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56)
#56. 내부 시사회
재인은 최태원의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에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무슨 오해를 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끼어들어서 앞뒤 보지 않고 시끄럽게 구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최태원을 대신해 사과하지 말고 차라리 별일도 아닌데 소란스럽게 군 걸 사과하는 게 나을 듯했다.
“재인 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다치긴요. 아무 일 없었어요.”
“정말입니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의 턱을 조심스럽게 잡고 확인하는 폼이 무척 당황한 것 같았다. 납치 사건 이후로 항상 걱정을 행동 기저에 깔고 생활하는 최상호였다. 재인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매니저를 달랬다.
최상호는 자신을 달래듯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눈꼬리를 접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뱉었다. 통화하는, 십 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떨어진 사이에 일이 생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무 일 없었다.
‘뭐야? 또 ……야? 이번에는 뭐래?’
‘신입 군기 잡았나 본데.’
‘뭐? 전에도 그거로 문제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다고?’
‘성질머리가 참…….’
‘매니저가 고생이네.’
재인의 표정에서 별일 아니라는 걸 깨달은 최상호와 다르게 다른 사람들, 최태원의 매니저와 같이 휴게실로 들어온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최태원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게 확실하다는 양 수군거렸다.
‘뭐지? 오해할 일도 아니지만, 왜 아무도 무슨 일인지 안 물어봐?’
최태원이 소란을 일으켰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어이없었다. 뺨을 닦아 주고 있었으니 멀리서 보면 오해할 수도 있지만, 물어보면 별일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누구 한 명 나서서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최태원 선배님이랑은 아무 일 없었어요. 얼굴에 뭐가 묻어서 닦아 주신 것뿐이에요.”
깨끗해진 얼굴이 잘 보이도록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말을 꺼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 대화다운 대화는 나눈 적도 없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는가. 재인은 사람들이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하기 전에 확실하게 해명했다.
“미안합니다, 이재인 배우. 그리고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네?”
“우리 태원이가 좀 그렇지만, 나쁜 의도로 그러진 않았을 거예요.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무슨 소리세요? 아무 일 없었다니까요.”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이재인 배우.”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최태원의 매니저는 하찬이보다도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그 때문인지 재인이 오해하지 않게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사람들의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개중엔 최태원이 뭔가 했다고 확신하는지 그를 안쓰럽게 보는 이도 있었다.
‘협박이라도 당했나?’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변한 게 없네.’
‘도형 씨가 힘들겠어. 매일 같이 사과하러 다니고.’
‘쯧쯧쯧. 하여간…….’
오해당하는 최태원을 돌아봤지만, 그는 혼자 있을 때의 어수룩한 느낌은 전부 지워 버린 상태였다. 매니저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해명할 생각은 안 하고, 처음 대회의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차갑고 매몰찬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이게 무슨 경우야? 진짜로 아무 일도 없었는데, 다들 왜 이래?’
답답한 심정을 풀어놓고 싶었지만, 자리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대회의실로 모일 시간이었다.
* * *
적극적으로 오해를 풀 생각이 없는 건지, 매니저가 못 하게 하는 건지 몰라도 최태원과의 일은 찜찜함과 떨떠름함만 남은 채 끝났다. 그 대신인지 재인에게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헛! 아니, 진짜잖아!”
“네?”
재인은 내민 손은 못 본 듯 얼굴을 보면서 헛숨을 들이켜고 잊지 않겠다는 듯 꼼꼼하게 살펴보는 상대에 눈만 껌뻑였다.
“프로필이랑 화보는 보정이랑 화장발인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진짜잖아!”
“예?”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
재인은 지금 이게 스타일리스트를 소개받는 자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자기 사무실을 내고 팀을 꾸릴 정도로 능력 좋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영 아닌 것 같았다.
“이거, 이거, 이것도 어울릴 것 같아.”
“그게요?”
“이게 보기에는 화려해 보여도 재인 씨 얼굴이 더 화려해서 완전 소화 가능할 거리니까.”
“아니, 그런 의상을 소화할 정도는 아닌…….”
