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58)
#58. 독립
연습생들에게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들었는지 물었지만, 정확하게 출처를 대진 못했다.
재인은 계약도 파격적이었고, 데뷔를 비롯해 활동도 다른 신인 배우와 다른 행보를 보여서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설상가상 납치 사건까지 겪어 클로버의 직원들은 대화 주제는 재인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직원들이 떠들 때 주워들은 얘기였다.
‘수군수군 말들이 많더니, 괜한 오해를 불러왔네.’
연습생들은 데뷔조로 뽑히긴 했지만, 그 이후 진행 상황을 전달받지 못했다. 김 실장이 재인의 전담팀을 맡은 후 데뷔부터 데뷔 후까지 총괄할 책임자가 정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노래나 춤을 배워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아마 배역에 필요한 게 아니면 배울 일 없을 거예요. 그런데 데뷔 일정은 잡혔어요?”
“네. 10월이요. 늦어도 11월에는 데뷔할 거라고 하셨는데.”
“반년이요? 이상하네요.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책임자가 정해지지 않다니.”
“실장님이 가끔 보러 와 주시기는 하는데, 아직이래요. 조금 더 기다리고.”
기획사의 업무가 그렇게 엉성하진 않을 텐데 이상했다.
김 실장이나 최상호의 일 처리가 꼼꼼한 건 여러 번 체감했었다. 계약 조건이든 뭐든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율하고, 그가 출연하면 좋을 작품도 깐깐하게 선별했다. 그런 사람들이 연습생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PD님한테 물어본 적 있어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아니요.”
“실장님한테 진행 상황 물어봐 줄까요?”
“아, 아니요.”
눈앞의 연습생들은 많아 봐야 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개중 한 명, 불안해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연습생은 그보다도 훨씬 어려 보였다. 리더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보지 않아도 거기서 거기 일 듯했다.
“연습생 중엔 몇 년이나 클로버에서 준비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으니, 아마 클로버에 온 건 여러분보다 내가 늦을 거예요. 그렇죠?”
“네. 저는 삼 년. 얘랑 얘는 사 년 차예요.”
“몇 달 안 됐지만, 내가 느낀 건 클로버는 소속 연예인이든 직원이든 사람을 아낀다는 거예요. 궁금한 걸 물어봤다고 뭐라고 할 그런 회사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중요한 일이니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재인은 앳된 연습생들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겨우 고등학생 나이인 그들에겐 PD나 김 실장 같은 관리자급 직원을 찾아 질문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니.
“가요. 실장님한테 물어보고, 실장님이 모르시면 본부장님한테 가서 물어보죠.”
“네?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러지 마세요. 저희 때문에 혼나면 어떡해요?”
“호, 혼나요?”
그럴 리가. 자랑은 아니지만, 클로버에서 그를 혼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의견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한 명의 배우나 가수를 띄우기 위해서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엄청나다. 그러나 재인의 경우는 예외였다. 프로필 투어를 돌고 얼마 후부터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빗발쳤다. 결과는 너무 잘생겨서 부담스럽다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노력 대비 결과가 말도 못 하게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영화 촬영을 마치자마자 드라마에 광고, 화보 건이 줄줄이 들어왔다. 계약하고 겨우 육 개월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도 이미 재인의 이름은 업계에 각인된 상태였다.
“클로버에서 저를 혼낼 사람은 아마 없을걸요. 가요.”
“네?”
“본부장님한테 가요. 실장님도 오시라고 할게요.”
“어? 어, 어. 안 되는데.”
재인은 당황한 연습생의 등을 떠밀며 연습실을 나왔다. 연습생들은 삐쩍 마른 겉모습과 다르게 제법 잘 버텼다. 하찬이 크르릉거리면서 위협할 때까지는 말이다.
* * *
“킥! 아직 어려서 그런가, 진짜 순진했지.”
현관에서 물티슈로 하찬의 발을 닦이는 재인은 참지 못하게 키득거렸다. 클로버에 들렀다가 만난 연습생들 때문이었다. 등 떠밀려 대면한 본부장한테 물어보지도 못하고 버벅거리는 걸 보다 못해 재인이 나섰었다.
‘본부장님 저 아이돌 데뷔해요?’
‘네?’
‘제가 데뷔조에 합류할 거라는 소문이 돈다는데요.’
‘네에?’
회사 안에 도는 루머로 서두를 꺼낸 재인은 천천히 데뷔조의 불안함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듯 입을 쩍 벌렸던 본부장은 데뷔조가 불안해한다는 얘기에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본부장한테 들은 얘기에 연습생들의 고개가 땅을 뚫을 정도로 내려갔다. 반대로 표정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밝아졌다.
연습생들은 소문에 휘둘릴 필요 없었다. 그냥 사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그게 그리 쉽진 않겠지만.
‘4대 기획사에 있던 팀장을 스카우트했다니 걱정할 필요 없겠네.’
