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44)
Chapter 44
킬리언이 내 눈을 응시한 채 대답을 받아 내려는 사람처럼 잠자코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얼굴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몸을 뒤로 물리려 했지만 나를 굳건히 가둔 그의 팔에 등이 닿아 쭈뼛 얼어붙었다.
내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의 무표정한 눈동자가 일순 나른하게 미소 지었다.
“약속한 거야. 약속한 건 지켜야지. 그렇지?”
“아……. 그, 그렇죠.”
“아직 춥지?”
“네.”
내가 다시 한번 홀린 듯 수긍하자 그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입가를 끌어 올렸다.
배부른 포식자처럼 한결 여유를 되찾은 듯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나를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쿵쿵쿵쿵.
깜짝 놀라 심장이 튀어 나갈 것처럼 쿵쿵 뛰어 대기 시작해, 화들짝 놀란 숨을 꾹 참았다.
히끅. 숨을 참았더니 덕분에 더욱 심장이 세차게 뛰도록 부추기는 꼴이 되어, 놀라면 심호흡을 했어야지, 하는 기본적인 상식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신 차려, 나 자신!
나는 불현듯 그가 나를 노련하게 조련한다는 생각이 들자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지키겠다고?”
다소 불만스러워하는 그의 어조가 들려오자 아차 싶어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무슨 일이 생기면 이제 말은 할 건데요……!”
하마터면 그 잘생긴 얼굴에 홀려서 정신을 놓을 뻔한 건 문제잖아요?
나는 이 모든 게 아직 악몽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탓이라 여기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냥 잘 아, 안아 주기나 하세요. 춥단 말이에요.”
뭐가 됐든 다 말하라고 했으니 당당하게 무엇이든 소리 내서 말해야지.
나는 꼭 나 자신에게 태평함을 증명하듯 뻔뻔하게 그의 품을 요구한 후 고개를 푹 숙였다.
아직 추운 탓에 본능적으로 그의 품에 안기기는 했지만, 어쩐지 내 낯이 두꺼워진 기분도 들어 목덜미가 홧홧했다.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내 몸을 녹이려는 의지가 만들어 낸 상황일 뿐이야. 난 전혀 부끄럽지 않아. 난 조금도 아무렇지 않아야 해.
분열된 자아가 서로 다른 주문을 외우며 각자의 주장을 펼쳐 가는 동안에도 내 몸은 착실하게 킬리언의 품에 파고들어 온기를 가져오려 애쓰고 있었다.
느릿하게 등을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시계 초침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나는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하지 못했지만, 아까 그가 무엇이든 말하라고 했던 걸 떠올리고 있었다.
“저…… 악몽을 꾸고 났더니 추워졌어요. 전하도 그런 적 있으세요?”
“아니. 난 없어.”
“음, 그럼 저만 이렇다는 거네요.”
악몽을 꾼 건 비슷한데, 킬리언은 단 한 번도 추위를 느끼며 깬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설마 아니 털이 없어져서? 에이, 설마. 그런 우스운 이유는 아니어야 할 텐데.
“고양이가 아니라서 그럴지도.”
“네?”
“몸을 덮고 있던 털이 없어진 셈이니까.”
내 머릿속을 열어 본 건지, 킬리언이 차분하게 대답하자 나는 무척 당황스러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곧바로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었지만, 생각나는 게 있어야 말이지.
와, 인정하기 싫은데.
“장난이야. 그대는 악몽을 꾸는 동안 고양이도 되고 사람도 됐거든. 체온은 그사이에 서서히 떨어졌고.”
“아…….”
그가 짓궂게 꺼낸 말이라는 걸 알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왜 체온이 떨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그대의 상태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걸 찾아보는 중이야.”
“전 괜찮…….”
“또 그렇게 말하는군.”
“……지만, 건강검진은 만인이 받아야 할 필수 사항이죠. 네, 제게도 필요한 거겠어요, 전하. 꼭 찾아주세요.”
