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69)
Chapter 69
“아……. 저는…….”
진짜 공녀도 아닌 데다 언제 고양이로 다시 돌아갈지 모르는 존재인데요.
신분의 차이도 그렇고, 아직 신탁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라서 살아 있는 게 들통나면 큰일 날 사람인데…….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찰나 그의 한쪽 입가가 비딱하게 올라갔다.
“생각이 너무 많군.”
“장난이셨어요?”
“아마도.”
킬리언이 대꾸하며 내게서 몸을 떼어 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와 달리 그는 별반 심각하게 건넨 말이 아닌 것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뭐야, 무슨 그런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담?!
“전하께선 누구와 결혼을 해도 상관없으신 거예요?”
“그런 셈이지.”
킬리언이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나를 쳐다봤다.
하! 그러니까 그가 방금 한 ‘아마도’란 건 반은 진담이고 반은 농담이란 뜻일 것이다.
누구와 해도 상관없는 입장이니, 그게 나여도 무방하다는 것.
“와, 너무하시다.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너무하긴, 누가?”
내 머리칼을 장난삼아 사락 건드린 그가 내게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레네트, 손 줘야지?”
“꼭 강아지 대하는 것 같으시거든요, 지금?”
“전에 성을 구경하고 싶다지 않았었나.”
“아……. 그건 맞아요.”
난 성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나 마지못해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킬리언이 빙긋 웃음을 띤 채 나를 내려다봤다.
“어디부터 가고 싶어?”
“음, 기젤라 부인의 방이 있는 층이요.”
내가 단박에 머릿속에 떠오른 곳을 대답하자 그가 입가에 띤 미소를 사늘하게 바꾸며 나긋하게 대답했다.
“안 돼.”
* * *
내가 지낼 방이 꾸며지는 동안 킬리언은 본성을 포함해 다른 성들에 대해 간략한 쓰임을 설명해 줬다.
이윽고 궁내부장이 다가와 내가 지낼 곳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고 보고했다.
“우와.”
킬리언이 데리고 간 방은 본성 안에 위치한 침실이었다.
천장까지 이어진 유리창 앞에 아치형으로 길게 늘어뜨려진 짙은 노란 커튼들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녹음이 아름다웠다.
고풍스러운 마호가니 책상과 의자를 비롯한 곳곳에 놓인 콘솔과 그 위의 조형물들, 그리고 소파와 멋스러운 풋스툴, 화려한 카펫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화병에 꽂힌 프리지어를 매만지다 나는 킬리언을 돌아봤다.
“여길 제가 쓰라구요?”
“응. 내 방과 같은 층이야. 서쪽 끝에 위치해 있어.”
킬리언과 같은 층이라고?
다른 귀족들은 무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며칠 황실 아파트에서 머문다고 했다. 귀족들이 쓰는 아파트는 본성의 왼편에 위치해 있었고, 나 역시 그중 한 곳에 있을 줄 알았다.
한때 낮에도 고양이였던 내가, 이 성에서 황태자와 같은 층의 방을 쓰게 될 거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새삼 달라진 내 환경이 실감돼 어안이 벙벙했다.
“좀 더 봐도 돼요?”
“물론.”
그가 대답에 폭신한 카펫을 밟으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황태자가 쓰는 방보다야 좁겠지만 널따랗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꾸며진 호사스러운 공간이었다.
때때로 참지 못한 감탄이 쏟아져나오면 킬리언의 입가가 가만히 올라갔다.
“레네트. 만일 이 침실을 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알아요, 전하께 바로 달려가 알릴 거예요!”
매끄러운 대리석과 상앗빛 욕조를 황홀하게 바라보던 내가 냉큼 문고리를 잡고 그에게 말했다.
저번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지나친 과보호이시다. 정말.
재빨리 대답하는 나를 지켜보던 킬리언이 손끝으로 협탁 위 꽃이 새겨진 종을 가볍게 스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기 종을 울리면 된다고 말하려고 한 건데.”
