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67)
#67. 황금색 알
던전 공략은 게임이 아니다. 몬스터를 잡는다고 경험치가 채워지는 일도 아니고,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선물은 사양이다, 하찬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지팡이에 힘을 주었다. 꼴깍! 침을 삼킨 재인이 지팡이로 외뿔 멧돼지의 머리를 내리치려 할 때였다.
“하여간 형은 하찬이 어리광을 전부 받아 주는 게 문제야.”
재현이 기묘한 대치 중인 둘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여상한 말투로 재인을 타박한 뒤 한 손으로 외뿔 멧돼지를 집어 들었다.
“크르릉.”
“마음은 알겠는데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이 녀석아.”
스트라이커 팀이 빠져서 인원이 줄었다지만, 여전히 근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배우인 형이 잔인하게 지팡이로 머리를 깨는 장면을 보이는 건 절대로 득이 되지 않았다.
-꾸에에에에!
기절 직전이었던 외뿔 멧돼지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외뿔 멧돼지 인생에 결코 경험할 리 없는 하늘을 비행하는 경험에 놀란 것 같았다.
-짝짝!
백 킬로는 가볍게 넘어 보이는 외뿔 멧돼지를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던져 버린 재현이 짝짝 손뼉을 쳤다.
“자, 자. 아무 일도 없으니, 다시 갑시다.”
멀끔한 얼굴로 일행의 전방을 가리키며 계속 이동하길 종용했다. 뒤에서 뿔난 하찬이 크르릉거리는 것은 가볍게 무시했다.
“이야, 잔인하네. 주인님을 위해 가져온 선물인데 그걸 던져 버리다니.”
“그러게나 말이야. 숟가락만 들면 되게 다 요리해 왔고만.”
“하이고, 꼬리 축 처진 거 봐. 안타까워라.”
“하찬이가 실망했네, 실망했어.”
재인은 재현의 도끼눈에 입을 다물기 전 길드원이 남긴 말들이 가시처럼 느껴졌다. 바라지 않던 선물이라도 하찬이의 첫 선물인데, 받을 걸 그랬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우리 형 배우야. 배우가 아니더라도 치유사한테 지팡이로 몬스터 때려잡으라고 하고 싶냐?”
“커흠! 그건 아니지.”
“찰지긴 했는데……, 역시 아니지?”
“아니지. 어지간히 위급한 상황 아니면 그러면 큰일 나지.”
딴소리하면 저기 수풀 사이로 끌려갈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그런 재현에 못지않은 기세를 풍기는 길드원들이었지만, 분위기를 봐서 적당히 대꾸했다.
“자, 자. 다 놀았으면 다시 출발 합시다.”
인솔자가 한 번 더 출발하자고 일행을 재촉했다. 먼저 출발한 스트라이커 팀에서 적당한 야영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이동해야 했다. 길드원 가족들은 잠깐의 해프닝을 뒤로하고 천천히 인솔자를 따라 움직였다.
‘하, 하찬아. 이걸 어떡하지?’
재인은 발걸음은 일행들을 따라 움직였지만, 시선은 하찬을 향해 주고 있었다. 실망한 듯 축 처진 꼬리와 터덜터덜 걷는 걸음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떻게 달래야 할지 걱정이었다.
“크르릉.”
걱정과 다르게 하찬은 괜찮았다. 외뿔 멧돼지를 잡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재인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고 힘도 약하니 못 잡을 수도 있었다. 나중에 좀 더 괜찮은 먹이를 잡아 주면 될 터였다.
물론 재현은 아니었다. 재인의 먹이를 던진 덩치는 경계 대상이었다.
* * *
스트라이커 팀이 찾아낸 야영지는 다시 한번 일행이 던전의 존재를 의심하게 할 만한 곳이었다. 바나나 잎처럼 넓은 잎의 나무가 가득한 천변은 하룻밤 머무르고 가기 아쉬울 만큼 멋진 곳이었다.
“던전에서 야영해야 할 때는 제일 먼저 인근에 위협이 되는 생물이 없는지, 머물 장소의 사물이나 생물에 독성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가장 간단히 확인하는 방법은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나눠 드린 생존 키트 안의 진단 시약을 사용하…….”
생존 키트에는 땅을 파거나 생물을 채집할 수 있는 도구부터, 비상약, 신호탄, 진단 시약 등이 들어 있었다.
재인은 인솔자의 시범을 따라 생존 키트 안의 물품들을 사용해 야영할 곳을 정리했다. 캠핑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게 잘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헥헥헥!”
“나중에. 점심 먹고 나서 스트라이커 팀이랑 같이 움직일 거야.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컹.”
“착하지? 고기 구워 줄게.”
