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59)
#59. 홍보 인터뷰
“반갑습니다, 무비무비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올봄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는 영화 >조선 탐정 한설록>의 김남윤 감독님, 배우 김현민 씨, 이주환 씨, 이재인 씨 모시겠습니다.”
MC가 호명하자 김현민을 필두로 재인 일행은 성큼성큼 세트로 들어갔다. 대기실에선 지쳐서 축 늘어져 있던 일행은 카메라가 돌자 생기 도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인터뷰가 오늘 홍보의 마지막 스케줄인 걸 원동력으로 삼아 기운을 내는 모양이었다.
인터뷰의 시작은 지난 며칠간 입에 가시가 돋을 만큼 여러 번 뱉었던 자기소개부터였다.
“영화 >조선 탐정 한설록>에서 조이선 역으로 처음 인사드리게 된 이재인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김현민, 이주환, 재인, 감독 순으로 이어진 소개가 끝난 후에는 영화에 관해 얘기했다.
>조선 탐정 한설록>은 코믹 추리 액션 사극이라고 장르를 설명하고, 탐정과 조수, 조력자 간의 케미를 잘 그려 내고 싶었다는 얘기 등을 했다.
전부 며칠간 열 손가락이 넘는 프로그램에 홍보를 위해 출연하면서 수도 없이 반복했던 내용이었다. 내심은 되풀이되는 홍보에 질릴 정도였으나 말하는 감독도 곁에서 호응하는 배우도 흥미롭다는 듯 설명했다.
“각자의 캐릭터 소개를 안 들어 볼 수가 없지요. 캐릭터 소개 멋지게 부탁드려요.”
“네. 제가 맡은 조이선이라는 역할은요. 세상 물정은 모르지만, 풍류는 잘 아는 머리 회전 빠른 도련님이에요. 한설록과는 과거 도움받은 은혜를 갚으려다 엮여서 사건에 휘말리고요.”
간단한 영화와 역할 소개가 지난 후론 평범한 질문이 이어졌다. 촬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냐. 오랜만에 영화를 찍게 됐는데, 촬영은 힘들지 않았나, 등등. 질문의 대답은 대부분 주연인 김현민이 했지만, 간간이 재인도 맞장구를 치거나 추임새를 넣어야 했다.
“영화 촬영 전에 준비한 게 있다면?”
“액션이 많은 역할이라서 촬영 전에 액션 스쿨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벌크업도 필요해서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어요.”
“전 반대로 한설록이 캐릭터 성격과 다르게 강퍅한 인상이라 체중 감량을 해야 했습니다.”
“재인 씨는요?”
“촬영 전에 준비한 거요? 마스크 팩?”
MC의 질문을 재인이 농담으로 받았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턱을 쓸면서 능글맞은 조이선의 캐릭터를 살짝 선보였다.
“하하하. 마스크 팩이요? 마스크 팩 따위 전혀 필요 없어 보이시는데요.”
“사실 마스크 팩은 농담이고요. 영화 촬영 직전에 합류하는 바람에 대본 외우기 바빠서 준비고 뭐고 할 시간이 없었어요. 눈 떠서 잠들기 전까지 대본만 붙들고 있었어요.”
“맞아요. 재인 씨가 촬영 한 달 전에 합류해서 촬영하는 동안 여러 가지를 배우러 다니느라 고생했어요.”
“아니에요. 고생은 다 같이 했죠.”
“아니야. 재인 씨 고생 많이 했어. 이번이 첫 영화인데 진짜 잘했어.”
“보기 좋습니다. 진짜 훈훈하네요. 영화 속에서 세 분이 어떻게 나올지 지금 모습만 봐도 너무 기대됩니다.”
MC는 양옆에서 재인을 챙기는 두 주역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미남 셋이 다정하게 마주 웃는 걸 근처에서 보자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영화 내용이나 장르와 상관없이 셋을 보기 위해서라도 영화관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김남윤 감독님과 세 분 오늘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영화는 이런 점이 강점이다. 이것 때문에라도 꼭 봐야 한다는 점을 소개해 주세요.”
“네. 우리 영화는 얘가 나옵니다.”
“아!”
“크흐흠. 맞습니다. 우리 영화에는 이분, 이재인 씨가 나옵니다. 그게 강점입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했다. 우리 영화에는 이런 미남이 나온다. 이주환이 재인의 얼굴 밑에 손을 대고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재인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연출을 맡은 감독까지 나서서 재인의 출연이 강점이라고 하는 탓에 부정도 못 했다.
