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60)
#60. 여우비 촬영 시작
최태원이 분위기를 흐리든 말든 고사는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첫 촬영이 다가왔다.
>여우비>의 첫 촬영은 주연 배우 두 사람의 촬영이었다. 여우 숲에 잘못 들어온 여자 주인공을 하랑이 호기심에 훔쳐보다 구해 주는 장면이었다.
‘으음. 평범하게 움직이는데?’
여우 수인이라는 특징에 맞는 강아지 같은 동작을 할 줄 알았는데, 인간 모습이라는 설정 중일 때는 보통 인간과 똑같이 행동했다.
‘아! 이래서 현대물이 찍기 힘들다는 거구나.’
소형 몬스터 무리한테 둘러싸인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서 여우의 능력을 쓰는 장면이었다. 하랑의 눈동자에 CG를 하나하나 다 입혀야 하고, 몬스터 역시 CG로 만들어 내야 했다.
“오케이, 컷!”
감독의 시원한 오케이 소리가 촬영장에 크게 울렸다. 첫 신 촬영을 한 번에 해낸 배우도 세트를 준비해 준 스태프도 기분 좋게 웃었다.
“재인 씨. 계속 지켜보실 겁니까?”
“아니요. 돌아가야죠.”
고사를 지내는 날일 뿐 재인의 촬영이 있는 날은 아니었다. 첫 촬영까지 현장에서 지켜봤으니, 예의를 갖출 만큼 갖추었다. 돌아가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나중에 이 장면 어떻게 편집되나 봐야겠다. 어떻게 나오려나.’
좀 전은 비록 주연 배우들이 연기하긴 했지만, CG 소스를 따는 것에 더 가까운 촬영이었다. 드라마 첫 촬영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찍어 둔 것으로, 아마 같은 장면을 나중에 크로마키 배경을 두고 촬영할 것이다. 그때 어떻게 나올지 기대됐다.
“가요.”
* * *
밴에서 내린 재인은 집 앞에 재현의 차가 주차된 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오늘 저녁 메뉴도 해산물이 될 것 같아서였다.
던전 공략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건 반가웠지만, 육식파인 그는 공략이 끝나면 매콤한 해산물 요리를 먹는 동생의 식습관이 슬쩍 부담스러웠다.
“형, 왔어? 들어와. 저녁 시켜 놨어.”
“뭐 시켰어?”
“꽃게탕하고 홍합 떡볶이.”
“떡볶이? 치즈는?”
“추가했어. 빨리 들어와.”
“어.”
매니저 최상호와 스케줄을 공유하는 동생이라서 그런지 매번 귀가 시간을 칼 같이 맞췄다. 덕분에 편하게 먹고 있긴 해도 가끔은 이대로 둬도 괜찮은가 싶었다.
“형 촬영은 언제부터야?”
“모레부터.”
“내일은?”
“내일은 촬영 없어.”
“그럼 집에 투구게 데리러 가자.”
홍합 껍데기를 열심히 골라내고 매콤한 떡볶이를 열심히 먹어 치우고 있을 때였다. 그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꽃게와 새우를 해치우던 재현이 일정을 물어봤다.
독립하면서 아쉬웠던 게 바닥 청소를 도맡은 투구게를 두고 와야 하는 점이었다. 차원 이동하고 처음 마주한 몬스터이라서 의미가 남다르기도 했고, 저에게 무한하게 호의적인 녀석이라 섭섭했었다.
“아까 어머니랑 통화했는데, 로봇 청소기 하나 사다 두고 데려가래.”
“로봇 청소기?”
“어, 박우성이 광고하는 그거 사 달래. 그거 사다 놓고 투구게 불쌍하니까 데려가라던데.”
“알았어.”
재인을 이상하게 잘 따르던 투구게는 그가 독립한 후로 눈에 띄게 행동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매일 현관 앞은 광이 나게 닦는 게, 그냥 봐도 누군가의 귀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고. 그 누군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잘됐네. 은근 하찬이랑도 잘 놀아 줬는데.’
이번에 데려오면 투구게 집으로 거실에 커다란 수조를 설치해 줄 생각이었다. 부모님 집에 있는 수조는 모래가 너무 얕게 깔려서 숨는 정도만 가능했다. 이번에는 모래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전에 네가 정신을 조종하는 각성자도 있다고 했었지?”
“했었지. 세뇌 능력이나 정신 조작 능력 각성한 놈들. 그런 인간들은 진짜 던전에 처박아야 하는데.”
