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13)
#113. 후광
재인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친구 등 뒤에 숨어 바닥만 보는 차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있는데도 모른 척해서 마음고생시킨 것 같았다.
“흐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다지 권하고 싶진 않아요.”
“무슨 방법인데요?”
“제가 각성한 능력이랑 관계가 있어요. 저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쌓이면 상대의 기운을 바꿀 수 있어요. 저랑 같은 기운으로요.”
“그 말은?”
달려들 듯 다가와 묻는 박원영에 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급 신관으로 임명한다면, 다섯 명의 날카로운 기운을 다스릴 수 있다. 자신의 기운에 자신이 다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진정해요. 분명 좋은 방법이지만, 완벽한 방법은 아니에요. 제약이 있어요.”
“제약이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 재인이 지금까지 이 방법을 알리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기운을 신성력으로 바꿀 수 있는 기간은 제한적이었다. 재인을 믿는 동안에만 효과 있는 방법이었다. 그에 대한 믿음이 변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 그가 신관 자격을 박탈해도 결과는 같았다.
“그럼 재인 님을 계속 믿으면 되잖아요.”
“사람 마음이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요.”
“절대 안 변해요. 저희는 재인 님, 만 믿어요.”
“……그래요.”
“진짜예요. 정말로 계속 믿을 거예요.”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재인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박원영은 혹시 부담을 느낄까 봐 도중 말을 바꾸었다. 대신 진심을 호소하듯 힘주어 말했다.
그런 박원영의 뒤에서 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영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재인을 믿는 건 그들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조건이 필요하거나 대가를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믿음의 시작은 미래 각성 능력 개발 학원의 선생들에 의해서였지만, 그걸 선택하고 지켜 온 것은 그들의 의지였다. 버림받고 갈 곳 잃은 삶에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었다.
“알았어요. 믿어요. 그럼 다음 휴일에 진행할까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건 아니에요. 금방 돼요. 그저 며칠이라도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럼 지금 해 주세요. 고민할 시간 필요 없어요. 그치?”
박원영의 말에 친구들 전원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재인이 하려는 게 뭔지는 잘 몰라도 적어도 해가 되진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은 정말이지…….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믿을 수 있을까.’
재인은 한 점 의심도 보이지 않는 다섯의 태도에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지냈기에 그의 손을 덥석 잡는지. 만약 나쁜 의도로 손을 내미는 것이면 어쩌려고 이리 경계심이 없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요. 지금 해요.”
다만 며칠이라도 고민해 보길 바라는 속마음과 다르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은 여전했으나 일단 접어 두고 바라는 대로 해 주기로 했다. 재인은 간절한 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미적대면서 애끓게 할 정도로 짓궂지 않았다.
시스템의 교단 관리 페이지에서 신관 임명 버튼을 누른 뒤 대상을 지정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재인과 소통하는 박원영을 첫 번째 하급 신관으로 임명했다.
“헉!”
“원영 씨? 어디 아파요?”
“허억!”
“괜찮아요?”
“최, 최고로 괜찮아요.”
재인은 박원영을 하급 신관으로 임명한 후 바로 후회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진행하기에 공원이 알맞지 않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서였다. 조용한 공원이지만, 사람들 왕래가 제법 있는 곳이었다.
“괜찮아?”
“완전 괜찮아. 너도 해. 얼른. 완전 상쾌해. 몸이 막 엄청 가볍고 되게 편해. 정화 스킬보다 백 배는 더 좋아.”
“진짜?”
“응. 진짜.”
재인이 이제라도 장소를 옮길까 고민하는 사이 원영은 친구들에게 감상을 알리고 있었다. 전에 없이 편한 몸 상태와 변화된 기운에 관해 설명했다.
재인이 무언가를 한 뒤 사나운 파도 같던 기운이 잠잠한 호수처럼 고요해졌다. 몸속에 피 대신 정화 성수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시원하면서 개운했다.
“얼른. 얼른 해 봐.”
“알았어.”
뜻대로 장소를 옮길 여유는 없었다. 나머지 네 명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바람에 가까운 그의 집으로 가서 하자는 말도 못 꺼냈다.
산책하는 사람이 조금씩 줄어드는 한밤의 공원, 미의 신을 섬기는 다섯 명의 하급 신관이 탄생했다.