그렇게 인터뷰는 이주환의 행동에 호들갑스럽게 ‘맞다, 맞다’ 동조하는 MC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끝났다.
“진짜로 재인이가 출연한 게 강점이지. 다들 열심히 하고 잘 찍었지만, 재인이는 우리 영화가 처음 찍은 영화잖아. 아마 나중 되면 두고두고 회자 될걸? 이재인 데뷔작이라고.”
“그렇게 될 거야. 영화 촬영하는 중에도 재인 씨 연기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였었어. 시간 지나면 분명 데뷔작이라고 많이 언급할 거야.”
“어휴, 그만 하세요. 민망해서 얼굴 빨개질 것 같아요.”
“킥. 민망할 게 뭐 있어. 다 사실인데.”
“아이, 진짜.”
분장실로 돌아가는 동안 이주환은 좀전의 인터뷰에서 한 행동에 관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는 진심으로 재인이 영화에 출연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영화 내외적으로 도움이 되었고, 백지나 다름없는 신인 배우와 하는 촬영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촬영하는 내내 묘하게 연기하기 편해서였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같이 촬영하고 싶었다.
“그건 그렇고. 독립했다며? 어때 혼자 사는 건?”
“혼자……. 괜찮은 것 같아요. 이웃분들이 신경을 많이 써 주세요. 동생네 길드도 가까워서 자주 볼 수 있고요.”
“홍보 끝나면 집들이 한번 해. 필요한 거 있음 미리 말하고.”
“자리 한 번 만들게요. 그런데 오실 때는 몸만 오세요. 어지간한 건 집에 다 있어요.”
독립하긴 했지만, 혼자 하는 생활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길드와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하더니, 던전 공략할 때를 제외하곤 동생이 매일 들렀다. 그뿐 아니라 KH 길드원들도 마치 순찰하는 것처럼 집 인근을 자주 지나다녔다. 덕분에 동네가 안전해졌다고 이웃 주민들 칭찬이 자자했다.
“알았어. 그럼 날짜 정해서 알려 줘. 곧 드라마 들어간다며? 나랑 현민이는 좀 쉬기로 했거든. 그전에 보자.”
“네, 그렇게 해요.”
“드라마 분위기 어때?”
“어…….”
“왜?”
“그게요.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왜요? 감독이 누군데요?”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대화하던 일행의 표정이 굳었다. 재인의 차기작 >여우비> 준비 현황이 별로 좋지 않은 듯해서였다. 김현민과 이주환은 출연자들이 누군지 헤아렸고, 감독은 당장에라도 >여우비> 감독한테 전화를 걸 기세였다.
“아뇨. 감독님은 잘해 주세요. 작가님도요. 주하성 선배님이랑 한규리 선배님도 마찬가지이시고요.”
“그 둘이라면 걱정 없지. 그럼 뭐가 이상한데?”
“드라마에 최태원 선배님도 같이 출연하시거든요.”
“아! 최태원이. 걔가 거기 나와?”
최태원의 이름이 재인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세 사람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최태원의 안 좋은 인성은 좁은 업계에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세 명도 그런 소문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걔가 뭐라고 했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최태원 선배님 매니저가…….”
“이상하죠?”
“어? 네.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뭐야? 무슨 얘기야?”
김현민이나 이주환이나 최태원의 소문을 익히 아는 모습이었다. 다만 김현민의 경우에는 재인과 비슷한 걸 느낀 적이 있는지, 매니저에 관해 말을 꺼내기 무섭게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좀처럼 남의 대화에 끼어드는 법이 없었는데, 아는 게 있는지 이주환과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기서 말하긴 그렇고. 이 뒤로 스케줄 없지요?”
“네, 없어요.”
“나도.”
“나도 없는데요.”
“그럼 간단하게 뭐라도 먹고 가지요.”
규모 작은 케이블 방송사라도 방송사였다. 늦은 시간임에도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민감한 얘기를 하기엔 장소가 좋지 못했다. 일행은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 * *
재인은 김현민한테 들은 얘기를 떠올리며 주의해서 최태원과 매니저를 살폈다. 고사장 한쪽 냉랭한 얼굴인 최태원 옆에서 매니저가 끊임없이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냥 보면 평범한 배우랑 매니저로 보이는데.’
배우를 돕는 게 일인 매니저가 윽박지르면서 협박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김현민이 직접 봤다고 하니 믿지 않기도 힘들었다.
‘예전에 특별 출연으로 드라마를 촬영하러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매니저가 짜증을 부리면서 큰 소리를 내더라고요.’