돌연 가느다랗게 눈을 뜬 킬리언이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빙긋 미소 지었다.
“만인이 받을 검진이라. 그 방법도 마련해야겠어.”
지금까지 제국민들은 건강검진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소리인 건가.
하기야, 여긴 전생에 내가 있던 곳과는 다른 세계였다.
어쩐지 제국민 건강증진에 힘을 보탠 것 같아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대는 왜 매번 괜찮다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된 거지.”
“징징댄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요?”
전생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어른들의 말씀을 중얼거리던 나는 불현듯 내 등을 쓰다듬어 주던 그의 손길이 그친 게 느껴졌다.
“그렇게 굴었던 적도 없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나는 그대에게 징징댄다는 표현은 안 쓸 텐데.”
“음, 전하께선 그러실 것 같아요.”
킬리언의 입에서 징징댄다는 말이 나오는 건 상상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끔뻑끔뻑 떴다.
“……전하. 아까 뭐든 다 말하라 하셨죠.”
“응, 전부.”
킬리언의 대답에 나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졸려요.”
“뭐.”
“가위를 오래 눌려서인지……. 조금 따뜻해지니 잠이 막 쏟아져요. 잠들기 무서운데.”
“안 자면 안 되나?”
“하하.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거였어요?”
겨우 입을 달싹이는 가운데 그의 말이 조금 우스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생각의 결론은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잠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설마 이렇게 깨어나고 악몽을 다시 꾸는 건 아니겠지?
“지긋지……긋한데.”
“뭐가.”
나를 내려다보는 킬리언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 황태자 전하……. 재킷…… 어딨어요.”
나는 왜인지 잠들기 전 해 둬야 할 말을 미리 건네야 할 것 같아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건 갑자기 왜.”
“그거 입고 저 안고 계세요.”
지금 딱 좋을 만큼 아늑하니까 나 놓지 말구요. 셔츠만 입고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다시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부릅뜨며 그와 눈을 마주치려 애썼다.
별안간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던 그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차라리 자는 게 낫겠어.”
내가 볼썽사납게 그를 올려다보고 있던 건지, 킬리언이 친히 손으로 내 눈을 감겨 주었다.
무섭도록 나른하게 덮쳐 오는 잠에 따스한 온기를 놓치고 싶진 않아 더욱 그의 셔츠를 꼭 붙잡은 채 말했다.
“……따뜻해지긴 했는데 다시 추워질까 겁나요. 제가 잠들고 나서도 몸이 따뜻하면 그땐 그냥 침대에 눕혀놔 주세요.”
잠결에 본심을 털어놓는데 그가 잠잠했다.
못 믿으시나. 정말인데. 혹시나 그의 품이 좋아 붙어 있는 여자로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음……. 안 일어나면 깨워 주실 거죠?”
“아마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감사합니다…….”
나는 비로소 안심이 돼 스르륵 그에게 몸을 기댔다.
그러니까 원래 잠이 든다는 건 이런 기분이어야 하는 거다.
막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정신을 놓는 게 아니라, 서서히 온몸이 녹아나고 따뜻한 곳에 기대게 되는 그런 느낌이 드는 거 말이다.
“근데 뭐가 지긋지긋하다는 거지?”
뭐라시는 건지…….
“잠…… 와요.”
느릿하게 대꾸하며 몸이 자꾸만 뒤로 떨어지자 나를 안고 있는 그의 팔이 나를 더욱 단단히 안아 주는 게 느껴졌다.
나를 지탱해 주는 손길이 든든했다.
킬리언의 셔츠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지만 자꾸만 손에 힘이 풀려 헛나가 결국에 포기했다.
내 손이 내려가는 찰나 킬리언이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장 그의 손이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손도 역시나 따뜻했다.
이불보다 따뜻한 황태자 전하.
나는 동굴 속에 몸을 웅크리듯 품에 파고들어 무거운 의식을 날려 버렸다.
이제야 정말 제대로 된 잠을 청하는 기분이었다.