데뷔조의 데뷔 앨범에 들어갈 곡들은 얼추 추려진 상태였다. 이상한 콘셉트가 난무했던 콘셉트 기획도 두 가지로 정리되었고, 곧 전체 기획 회의도 열 예정이었다. 그곳에는 데뷔조도 참석할 예정이었고.
가장 의문이었던 데뷔조의 책임자는 이미 뽑은 상태였다. 다만 휴식이 필요하다는 얘기에 클로버로 출근하는 게 늦춰졌을 뿐이었다.
“크릉.”
“크릉은 무슨 크릉이야. 다른 발 내, 얼른. 닦아야 들어가지.”
“컹.”
“성질내지 말고.”
하찬이 바닥을 더럽히고 다니면 투구게가 몸살을 앓는다. 이곳저곳 쫓아다니면서 더러워진 걸 치우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작아져도 발은 닦아야지.”
“카오옹.”
작아져서 안 닦으려고 잔머리를 굴려도 소용없었다. 온종일 회사랑 공원을 휘젓고 다녔으니 반드시 닦아야 했다.
“어후. 좁아.”
“먀앙.”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짜증 부리는 하찬이를 달래서 이 층으로 데려왔다. 이 층은 그사이 물건이 더 늘어 있었다. 재현이 집에 들락날락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 층 거실에 장식이 늘어났다. 길드 숙소에도 물건이 많더니, 갑옷이나 무기 수집이 취미였다.
“이제 진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일 층은 부모님 공간이라 그런지 나름 괜찮았지만, 이 층은 엉망이었다. 사실 일 층도 나름 괜찮다는 거지 아주 좋다는 건 아니었다. 공기 정화 식물 외에도 여러 가지를 가져다 놓아서 복잡했다.
‘하찬이 장난감이랑 캣 타워도 한몫하긴 했지.’
집 자체도 지어진 지 오래되어서 답답한 구조에 장식도 촌스러웠다. 무엇보다 하찬이가 늑대 형태로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 사실은 작은 고양이 형태일 때 놀아줄 공간도 부족했다.
‘독립해야 할 것 같은데…….’
계약금 받은 것도 그대로 남아 있고, 회사에서 정산받은 것도 거의 그대로 있었다. 거기에 금지 약물 신고 포상금도 꽤 받았다. 아직 소송이 끝나진 않아서 피해 보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 금액도 적지 않았다.
“우리 하찬이 반려 몬스터 등록할 때는 턱도 없이 부족했는데 말이지.”
“먀앙.”
기천을 훌쩍 넘기는 반려 몬스터 등록비에 동생한테 빌려서 등록해야 했는데, 지금은 은행의 도움을 받으면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에 집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마음 같아선 보안도 좋고 회사도 가까운 곳으로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무리였다. 그냥 집은 조금 좁더라도 하찬이 늑대형으로 변해서 놀게 마당이 넓은 곳이었으면 싶었다.
“너도 마당 있는 집이 좋지?”
“먀앙.”
재인은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집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 * *
-우르릉! 쾅! 쾅!
천둥이 치는 것처럼 요란했지만, 하늘은 전에 없이 맑았다. 화창한 봄 하늘에는 비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느 쪽 철거하면 돼요?”
“이쪽 부엌 바닥을 들어내시면 됩니다.”
“네. 김나은.”
“알았어. 얼릴게.”
소음의 주인은 재인의 집 리모델링에 도움을 주겠다면서 찾아온 재현과 김나은이었다. 혼자서 웬만한 인부 열 명 몫을 하는 두 사람이 나서자, 못 해도 며칠은 걸릴 것 같던 철거도 금방이었다.
‘길드랑 가까운 곳으로 집을 얻으라고 성화를 부리더니, 나쁘지 않네.’
독립 얘기를 꺼내자마자 길드 건물 근처로 집을 알아보라며 난리였다. 예산상 어차피 외곽이나 경기도로 빠져야 해서 동의하자마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KH 길드에서 인근 용지를 매입하기 위해 조사해 둔 자료가 도움이 많이 됐다.
“KH 길드 건물 보수 공사 외에 리모델링 의뢰는 처음이지?”
“처음이죠. 연락 왔을 때 또 어느 건물을 부수셨나 했는데, 리모델링 의뢰라고 하셔서 놀랐다니까요.”
“나도. 그나저나 속도 완전 미쳤네.”
“에이. 우리도 빠르잖아요.”
“그건 그렇지.”
리모델링을 맡은 업체에도 각성자가 여럿 있었다. KH 길드처럼 강력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들은 아니지만, 자재를 손쉽게 옮길 염력 각성자도 있었고 리모델링 예측 영상을 현장에 투사 가능한 환영 각성자도 있었다. 다른 업체보다 비싸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있었다.
