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80)
#80. 껄끄러운 차기작
마지막 촬영의 모니터링까지 마친 재인이 사방을 향해 인사를 하면서 세트를 벗어났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해 귀국했던 차수원이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해외로 떠나는 장면을 끝으로 육 개월 가까운 시간을 들인 드라마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재인 씨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푹 쉬시고 종방연 때 봐요.”
“먼저 가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마지막 촬영일이 같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재인은 주연들보다 보름 정도 일찍 촬영이 끝났다. 그 탓에 가벼운 박수를 받으면서 세트를 벗어나는 것으로 촬영장을 떠나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매니저님도요. 수고 많으셨어요.”
드라마 촬영이 없는 날도 재인은 바쁜 편이었다. 레슨도 꾸준히 받고 있었고, 화보, 인터뷰, 광고 등 계속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한 달에 며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얼굴을 봤다.
‘생각보다 한 작품을 끝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네.’
도중에 A, B 팀에 더해 C 팀까지 운용했는데도 육 개월을 꽉 채우다시피 썼다.
‘연말에는 좀 쉴까? 매니저님도 신우 실장님도 피로가 꽤 쌓인 것 같은데.’
설 연휴가 지나고 나면 새로운 드라마 촬영이 시작된다. 그 전에 휴식을 취해 두지 않으면 다시 시작되는 촬영 기간을 버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스태프들은 그가 쉬지 않으면 쉴 수 없었다. 모든 일정이 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가 쉬지 않으면 누구 한 명 쉽게 휴가를 내지 못했다.
“매니저님 연말도 다가오는데 조금 쉴까요?”
“그러시겠습니까?”
“네, 한 열흘 정도 일정 조정 좀 해 주세요. 레슨도요.”
“알겠습니다.”
재인은 오랜만에 캠핑할 계획을 세웠다. 회귀 전에 갔던 캠핑이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하찬이랑 캠핑이라니! 내 버킷리스트였는데.’
큰 개를 데리고 캠핑하는 건 오랜 로망이었다. 하찬이 비록 큰 개는 아니었지만, 오랜 꿈을 이뤄 주기 충분했다.
하찬과 한적한 캠프장에서 저녁엔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산책하는 장면을 상상한 재인이 빙그레 웃었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오늘 레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야죠.”
“예, 그럼 회사로 바로 가겠습니다.”
“네.”
휴가를 갈 때 가더라도 레슨은 빠질 수 없었다. 특히 차기작 배역에 필요한 댄스 레슨을 빠지는 건 말도 안 됐다.
“그러고 보니 >완벽한 파트너> 쪽은 어떻게 되었어요? 캐스팅 전부 끝났대요?”
“몇 차례 미팅을 진행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캐스팅이 완료됐다는 소식은 받지 못했습니다.”
“늦네요. 얼마 안 남았는데.”
“주연급은 이미 정해졌으니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촬영 시기를 조정하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네.”
재인의 차기작 >완벽한 파트너>는 주연급 출연자들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남은 것은 재인의 동생 역할과 강여진의 라이벌 PD 역할 등이었다. 비중이 크진 않아도 꾸준히 등장하는 역할이라 노리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강여진 선배네 배우 전문 기획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습니다. 다만…….”
“네?”
“아닙니다. 그쪽에선 조 단역 몇 자리를 챙겨 간 거로 압니다.”
“그렇군요.”
재인과 같이 세울 만한 배우가 없었다. 연기력이 문제가 아니라, 비주얼 측면에서 재인보다 어려 보이면서 같은 앵글에 잡혔을 때 눌리지 않을 정도의 배우가 없었다.
‘일단 출연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하긴 할 테지만, 그다지 유쾌하진 않네.’
애초부터 썩 마음에 차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확 끌리는 다른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김 실장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막상 계약서를 쓰고 나자 미묘하게 껄끄러웠다. 순조롭게 촬영 준비 중이라는 설명을 들어도 그랬다. 마치 앞날을 점치는 점술사처럼 순조로운 건 거기까지였다는 듯이 찜찜한 예감이 계속 들었다.
* * *
댄스 레슨은 제법 빨리 시작한 효과도 없이 레슨을 몇 번 받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받겠거니 했던 생각이 우습게도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최고의 안무가에게 배우는 데도 아직도 기본 스텝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만약 내가 진짜로 아이돌 지망이었으면, 여기서 잘렸겠다.’