“에……?”
“뭐, 나에게 찾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어진 킬리언의 흔연한 대답에 나는 이대로 흐물흐물 녹아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거군요! 하하, 종을 치면 되겠네요. 종이 있었구나아아……. 종이 예쁘네요, 참…….”
나는 억지로 웃음을 터뜨린 후 그에게 돌아서서 오만상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망신이람?
욕실 문고리를 꽈악 움켜쥔 채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나는 마치 매끄러운 백조처럼 날렵한 곡선으로 빠진 욕조에 흠뻑 취한 사람처럼 그곳에 오래 서 있었다.
흑, 과보호는 무슨……. 내가 망상 환자가 된 게 분명해.
“흠흠.”
민망한 마음을 추스른 나는 애써 평정심을 되찾고 다시 킬리언에게 몸을 돌렸다.
“욕……조가 예쁘네요.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공녀가 쓸 방을 다 봤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어디로요?”
“무도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수치스러운 마음 반, 생전 가져 본 적 없는 값비싼 것들이 즐비한 방에 압도된 마음 반으로 무도회를 까맣게 잊고 말았다.
나는 퍼뜩 고개를 끄덕거렸다.
“본격적으로 둘러보는 건 내일부터 하지.”
의자에서 일어난 킬리언이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내일부터?
나는 이 성을 제대로 둘러봐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기젤라 부인의 방의 위치도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 더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내일은 캐번디시 백작 부인의 마차 사고를 막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리 내 말할 수도 글로 쓸 수도 없다면 몸으로 막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
“어, 내일은…… 제가 따로 가야 할 데가 있어요. 성밖으로요.”
사용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복도를 걷던 킬리언이 우뚝 멈춰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그는 내가 성 밖으로 나가고 싶단 말을 전혀 꺼낼 거라 생각지 못한 사람처럼 굳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딜?”
“리트번에요.”
“그대가 리트번을 어떻게 알지?”
“아, 거기에…….”
돌아가라, 내 머리야. 그럴싸한 걸 생각해 내 봐, 응?
“거기에 예쁜 드레스를 만드는 곳이 있다고 해서요. 아까 무도회에서 부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킬리언이 동행하지 않을 거리를 떠올리다 보니 생각나는 게 드레스뿐이다.
만일 그와 함께 가게 된다면 어떻게든 설명이 필요할 텐데, 내가 아는 것들을 말해 줄 방도가 없어 서로 답답할 노릇일 것이다.
어차피 위험한 일도 아니니 혼자 다녀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내일 시간 낼 테니 같이 가.”
“오오, 아니에요. 저 혼자 다녀와도 충분해요. 필요하다면 사람을 붙여 주세요.”
“사람을 대동하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왜 혼자 가겠다고 하는 거지?”
그가 미간을 좁힌 채 묻자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고작 드레스를 맞추러 가는 일에 황태자 전하와 동행하라구요? 분명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거예요. 온갖 구설도 따르겠죠.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관심이 집중될 일을 더 만들고 싶진 않아요. 거기다 전하께서는 일정이 바쁘시잖아요.”
오늘 이 황실 무도회에 참석한 이들 중에는 대사관들도 많이 있었지만, 기어이 외교 업무를 맡고 있는 황태자와 만나겠다는 일념하에 다른 나라에서 보낸 특사들도 있었다.
킬리언이 내일부터 바빠지리라는 것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돌아올 텐데요, 뭐.”
그를 향해 헤실헤실 웃으며 장담하듯 말한 나는 누가 들을세라 킬리언의 옷자락을 바짝 잡아당겨 나직이 속삭였다.
“대신에,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
* * *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있다.
일국의 황태자와 마주 보고 먹는 황실의 조찬이라니.
정말이지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용인들이 놓은 더운물에 손을 씻고 나자, 아스파라거스와 캐비어 등의 애피타이저가 담긴 접시가 앞에 놓였다.
