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57)
#57. 뜬소문
편하게 봐도 된다는 말대로 영화는 최종본에 맞게 흠잡을 곳이 없는 상태였다. 특수 효과도 잘 들어갔고, 음악이나 효과음도 적재적소에 알맞게 들어가 있었다.
‘직업이 되고 나니 영화를 편하게 보기 어렵구나.’
하하 호호 웃음이 끊기지 않는 코믹한 요소가 많은 영화인데도, 재인도 그렇고 옆자리의 김현민도 웃으면서 보진 못했다. 대신 엄청나게 집중하면서 한 장면 한 장면 디테일하게 분석하면서 봤다.
자신이라면 저런 상황에서 치는 대사에 어떤 감정을 담을지, 대본에서 봤던 복잡한 심경을 어떤 연기로 표현했는지 등을 분석했다.
또 저 장면에선 조금 더 리얼하게 구르는 게 낫지 않았나, 저 부분은 감정을 절제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과 후회를 곱씹었다.
‘취미가 일이 된 후 흥미를 잃지 않으려면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더니.’
영화를 재미로 보는 게 아닌 일로 여기고 보니 흘러가는 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단순한 시청자로, 관객으로 영화를 볼 때와 달랐다. 보고 즐기다 마음에 안 들면 채널을 돌리던 입장에서 하나하나 분석하듯이 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나중에 경력이 쌓이면 덤덤하게 보면서 즐기려나?’
그렇진 않을 것 같았다. 매번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든, 비슷한 배역을 계속 연기하든, 모니터링하고 대중에 선보이는 일이 쉬워질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연기를 시작한 게, 배우가 된 게 나쁘진 않았다.
‘계기야 어쨌든 이제는 배우니까.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지.’
연기에 특별한 뜻이 있어서 배우가 된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예상보다 체질에 맞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재인이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건 여전히 불편하지만,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건 은근히 재밌었다. 특히 자신과 완전히 다른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배역을 연기하는 건 인식의 폭이나 시선이 넓어지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가능하면 앞으로도 자신과 다른 다양한 역할을 맡고 싶었다.
“어떻게들 보셨어요?”
“잘 봤어요.”
“재밌었어요.”
“좋았어요.”
영화가 끝난 뒤 감독이 한 질문에 사람들이 내놓은 답은 평범했다. 가볍게 영화를 즐긴 영화 관객과 같은 감상을 늘어놓았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하고 수정을 거친 편집본이라서 그런지 스태프들은 편하게 입을 열었다.
“재인 씨 연기 처음이라더니,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뻣뻣한 부분이 있긴 했는데, 그게 또 배역이랑은 잘 어울렸어요. 양반가 도련님이 백성들 사이에 껴서 어색해하는 장면들에선 확실하게 잘 맞았고.”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너무 이상해서 그 부분은 다시 찍고 싶은걸요.”
“지금은 보는 눈이 더 높아져서 그래요. 감독님이 그 장면을 그대로 살리신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네.”
김현민이 옆자리에 재인을 앉힌 것부터 시선을 끌었는데, 소곤소곤 연기를 모니터링해 주고 분석해 주는 모습을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았다.
물론 김현민은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촬영 당시 일부러 거리를 뒀던 걸 만회하려는 듯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 할 뿐이었다.
“우리 배우분들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잘 찍어 주셔서 감사해요, 감독님.”
“잘 나왔지요?”
“네. 내가 연기한 장면이 이렇게도 보일 수 있구나, 하고 놀랐어요.”
“그게 편집의 묘미죠. 우리 편집실이 또 업계 톱 3에 들잖아요.”
“감독님이 잘 찍으신 거죠.”
편집의 중요성은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좋은 영상이 많아도 편집이 이상하면 쓰지 못한다. 다행히 감독에겐 몇 년간 손을 맞춰 온 편집 감독과 편집실이 있었다.
편집 감독에게 공을 돌리는 감독이었지만, 재인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배우들도 연기를 잘했지만, 그걸 살린 것은 감독이었다. 영화는 한 장면만 봐도 감독이 얼마나 공들여 찍었는지 알 수 있었다.
“흐흐흐. 우리 다 잘했어요. 아유, 이제야 좀 안심되네.”
자신 있게 영화 잘 나왔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불안감을 못 느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감독은 재인과 옆에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김현민을 보고 안심했는지 과장되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배우님들 홍보도 같이 잘해 봐요.”
“네.”
내부 시사회는 평탄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 * *
“크흠!”
“…….”
“어휴!”
“…….”