재인은 귓가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원 앤 투 앤 쓰리 앤 포!’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한 시간 가까이 박자감을 익히고 정확한 자세로 교정받느라 강사의 호령을 계속 들었더니,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간 기분이었다.
“꾸엉.”
“크흠. 하찬이 작게 짖은 거야? 건물 안이라서?”
“꾸엉.”
“아이, 똑똑하다. 우리 하찬이 천재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똑똑하지?”
재인은 음료수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연습을 더 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하찬의 애교 아닌 애교를 보니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댄스 연습보다 한 세 시간 정도 하찬과 산책하는 게 나아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
음료수를 챙겨서 휴게실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재인은 연습생 시절 만난 워너비원의 멤버들과 마주쳤다. 댄스 레슨실이 가수 팀이 주로 쓰는 층이라서 마주친 것 같았다.
“음료수 뽑아 줄게요. 뭐가 좋아요?”
“아, 아니, 아니에요. 저희가.”
“앉아 있어요. 다른 것도 좀 드릴까요? 가방에 간식 많은데.”
“아니요. 정말로 괜찮아요.”
괜찮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재인은 그렇지 않아도 뼈밖에 없던 멤버들이 그새 더 살이 내린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마음고생을 많이 한 듯 멤버들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특히 인호는 그냥 두면 땅을 파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 갈 것 같았다.
“드세요.”
“……네.”
거절은 거절이라는 것처럼 재인은 멤버들의 말은 무시했다. 긴 소파에 멤버들을 앉힌 뒤 음료수와 선물 받은 초콜릿과 쿠키 등을 꺼내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전부 먹기 전에는 못 간다는 듯이 지켰다.
“지금까지 나온 폭로 글 전부 허위로 밝혀졌죠?”
“……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지만요.”
“난 믿어요. 처음부터 폭로 글이 거짓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보니 그 생각이 맞았네요.”
“…….”
재인의 말은 길지 않았다. 이미 관에 들어가 뚜껑이 닫히기만 기다리는 듯한 인호에 잘난 듯 훈수를 두거나 힘을 내라는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대신 믿고 있다고 알리며 신성력을 풀어서 상대를 위로했다. 조심스럽게 신성력을 보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독이듯 치유했다.
‘진정도 걸어 주고 싶은데, 지금 손잡으면 이상하게 보일까?’
자존감을 잃은 최태원이나 흥분한 하찬에 진정을 걸어 주면서 효과를 톡톡히 봤었다.
인호한테도 진정 스킬이 절실해 보였지만, 스킬을 걸겠다고 다른 멤버 두 명이 보는 앞에서 손을 잡기는 민망했다. 그렇다고 인호를 지키듯 양옆에 앉은 사람들한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하기도 미안했다.
‘헉! 너, 너무 과했나?’
재인은 치유 폭탄을 맞고 눈이 풀려 잠에 빠진 인호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몸에 해롭기는커녕 쌓인 피로와 긴장이 모두 해소되어 잠든 거라는 걸 아는데도, 순간 정신을 잃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어? 무슨?”
“인호 형?”
놀란 건 재인만은 아니었다. 멤버 두 명도 순식간에 기절하듯 잠든 인호의 모습에 놀랐다. 재인이 치유한 걸 모르고 상태가 나빠져서 그런 줄 알고 흔들어 깨우려고 했다.
“미안해요. 인호 씨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치유를 걸어 준 건데…….”
“네? 치유요?”
“네,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치유를 받아도 인호 씨처럼 잠드는 일은 그다지 없는데 말이죠.”
“아! 치유 때문에 잠에…….”
“눕힐 곳이 있을까요?”
재인은 내려놨던 가방을 메고 인호를 안아 들었다. 옆에서 워너비원의 멤버들이 자기가 하겠다며 말렸지만, 못 들은 척 먼저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 * *
재인이 워너비원 멤버들과 만나는 사이 클로버 엔터 대회의실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아니, 사람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피하다가 인제 와서 뭐가 어쩌고 어째요? 용서하고 화해?”
“용서는 죄를 지었을 때나 통용되는 소리고. 우리 인호가 잘못한 게 없는데, 무슨 용서고 화해야?”
