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창과 방패 (8)
“조종수, 정지!”
처음 바르크만의 앞을 막아선 것은 소련군의 대전차포였다.
비록 포탄은 빗맞았지만, 적습을 인지한 바르크만은 서둘러 정지 명령을 내렸다.
“로스케 놈들, 어디에 숨은 거야?”
대전차포가 발포하자, 이를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 소련군 보병들이 일제사격을 개시했다.
노오란 꼬리를 물며 날아온 총알들이 전차 장갑에 튕겨 나갔다.
적의 맹렬한 사격에 바르크만은 고개를 더욱 낮추면서도, 끝까지 해치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독일 전차장들은 소련과 영국, 미국 등 연합군 전차장들과 달리 항상 해치를 열고 밖에 얼굴을 내밀고 다녔는데, 해치를 완전히 밀폐한 상태보다 더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 넓은 시야는 적들을 보다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독일군 전차장들은 파편과 저격수 등 각종 위험에도 불구하고 해치를 열고 고개를 내민 상태에서 전투를 치렀다.
잠시 후 두 번째 포탄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빗맞지 않았다.
F-22 야포의 76mm 철갑탄은 판터의 전면장갑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러나 포탄은 지면에 튕긴 축구공처럼 장갑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도탄 되었다.
대전차포병들은 자신들이 쏜 철갑탄이 허무하게 튕겨 나가자 경악했다.
F-22 야포는 같은 76mm 구경의 화포 중에서도 명중률과 관통력이 높은 축에 속했지만, 수직장갑 140mm에 맞먹는 판터의 80mm 경사장갑을 관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찾았다. 1시 방향에 적 대전차포!”
수풀 사이로 머즐 브레이크가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거리는 약 850m. KwK 42 전차포의 사정거리 안이었다.
“포탑 돌려!”
소련군 들이 이를 갈며 새 포탄을 장전하는 사이, 포수 포겐도르프 SS 병장은 즉각 바르크만이 말한 방향으로 포탑을 회전시켰다.
약실 안에는 탄약수 카를 겔러 SS 상병이 미리 장전해 둔 유탄이 들어있었다.
“거리 850. 조준 끝나면 바로 말해라.”
“알겠습니다!”
포겐도르프는 상하핸들을 돌려 주포의 각도를 조절했다.
그의 조준경에도 바르크만이 말한 적이 보였다.
수풀로 몸체가 가려져 완벽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수풀 틈새로 적병이 움직이는 광경이 언뜻 보였다.
“조준 완료!”
“발사!”
바르크만의 구령에 맞춰 포겐도르프는 핸들에 달린 주포 격발장치를 눌렀다.
포구에서 집채만 한 오렌지색 섬광이 뿜어져 나오고, 75mm 유탄이 적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바르크만은 섬광에 의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포가 격발하기 전에 미리 눈을 감았다.
포탄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적을 빗겨나갔다. 표적을 맞히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간 포탄은 바위에 처박혀 폭발했다.
잘게 부서진 바위 조각들이 비가 되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바르크만은 혀를 찼다. 아직 적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소련군은 위치가 발각당하자 조급해졌다.
“불명중! 주포를 조금 더 아래로 낮춰!”
바르크만의 지적에 포겐도르프는 얼른 주포의 각도를 수정했다.
핸들을 돌리는 그의 손이 빨라졌다. 그 사이 소련군이 세 번째 포탄을 발사했다.
-캉!
소련군의 포탄은 이번에도 판터에 명중했지만, 세 번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맥없이 튕겨 나갔다.
판터의 전면에는 흠집이 하나 더 생겼을 뿐, 그 외의 피해는 전무했다.
“장전 완료!”
“발사!”
이번에는 맞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포겐도르프는 주포를 격발시켰다. 뜨거운 탄피가 약실 밖으로 배출되어 포탑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포탄은 정확하게 야포의 포방패에 명중했다. 총알과 파편을 막는 데 효과가 있어도, 75mm 유탄을 상대로 포방패는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소련군 포병들도 포탄에 산산이 조각났다. 그들의 조각난 육신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지면에 뿌려진 소련 병사들의 팔다리에 벌레들이 몰려들었다.
“끼아아아아아!!”
몸에 불이 붙은 정치장교가 참호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땅바닥을 굴렀지만,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아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포겐도르프는 공축기관총을 난사해 참호의 보병들을 처리했다.
SVT-40과 맥심 기관총을 쏘아대던 보병들이 7.92mm 총알 세례를 받고 널브러졌다.
