 망치가 경쾌한 소리를 냈다.
“[바다, 그리고 추억>. 440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차윤희의 작품이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차윤희의 낙찰가를 뛰어넘는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100만 원 아래로 떨어지는 일도 많았다.
그렇다 해도 자선행사는 어마어마한 성공이었다.
미술과 138명의 작품이 유찰 없이 진행되고 있으니, 대충 짐작해도 수천만 원에서 1억 가까운 규모였던 거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작품 번호 80번, [흐르는 바다>입니다.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마침내 김하영의 그림이 무대에 등장했다.
경매 시작가는 전과 같이 10만 원이었으나, 1분이 채 흐르기도 전에 100만 원을 넘어서며 강당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300만 원입니다. 경매가 20만 원 씩 올리겠습니다. 320, 340, 360, 380. 오, 감사합니다. 400 있으신가요? 좋습니다. 420도 있으실까요?”
순식간에 올라가는 경매가.
차윤희의 낙찰가를 뛰어넘은 지는 오래였다.
연달아 터지는 호가에 박선화와 차윤희, 그리고 수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이, 짜증 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차윤희.
“괜히 겸손 떨었네. 아니, 아까 그 아줌마랑 아저씨들은 왜 이렇게 통이 작았던 거야? 이왕 우리 아빠한테 잘 보일 거면 더 크게 질렀어야지.”
돌변한 차윤희의 태도에 웃음이 터지긴 했으나 수현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김하영네 집이 엄청난 재력가긴 했지. 이거 잘하면 천만 원까지도 올라가는 거 아냐?’
이 시절에 고작 고등학생이 그린 그림 한 장에 천만 원을 낸다는 건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일.
그러나 이곳 세현예고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낙찰가로 전시회 결과가 정해지는 거면 열받긴 할 것 같은데.’
수현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바로 그때.
“천만 원!”
600만 원까지 올라가던 김하영의 그림이 누군가가 외친 호가로 천만 원을 기록했다.
“오, 정말이십니까? 천만 원, 천만 원이 나왔습니다. 오늘 경매 사상 최고가입니다!”
흥분한 경매사가 망치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어떡해. 미쳤나 봐.”
“야, 김하영. 저분 누구셔?”
“몰라. 우리 아빠랑 아는 분인 것 같긴 한데, 엄청 유명한 콜렉터일걸?”
“헐. 콜렉터면 진짜 아무 그림이나 살 리가 없는 거잖아.”
“그렇지. 안목이 있으신 분이야.”
학생석에서 초조한 얼굴로 자신의 경매현황을 지켜보던 김하영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애들에게 자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강유진 관장님이 도와준다고는 하셨지만, 이젠 금액이 너무 커. 이걸 좁히는 건 쉽지 않겠는데.’
이대로라면 전시회 결과는 공정하지 않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수현이 팔짱을 끼고 강당에 앉은 사람들을 가만히 응시할 때였다.
‘잠깐, 저게 누구지?’
수현의 시선에 수상한 인물의 움직임이 포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