“당연하죠. 아니 땐 굴뚝에 신나게 부채질해 놓고 인제 와서 용서? 일면식도 없는 애를 천하의 쌍놈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는 대인배 껍데기를 쓰겠다니. 개소리죠.”
“내 말이 그 말이야. 앞길 창창한 애한테 똥물을 뒤집어씌웠으면 저도 뒤집어써야지. 어디서 얌체처럼 빠져나가려고 해.”
본부장을 비롯해 가수 팀 매니지먼트 팀장들은 열이 올라 씩씩대면서 이곳에 없는 누군가를 성토했다.
“하지도 않은 학폭을 인정할 이유 없습니다. 인정하면 활동하는 내내 학폭 꼬리표가 따라다닐 텐데, 그런 논란을 가지고 계속 활동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다들 잘 아시잖아요.”
“잘 알죠. 그래서 지금까지 버틴 거고요. 저는 반대예요. 그쪽 얘기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나중에 누명이라고 밝혀져 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애는 이미 만신창이인데.”
“법무 팀 역시 반댑니다. 이미 허위 폭로자 고소가 진행 중입니다. 확실하게 처리해서 명예를 회복하는 게 먼저입니다.”
“저도 반대예요. 감싸 안기로 했으니 지켜야죠. 무엇보다 그딴 양아치 새끼들 뜻대로 휘둘려 주고 싶지 않아요. 선례가 생길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법무 팀, 홍보 팀, 워너비원 매니지먼트 팀 모두 조세형의 소속사에서 온 연락에 부정적이었다. 있지도 않은 논란으로 사람 한 명을 매장하다시피 해 놓은 걸 사과도 아닌 용서를 해 준다니, 어불성설이었다.
“김 실장. 알아봤어? 이거 김고운 PD 생각이야?”
“김고운 PD가 의견을 내고 제작 PD나 다른 사람들도 동의한 모양입니다.”
“돌겠네. 우리랑 그쪽이랑 트러블 있는 거 알고 있을 텐데, 이 배우랑 조세형을 붙여 놓을 생각을 한다니.”
“화제성이 충분하니까요.”
“얼어 죽을 화제성.”
클로버 엔터에서는 워너비원 인호의 일로 조세형의 소속사에 끊임없이 연락했었다. 중학교에서 같은 반도 아니었고, 아는 사이도 아니었던 인호를 학폭 가해자로 오해하게 만드는 문구들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였다.
‘줄곧 연락을 피하더니, 드라마 출연이 결정되자 연락해서 뭐가 어째?’
만약 인호를 버리겠다 결정했었다면,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그쪽의 입장을 받아 줬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모종의 대가를 받아 낸 뒤가 되겠지만.
그러나 이미 회사에선 인호와 같이 가겠다고 입장을 명확히 한 상태였다. 수년간 인호를 지켜보고 여러 방식의 뒷조사까지 마쳐, 폭로가 전부 거짓이라는 게 자명한 상황이라 내려진 결정이었다.
“김 실장. 한동안 시끄러울 수 있으니까, 이 배우한테 상황 잘 설명해 드려. 작품에 최대한 지장이 가지 않게 처리할 테지만, 회사 입장도 있어서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어.”
“네, 재인 씨라면 이해해 주실 겁니다.”
“우리 입장은 변함없어. ‘허위 사실을 게시한 주요 인물들에 대해 고소장을 접수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허위 폭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또다시 허위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고소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당사는 허위 폭로에 대해 선처 없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입장문 한 번 더 내고, 조세형 쪽이 계속 그렇게 요구하면 연락받지 마.”
“네!”
본부장의 깔끔한 정리를 마지막으로 회의를 마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김 실장은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비어 있는 회의실을 찾았다. 최상호와 앞으로 있을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이 나면 재인에게도 사정을 설명했다.
‘재인 씨가 조세형이랑 촬영하기 불편하다고 하시면 하차도 생각해 봐야지.’
그가 본 재인이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을 테지만, 김 실장은 최후의 수단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조세형을 하차시키든가, 재인이 하차하든가.
>완벽한 파트너>의 출연 계약금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재인의 출연을 바라는 작품의 콘택트는 나날이 늘고 있었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수없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