총알이 뚫고 지나간 구멍으로 붉은 선혈이 흘러나와 동프로이센의 대지를 적셨다.
“잘했어. 다시 전진.”
***
소련군은 독일군이 반격을 가해오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독일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소련군은 곳곳에서 패주하기 시작했다.
하우서가 반격을 위해 예비대로 돌렸던 LSSAH는 반격의 선봉에 서서 조국을 침략한 붉은 군대의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갰다.
“됐다. 정지.”
이동 중인 소련군의 대열을 발견한 비트만은 정지를 명령했다.
소련군은 전방에서 일어난 혼란에 당황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명령대로 남쪽으로 향하던 행렬과 분대, 소대 단위로 나뉘어 퇴각하는 소련군 패잔병들이 만나 혼란을 야기했다.
트럭과 보병, 대포, 전차, 오토바이가 한데 뒤섞여 혼잡해진 도로를 바라보며 비트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볼, 맨 앞에 있는 T-34부터 처리한다. 거리 1200.”
비트만은 가장 먼저 눈에 띈 T-34를 첫 제물로 삼기로 했다.
활짝 열린 두 해치 밖으로 전차장과 탄약수가 나와 밖의 보병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티거의 88mm 주포가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른 채 서로를 향해 소리쳤다.
“조준 완료. 쏠까요?”
“그래, 쏴!”
볼이 발사한 포탄은 T-34의 측면에 명중했다. 측면장갑을 관통한 철갑탄이 전차를 유폭으로 몰고 갔다.
둥글둥글하게 생긴 포탑이 로켓마냥 공중으로 치솟고, 전차병들과 대화하던 보병들이 화염에 삼켜져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들의 피와 살점이 몇 m 떨어진 곳에까지 튀었다.
비트만 소대의 티거 3대도 연달아 주포를 발사해 소련군의 대열을 헤집어놓았다.
통신수들도 MG40을 난사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소련군들을 고꾸라뜨렸다.
“장전 완료!”
“발사!”
리히터는 비트만의 지시에 따라 유탄과 철갑탄을 번갈아 가며 장전했다.
88mm 유탄을 맞은 GAZ-AA 트럭이 바닥에 내던져진 도자기처럼 산산이 조각나며 4개의 바퀴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기습으로 패닉에 빠진 T-34 조종수는 주변에 널린 아군 보병들을 깔아뭉개며 도주를 시도하다가 측면에 철갑탄을 맞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아아아아!!!”
T-34의 무한궤도에 깔려 하체가 으스러진 대위가 전차가 폭발하면서 튄 불이 붙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산 채로 불타올랐다.
평소 고함치고, 병사들에게 훈시를 가장한 협박하기 일쑤였던 정치장교는 우측에서 날아든 포탄에 얼굴이 날아가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았다.
비트만의 티거가 12발의 포탄을 쏜 후에야 소련군은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파악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T-34들이 즉시 포탑을 돌려 비트만의 티거를 향해 쏘아댔다. 총 9대의 전차가 제각기 격차를 두고 발포했다.
포탄 두 발이 티거의 포탑 측면을 맞고 튕겨 나갔다. 한 발은 아주 가까운 곳에 터져 기동륜에 경미한 피해를 줬다.
적의 포탄은 티거를 관통하지 못했지만, 안에 있던 전차병들을 충분히 겁먹게 했다.
여러 발의 적탄이 동시에 날아와 전차의 장갑을 두들겨대자 볼은 모든 소련군의 포탄이 자신을 향해 집중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비트만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겁먹지 마라. 어차피 이 거리라면 안전해. 적은 우릴 죽일 수 없지만, 우린 그 반대지.”
폴란드에서부터 포탄 좀 맞아봤다고 자부하는 비트만은 적의 공격을 가소로운 듯이 웃고는 침착하게 다음 목표물을 지정했다.
그의 티거를 향해 집요하게 포탄을 날려대는 KV-1이었다.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적의 포탄은 전차 코앞에 떨어졌다.
“11시와 12시 방향 사이에 있는 놈이다. 거리는 동일. 찾았냐?”
“아, 찾았습니다!”
볼의 눈에도 포탑만 돌린 채 주포를 쏘아대는 KV-1이 보였다. 그는 적 중전차의 측면을 조준했다.
“발사!”
KV-1의 포구에서 섬광이 일었을 때 티거도 불을 뿜었다. KV-1이 쏜 철갑탄은 티거의 포방패를 노크하곤 허공으로 튀었다.