재인은 평소와 다르게 헛기침을 하고 들리게 한숨을 쉬면서 김 실장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니, 눈치를 주곤 있었는데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김 실장의 뻔뻔함이나 막무가내는 그가 넘기 힘든 벽이었다.
“용사 하찬이라니 귀여울 것 같지 않아요?”
“……귀엽겠죠.”
“망울망울한 눈으로 올려다보다, 늑대로 변해서 적을 처치한다니. 이 기획안 적은 사람이 우리 하찬이를 많이 연구했나 봅니다.”
“그런가 보죠.”
JW 계열사 프롬 네이처의 다음 광고는 시리즈라더니, 진심이었나 보다. 늑대 변신 용사 하찬을 주인공으로 시리즈를 만들자며 기획안을 클로버로 보내왔다.
계약 조건도 기획안도 좋았다. 하찬이 변신해서 적을 해치우고 사료 공장을 지킨다는 콘셉트도 좋았다, 다만.
‘왜 내가 용사에게 퀘스트를 주는 존재냐고.’
그것도 천사 같이 하늘하늘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왕관과 지팡이를 든 채로 말이다. 퀘스트 정도는 성우가 내레이션으로 처리해도 되는데.
“이런 퀘스트는 보통 날개 달린 요정이 주지 않아요? 게임에서 보면 자주 그러던데요. 아니면 예쁜 공주가 주거나.”
“교황도 어울리지요. 성녀가 주기도 하고요. 성직자면…….”
재인의 말에 반박하던 김 실장이 말을 얼버무렸다. 어디 가서 말발로 밀린 적 없는 그라도 도끼눈을 뜨고 보는 자기 배우를 상대로 말을 늘일 만큼의 강단은 없었다.
‘하찬이랑 같이 찍는 광고가 또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는데…….’
‘기부할 사료량도 늘어날 텐데…….’
‘이번에는 우리 수수료도 기부하려고 했는데…….’
‘같이 찍으면 하찬이가 엄청나게 좋아할 텐데…….’
실장은 뾰족한 산을 그리는 재인의 눈썹을 봤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조그맣게 꿍얼거렸다.
별로 좋은 일은 아니라도 이미 전국에 그런 의상을 선보인 후였다. 한 번 정도 더 입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재인은 싫어해도 무척 성스럽고 존귀해서 잘 어울린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었다.
‘싫어하실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싫어하시네. 게임 광고 제안서는 역시 보여 드리지 말아야지.’
비슷한 콘셉트로 게임 광고 모델 제안이 들어왔다. 보통은 인기 아이돌이나 코미디언한테 가는 제안이었는데, 재인의 뉴스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며 연락이 왔다.
게임 광고는 클로버에서도 수락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다. 유명 배우들도 조금씩 게임 광고에 나오는 추세라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과 그런 광고는 배우로서 입지를 공고히 한 뒤에 찍는 게 낫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김 실장은 중립이었다. 재인이 바라면 추진하고 싫다고 그러면 빼자는 주의였다.
‘출연료를 아무리 많이 줘도, 내 배우가 싫어하면 밀어붙일 이유가 없지.’
하찬이와 같이 찍는 광고는 기부를 위한 거라서 슬쩍 등을 떠밀었지만, 게임 광고는 달랐다. 재인은 갓 출발선에 선 배우였다. 눈앞의 이익이 아닌, 더 높은 곳, 더 먼 곳을 바라보고 행보를 결정하는 게 맞았다.
“이쪽은 게임 광고 제안인데, 콘셉트가 사료 광고랑 비슷해요. 조건은 이렇고요. 뺄까요?”
“네.”
“하, 하하. 단호하시네요.”
“……하찬이랑 찍는 광고는 할게요.”
게임 광고보다는 낫다고 여겼는지 사료 광고는 같이 찍겠다는 재인에 김 실장이 속으로 웃었다. 투덜거려도 기부 광고라서 찍을 거로 예상했는데, 딱 그대로 움직이는 게 뻔하면서 귀여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 배우님이 이제 스물넷이었지.’
나이보다 침착해서 가끔 까먹는데 재인은 이제 스물 중반이었다. 한 팀의 중심이 되어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아직 어리다고 봐도 좋을 나이였다. 싫다고 고집부려도 좋고, 짜증을 부려도 좋을 나이였다. 성격상 그럴 것 같진 않았지만.
“여기요. 자료 받으세요. 직접 오시지 않고, 상호한테 건네받으셔도 됐는데.”
“겸사겸사 나오는 거죠. 하찬이 산책도 시킬 겸 해서요.”