스타일리스트는 벌써 룩 북까지 준비해 왔는지 반 뼘은 될 법한 두꺼운 파일을 마구 펼치면서 재인에게 들이밀었다. 덕분에 소개는 시작도 못 했는데, >여우비>에 쓰일 의상을 먼저 고르게 되었다.
“의상 감독님이 김시아 감독님 맞지? 전에 >크레이지> 촬영할 때 같이 일해 봤는데, 이 정도는 해야 만족할걸.”
“아니, 그래도. 이건 무슨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의상이잖아요.”
“이것처럼 화려한 것만 계속 입는 건 아니야. 그러면 캐릭터 이미지가 너무 고정되니까. 중간에 파자마랑 귀여운 티셔츠 같은 것도 입어야지. 대본대로 톱 모델에 어울리는 의상으로 준비해 줄게, 걱정하지 마. TPO에 맞게 제대로 꾸며 줄게. 기대해.”
“네.”
룩 북을 내려놓은 스타일리스트는 줄자를 꺼내 재인의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그가 줄자를 꺼내기 무섭게 다른 일을 하던 어시스턴트가 재빠르게 펜과 노트, 녹음 앱을 켠 스마트폰을 들고 다가와서 치수를 받아 적었다.
“최상호 매니저한테 듣긴 했는데, 다시 확인할게. 감독님이 몸 어떻게 만들라고 요구한 건 없었어?”
“없었어요. 그냥 이 상태 그대로 유지해 달라고만 하셨어요. 아! 머리는 귀밑? 목덜미를 슬쩍 덮는 정도로 길러 달라고 했어요.”
“헤어에 관한 것도 들었어. 몸은 진짜로 이 상태로 유지만 해도 충분하겠다. 프로포셜이나 쉐이프나 더 손댈 곳도 없네. 이 상태 그대로 무대에 올라가도 문제가 없겠어.”
“그래요?”
“그래요는 무슨 그래요야. 거울만 봐도 더 건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알겠구만. 어디 가서 그러지 마. 눈치 없다는 소리 듣는다. 잘났다고 잘난 척해도 다 인정하는 수준인데.”
스타일리스트 김신우는 전날의 찜찜한 일을 잊을 만큼 화통한 타입이었다. 매니저 최상호와 같은 나이라고 들었는데 성실하고 세심한 면은 비슷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슈트는 전속인 JW 브랜드 걸 우선하긴 할 건데, 대본에 맞는 스타일이 따로 있을 땐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지?”
“네. 대본을 우선해 주세요.”
“좋은 자세야. 광고도 중요하지만, 작품도 광고 못지않게 중요하니까. 그런데 클리닉은 어디 다녀? 피부 상태가 너무 좋은데? 모발도 그렇고. 이쪽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따로 다니지는 않고요. 전에 피부 미용에 좋다는 거 먹은 적 있어요. 체리색 물약이요.”
“비린 맛 그거?”
체리 주스 색과 비슷하지만, 맛은 천양지차였던 물약을 잘 아는지 김신우는 어설픈 설명에도 아는 척을 했다. 뒤따라서 그게 그렇게 효과가 좋냐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효과가 좋긴 했는데 그건 재인에게만 해당하는 얘기 같았다. 같은 걸 선물 받은 어머니는 그처럼 극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저 피부가 맑고 깨끗해지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물약도 만들 수 있게 됐던데.’
납치 사건 이후 뉴스에 타면서 인지도가 넓어진 덕분인지 공헌도가 무서울 만치 쌓였다. 현실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성수, 전용 회복 물약 외에 다른 물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공헌도 상점에서 구매하는 재료로 만드는 효과가 더 큰 물약들을.
‘더 큰 성물도 가능하지만, 그건 포기하자.’
자유의 여신상 사이즈나 그보다 작은 2층 건물 정도의 성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미련 없이 포기하기로 했다. 스트라이커들이 싸우는 전장 중심에 자신의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민망했다.
“흐으음.”
“왜 그러세요?”
“이 애기가 사료 광고에 나온 애기가 맞아?”