티거가 쏜 포탄은 녀석의 좌측 궤도를 끊어놓았다.
“재장전. 확실하게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볼은 재차 사격을 가해 전차를 완전히 격파했다. 엔진에서 붉은 화염이 솟구치자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나와 도주했다.
도로 위의 소련군을 모두 해치운 비트만의 소대는 다시 전진했다.
전차들이 적을 모두 해치운 덕에 뒤따라온 보병들은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은 티거가 남긴 거대한 무한궤도 자국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잔해와 시체들로 가득한 도로를 통과할 때, 숨어있던 포병들이 45mm 경대전차포로 티거의 측면을 조준했다.
“쏘아!”
포구를 떠난 45mm 철갑탄은 티거의 포탑 아래, 차체 측면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러나 노란 불똥을 튀기며 튕겨 나가는 포탄을 본 포병들은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게 무슨….”
측면을 맞고도 포탄을 튕겨내는 전차라니. 그런 전차가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포병들은 전의를 상실해 반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티거의 80mm 측면장갑은 거리만 충분하다면 76mm 포탄도 무리 없이 튕겨낼 수 있었다.
하물며 그보다 위력이 훨씬 떨어지는 45mm 철갑탄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비트만이 포탑을 돌리라고 지시하기도 전에 뒤따르는 보병들이 적 대전차포를 처리했다.
척탄병 한 명이 수류탄을 던져 대전차포와 적 포병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천둥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대전차포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포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끼아아아아!!!”
“엄마아!”
수류탄에 조각난 팔을 부여잡고 엄마를 찾던 소련군이, SS 상병의 군홧발에 얼굴을 걷어차였다.
군화에 정통으로 맞은 코가 움푹 들어가고, 콧구멍에서 피가 호스처럼 뿜어졌다.
“뒈져라, 뒈져.”
“망할 빨갱이 새끼들!”
병사들은 숨이 붙어있는 소련군들을 총으로 죽이지 않고, 군홧발과 개머리판을 이용해 그들의 숨통을 끊었다.
StG39의 개머리판에 난타당한 소련군의 두개골이 쪼개지면서 뇌수가 튀었다.
군복에 피와 살점이 묻은 SS 일병은 재수 없다는 듯이 시체에 가래침을 뱉었다.
“그만들 해라. 이미 죽었으니까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보다 못한 SS 대위가 입을 열자, 병사들은 다시 전진했다. 이미 티거들은 그들로부터 100m나 앞서가고 있었다.
얼마 못 가 비트만은 새로운 소련군 무리와 마주쳤다.
앞에 해치웠던 놈들에게 연락받았는지 이번에 마주친 적군은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다.
“왔다!”
“사격해!”
티거가 다가오자, PTRD-41 대전차소총 5정이 제각기 불을 뿜었다.
개머리판에 쇠막대기를 이어붙인 듯한 기묘한 생김새의 PTRD-41은 100m에서 40mm의 장갑판을 관통하는 게 전부여서 티거의 장갑을 뚫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대전차사수들은 전차의 약점인 관측창을 주로 노렸다.
“씨발. 로스케 새끼들, 뭘 좀 아는데? 관측창만 집중적으로 노리는군.”
14.5mm 총탄이 연달아 관측창 주변을 때리자 하셀이 내뱉은 말이었다.
비트만의 큐폴라를 향해서도 총탄 몇 발이 날아왔지만, 죄다 빗나갈 뿐이었다.
“개좆같은 새끼들. 사람 귀찮게 만드네.”
통신수 울리히 마티우스 SS 병장이 MG40을 난사하자 대전차소총을 쏘던 소련군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MG40의 집중사격을 받은 사수의 머리통이 으깨지면서 곤죽이 된 뇌가 사방으로 튀었다.
볼도 포탑의 공축기관총을 발사해 참호의 적 보병들을 쓸어버렸다.
소련 병사들은 티거가 다가오자 도망가거나, 혹은 수류탄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그들의 총탄과 수류탄 따위론 강철 호랑이에게 어떤 타격도 줄 수 없었다.
백날, 천날 쏴봐라. 겨우 소총탄 따위론 티거에 흠집도 낼 수 없으니!
티거는 적 보병들의 공격을 무시한 채 그대로 진격했다.
무한궤도가 죽은 적병의 시체를 으스러뜨리고 차체의 전면기관총과 공축기관총이 연달아 불을 뿜어 적들의 몸에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기관총에 맞은 병사들의 몸이 터져나가며 피와 내장이 튀어나왔다.
“정면에 대전차포다!”
