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12)
#112. 스트레스 해소
장윤하의 창백한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만약 상태만 괜찮았으면 펄쩍 뛰며 성질을 부릴 것 같았다.
재인은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는 눈빛과 마주친 순간 잘못된 단어를 말했다고 자각했다.
‘여기서 사과하는 건 조금…….’
그러나 바로 사과하지 않고 저를 왜 보냐는 듯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표독스러운 표정에 사과할 마음이 들지 않은 이유도 있었고, 지금 사과하는 건 장윤하가 성형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치유를 받으면 성형한 게 원상태로 돌아가는 부작용이 있어서요. 하지만 장윤하 씨는 성, 형, 안 하셨잖아요. 원래 미인이시니 괜, 찮으시죠? 하, 하, 하.”
“…….”
“…….”
장윤하의 사고로 웅성거리던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사위에 침묵이 무거운 장막처럼 내려앉았다.
‘……발연기.’
침묵을 깬 것은 누군가가 작게 내뱉은 단어였다.
재인이 어색함이 뚝뚝 묻어나는 웃음소리로 웃으면서 상황을 무마하려는 모습을 본 근처의 누군가가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쿨럭! 쿨럭!
재인이 대차게 기침을 해 댔다. 신랄한 평가에 놀라서 숨을 들이켜다 사레들고 말았다.
발연기.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단어였다. 연기가 딱딱하다는 소리는 들었을지언정 발로 하는 수준의 연기라는 평가는 받은 적 없었다.
‘눈빛에 구워지겠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저에게 쏠린 게 느껴졌다. 그중 누군가의 시선은 너무 뜨거워서 온몸이 익어 버릴 것 같았다.
“치유!”
“!”
“!”
“헉!”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던 재인이 기습적으로 치유를 걸었다. 대상은 이글이글 타는 눈을 한 장윤하였다.
“아아악!”
흡! 재인은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겨우겨우 내리눌렀다. 치유를 걸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는 장윤하의 반응이 예상 그대로여서, 순간 못 참고 웃을 뻔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멱살을 잡힌 재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서 소리 지르는 장면까지는 그의 예상대로였지만, 다음 장면은 아니었다.
급하게 거울을 찾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장윤하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한 대 칠 것처럼 꽉 쥔 주먹에 힘을 가득 담은 채.
“역시 성형 안 한 얼굴이네요. 아무렇지 않잖아요.”
“뭐?”
“맞죠? 얼굴 그대로잖아요.”
“그, 그래?”
“네.”
대답과 동시에 고개도 크게 끄덕여 주었다. 신뢰 가는 눈빛도 장착하고 친절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치유를 걸었어도 얼굴은 그대로라고, 안심하라고.
“오, 옷깃이 왜 접혔지?”
“…….”
장윤하는 기세 좋게 잡은 멱살을 슬그머니 놓았다. 이어서 마치 구겨진 의상을 펴 주려고 그랬다는 듯 주름을 펴는 시늉을 했다.
‘이쪽이 더 발연기인데…….’
주름을 펴는 척하는 장윤하는 좀 전에 저에게 발연기라고 한 사람이 다시 말하지 않을까 기대될 정도로 어색했다.
“재인 씨 치료 끝났습니까?”
“네.”
재인의 치유에 부작용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조용히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최상호가 나섰다. 그는 노골적으로 불쾌해하는 말투로 치료 여부를 물으며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자기 등 뒤로 재인을 숨기고 장윤하를 경계하는 모습이 꼭 무뢰한한테서 재인을 보호하는 것 같았다.
“감독님.”
“예?”
“의상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재인을 데리고 정자를 벗어나기 전 최상호는 낮은 목소리로 황인아 감독을 불렀다. 톤은 높지 않았지만, 불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장윤하 배우는 일단 쉬면서 상태 확인하시고, 우린 현장 정리합시다. 조감독아 여기 이쪽에…….”
재인 일행은 황인아 감독이 사람들을 지휘해서 현장을 정리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분장실 방향으로 걸었다.
최상호의 뒤를 따라가는 재인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나 스트레스 쌓였었구나.’
>황태자비 스캔들> 촬영에 오면 불편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스케줄이 많아서, 피로가 쌓여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얼토당토않은 억지를 부려 대는 누군가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것이었다.
‘모르고 있었는데, 장윤하 씨가 스트레스 원인이었나 봐.’
장윤하를 한바탕 골려 주고 나니 기분이 산뜻했다. 이대로라면 밤샘 촬영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하하하!”
“재인 씨?”