* * *
촬영장으로 향하는 재인은 고민 중이었다. 오전에 할 촬영 때문은 아니었다. 지난밤 공원에서 다섯 명을 하급 신관으로 임명한 후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신앙 체계를 정립하십시오.]그를 믿고 따르는 신관과 신도가 지켜 나갈 종교의 가르침을 정하라는 말이었다. 원죄의 속죄나 깨달음을 위한 수행, 신에 대한 복종 같은 종교의 교리를 정해야 하는데, 뭐로 할지 내내 고민이었다.
‘행복 하자, 정도로만 하면 안 되나?’
제대로 된 종교도 아니니 그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거창한 가르침을 내려놓고 지키라고 할 만한 자격은 본인도 지니지 못했다. 그러니 최대한 단순하고 지키기 쉬운 내용을 교리로 삼는 게 나아 보였다.
‘……자유 정도는 넣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바로 정하지 못하는 건 하급 신관으로 임명한 박원영과 친구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폭압과 강제를 겪어 왔다. 자유롭게 생활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본인의 목줄을 스스로 그에게 내어 주기까지 했다.
재인에게 그들을 이용하거나 해칠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은 모르는 것이었다. 다소간의 제재가 필요했다.
‘그러면 평화로운 방식으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자 정도인가?’
자유와 행복을 위해 살되 남을 해치지 않는 화합과 배려, 존중이 기저에 깔린 평화로운 방식을 통해서 하면 될 것 같았다.
[신앙 체계가 정립되었습니다.] [일부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스킬 창을 확인하십시오.]종교 관리 창의 교리 칸에 짧은 문장을 적어 넣은 후였다.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허공에 출력됐다.
‘새로운 스킬? 뭐지?’
이미 넘쳐 나는 공헌도로 잠겨 있던 시스템의 거의 모든 기능을 열고 스킬 역시 공헌도 상점에 있는 대부분을 사들인 상태였다. 새로운 스킬이 해제되었다는 메시지 내용이 꽤 뜬금없었다.
‘미친! 지금 장난해?’
새로운 스킬을 확인한 재인이 인상을 구겼다. 이번 스킬도 역시였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쓰읍. 진정하자.’
뒷좌석을 훔쳐보는 최상호의 시선을 느낀 그가 표정을 관리했다.
새로운 스킬이라고 했을 때부터 어쩐지 이럴 것 같았다. 예상 그대로의 일이 벌어진 것이니 화를 낼 건 아니었다.
‘후광은 무슨 후광이야. 내가 진짜 신이라도 되냐고.’
새로 해제된 스킬은 후광이었다. 몸 뒤쪽에서 은은한 빛을 비춰 대상을 더욱 빛나게 한다, 라는 설명이 붙은 어디 한 구석 쓸 만한 곳이 없는 스킬이었다.
몸 뒤로 빛이 생기는 구현 방식 외에 스킬이 가지고 있는 효과도 별로였다. 후광을 마주한 사람은 후광 주인의 성향에 영향을 받습니다, 라니. 대체 자신의 성향이 무엇이고, 그 성향에 영향을 받아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그나마 온·오프 기능이 있어서 다행이네.’
각성 초기 메시지 박스처럼 끌 수 없었다면 큰일이었다. 후광을 끌 때까지 촬영은 고사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재인은 후광 스킬을 미의 신이라는 직업 이름과 같이 혼자만 알고 있기로 정했다.
* * *
촬영장은 여전히 분주했다. 배우들이 도착하기 전에 출근한 스태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세트를 조정하고 확인받느라 바빴다. 스태프들 흘깃 본 재인 역시 발길을 서둘렀다. 김신우와 그의 팀이 다리고 있을 분장실로.
“촬영 끝나면 이쪽 세트는 어떻게 될까요?”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세트에 장식된 그림이나 도자기도 각각 몇억이라고 하더라고요. 첫날 밤 촬영할 때 덮었던 이불이 한 채에 이천이 넘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 걸 그냥 둘 수는 없겠죠?”
“그럴 겁니다.”
>황태자비 스캔들>은 섭외한 스튜디오와 로케이션 장소 외에도 자체 세트를 지어서 촬영 중이었다. 서울 인근의 빈 공장 터를 빌려서 대규모로 황궁 세트를 지었다.
천 평이 넘는 규모의 부지에 세트장은 밖에서 보면 허름한 컨테이너가 줄줄이 놓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은 달랐다. 바닥에 깔린 타일이나 벽에 장식된 전등 하나도 단순한 것이 없었다.
‘비싼 물건으로 가득한 이상으로 아름다워. 바로 철거하는 게 아까울 정도야.’
