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43)
Chapter 43
잠잠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더욱 나는 이번만은 제발 꿈이 아니길 절실히 바랐다.
차라리 다치게 하기 전에 이렇게 붙어 있다면 내가 그에게 칼을 들이댈 여유가 없지 않을까?
“안심해도 돼. 이건 꿈 아니야.”
킬리언이 꼭 내 속을 꿰뚫어 본 사람처럼 내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혹여나 그가 갑자기 돌변하여 내 귓가에 나쁜 말을 속삭일까 두려워 심장이 덜컥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레네트. 잠깐만. 안색이 어떤지, 상태가 어떤지만 보자. 눈뜬 모습도 아직 제대로 못 봤어.”
킬리언이 나를 떼어 놓으려 했지만 나는 아까처럼 부질없는 희망을 품은 게 아닌가 싶어 그의 얼굴을 보는 게 주저됐다.
반복해서 내 뒤통수를 쓰다듬는 손길이 이어졌다.
나는 결국 망설이다 입을 달싹였다.
“혹시 지금 여기에…… 칼…… 있어요……?”
내 질문에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없어. 그 비슷한 것도.”
“혹시 그쪽의 손톱이 막 길거나, 이빨이 날카롭거나 하는 건…… 아닌가요?”
“칼은 알겠는데, 손톱이나 이빨은 대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전혀 예상이 안 되는데. 자 이제, 얼굴 좀 보여 줘.”
어쩐지 꿈에서 듣지 못한 원래의 킬리언의 말투인 것 같았다.
뭐랄까. 전혀 다정하지 않은데 어르는 기분이 들게 하는 말투 말이다.
“진짜…… 전하예요?”
“응. 나야.”
귓가에 속삭이며 안심시키듯 내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진짜 같다…….”
나는 여차하면 다시 끌어안고 절대 칼을 쥐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그의 목에 교차했던 팔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자 얼굴 위로 서늘한 공기가 파고드는 듯하더니 킬리언이 내 뒤통수를 감싼 채 베개에 손등을 묻었다.
좁은 간격을 두고 비로소 마주하게 된 얼굴이 정말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의 킬리언이었다.
“오랫동안 악몽을 꿨어. 그렇지?”
그의 질문에 차디찬 기시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해리드에게 네 기억을 볼 수 있게 도와달라 했어.”
내가 기억하는 악몽과 다른 대답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경직된 어깨가 가라앉는 동시에 울컥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치달아 올랐다.
“내가 신탁의 예언처럼 모두를 불행하게 했어요.”
내가 겨우 입을 달싹거리자, 내 불안함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 사람처럼 킬리언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잘못된 꿈이야.”
“내가…… 모두를 죽이기도 했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전부가 나를 증오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있던 나는 정말 그럴 만했지만.”
“감히, 누가?”
꿈에서 보았던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얼굴과 달리 불만을 표하듯 묘하게 미간을 찌푸린 얼굴을 보니 이게 정말 꿈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무덤덤한 대답을 듣고 진심으로 기쁘다니,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다행스러웠다.
“미안해.”
오랫동안 눌린 가위에 풀려나듯 녹초가 돼 감감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는데 킬리언이 말했다.
“안일했어. 너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내가 경솔하게 행동했어.”
후회가 짙게 밴 얼굴에 씁쓸함이 감도는 것 같았다.
“전하 탓이 아니에요.”
나를 보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잠시 커졌지만 나는 이 말을 해 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기젤라 부인의 음식을 먹은 건 킬리언이지 내가 아니었으니까.
그가 약을 먹는다고 하여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그 안에 흑마법약이 들어 있는 걸 알고 있는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의 탓이라 말할 순 없었다.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
나는 겨우 입을 달싹여 대답하고는 턱이 바르르 떨릴 만큼 몸이 춥다는 걸 깨달았다.
킬리언을 느슨하게 놓는 순간 얼굴에 느꼈던 찬기가 단순히 주변 기온의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킬리언의 목에 두르고 있던 손목이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추……워요…….”
본능적으로 춥다고 토로하며 다시 그를 잡으려 해 보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팔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만.”
바르작거리는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챈 건지, 킬리언의 손이 나를 완연히 일으켜 품에 안았다.
그의 무릎에 앉힌 채 단단한 팔이 나를 울타리처럼 휘감고 머리를 가슴에 기대게 한 후에야 비로소 뜨거운 온기가 몸에 와 닿았다.
몸을 녹일 것처럼 따뜻한 그의 체온이 구석구석 혈관을 타고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전달되는 것 같아 나는 더욱 살기 위해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뜨거운 온기에 안도했지만 동시에 나는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
죄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이는 악몽을 꿀 때마다 나는 분명 냉기를 느꼈었다. 그리고 악몽이란 걸 자각하는 순간엔 다시 새로운 꿈에 직면하여 또 다른 혹한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런데 꿈에서 느꼈던 얼음장 같은 그 추위가 비단 꿈에서 그치는 게 아닌 현실로 이어져 있다는 게 의아했다.