소련군에 몇 대 없는 ZiS-2 대전차포가 정면에서 티거를 노리고 있었다.
마티우스가 MG40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틱 소리가 나면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총탄이 다 떨어진 것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지금!”
마티우스가 욕을 하며 재장전하는 사이 포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차체를 노렸다면 관통에 성공했겠지만, 포수가 긴장한 나머지 조준을 너무 높게 잡는 바람에 57mm 철갑탄은 포방패에 박혔다.
주포를 낮춰 적을 조준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그대로 밟아버린다. 하셀, 속도를 올려!”
“알겠습니다!”
가속페달을 밟자 티거의 엔진이 포효하며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티거는 단숨에 대전차포 앞까지 달려와, 48톤의 무게로 대전차포를 사뿐하게 즈려밟았다. 대전차포를 붙들고 있던 소련군들까지도.
소련군에겐 비명을 지를 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무한궤도가 그들의 머리통까지 수박처럼 으스러뜨렸다.
갑자기 머리에 가해진 압력으로 눈알이 튀어나와 땅바닥을 굴렀고, 잘게 다져진 인간의 육신이 무한궤도를 따라 회전하며 비료마냥 땅에 골고루 뿌려졌다.
***
세르게이 바쉬첸코 이병에게 오늘은 정신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겨우 경계근무를 끝내고 잠을 잘 수 있나 싶었는데 별안간 독일군의 포격이 시작되어 속옷 바람으로 참호로 뛰어가야 했다.
포격이 끝난 후에는 부상병들을 의무대로 나르고, 사망자들을 묻기 위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질 때까지 삽질했다.
겨우 삽질을 끝내고 쉬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적이 전선을 돌파했다며 전투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아, 빌어먹을.
적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생긴 피로가 더욱 컸다.
세르게이는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부릅뜨면서 핏발선 두 눈으로 전선을 주시했다.
포성과 무한궤도 소리가 귀에 닿았지만 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30분을 기다려도 적이 나타나지 않자, 세르게이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위치는 참호의 맨 끝자락. 중대장과 소대장, 행보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였다.
뒤에서 보면 총을 쥔 자세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 가까이 와서 확인하지 않는 한 졸고 있는지 경계를 서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잠도 안 자고 열심히 뛰어다녔으니, 30분 정도 눈을 감아도 되겠지…..
“독일군이다!”
“사격 준비해, 개자식들아!”
불행의 신은 세르게이를 너무 사랑하는 게 분명했다.
그가 눈을 감으려고 하는 순간,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독일군이 짠하고 나타났으니까.
“아, 씨발! 진짜!”
“야 이 새꺄! 조용히 안 해!?”
그래도 신이 조금은 양심이 있었던 걸까? 세르게이의 중대 앞에 나타난 독일군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장갑차도 없고, 오직 보병들로만 이루어진 터라 마찬가지로 보병들밖에 없는 세르게이의 중대만으로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어 보였다.
적의 전력이 이쪽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파악한 중대장이 사격을 지시했다.
세르게이는 명령대로 SVT-40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격이 시작되자 독일군 중 절반 이상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총알을 맞지 않은 이들도 총알을 피해 바닥에 엎드렸다.
독일군보다 고지대에 자리한 소련군은 바닥에 엎드린 적들을 향해서 조준사격을 가했다.
최후의 한 명까지 모두 쓰러지자 세르게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소대장이 말했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긴장이 풀려서 주저앉다니. 아직 멀었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소대장 동지.”
세르게이는 대꾸할 힘도 없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멋대로 생각하라지. 이젠 서 있을 힘조차 없으니까.
어쨌든 간에 전투가 끝났으니, 이제는 좀 잠을 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누워서 퍼질러 자면 눈치가 보이니 선 자세로 자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어느 물체가 보였다. 독일군이었다.
이번에 나타난 독일군은 보병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그마치 장갑차에 하프트랙, 대전차포까지 대동한 무리였다.
같은 체급인 보병들끼리라면 몰라도 장갑차가 등장한 이상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중대장은 미련 없이 후퇴를 결정했고, 소련군은 참호를 버리고 나왔다.
행여 적이 추격이라도 해올까 싶어 소련군은 정신없이 뛰었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세르게이는 졸음이 쏟아졌다. 이대로 그냥 바닥에 드러누워서 눈을 감고 싶은 욕망이 굴뚝처럼 차올랐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고향 마을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그는 여기서 쓰러질 수 없었다.
몸 멀쩡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군대에 있는 동안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