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03)
Chapter 103
“왜요?”
내가 그에게 묻자 킬리언이 숨을 크게 들이켜며 내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고 손바닥에 그의 얼굴을 댔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에 가슴이 철렁해 저절로 눈이 커지고 입이 마르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사람이 흑마법을 쓰는 자라서요?”
그가 심산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뭔가 해갈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 듯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셈이지.”
그가 담담히 대답하며 나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어쩐지 그가 말을 아끼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이외에 뭔가 더 걸리는 게 있는 거예요?”
내가 질문하자 그가 미약하게 입가를 끌어 올린 채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청량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아니.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그자가 위험한 건 사실이잖아?”
* * *
“저희 때문에 전하의 식사가 늦어지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브륀힐트 공작이 말을 꺼냈다.
오래 마차를 타고 왔을 공작 부부를 위해 여독을 풀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킬리언의 배려로 저녁 만찬 시간이 미뤄진 것이다.
음식을 나르는 시종들이 있기에 말을 아꼈던 우리는 차를 마시며 편히 담소를 나누겠다는 이유를 대며 사용인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레네트 님의 편지를 받고 나서 어떤 분인지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됐습니다.”
공작이 내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저도 정말 뵙고 싶었어요. 꼭 만나서 감사 인사를 드렸으면 했거든요.”
“감사는 아마 우리가 해야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이시지?
의아한 얼굴로 브륀힐트 공작을 쳐다보는데, 공작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심호흡을 하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낮에 브륀힐트 공작 부인이 나에게 부탁할 게 있다고 했었지.
“할 말이 있는 얼굴인데.”
킬리언 역시 공작 부부의 긴장한 얼굴을 눈치챘는지 가만히 찻잔을 내려놓고 공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지금껏 전하께서 지시하신 바를 모두 이행해 왔습니다.”
“알고 있어.”
“데인버그를 지켜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고립을 자처한 우리를 늘 보살펴 주셨지요.”
브륀힐트 공작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공작 부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작 부인이 두려움과 절망에 휩싸인 사람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그 순간 공작 부부가 의자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
“……저희가 죄를 지었습니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그들을 만류하려 팔이 뻗어 나가는데, 킬리언의 손이 나를 가만히 저지했다.
그는 짐짓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살짝 미간만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알아듣게 설명해.”
킬리언의 낮은 음성이 티룸을 고요히 울렸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브륀힐트 부인을 진정시키려는지 브륀힐트 공작이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 전하는 물론이거니와 제국 전체를 속여 왔습니다.”
그들을 지켜보는 킬리언의 흉곽이 잠시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브륀힐트 공작이 의자에서 일어나 티룸을 가로지르더니 조용히 문을 열었다.
브륀힐트 부인이 여전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어 나는 황당하면서도 어려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데인. 잠시 들어오거라.”
그때 브륀힐트 공작이 사용인들 가운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의 사용인들 중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캐러멜색의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수려한 외모의 키가 큰 남자였다.
“…….”
짐짓 굳어 있는 남자의 얼굴은 긴장감이 역력했고 감히 킬리언을 쳐다보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브륀힐트 공작이 남자를 데리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자, 브륀힐트 부인의 움츠러든 어깨가 간헐적으로 떨리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게 보였다.
“부…… 부인. 괜찮으세요?”
“데인 제라드. 저희 아들입니다.”
브륀힐트 부인의 안색을 살피며 묻는 찰나, 내 귀가 의심되는 말이 들려왔다.
브륀힐트 가에는 후사가 없다고 하지 않았었어?
공작의 입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져 그들을 쳐다봤다.
공작이 데인에게 자신과 함께 무릎을 꿇게 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전하께 말씀드리지 못한 자식입니다.”
“그런 것 같군.”
킬리언이 냉철하게 대꾸하며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띤 채 공작과 남자를 차례로 내려다봤다.
“데인은 저희의 아들이지만 지금껏 세간에 알린 적이 없습니다.”
“……이름이 데인 제라드라면 그대의 성을 따르지도 않았다는 뜻인데.”
“맞습니다. 가문과 무관한 성을 부여해 살게 했습니다.”
브륀힐트 공작은 번뇌가 가득한 낯빛으로 고개를 들어 킬리언을 바라봤다.
“알려져선 안 될 아이로 태어났고, 제국의 법에 따라 추방하거나 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줘선 안 됐겠지만, 어찌하여 부모가 낳은 자식을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브륀힐트 공작의 설명에 저절로 시선이 데인이라는 남자에게 향했다.
알려져선 안 될 사람이라는 게 납득되지 않을 만큼 그는 평범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띠고 있었다.
내가 데인을 쳐다보는 눈길을 알아챈 공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제법 건강해 보이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다 레네트 님의 덕분이지요.”
“네……?”
내 덕분이라고?
“레네트 님의 편지가 데인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네에?!”
* * *
브륀힐트 공작 부부는 오랫동안 후사를 보지 못하다 뒤늦게 자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태어나고 보니 아이가 평범한 제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들에게서 오러가 발현된 것이다.
“!”