인테리어 업체 사람들의 곁에서 작업을 구경하던 재인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벽과 바닥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각성자의 능력은 언제 봐도 믿기지 않는 힘과 속도였다.
‘그런데 너무 시끄럽다.’
단독 주택 단지라 집들 간격이 떨어져 있었지만, 주변에 퍼지는 소음이 만만치 않았다. 김나은이 얼리고 재현이 부숴서 트럭에 싣고 있었는데, 시멘트 벽이 부서지는 소리나 트럭에 실을 때 나는 금속 마찰음 등에 귀가 먹먹했다.
“옆집에 양해해 달라고 선물이라도 돌려야 할까요?”
“……인근 주택들은 아까 저희 대표님이 음료수 들고 가셔서 부탁하셨는데요.”
“그래도 너무 시끄러운 것 같아서요. 주말인데.”
“두 분 속도로 보면 금방 끝날 것 같긴 하지만, 마음에 걸리시면 같이 한 번 더 돌아요.”
음료수는 이미 돌렸다는 얘기에 재인은 다른 물건을 챙겨서 인근 주택을 방문하기로 했다.
평일에 학교와 직장으로 사람들이 집을 비웠을 때 공사를 하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재인도 재현도 뺄 수 있는 시간이 주말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이웃에 민폐를 끼치게 되었다.
재인이 마트에서 이웃에게 선물할 물건을 고르는 사이, 걱정했던 대로 소음 때문에 화를 내는 이웃이 있었다.
“시끄러워 죽겠네. 엄마, 저 사람들 언제 끝난대? 나 월요일부터 중간고사라고!”
“하루 이틀만 시끄러울 거라고 했어.”
“짜증 나. 왜 주말에 공사를 하고 난리야. 나 학교 가고 나서나 하지.”
“공사할 시간이 주말밖에 없다고, 아까 와서 사과하고 갔잖아. 좀 참아.”
“중간고사라니까!”
인테리어 업체 담당이라는 사람이 와서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꽤 시끄러웠다. 동네 치안이나 미관 면에서 비어 있던 집에 주인이 생기는 건 반가웠지만, 하필이면 공사가 아들의 시험 기간과 맞물린 게 공교로웠다.
“알았어. 엄마가 가서 조용히 해 달라고 할게.”
“어.”
평소에 하랄 때 공부할 것이지 시험이 코앞에 닥치고 나서야 공부한다고 난리였다. 이사 올 사람들하고 인사도 나누기 전에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옆집 아줌마가 될 듯했으나 어쩌겠는가. 아드님이 시험 공부를 하신다는데 들어 줄밖에.
-딩동.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들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나가려니 신발도 안 신겨졌다. 억지로 신발에 발을 구겨 넣었을 때였다. 벨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공사 중인 옆집에서 왔어요.”
“네, 잠깐만요.”
대충 나와 있던 운동화를 구겨 신고 나가려던 이웃 주민이 급하게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다듬었다. 인터폰을 통해서 들리는 목소리가 그냥 나갔다가는 이불을 차게 될 것 같은 듣기 좋은 남성의 목소리여서였다.
“안녕하세요. 옆집에서 왔어요.”
“헙!”
“공사 때문에 시끄러우시죠?”
“그게, 시끄럽긴 한데…….”
시끄럽긴 한데, 만약 이런 사람이 입주하는 거라면 참고도 남았다.
“제가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서요. 오늘 꼭 철거를 진행해야 해서요. 죄송해요.”
“아니, 바쁘면 주말에도 공사하고 할 수 있는 거지. 그게 뭐가 죄송해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 약소하지만…….”
“호호호. 이런 걸 또 뭐 하러 챙겼어요. 이웃 간에 당연한 일인데.”
“감사합니다.”
주말까지 집 공사하느라 힘들 텐데 뭐 하러 이런 것까지 챙겨 오냐, 내가 더 고맙다. 진심 가득한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이웃은 힘겹게 참아 넘겼다. 대신 공사 조심해서 하고 어려운 일 있으면 찾아오라는 말을 건넸다.
“엄마. 옆집이야? 시끄럽다고 했어?”
“아들.”
“어.”
“들어가. 가서 공부해.”
“어?”
좋은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재인을 배웅한 이웃은 쪼르르 뛰쳐나온 아들을 방으로 밀어 넣었다.
“아들 네가 참아. 네가 참는 게 맞아.”
“뭐? 나 시험 기간이라니까.”
“얼굴이, 크흠. 예의가 된 사람이더라. 아주 성실하고 참하고 눈이 맑, 크흠. 들어가. 가서 공부해. 엄마가 치킨 시켜 줄게.”
“알았어.”
얼굴이 참 예의 발랐다. 어찌나 바람직하던지 침침하던 눈이 확 밝아진 느낌이었다. 그녀는 어서 옆집의 공사가 끝나고 예의 바른 청년이 이사 오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