영화제에서 몇 번이나 미술상을 받은 감독을 섭외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황실은 우아하고 조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수십억씩 들어간 인테리어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오늘 찍는 싸움 장면에선 진짜 조심해야겠어요. 하나라도 망가뜨렸다간 출연료 전부 돌려줘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보험도 들었을 테고.”
오늘 재인과 장윤하가 찍는 장면은 황태자 환과 예은이 첫 키스를 한 뒤 다짐이 흔들리는 장면이었다. 서로가 의식되지만, 여전히 마음을 부정하는. 시쳇말로 입덕 부정기에 들어서는 장면이었다.
‘보험이 있어도 깨뜨리지 말아야지. 진짜 보물도 몇 점 있다고 했으니까.’
태자비 수업 진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예은을 보다 못한 환이 나서서 가르치다 싸움으로 번진다. 화가 난 예은이 환을 향해 던지려고 물건을 집어 들 때마다 국보 몇 호다, 보물 몇 호다, 얄밉게 외치면서 막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실랑이하다 발이 엉키면서 두 사람의 입술이 부딪친다.
‘아, 유치해.’
다른 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황태자비 스캔들>은 특히 작위적인 부분이 많았다. 웹툰이 원작이라서 그런지 말도 안 되는 오해로 다투는 장면도 곳곳에 있었다. 전화해서 해명하면 될 걸 질질 끌다가 난리가 나는, 재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신들이 많았다.
‘이해 안 되기는 이쪽도 마찬가지군.’
분장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맞은 편의 분장실에서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열린 문밖으로 던져진 의상과 구두 등을 급하게 따라 나온 사람이 집어 들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이런 쓰레기를 걸치라는 거야?”
“윤, 윤하야. 의상 잘 어울려. 감독님도 좋다고 했잖아. 어제 너도 좋다고…….”
“시끄러워! 지금 내가 싫다고 하잖아! 연기는 감정 노동이야. 내 기분 맞춰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미안. 새로 가져올게.”
“여러 스타일로 미리미리 준비해 두란 말이야! 스스로 생각할 머리가 없어? 꼭 하나하나 다 짚어 줘야 일을 할 거냐고. 일 하루 이틀 해?”
장윤하의 분장실 앞을 지나는 재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의상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고 성질을 부리는 장윤하의 뒤로 수십 벌의 옷이 걸린 행거가 보였다. 고르기 편하게 진열된 구두와 액세서리도 너무 많아서 숫자를 세기도 힘들었다.
‘생트집이군. 아니, 갑질이라고 해야지.’
김신우의 말대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예은이라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의상과 메이크업을 잘 맞춰 주는 스타일리스트 팀을 왜 저렇게 못살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아한, 고귀한 느낌이 나는 의상으로 준비하라 소리치는 장윤하의 고성을 들은 재인이 다시 움직였다.
‘후광.’
촬영장에 출근하면서 봉인하겠다고 다짐했던 후광 스킬을 몸에 두르고. 탁, 탁. 구두 굽이 바닥을 치는 소리를 죽이지 않은 채.
긴 다리로 성큼성큼 분장실 앞을 지나가던 재인이 고개를 약간 돌렸다. 문밖으로 던지려는지 하이힐 한 짝을 들고 있는 장윤하 방향으로.
“……훗!”
“!”
재인은 장윤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살짝 내려 위아래로 전신을 가볍게 훑었다.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칠 생각은 없었지만, 철없이 빽빽대는 꼴이 어쩐지 너무 같잖게 보여서 저절로 코웃음이 나와 버렸다.
-뿌드득! 뿌드드득!
재인이 지나간 뒤 장윤하의 분장실에 섬뜩한 이가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저게 지금 어디서 예쁜 척이야!”
“윤하야.”
“오빠도 봤지? 지금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코웃음 치고 간 거.”
“제일 예쁜 건 사실…….”
“오빠!”
매니저 오빠는 아니라고 하지만, 장윤하는 확신했다. 좀 전 이재인은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고.
“이 구역의 예쁜 애는 나야…….”
“뭐라고?”
오만하게 아니, 건방지게 턱을 치켜들고 분명히 그런 눈빛을 보냈다. 자기가 여기서 제일 예쁘다고, 너는 상대가 아니라는 그런 눈빛을.
스타일리스트에게 성질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예쁘게, 누구에게 꿀리지 않게 꾸며야 할 때였다.
“실장님. 오늘은 메이크업할 때 하이라이터 팍팍 써요. 아주 번쩍번쩍하게.”
뿌드득! 다시 한번 이를 간 장윤하가 비장하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