“그렇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촬영장에서 이상한 사람이라도 봤어?”
“그게…….”
사실 본인도 순간 세뇌 능력 각성자 얘기가 왜 떠올랐는지는 잘 몰랐다. 그냥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갑자기 들어서 말을 꺼냈을 뿐이었다. 이왕 얘기를 꺼냈으니, 그가 이상하게 본 점들을 설명하기로 했다.
꽤 잘나가는 배우가 매니저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이상하다, 일부러 주변 사람들로부터 최태원을 고립시키려는 것 같다, 등등. 그가 직접 본 것과 주변에서 들은 일을 얘기했다.
“……형 많이 변한 거 알아?”
“응?”
설명을 다 들은 재현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미등록 각성 능력자의 소행이 맞는지 따져 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그런가?”
“어, 많이 바뀌었어. 좋아졌으니까, 고민할 필욘 없고.”
“응.”
바람직한 변화였다. 솔직히 잘생긴 것 하나로 배우가 된 경우라서 적응 못 할 줄 알았는데, 일도 잘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관계도 나쁜 것 같지 않았다.
선하고 온유한 성품이긴 해도 주변에 별로 관심 없어서 그걸 드러내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배우가 되고 나선 봉사 활동도 하고 곤란에 빠진 누군가를 나서서 도우려고 하고 있었다. 썩 긍정적인 변화였다.
“형 말대로 의심스럽긴 하네. 배우도 인맥이 중요할 텐데.”
“중요하지. 감독이나 작가랑 관계가 좋아야, 다시 같이 일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특별한 이유 없이 배우를 고립시킬 이유가 없는데, 일부러 그러는 건 확실히 이상하네.”
“주변에 그런 능력자가 있는지 알아볼 방법이 있을까?”
“정신계 능력 악용은 예민한 문제라 의심 정황만으로도 키퍼들이 나서긴 하거든. 그래도 단순한 말 몇 마디로는 안 움직일 거야.”
지금은 의심 정황을 발견했다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미등록 각성자가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매니저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도 재인을 비롯해 몇 명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걱정된다면 내가 길드에서 아이템 빌려 올게. 전에 형 주려고 했던 거 알지? 그거랑 비슷한 거로.”
“으음. 아니, 그건 나중에. 지금은 실제로 정신계 각성자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서 말이지. 무엇보다 액세서리 종류를 빌려 와도 건넬 수나 있을까 싶어.”
“알았어. 그럼 지켜보다 혹시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싶으면 바로 신고해. 신고 번호는 알지?”
“알아.”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형 촬영에 지장 없는 정도로만 하라는 말을 끝으로 재현이 식사 자리를 정리했다.
* * *
>조선 탐정 한설록>은 여전히 뒷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덕분에 재인은 종종 TV에서 김현민과 이주환을 발견하곤 했다. 차기작은 시간을 두고 들어갈 거라더니, 남는 시간을 영화 홍보에 투자하려는 것 같았다. 이곳저곳에 출연해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재인도 여유만 있다면 막바지 홍보에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여건상 그러기 쉽지 않았다. >여우비>의 촬영이 시작된 터라 이쪽 촬영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아직은 벅찼다.
‘누구처럼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할 만한 깜냥은 못 되니까.’
중견 배우 중에는 한 번에 두세 개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더러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는 배우도 있었지만, 재인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단역으로 이삼 회차 출연한 작품을 빼면 이제 두 번째 작품을 찍는 그는, 촬영에 들어간 한 작품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도 부족했다.
“크으! 내가 입혀 놓은 거지만 진짜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요?”
“잘 어울린다니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지, 지금 이대로 무대 위에 서도 괜찮을 정도야.”
“이런 스타일에 익숙해지기엔 아직 무리예요.”
“한동안 입어야 하니 금방 익숙해질 거야.”
가슴이 깊게 파인 검은색 셔츠에 검은색 레더 재킷, 사방으로 벋친 듯한 머리카락에 화려한 귀걸이. 짙은 남색 슬랙스에 구두. 거칠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은 재인의 평소 스타일과 거리가 있었다.
“어울리긴 어울리는데 아쉽네.”
“뭐가요?”
“스타일이 조금 나이가 있게 보이는 거.”
“그건 어쩔 수 없죠.”
김신우는 실제 나이보다 들어 보이게 메이크업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맡은 역할이 이십 대 후반이라는 설정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곤 해도 화려한 미모를 가리는 것 같아 속이 쓰렸다.
