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창과 방패 (11)
1942년 6월 17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북부집단군의 반격은 메멜 탈환으로 마무리되었다.
북부집단군의 반격이 끝나던 날, 중부집단군과 남부집단군도 일제히 반격을 개시해 소련군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미 공세종말점에 도달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역량을 소진한 소련군은 저항다운 저항조차 해보지도 못하고 먼지처럼 쓸려나갔다.
“나흘 내로 독일과 헝가리, 루마니아 전역에서 소련군 잔당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응접실 전체에 잔잔하게 흐르는 프란츠 레하르의 을 들으며 나는 나이프로 닭다리살 스테이크를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간장 베이스의 드레싱을 뿌린 두부 샐러드와 레모네이드로 입가심하는데, 프랑크푸르터 립헨(Frankfurter Rippchen, 프랑크푸르트식 돼지갈비 요리)을 썰고 있던 카이텔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거이거, 스탈린 표정이 볼만하겠군요. 그 많은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고도 손바닥만도 못한 땅밖에 못 먹었는데, 그것마저 도로 토해내게 생겼으니.”
“그자는 핀란드에서의 교훈을 잊은 게 분명하오. 아니면 독일을 너무 만만하게 봤거나.”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쯤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투항한 안드레이 블라소프라는 장군 말이오. 그는 현재 어디에 있소?”
“지금 쾨니히스베르크의 북부집단군 사령부에서 심문 중이라고 합니다.”
포크로 찍은 가자미 살을 입으로 가져가던 라이헤나우가 말했다.
“심문이 끝나는 대로 베를린으로 보내라고 레프 원수에게 전하시오. 자발적으로 투항했다고 하니,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친구일 것 같소.”
“예, 총통 각하.”
참 세상일이란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실제 역사에서 나치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던 양반이 여기서도 똑같이 포로 신세가 될 줄은.
블라소프는 모스크바 전투에서 주코프 다음가는 대활약을 펼쳐 프라우다로부터 ‘모스크바의 수호자’란 별명이 붙은 명장이지만, 레닌그라드의 포위망을 분쇄하라는 스탈린의 무리한 공세 지시로 북부집단군을 공격했다가 역으로 포위당하고 말았다.
그는 비행기로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부하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며 거부했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블라소프는 이후 전향하여 자유 러시아군(Русская освободительная армия)을 창설하지만, 러시아인들을 불신했던 히틀러의 반대로 전쟁 말기까지 후방에만 있다가 독일의 패망이 확실시되자 이번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와 손잡고 프라하 봉기에 참여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들은 봉기가 끝나기 무섭게 블라소프를 배신했고, 그들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추방했다.
이때 블라소프는 스페인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는 부하들을 버릴 수 없다며 거부하고 미군에게 항복했으나, 미군은 이들을 전부 소련군에게 인계했다.
그렇게 소련으로 송환된 블라소프는 NKVD의 모진 고문을 받은 뒤 처형당했다.
한때 모스크바의 수호자라 불리며 소련의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던 이의 마지막치고는 너무나도 비참한 최후가 아닐 수 없다.
소련이 승리한 현실 세계에선 나치에 붙어먹은 배신자라고 평가절하당하는 신세지만, 앞서 말했듯 그가 모스크바 전투에서 보여준 활약을 보면 그에겐 보통 이상의 군사적 재능이 있었다. 단지 나라를 잘못 태어났을 뿐.
인종주의에 찌들 대로 찌들었던 히틀러는 이런 명장을 두고도 제대로 써먹질 못했지만 나는 다르다.
블라소프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는 단순히 후방에서 서류 작업이나 선전 활동만 시키기엔 능력이 너무나 아까웠다.
국가와 민족 전체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니만큼, 써먹을 수 있는 자원이라면 골수까지 빨아먹어야 인지상정.
“현재까지 아군이 포로로 잡은 소련군의 수는 얼마나 되오?”
“7만 6백 명 정도 됩니다. 모두 폴란드 보호령 내에 세워진 포로수용소로 분산배치하여 수용 중입니다.”
이 중 3분의 1만 우리 편으로 전향해도 2만 5천 명의 병력이 생기는 셈이다.
제1선에 세우지 않고 후방에서 치안유지만 시켜도 2만 5천 명의 병력을 최전선에 추가로 투입할 수 있으니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포로들을 대상으로 소련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대체할 신생 러시아의 군대를 구성할 인원들을 모병하는 건 어떻겠소? 2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소련을 상대로 독일은 인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소. 그러니 포로 중에 지원자들을 받아 군대를 창설하면 큰 도움이 될 거 같소만.”
“아주 탁월하신 전략이십니다, 총통 각하.”
“총통 각하의 혜안에 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실히, 작금의 러시아 체제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많을 테니 지원자가 많이 몰릴 것 같습니다.”
카이텔, 브라우히치, 라이헤나우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나치당 수뇌부 중에서도 자유 러시아군 창설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괴벨스는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밝혔다.
힘러는 스파이 활동을 위해 일부러 지원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도 자유 러시아군 창설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전원 찬성. 괴링은 Me264의 시제비행을 점검하러, 레더는 슈테틴의 해군기지를 방문하느라 자리에 없지만 둘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괴링이야 원래 내가 하는 말에 반대한 적이 드물고, 레더 그 양반은 해군 외의 사안에는 별 관심이 없는 양반이니까.
조만간 로자예프스키와 러시아 파시스트당 수뇌부들과도 자리를 한 번 가져야겠군.
***
1942년 6월 18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겨우 점령한 점령지를 모조리 빼앗긴 것도 모자라 전력에도 크나큰 타격을 입은 북서전선군은 천왕성 작전 개시 이전의 독일-소련 국경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북서전선군 총사령관 표도르 쿠즈네초프 상장은 직위를 박탈당하고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다.