잘 곳이 정리되자마자 하찬이 다시 흥분했다.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지만, 이번에는 보내 줄 수 없었다. 점심 식사 후 스트라이커 팀에 치유사로 합류하라는 얘기를 들은 참이었다. 하찬이 탐색에서 제시간에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우와! 맛있겠다. 아빠, 나 고기.”
“잠깐만 기다려. 다 구웠어.”
“라면은 어디에 끓여? 여기?”
“저쪽에 즉석 밥 데우는 냄비 내리고 거기에 올려.”
길드원 가족 동반 야유회 정도로 보면 된다던 동생의 말이 맞았다. 외뿔 멧돼지의 등장 같은 일은 점심 식사 내내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이곳저곳에서 맛있는 냄새와 즐거운 웃음소리가 퍼졌다.
재인의 자리 바로 옆에는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사무직 길드원이 아들과 같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보기 좋아서 재인도 서둘러 손을 놀렸다.
“하찬아, 이리 와. 고기 먹자.”
“컹.”
간을 하지 않은 고기를 한 판 구워서 하찬의 그릇의 담아 준 재인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옆자리처럼 맛있다고 호들갑 떨길 바라진 않았지만, 1분 컷 먹방 정도는 보여 주리라 기대했다.
“왜? 왜 안 먹어?”
“컹.”
고기를 먹지 않는 건 물론 그릇을 재인의 앞으로 밀기까지 했다. 마치 먹으라는 듯 코로 그릇을 밀어 주고는 쳐다보기만 했다.
“…….”
“…….”
“……형 먹으라고?”
“컹!”
“크흡. 우리 하찬이 다 컸네, 형도 생각해 주고. 그래도 이건 하찬이 먹자. 형은 또 구워 먹을게.”
마음은 무척 고맙다만 개 밥그릇에 담았던 고기를 주워 먹을 정도로 배가 고프진 않았다. 배가 고프다고 해도 그럴 리 없지만.
“아이, 잘 먹네. 우리 하찬이 배고팠구나.”
고기를 한 점 집어 주둥이 앞에 대 주자 허겁지겁 먹는 게 무척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고기를 양보하다니, 너무 기특했다. 애지중지 기른 보람이 있었다.
‘형 착각이야. 하찬이는…….’
고기를 집어 주는 중간중간 기특하다며 등을 쓸어 주고 엉덩이를 토닥이는 꼴을 보던 재현이 뜨악했다. 형의 착각이 기가 막혀서였다.
‘사냥도 못 하는 형에게 고기를 양보한 거라고. 형 굶어 죽지 말라고.’
재현은 하찬의 눈빛으로 먹이를 양보한 게 어떤 뜻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몬스터 중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놈들이 종종 저런 눈빛을 보였었다. 그것은 명백히 상대를 자신보다 작고 약하게 여기는 눈빛이었다.
외뿔 멧돼지를 잡아 왔을 당시의 행동으로 짐작한 게 맞았다. 하찬은 재인을 사냥도 못 하는, 돌봐 줘야 하는 약한 존재로 보고 있었다. 실제로 돌봄을 받는 게 누구인지와 별개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찬이 그만 주고 형 먹어. 든든히 먹어야 이따 잘 싸우지.”
“어, 알았어. 이것만 먹이고.”
착각인지 뭔지 둘이 서로 좋아하니 말릴 생각은 물론 없었다.
* * *
예비 스트라이커 팀에서 치유사로 움직이는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했다. 다섯 명 안팎인 정식 스트라이커 팀보다 인원이 두 배 많아서인지 재인은 철저하게 보호를 받으면서 치유를 쓸 수 있었다.
‘어흑! 도저히 못 보겠다.’
그렇다고 전투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칼날 같은 뿔이나 송곳 같은 털을 빼면 평범한 동물과 흡사한 몬스터들이 공격당할 때마다 글썽글썽 눈물이 맺힌 눈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걸 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저쪽 몬스터를 치료해 줘야 할 것 같아.’
위험도가 낮은 몬스터라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언제든 사람을 해칠 수 있으니 처치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도 손가락 하트가 자꾸 몬스터 방향으로 향했다. 얻어맞고 쓰러지는 모습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저도 모르게 그랬다.
“크흠! 생체 반응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운된 놈들도 확실하게 처리하십시오.”
“네.”
“네.”
리더가 지목한 두 명이 쓰러진 몬스터 위로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바닥에 쓰러진 몬스터 사이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꼬끼오오옥.”
“꼬끼오옥!”
하필이면 몬스터가 익숙한 닭 모습일 게 무언가. 좀 전 맞닥뜨린 토끼 모습 몬스터보다는 나았지만, 사실 그게 그거였다. 양심에 찔리는 건 별 차이 없었다.
“헥헥헥!”
“잘했어, 하찬아.”