공작의 지시에 데인이 머뭇거리며 장갑을 벗고 찻잔을 쥐자 순식간에 살얼음이 컵을 뒤덮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보시다시피 데인에게 오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아들로 산다면 세간의 이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 신하의 성을 따르게 했습니다. 저희 가문이 철저히 외부와 소통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데인버그의 경제를 위해 데인버그인들이 무역을 하거나 상업을 하는 데에까지는 제한을 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종족에 대한 정보나 서책은 제국에서 모두 구하기 어려워 그들 나름대로 데인을 보호하려 애써 왔다고 했다.
때문에 누구도 데인에게 오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킬 수 없었고, 오히려 발동하지 못한 오러가 문제가 됐는지 데인의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의사들 역시 손을 쓸 수 없는 현상이라 행할 수 있는 치료는 진통제를 주는 것만이 전부였고, 브륀힐트 부부는 남몰래 고통스러워하는 데인이 곧 죽을 거라는 예감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레네트 님의 편지를 받은 후로 데인의 상태가 급격히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데인버그에서도 극소수의 지인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데인은 브륀힐트 가의 사용인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날도 역시 공작 부부 곁에는 데인이 서 있었다고 했다.
킬리언의 전서와 함께 내 편지가 동봉되어 도착했고, 여느 때처럼 이를 전한 게 데인이었다.
당시의 데인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심장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중이었는데, 부모님의 염려를 막고자 부단히 괜찮은 척 애를 쓰다 문득 난생처음으로 숨통이 확 트이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 후 내 편지를 그가 소지하며 다녔는데, 완벽하게 진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좀 더 수월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저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얼음 속성의 오러를 표출하지 못하고 몸 안에 가둬 두었던 데인의 심장에 무리가 왔고, 그 상태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내 편지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부탁할 게 있다고 하셨던 게…….”
내가 낮에 들었던 브륀힐트 부인의 말을 상기하며 운을 떼자, 브륀힐트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간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데인이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만이라도 레네트 님을 곁에서 모시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 *
“싫어.”
나를 침실로 데려다주겠다는 명목하에 함께 침실에 들어간 킬리언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가까이 지내는 건 안 돼.”
창가 옆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그가 불편해진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껏 데인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차마 멀리 보내지 못했지만, 나로 인해 데인의 건강이 회복된다면 그를 멀리 보내고, 데인버그에 대한 모든 권리를 킬리언에게 위임한 뒤 부부 역시 데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아들이 그들보다 먼저 죽을 것 같아 아들이 죽고 나면 킬리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할 계획이었지만, 데인의 증세가 호전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 함께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궁전에 찾아온 것으로 추정됐다.
“왜요?”
나는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왜인지 킬리언은 쉽게 허락하지 않은 채 그들에게 일단 숙소로 지낼 방으로 돌아가 쉬라고 했다.
“전하. 데인이 제 편지를 받고 통증이 가라앉았을 정도라면, 같이 지내다 보면 정말 좋아질지도 몰라요. 거기다 브륀힐트 공작 덕택에 제가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걸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됐잖아요? 상대가 오러를 가진 분들에 한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에게 내 생각을 말하는데, 의자를 뒤로 뺀 그가 나를 앉히며 내 어깨를 가만히 눌렀다.
“난 싫어.”
킬리언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대꾸한 후 맞은편에 앉았다.
화끈해진 양 볼을 감추며 나는 그를 쳐다봤다.
“전하, 전 브륀힐트 공작님께 도움을 받은 사람이잖아요. 그걸 갚을 수 있는 기회인데 거절할 수는 없어요.”
그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내 손을 가져가 잡았다.
“다른 해결책을 찾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그치만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데인이 잠시 여기에서 지내는 것뿐인데.”
“내가 싫어.”
“왜요? 설마 질투하세요?”
“당연하잖아.”
그냥 해 본 소리에 예상치 못한 대답이 훅 들어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질문에는 늘 아니라고 했잖아?
말문이 확 막혀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킬리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반길 거라 생각한 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냥 곁에만 있는 거잖아요. 가스파르처럼.”
“가스파르도 백 번 고심해 붙여 놓았다는 걸 몰랐나 보군.”
“…….”
킬리언이 굳은 눈빛을 띤 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전하도 브륀힐트 공작 부부가 신경 쓰이시잖아요. 데인에 대한 마음도 그러실 테고.”
오러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던 데인의 이야기를 듣던 킬리언이 착잡함을 숨기지 못한 채 서서히 눈을 내리뜨는 것을 보았다.
상념에 휩싸인 그를 보며 나는 내 손등을 덮고 있는 그의 손에 나머지 빈손을 포개 잡았다.
그의 그림 같은 눈매가 살짝 멈칫하는 게 보였다.
“전하가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않으셨던 데에는 데인에 대한 연민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
“어떻게 하면 허락해 주실 거예요?”
내가 그와 눈을 마주치며 묻자 킬리언이 내 손을 쥐고는 그의 얼굴을 감싸게 했다.
손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에 단박에 숨이 멎고 열이 오르는 찰나 그가 비딱하게 내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지그시 나를 응시했다.
“날 안심시켜 줘, 레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