“맞아요. 몬스터 믹스라서 고양이로도 변하거든요.”
“나중에 커플 룩 입어 보자. 큰 개용이랑 소형 고양이 옷으로 준비해 줄게.”
재인이 잠시 물약 제조에 관해 고민하는 사이 김신우는 하찬의 곁으로 다가가 있었다. 강아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직업 특성상 키우기 쉽지 않았다. 사무실이나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기도 하고, 고가의 옷과 액세서리를 다루는 직업이라 입양은 조심스러웠다.
‘이게 뭐야. 진짜 괜찮잖아. 매니저가 장기 계약하자고 했을 때는 코웃음 쳤는데, 어휴.’
뭘 입혀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모델에 강아지도 고양이도 다 되는 반려동물 동반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봤을 때는 깐깐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지 않았다. 융통성도 여유도 있어 보였고, 신인답지 않게 프로 의식도 엿보였다.
‘왜 이리 조건이 마음에 드냐고. 에잇! 이번 프로젝트 먼저 제대로 끝내고 다시 생각해 봐야지.’
언젠가 최상호가 생각했던 대로, 실제로 재인을 본 김신우는 지나치게 매력적인 조건에 고민에 빠졌다.
* * *
>여우비>의 1차 대본 리딩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재인은 >조선 탐정 한설록> 제작사로부터 내부 시사회에 참석하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이 마지막 내부 시사회라니. 뭐가 이렇게 빨라?’
마지막 내부 시사회를 마치면 바로 개봉이었다. 크랭크 업이라고 촬영장을 찾아간 게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후반 작업을 그새 다 마쳤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미친 속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영화였더라. 촬영에 4개월 후반 작업에 11개월이라고 기사를 봤었는데.’
차원 이동하기 전 원래 세상에서 유명한 히어로 영화의 제작에 관한 기사를 봤었다. 몸값 비싼 배우들을 출연시키느라 그랬는지 촬영 시간을 극도로 짧게 잡았었다. 반면 후반 작업에는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썼다. 높은 퀄리티의 CG를 영화 전반에 사용해서였다.
해외의 그 영화 정도까진 아니라도 한국 영화계도 후반 작업 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라고 들었었는데, 이쪽은 전혀 달랐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촬영에 들어간 덕분인지 촬영 끝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몇 차례 기술 시사회를 진행하면서 수정할 부분이나 재촬영 문제는 전부 해결된 상태입니다. 시사회는 편하게 보시면 됩니다.”
“네. 그런데 재촬영까지 하셨어요?”
“아니요. 재촬영이 필요한 분량은 따로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감독님이 워낙 선택이 확고하신 분이시라.”
“그건 그렇죠.”
배우들은 보통 차기작 출연 계약을 할 때 전작과 약간의 기간을 두고 계약한다. 한껏 몰입했던 캐릭터에서 빠져나올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크지만, 후반 작업 도중 생길 재촬영을 고려한 것도 있었다. 주연이나 주조연 정도는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최상호와 떠들다 보니 금세 내부 시사회를 진행할 건물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익숙한 밴이 몇 대 보이는 걸 보니, 다른 배우들도 도착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이 배우. 오느라 고생했어요.”
재인을 맞아 준 감독은 피곤한 한편 개운해 보였다. 지난번 만났을 때 영화가 잘 나왔다고 자신하더니, 실제로도 그런 듯했다.
“재인 씨, 이쪽이요. 여기 자리 있어요.”
“하, 하하. 네.”
기술적인 문제까지 모두 해결된 마지막 내부 시사회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제법 편했다.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있었다. 재인 역시 그를 보고 반색하며 부르는 김현민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부 시사회에 참석하기로 한 사람들이 전부 도착하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직후 감독의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편집 과정이 어땠고, 어떤 음악과 사운드가 들어갔다 등등. 촬영 현장에서 미처 듣지 못했던 정보를 알려 줬다.
-상영 시작합니다.
소음이 줄어들고 사람들의 기대하는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 재인도 그런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비록 관계자들만 모인 내부 시사회였지만, 떨리고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