그런 재인과 다르게 하찬은 신이 났다. 예비 스트라이커들의 틈에 껴서 공격을 돕거나, 몬스터의 뒤로 돌아가 퇴로를 막았다. 리더의 명령도 없이 본능만으로 전술적으로 움직이면서 전투를 도왔다.
“치유 못 받으신 분 없지요?”
“네. 다 받았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남은 전투도 파이팅!”
“파이팅!”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인은 전투에서 빠졌다.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인 그에게 숲에서의 전투는 걸맞지 않았다.
“왜? 저쪽 따라가고 싶어?”
“컹.”
인사를 나누고 야영지로 돌아가려던 재인이 걸음을 멈췄다. 예비 스트라이커들이 정비하는 곳에서 하찬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였다. 어지간히도 전투가 즐거웠는지 돌아서는 척해도 계속 버텼다.
“가고 싶다는 데 따라가게 둬.”
“그래도 될까?”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던데 뭘. 위험한 것도 없으니 놀다 오라고 해.”
“알았어. 하찬아, 가 봐. 사람들하고 너무 떨어지지 말고 붙어 다녀, 알았지?”
“컹!”
재인이 허락하자 그제야 하찬이 움직였다. 그에게 다가와 냄새를 묻히는 것처럼 다리를 몸으로 쓸고 나서 예비 스트라이커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찬이 정말 다 컸나 보다. 밖에선 잘 안 떨어지려고 하더니, 이젠 혼자서도 잘 다니네.”
“그건…….”
“응?”
“아니야. 여긴 나도 있고 다른 길드원도 있으니까, 안심되어서 그러나 보지.”
“그런가.”
컸다기보단 본능이 강해진 것 같았지만, 재현은 굳이 생각을 고쳐 주지 않았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하찬이 금세 원래대로 돌아올 거란 걸 알고 있어서였다.
지금 하찬이 보이는 본능적이고 활발한 모습은 던전이라서 그런 것뿐이었다. 몬스터 믹스인 녀석이라 던전에 풍부한 마이너스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도시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어리광쟁이에 떼쟁이가 될 것이다.
숲속으로 돌아간 예비 스트라이커 팀이 돌아온 것은 슬슬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해야지 않을까 할 때쯤이었다. 숲속 전투 역시 어렵지 않았는지 헤어질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뭐야? 하찬이 어딨어? 왜 같이 안 와?”
귀환한 예비 스트라이커 팀 사이에 하찬이 없는 걸 재현이 먼저 알아차렸다. 날이 선 목소리가 참관인으로 따라갔던 길드원을 향했다.
“야영지에 없어? 한참 전부터 안 보여서 먼저 간 줄 알았는데.”
“중간 휴식 때부터 안 보였으니까, 한 시간 반쯤 됐나?”
“맞아, 그쯤 됐어. 정말로 여기로 안 왔어?”
“안 왔어.”
재현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지 않았다. 야영지 근처에서 하찬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위치는? 어느 방향이야?”
“같이 가. 나름 전우라면 전우인데, 앉아서 기다릴 순 없지.”
“오케이. 형, 하찬이 찾아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알았어.”
재현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재인은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신체 강화 능력자인 동생과 길드원의 스피드를 쫓아갈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또 누구 한 명은 야영지에서 기다려야 하기도 했고.
“후우우!”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을까.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이 꽤나 야속했다.
-샤삭! 샤샤삭!
불안함에 근처에 있던 풀만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길게 자란 풀을 가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감히 어떤 놈이!’
재인은 지체하지 않고 나무에 기대 세워 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지팡이를 수풀로 겨누는 기세가 자못 사나웠다. 외뿔 멧돼지를 마주했을 때와는 기백이 달랐다.
“하찬아!”
수풀을 가르고 튀어나온 상대를 확인한 재인의 동작은 더없이 빨랐다. 익숙한 검은 털을 확인하자마자 무엇이 나오든 때려잡을 생각으로 겨누었던 지팡이는 던져 버렸다.
“어디 갔었어? 형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다급히 다가가 목덜미를 안았으나, 평소와 반응이 달랐다. 안아 주면 찰싹 달라붙어 머리를 비비면서 애교를 부려야 정상인데, 되려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하찬아?”
놀란 재인이 팔을 풀었을 때였다. 하찬이 물고 있던 무언가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알? 형 주는 거야?”
“컹컹!”
“고, 고마워.”
“컹.”
황금색의 번쩍번쩍 빛나는 둥근 물체는 꼭 무언가의 알처럼 보였다. 아니 알이 분명한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하찬의 몸에 군데군데 황금색 깃털이 묻어 있었다.
‘설마 이걸 잡으라고 가져온 건 아니겠지?’
왠지 외뿔 멧돼지와 보낸 삼자대면의 시간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