* * *
“후…….”
그래, 누군가는 편하게 잘 수 있다지만.
그럼 이쪽은 어떡하라고.
킬리언은 한쪽 눈썹을 휘어 올린 채 사뭇 불만스러운 얼굴로 제 품에 기대 잠든 레네트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들리고 부드럽게 솟은 콧대와 깊게 감인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다 결국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가 잠결에도 재킷을 찾았던 게 무슨 뜻인지 킬리언 역시 명확히 알고 있었다.
레네트는 슈미즈 차림이었고 그는 간단한 셔츠와 팬츠 차림이었다.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그녀를 동상처럼 안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시 그녀를 떨어뜨려 놓고 재킷을 가지러 다녀올 수가 있겠는가?
“안 되지.”
레네트를 안고 있던 킬리언은 침대 기둥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
기둥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기댈 수 있을 만큼은 튼튼했다.
그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레네트의 달큼한 체향과 보송보송한 무언가가 가슴을 간질거렸다.
“머리카락…….”
그가 찡긋거리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무심히 레네트의 머리칼을 정돈하듯 쓸어내렸다.
그러곤 팔을 뻗어 레네트의 손가락을 가볍게 쥐었다.
쥘 때마다 놀랍도록 연약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이란 생각이 다시금 그의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아까보단 체온이 돌아온 것 같기도 하고.”
얼음장처럼 차갑던 손끝이 미지근하게 변한 걸로 보아 조금만 더 지나면 정상체온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녀 자신이야 모르겠지만, 레네트는 사흘간이나 잠들어 있었다.
체온이 계속해서 떨어져 바른과 해리드가 수시로 이 손님용 방에 불을 지피고 온도를 높였지만 딱히 소용은 없었다.
‘나으려고 그러는 것 같아. 나도 그랬어.’
사누아의 말이 없었다면 글쎄, 과연 안심하고 그대로 지켜볼 수 있었을까?
사누아는 레네트와 신력이 통한 후 가벼운 탈수 증상과 감기 증세가 보였는데 낫기 직전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고 했다. 바른은 사누아가 오한을 앓았다는 것에 크게 놀라며 왜 자신에게 말해 주지 않았느냐 다그쳤지만-거의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누아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진정한 사내는 그런 것도 이겨 내야 하는 법이랬어.’
저번처럼 사냥꾼의 정신을 운운해 대는 사누아의 말이 떠오른 킬리언이 비딱한 미소를 띤 채 다시 눈을 감았다.
‘대체 어떤 사냥꾼이 그런 소릴 한 건지.’
나른한 한숨을 흘려보낸 그의 입술이 가만히 닫혔다.
레네트의 손끝이 여전히 그의 손가락에 걸려 있었다.
장애물 없이 맞닿을 수 있는 유일한 살결이었다.
킬리언의 손이 기름칠이 되지 않아 뻑뻑한 이음새처럼 어색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그녀의 가는 손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한결 낫군.”
의식적으로 꺼낸 말이 긴장한 사람의 것처럼 딱딱했다.
킬리언은 저 자신이 우스워 헛웃음을 지었지만 레네트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
그녀가 한기를 느끼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품에 파고들었다는 것을 킬리언도 알고 있었다.
체온을 회복하려는 본능이 시킨 행동이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그로선 가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슴을 들썩이며 서럽게 울던 그녀가 눈물을 손등으로 빠르게 닦아 내고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곧장 그의 목을 끌어안고 뺨을 비비며 체온을 느끼려 하는 순간.
킬리언은 호흡이 삽시간에 사그라진다는 게 무엇인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온 신경이 쭈뼛 곤두서는 기분.
감당해 본 적 없는 무언가가 순식간에 치솟아 뜨겁게 내부를 달궈 놓은 생경함.
반사적으로 끌어안을 뻔하다 주춤 팔을 내려놓고 잠자코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면서도,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전신을 지배하던 것까지. 떠올리는 순간 모든 게 방금 겪은 것처럼 생생했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