“왜 그래.”
내 표정이 안 좋아진 건지 고개를 숙여 나를 지켜보던 킬리언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별일 아니라 했지만 그가 이젠 무엇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나를 잠시 떼어 냈다.
“말해 봐.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추워서 그랬어요.”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다시 그에게 파묻었다. 이윽고 그의 손이 이불로 나를 덮어 준 후 꼭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지금은 하나하나 침착하게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당장 무언가를 말하는 게 옳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 난 내 감정이나 기분에 대해 입 밖에 내거나 남에게 표현한 적이 없어 어려웠다.
나는 그저 지금의 이 감정에 대해 말하기를 유보하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 추위가 가시길 기다렸다.
“…….”
그의 셔츠 너머로 전해 오는 뜨거운 체온이 겨울이 지나 찾아온 봄처럼 반가웠다.
따사로운 기온에 움트는 새싹처럼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고, 심장 부근부터 손발 끝까지 온기가 쭉쭉 뻗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말해 줄 수 없는 문제인가. 아니면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퍼뜩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방금까지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게 다시 불안해하거나 아니면 그를 원망하는 걸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 애써 입가를 올려 밝게 웃어 보였다.
“정말 별일 아니었어요.”
“다시 꿈이 생각나서 무서워졌다거나.”
“전혀요! 사실 별로 무서운 것도 아니었어요. 꿈에서도 그게 꿈인 줄 알고 있었는데요, 뭐. 정말 괜찮아졌……!”
나름 배려라고 한 말인데 통하지 않았던 걸까.
킬리언의 표정은 외려 어두워져 있었다.
“……그래?”
어쩐지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킬리언이 내 머리를 그의 가슴에 도로 기대도록 지그시 눌렀다.
떼어 내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압박해 오는 악력이었다.
얇은 셔츠 너머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이 내 귓가를 울렸다.
“진짜예요……. 전하.”
“그 말을 믿으라고.”
그냥 넘어가 줄 마음은 전혀 없어 보이는 퉁명스러운 어투였다.
“……믿어야죠. 제가 괜찮다는데, 안 믿으시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볼멘소리로 중얼거리자 헛웃음 짓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그가 다시 나를 살짝 떼어 내 눈을 마주쳐 왔다.
“그럼 지금 몸은 좀 어때.”
“네?”
아까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몸은 아직도 이곳을 쌀쌀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지금은 괜찮아진 건가?”
그가 한층 더 비딱해진 미소를 품고서 물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검푸른 머리칼 아래 우아하게 뻗은 긴 눈매가 나를 내려다보느라 반쯤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굳은 입매는 언짢아지기 직전의 사람의 것처럼 냉소적이었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벽난로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램프의 낮은 조도에 음영이 드리워진 그의 얼굴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그의 눈이 조금은 충혈돼 있는 것도 같았다.
꼭 며칠 못 잔 사람처럼 선명하던 눈빛이 수면 아래 잠겨 어두워져 보이기도 하고.
“응?”
대답이 없는 나를 부드럽게 채근하듯, 킬리언의 정적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제야 그를 쳐다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황태자에게 구태여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내 컨디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건 확실하고. 뭐, 내 상태가 퍽 중요한 문제는 아니잖아?
내가 어떤지는 나도, 그도 모두 괜찮은 상태일 때, 그래 어쩌면 내일 날이 밝았을 때 말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음, 아까처럼 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을 때가 좋았는데. 어디에서부터 킬리언이 기분이 나빠진 걸까?
“정말 괜찮은 게 확실해?”
“진짜예요. 정말 멀쩡해졌어요.”
“항상 그렇게 대답하잖아, 넌.”
그가 자못 낮아진 음성으로 말하며 나를 서늘하게 응시했다.
놀란 내 반응에 멈칫한 그가 이내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단정한 그의 머리가 살짝 흐트러지고, 피로한 듯한 얼굴에 착잡함이 느껴졌다.
“그 괜찮다는 대답이. 끝내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찰나 그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
내가 가진 두려움과 불안함은 별 게 아니라 치부하며 괜찮다고 대신한 말들이 잘못된 걸까.
솔직하게 말했다간 징징대는 거라며 핀잔을 듣기 일쑤였던 전생의 나날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 순간 상념을 밀어내듯 킬리언의 손길이 흘러내린 내 머리칼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뭐가 됐든 상관없어.”
눈앞에 드리워진 머리칼이 넘겨질수록 킬리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게 뭐가 됐든, 말해 줘.”
이윽고 깨끗해진 시야 속 킬리언을 마주하게 되자, 그가 내 코를 가만히 톡 건드렸다.
“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