‘그때도 최태원 씨가 이상한 요구를 해서 촬영장에 불편한 기류가 돌고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요구들도 최태원 씨가 했던 게 아니라, 매니저가 한 거 같아요.’
‘난 신인 배우를 질투해서 군기 잡는다는 소리 들었는데. 그래서 이름 듣고 재인이한테도 본성을 드러냈나 했지.’
김현민은 처음부터 매니저에 대한 느낌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예민한 감각을 각성한 그는 매니저와 인사를 나눴을 때 물밑이 보이지 않는 썩은 늪지 같은 질척하고 불쾌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주의해서 지켜보다 최태원을 윽박지르는 장면을 봤다고.
김현민과 달리 이주환은 여러 곳에서 들은 소문을 들려주었다. 전달 사항을 알리러 오는 스태프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 달라, 분장실에는 고가의 특정 브랜드 음료와 다과만 준비해 달라, 등등. 까탈스럽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데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시한다는 얘기였다.
‘그냥 느릿한 사람이던데. 하찬이가 경계하지 않는 걸 보면 적의도 없어 보이고.’
하찬이와 같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능력에 감탄하곤 한다. 오지수 같은 광신에 사로잡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예외였지만, 그 외에 적의나 능력을 숨긴 상대를 칼같이 찾아냈다. 상대의 힘의 크기도 금방 알아차리고 경계도 확실히 했다.
최태원은 하찬의 경계 대상에 속하지 못했다. 반면 최태원의 매니저는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놓치지 않고 경계했다.
“축하해요, 재인 씨. 영화 잘 나왔더라고요.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우리 드라마도 잘해 봐요.”
“네, 열심히 할게요.”
>여우비>의 고사가 있는 날. 주연인 주하성이 영화의 흥행을 언급하면서 재인에게 말을 걸었다. 주변을 잘 챙긴다고 하더니, 듣던 대로 일찍 와서 출연진과 촬영진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최근 개봉 4주 차에 접어든 영화 >조선 탐정 한설록>은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박스 오피스는 해외 영화제에 수시로 초청받는 감독의 영화가 1위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관객 수는 그렇게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확보한 스크린 수에서 차이가 나니, 곧 벌어질 테지만…….’
들어간 자본과 배급사의 급부터 크게 차이 나는 상황이라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선방하는 거라는 평이었다.
재인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시기가 다르고 주연이 다르긴 했지만, 원래 세상에서도 몇 년간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가 상대였다. 지금처럼 2위 자리를 확고히 하는 것도 대단했다.
-삐!
-10분 뒤 행사 시작하겠습니다. 화장실 다녀오실 분 미리미리 다녀오세요. 절하다가 일 치르시면 메이킹 필름에 다 담깁니다.
농담 섞인 조연출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 고사상이 차려진 장소로 모였다. 최근 고사는 미신이라고, 아무 소용 없다고 생략하는 추세였는데 >여우비>의 감독은 아니었다.
‘고사 안 치렀다가 안 치러서 사고 났다고 하는 소리 듣는 것보단 마음 편하게 치르는 게 나아요.’
마지막 대본 리딩을 진행할 때 고사 참석 여부를 물으러 와서 감독이 한 얘기였다. 재인은 고사에 관해 별생각 없었지만, 치러서 마음이 편해지고, 안심된다면 치르자는 주의였다.
“여기요. 봉투 받으세요, 재인 씨. 하찬이 리드 줄은 저 주시고요.”
“네, 고마워요.”
총괄 감독, 작가, 주연 배우 등이 차례로 절을 올리고 봉투를 돼지머리 입에 물렸다. 팀장급 촬영진들의 절이 끝나고 재인의 차례가 돌아오기 직전이었다.
“뭐야? 돌아갔다고? 언제?”
“좀 전에. 매니저가, 박도형 씨가 와서 얘기하고 갔어. 고사 참석했으니 됐지, 무슨 절까지 하냐면서 간다고 하던데.”
“아니,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 기껏 왔으면 절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가지.”
“그러니까 말이야. 이런 날까지 참…….”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귀에 담던 재인이 고개를 돌렸다. 최태원과 매니저가 있던 장소를 향해서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상대가 최태원 같아서였다.
‘없잖아. 설마 돌아간 거야?’
애초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눈에 띄지 않았을 텐데, 대체 왜 일부러 고사장 한편에 서 있다가 돌아갔는지 이해가 안 됐다.
“쯧쯧쯧. 사람이 경위가 없구먼.”
최태원의 아버지 역할로 나오는 중견 배우의 혀 차는 소리가 상당히 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