그런 스타일리스트의 마음과 다르게 재인은 이번 의상이 나쁘진 않았다. 지나치게 화려하긴 하지만, 한겨울에 한복을 입고 찍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휘유. 잘 어울린다. 엄청 세 보여.”
“하, 하하.”
“어서 와. 잘 쉬었어?”
“네. 선배님은요? 어제, 그제 촬영 괜찮으셨어요?”
분장을 마친 재인을 반겨 준 것은 거지꼴을 한 주연 주하성이었다. 그는 어딘가의 헌 옷 수거함이라도 털어서 입었는지, 품도 맞지 않는 상의에 종아리까지 겨우 오는 기장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촬영은 괜찮았어. 그런데 네가 선배님이라고 부르니까, 나이 차이 엄청나게 나는 거 같다. 선배님 말고 그냥 하성이 형이라고 불러.”
“네, 하성이 형.”
“헙! 재인이 네가 스물넷이라고 했지?”
“네.”
“띠동갑이네, 띠동갑.”
주하성이 슬쩍 가슴을 두드렸다. 왠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듯해서였다. 띠동갑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어려 보이는 재인한테 삼촌이 아니고 형이라고 불리니 조금 찔렸다.
‘나도 동안이란 소리 꽤 많이 들었는데, 얘는 진짜 넘사벽이다.’
희고 깨끗한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 덕에 소년미가 느껴진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이젠 그런 평을 듣긴 그른 것 같았다.
‘나만 그럴 것 같진 않네. 사진이든 영상이든 얘랑 찍는 사람은 다 그렇게 느낄 거 같아.’
뭐가 어찌 되었든 꽤 괜찮은 친구와 촬영하게 된 것 같아 반가웠다. 앞으로 반년 가까이 볼 사이인데, 성격이 안 맞으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한 명으로 족했다.
“연기에만 집중해 주면 좋을 텐데.”
“최태원 선배님이요?”
“아? 아아. 소문이 많긴 해도 연기는 잘하니까. 이번 작품에선 문제 일으키지 않고 연기에만 집중해 줬으면 해서.”
“문제 일으킬 성격은 아니시던데요.”
“그래?”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일어난다면 그 이상한 매니저가 일으키겠지, 최태원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최태원은 이미 촬영장에서 고립무원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최태원이 먼저 인사를 하지도 않지만, 그를 봐도 누구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가 있는 장소는 마치 폴리스 라인이라도 쳐 둔 것처럼 사람들이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저쪽에 있는 배우. 오늘 네 로드 매니저 역할이지?”
“네. 저 태우고 가다가 차 뺏기고 걸어오는 역할이에요.”
“가자. 인사해야지.”
“네.”
주하성이 인사를 하러 가자는 배우는 귀국한 재인을 픽업하는 역할을 맡은 단역 배우였다. 출연은 오늘 차에서 쫓겨나는 장면과 공항에서 재인을 마중하는 장면뿐이었지만, 짧게라도 호흡을 맞출 배우였다. 미리 인사도 하고 파이팅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사도 맞춰 보고 하는 사이 촬영할 시간이 되었다.
-레디! 액션!
촬영의 시작을 알리는 감독의 호쾌한 액션 소리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촬영장에 울렸다.
-쿨럭!
한쪽의 차 문이 전부 열린 차의 뒷좌석에 앉아 생수를 마시던 재인이 물을 그대로 뱉어 냈다. 차창 밖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 보여서였다.
“쟤, 쟤, 쟤가 왜 여깄어?”
“누구 말씀이세요?”
“쟤! 폭탄 맞은 머리에 꼬질꼬질한 셔츠 입은 쟤.”
“저기 구부정하게 걷는 사람이요?”
“그래. 비루먹은 똥개 같은 꼬라지로 쏘다니는 걔. 차 세워.”
“네.”
급정거하는 바람에 반동으로 앞으로 쏠릴 뻔한 재인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한 대 치고 싶다는, 성질난다는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는 힘겹게 로드 매니저한테서 고개를 돌렸다.
본래 성격이라면 운전을 개떡같이 한 로드 매니저를 한 대 쥐어박고도 남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야! 여우 새끼!”
벌컥 차 문을 연 재인이 긴 다리를 뻗으며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컷! 카메라 위치 바꿔서 한 번 더 갈게요.
한동안 이어질 드라마 촬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