분장실에 들어선 순간 재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뜨악한 얼굴, 놀란 눈빛, 어지러운 손길. 일부러 부작용이 없다고 말하지 않은 거였지만, 예상 그대로의 반응을 보인 장윤하가 잊히지 않았다.
“역시. 일부러 안 가르쳐 줬구나.”
“설마 재인 씨가 그랬겠습니까.”
“일부러 그런 거라니까. 아까도 웃음 참는 거 다 보였어.”
“크흠! 앞으로도 부작용 건은 그냥 저희만 알고 있지요.”
김신우가 말하지 않아도 최상호도 눈치채고 있었다.
>완벽한 파트너> 촬영장에선 이미 다 아는 사람한테까지고 꼭 부작용에 관해 설명한 뒤 치유를 걸어 줬었다. 그런 재인이 그냥 무작정 치유를 건 건 놀리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크흐흠. 그러자고. 우리만 알고 있자고.”
“예.”
“쟤도 사람은 사람이네. 보기만 하는 나도 은근히 스트레스받았는데, 직접 얼굴 마주하고 연기하는 데 오죽했겠어.”
“…….”
“아, 재밌었다.”
최상호도 그렇게 생각했으나 배우의 이미지를 위해 김신우의 말에 차마 그렇다고 동의하지는 못했다.
“재인아. 상의 벗어 봐. 다림질하게.”
“네.”
김신우는 하찬에게 간식을 주는 재인을 불렀다. 키득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아 방해하기 그랬지만,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 * *
그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장윤하는 바로 촬영을 계속했다. 연못에 빠지는 장면을 겁낸 적 없다는 듯이 빠지는 장면도 단번에 해냈다.
다음 장면인 재인이 구해 주는 장면에서 얼굴을 보고 이를 갈아서 NG를 냈지만, 공연한 고집을 부리면서 시간을 끌지 않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빠르게 촬영을 마쳤다.
‘그래서 나도 일찍 퇴근할 수 있었지.’
얼굴이 가려지게 볼 캡을 눌러쓴 재인이 하찬의 리드 줄 고리를 손목에 걸었다. 일찍 퇴근한 김에 공원 산책을 한 바퀴 돌고 올 생각이었다. 공원에서 만날 사람도 있고.
“물병 가방 안 무거워?”
“네.”
“무거우면 삼촌한테 말해. 삼촌 가방에 넣어 줄게.”
“네.”
재인의 눈이 현서가 어깨에 멘 물병 가방에 머물렀다. 자기가 마실 물병이니 직접 메겠다는 말에 아이에게 맡겼는데, 500mL 물병이 왜 이리 크게 보이는 건지.
‘걷기 힘들어 보이는데……. 어쩔 수 없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물병 때문에 걷기 불편해 보였다. 그래도 굳이 물병을 뺏어 백팩에 넣진 않았다. 육아 경험은 없지만,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다는 걸 막으면 안 된다는 상식 정도는 있었다.
“이따 공원에서 형이랑 누나 만날 거야. 전에 같이 저녁 먹었었는데 기억나? 햄버거 같이 먹은 형들.”
“네, 노랑 고양이.”
“맞아. 그때 노랑 고양이 인형 받았지. 그거 어디 있더라?”
“버스 타고 있어요. 제이미 버스.”
“그렇구나.”
아이는 같이 저녁을 먹은 형, 누나들보다 어린이 세트에 딸려 온 장난감을 먼저 떠올렸다. 플라스틱 재질의 조잡한 노란색 고양이 장난감.
커다란 머리 때문에 잘 세워지지도 않는 장난감이 어느 버스에 타고 있는지 설명하는 모습이 귀여워 재인은 아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핫도그가 좋아, 닭꼬치가 좋아?”
“핫도그!”
“그래. 핫도그 먹자.”
“이히히.”
핫도그 전문점에 핫도그 일곱 개를 주문해 둔 재인이 아이 손을 잡았다. 아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면 주문한 시간에 맞출 수 있을 듯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시간 딱 맞춰서 왔네요. 핫도그 사 왔어요. 같이 먹어요.”
“잘 먹을게요, 재인 님.”
“네. 음료수도 있으니까 마시면서 먹어요.”
“네.”
공원에서 잠시 기다리자 재인과 현서의 몫을 뺀 나머지 다섯 개 핫도그의 주인이 도착했다. 신화 팬 카페의 간부와 친구들이었다.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네. 정화 성수 마셨구나.’
촬영장에서 만났던 세 명에 집에서 기다린다던 친구 두 명까지. 재인은 다섯 명과 꾸준히 만나고 있었다. 달에 두 번. 꾸준하다고 하기엔 횟수가 적었지만, 스케줄이 몰린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정화 성수.”