“따로 싫어하시는 음식은 없다 하시어 준비한 것이라고 합니다. 혹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공녀님.”
“아, 네. 감사해요.”
단정하게 차려입은 시종이 깍듯이 웃으며 한 발 물러섰다.
고양이였을 땐 킬리언이 조찬실로 나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노릇인지라 방에서 사용인들 없이 테이블 가득 차려 놓고 먹어야 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차례대로 우리의 앞에 접시를 옮겨 주려는 모양인 듯싶었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머리를 괸 채 그것을 유유히 지켜보던 킬리언이 내게 시선을 던졌다.
“레네트 공녀. 모두 물러나게 할까 하는데.”
“네. 괜찮아요.”
내가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대답하자 접시를 옮겨 줄 요량으로 서 있던 이들이 모두 조찬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굼뜨게 나가는 이들도 있어 황제가 시킨 감시 겸, 기젤라 부인의 사주를 받은 사용인들이 더러 섞여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잘 잤어?”
“네, 피곤했었나 봐요. 씻고 바로 잠든 것 같아요.”
“어제 보니 꽤 시달리는 것 같더군.”
킬리언이 대꾸한 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유피테르 홀로 돌아가자 나를 붙잡고 데인버그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그간 베일에 둘러싸인 그곳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 역시 직접 본 적 없는 곳이라 난감해하며 배운 대로 대답하는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데인버그에서 나온 커튼들은 정말 환상적이에요, 공녀. 하지만 예약을 해 놓고도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더군요.’
‘공녀가 데인버그에 돌아가 언질 한번 해 주면 우리 모두 더 빨리 받게 되지 않겠어요? 알아봐 주실 수는 있나요?’
데인버그의 자랑으로 알려진 천상의 커튼으로 집 안 곳곳을 꾸미는 게 귀부인들 사이에 부를 자랑하는 방식인 듯했다.
마치 전생에서 값비싼 제품을 들여놓은 인테리어를 외부에 자랑하듯 말이다.
‘공녀 꼭 좀 부탁해요. 특히 저 레고트 자작 부인보다는 제가 더 빨리 받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지금 이 세계엔 귀부인들 간 각자 집에 초대하여 티타임을 갖는 게 비일비재한 일이니 그 귀하고 손에 넣기 힘들다던 데인버그의 커튼을 온 집 안에 장식해 놓는 게 부를 과시하는 수단인 모양이었다.
‘하하하, 제가 도움이 돼 드리면 좋겠지만 그 일은 제 소임이 아니라서…….’
‘물론이에요, 공녀. 그냥 언질 한 번만 해 주면 좋겠다, 이거죠.’
진땀을 빼며 간신히 웃어넘겼지만, 왜 데인버그가 천상의 커튼을 굳이 오로라라 밝히지 않았는지는 대강 알 만했다.
말 그대로 커튼일 거라 지레짐작하여 데인버그에서 나온 커튼을 사방에서 찬양하니 높은 가격을 불러도 모두가 군소리 없이 지불했으리라. 그러니 이른바 명품이 된 데인버그의 커튼을 구태여 오로라를 가리킨 말이라 밝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미지의 땅이라 알려진 데인버그에서 나온 공산품답게 사람들은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손에 넣고자 모두가 염원하고 있었다.
“전하께선 잘 주무셨어요?”
“글쎄.”
킬리언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못 주무셨어요?”
“그런 셈이지.”
“왜요?”
“왜일까.”
나는 테이블 위에 차려진 갖가지 요리들을 살펴보기 전 맞은편 상석에 앉아 있는 킬리언을 유심히 바라봤다.
태연한 눈빛을 띤 채 입가를 비뚜름하게 올린 그의 얼굴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황홀할 만큼 잘생겼다는 것 이외엔 딱히 감지되는 게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자세히 봐 봐.”
자세히?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 그에게 종종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