“하하하. 예, 자주 들르세요. 설명할게요. >조선 탐정 한설록>의 홍보로 나갈 프로그램 중 지상파는…….”
재인은 장난스러웠던 태도를 버리고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다. 영화 홍보를 위해서 전국의 상영관을 도는 일은 매니저 최상호가 알아서 이동시켜 주고 할 테니, 걱정 없었다.
다만 홍보차 출연하는 예능 방송은 준비가 필요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보지 않는 그라서 미리미리 예습해야 했다. 오늘 클로버에 들른 것은 광고와 화보 선별 건 외에 예능 자료를 받으러 온 것이기도 했다.
“그럼 부족하신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바래다 드릴까요?”
“괜찮아요. 집에 가기 전에 공원에 들르려고요.”
“공원까지 태워 드릴게요.”
“아니에요. 둘이 갈게요. 오랜만에 하찬이랑 데이트하게요.”
“커엉, 컹컹.”
“하하하. 하찬이도 좋다네요. 하찬이랑 계속 같이 다닐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간만에 레슨이 일찍 끝난 날이었다. 곧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면 바빠서 제대로 놀아 주지도 못하는데, 오늘은 시간을 내서 놀아 줄 계획이었다. 좋아하는 펫 카페의 간식도 먹여 주고, 반려동물 공원에서 같이 산책도 하고.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네.”
“컹!”
김 실장의 흔쾌한 승낙을 재인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납치 사건에서 하찬이 한 활약을 장황하게 자랑했던 그는 김 실장이 하찬의 능력을 믿어서 그런다고 여겼다. 김 실장이 회사 소속 각성자에게 비밀 경호를 부탁할 생각이라는 건 전혀 몰랐다.
“오랜만이니까 케이크 사줘야겠네, 우리 하찬이.”
“커엉.”
케이크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는지 하찬이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닭가슴살과 고구마로 만든 케이크는 펫 카페 메뉴 중 하찬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였다. 시간이 나지 않아 몇 달 동안 데려가지 못했는데, 오늘 기회가 생겼다.
재인이 하찬의 이마를 살살 긁어 주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였다. 언젠가 회사에 들렀을 때 봤던 연습생 몇 명이 곁으로 다가왔다.
“저, 저기요.”
“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래요. 1층에 있는 카페로 갈까요?”
“아니요!”
직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1층 카페로 가자는 말에 쇳소리를 낸 연습생이 다급하게 제 입을 막았다. 그 모습에서 재인은 연습생들이 저를 찾아온 게 비밀이구나 짐작했다.
“저희 연습실로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하찬이 연습생들을 보고도 아무 반응을 안 하는 걸 보니, 연습생 안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그냥도 내가 이기겠다. 무슨 애들이 전부 뼈밖에 없어?’
관리를 심하게 하는 걸까, 아니면 강박 때문에 스스로 조절하는 걸까. 빼빼 마른 연습생들은 과장해서 한 손으로도 제압할 수 있어 보였다.
“푸하하하하!”
“왜, 왜, 왜 웃으세요?”
“아하하하. 내가 비주얼 센터라뇨.”
“…….”
데뷔조 전용 연습실로 들어서고 얼마 후 재인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긴장한 채 꺼내 놓은 연습생들의 질문이 너무 웃겨서 참을 수 없었다.
“저기, 정말로 저희랑 같이 데뷔하는 게 아니에요?”
“크흡. 네. 그런 얘긴 금시초문이에요.”
“진짜요?”
“진짜요. 아이돌 데뷔 얘기는 처음 들어요.”
“그럴 수가. 데뷔조에서 한 명 잘린다고, 한 명 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아! 재인은 그제야 전에 연습생 한 명이 노려본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데뷔조에 들어가게 되면 오랜 시간 같이 연습한 한 명이 잘리기 때문이었다.
‘헛소문이 도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원래 김 실장님이 맡아서 데뷔시키기로 했던 연습생들이라 그런지 재인과 관련된 소문에 민감했다. 신빙성 없는 뜬소문이 대부분이었지만, 간절하게 데뷔를 바라는 탓인지 쉽게 휘둘렸다.
그들을 제일 힘들게 한 소문은 재인의 전담팀이 해체되고 데뷔조에 합류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새 멤버가 추가되는 것은 괜찮았는데, 기존 멤버 한 명이 데뷔조에서 나가야 한다는 얘기에 내내 불안에 떨었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이돌로 데뷔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단호하게 말했지만, 연습생들은 불안감을 전부 떨쳐 내진 못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