“아! 감사합니다.”
“아끼지 말고 몸 아프면 바로바로 마셔요, 알았죠?”
“네.”
간부들이 핫도그를 다 먹어 갈 무렵 재인은 백팩 안에서 묵직한 쇼핑백을 꺼냈다. 치료가 주목적인 성수와 다르게 정화 효과를 극대화한 성수였다. 신화 간부들을 위해 그가 특별하게 제작한 성수였다.
“고맙습니다.”
“저도요! 재인 님. 고맙습니다!”
쇼핑백을 건네받고 꾸벅 인사하는 아이 뒤로 발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처음 봤을 때보다 혈색도 좋아지고 표정도 밝아진 신화 간부들이었다.
‘아쉽네. 다른 애들도 직접 보고 정화해 주면 좋을 텐데.’
하급 신관으로 임명하지 못하는 대신 재인은 다른 방법으로 신화 간부들의 난폭한 기운을 진정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등신대에 정화 기능을 담아 보고, 약초를 배합해서 환약도 만들고 하다 운 좋게 성수에 정화 효능을 극대화해 담는 방법을 알아냈다.
“다른 아이들은 어때요? 잘 지내요? 정화 성수가 부족하진 않고요?”
“잘 지내요. 정화 성수는 충분해요. 한 병씩 마시고도 예비용으로 한 병씩 남겨 뒀어요.”
“그랬어요?”
“네, 정화 성수는 진짜로 이만큼이면 충분해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정화 성수를 만들었으니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신화 간부들한테 저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수십 명이나 더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쁜 사람들. 이렇게 착한 애들한테 어떻게 그런 실험을 할 수 있어.’
직접 정화해 주고 정화 성수도 넉넉히 챙겨 주고 며칠 지난 시기였다. 신화 간부 애들이 연락해 정화 성수를 다른 사람한테 줘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의 몸 상태에 맞춰서 제작한 정화 성수라서 다른 사람한테 쓰긴 힘들 거라는 얘기에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전광판 사건이 어째서 묻혔는지, 김태오 변호사가 무슨 일로 아이들을 도왔는지.
“애들이 방학하면 재인 님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저도요. 저도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그런데요, 재인 님. 팬 미팅하실 생각 없으세요? 준비는 저희가 다 할게요. 재인 님은 몸만 오시면 돼요.”
“맞아요. 저희가 대관도 하고 프로그램도 다 짤게요. 몸만 오세요.”
“몸만 오라니…….”
프러포즈할 때나 할 법한 대사를 하는 아이들에 재인이 뒷말을 흐렸다. 겉으로는 어이없는 척했지만, 거리감이 준 것 같아서 속으로는 아이들의 이런 말장난을 반겼다.
“팬 미팅 해요. 재인 님 제발요.”
“회사에 얘기해 볼게요.”
“진짜요?”
“네.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요새 스케줄이 빡빡해서 시간을 많이 못 낼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두 시간 아니, 한 시간만 내주셔도 충분해요.”
회사에 얘기해 둘 테니, 날짜나 인원 같은 건 최상호와 상의하라는 말을 끝으로 재인이 손을 내밀었다. 정화 스킬을 걸어 줄 시간이었다. 여유롭게 대화하고 어울릴 시간이 있었으면 했지만, 따로 휴일을 빼서 만난 게 아니라서 그건 무리였다.
“으음. 어디 안 좋아요?”
“아니요! 괘, 괜찮아요.”
“무슨 일인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재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상대를 달랬다.
마지막으로 정화 스킬을 건 상대는 촬영장에서 본 신화 간부가 아니라 집에 남아서 기다린다던 친구였다. 낯을 많이 가린다는 친구들의 설명대로 몇 번이나 봤는데도 목소리를 들은 적은 손에 꼽았다.
“어휴. 그냥 말해.”
“……아, 안 돼. 하지 마.”
그런 친구가 답답했는지 박원영이 나섰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그 이상으로 친구를 아끼는 박원영은 나중에 욕먹을 걸 각오하고 사정을 설명했다.
“차영이 유학 가고 싶대요. 공부 잘하거든요. 입학 자격 얻느라 공부 진짜 열심히 했어요.”
“그랬어요?”
“그런데 유학 가면 재인 님 정화 스킬을 못 받잖아요. 성수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반출 불가고요. 정화 성수를 몰래 보내 준다고 했는데, 그건 싫대요.”
“그런…….”
설명을 마친 박원영이 안타까운 얼굴로 차영을 돌아봤다.
친구 등 뒤에 숨어 고개를 푹 숙인 차영의 모습이 썩 애처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