서부전선군과 남서전선군 역시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기 무섭게 빙판에 미끄러지듯 쭉쭉 밀려 나갔다.
전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독일과 소련의 국경은 전쟁 이전의 국경으로 돌아왔다.
프라우다는 인민들에게 붉은 군대의 무참한 패전과 후퇴 소식을 철저히 숨겼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햇빛을 모두 가릴 수 없듯이 이미 국경 인근의 주민들에게는 자국 군대의 패배 소식이 알음알음 퍼져나가고 있었다.
소련 당국도 정보를 마냥 통제한다고 해서 소문의 유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사실을 들키느니, 차라리 거짓말을 하자.
프라우다는 “붉은 군대는 국경 인근의 독일군 주력을 괴멸시킨다는, 당초의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으나 독일군과의 전투로 적잖은 피해를 보았다.”고 보도했고, 이에 스타브카는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경의 방비를 위해 군을 ‘후방으로 재배치’였을 뿐이라며 일축했다.
누가 보더라도 독일군에게 패해서 퇴각한 것임을 완곡하게 풀어서 쓴 것이었으나 크렘린의 붉은 귀족들은 패전을 패전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느꼈다.
패전을 패전이라고 인정할 경우,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그들은 되지도 않는 말장난으로 인민들의 귀와 눈을 속이고자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그들의 장난 아닌 장난이 그래도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산당은 조국을 독일 침략자들로부터 사수하기 위해선 지금까지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민들을 선동했고 소련 전역에서 대규모의 추가 징집을 실시했다.
독일에서 밀려난 소련군은 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던, 독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국경에 구축한 몰로토프선에 희망을 걸었다.
본래 스탈린선은 발트해에서 시작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가로질러 흑해까지 이어지는, 1835km에 달하는 거대한 방어선이지만 폴란드를 정복한 스탈린은 군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선을 새로 형성된 독일-소련 국경에 구축할 것을 지시했다.
기존의 스탈린선에 배치되었던 화포는 모두 독일 국경에 새로 구축된 스탈린선으로 옮겨졌고, 이에 따라 소련군이 세웠던 작전 계획들도 모두 새 방어선을 토대로 새로 짜였다.
비록 이전에 세웠던 작전들이 모두 폐기 처분되고, 새로 방어선을 구축하느라 막대한 인력과 물자, 비용이 소요되긴 했지만, 독소전쟁의 발발이 실제 역사보다 대략 1년 가까이 미뤄진 덕에 역사대로라면 겨우 뼈대만 세워졌던 스탈린선은 1942년 6월 시점에는 살점이 어느 정도 붙어진 상태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역도 여러 곳이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스탈린선은 나름 잘 완성된 방어선에 속했다.
콘크리트 벙커와 지뢰밭, 토치카, 고정 포대로 이루어진 스탈린선을 돌파하려면 천하의 독일군도 상당한 희생이 따를 터.
주코프는 스탈린선이 구축되지 않은 헝가리, 루마니아 국경에 더 신경을 썼다.
독일-소련 국경은 스탈린선의 보호를 받기에 그나마 안전하지만, 헝가리, 루마니아 국경에 자리한 방어선이라곤 몇 개의 토치카와 참호가 전부로, 그나마 절반만 전쟁 전에 완성된 것들이었다.
독일군이라면 틀림없이 스탈린선이 없는 헝가리, 루마니아 방면을 노릴 것이다.
반드시! 독일군의 공격이 남부전선에 집중되리라고 확신한 주코프는 군의 주력을 우크라이나 방면에 배치하여 독일군과의 결전에 대비했다.
스탈린도 티모셴코와 주코프의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군사학과 거리가 먼 그가 봐도 강력한 스탈린선을 피하고 헝가리, 루마니아 방면으로 공격해와 발트해로 포위기동을 펼칠 것이라는 주코프의 설명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방어계획은 이쯤 하면 됐고,
이제 그다음 문제들을 논의할 차례다.
독일군과의 교전으로 소련군의 교리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기관단총이었다.
기관단총을 경원시한 쿨리크에 의해 소련은 PPSh-41이라는 걸출한 무기를 만들어 놓고서도 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최악의 실수를 범했다.
그 결과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보병 간 화력에서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교전에서의 패배로 이어졌다.
스탈린은 그간 소량만 생산해왔던 기관단총의 생산량을 대폭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지뢰도! 전장이 소련 영토로 옮겨진 이상, 적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단인 지뢰는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45mm 포와 76mm 포의 생산도 즉시 재개하시오. 지금 우리 군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싸고, 단기간에 많이 생산할 수 있는 화포요.”
소련군이 보유한 다수의 화포는 전쟁 초반 독일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상당수가 격파당하거나 후퇴 과정에서 유실되었다.
가용할 수 있는 포를 상실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소련군에게 비싸고 고성능의 화포보다는 싸고 단기간에 생산이 가능한 화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쿨리크의 반대로 생산이 중지되었던 ZiS-3 76mm 경야포는 비용과 성능, 생산성에서 고득점을 받아 양산이 재개되었다.
53-K 45mm 대전차포의 경우 중장갑의 독일 전차들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지만, 가격이 싸고 생산이 쉬우며 보병지원용으로는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생산이 재개되었다.
반면 가격도 비싸고 공정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며 과다한 무게 탓에 운용 시 애로사항이 많았던 M-60은 생산중단이 결정되었다.
F-22 역시 비용과 생산성이 문제가 되어 생산이 중단되었다.
소련 공군 총사령관 블라디미르 수데츠 중장은 스탈린에게 IL-2에 후방좌석을 도로 설치하는 것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추가 연료보다 적기의 공격으로부터 후방을 방어할 후방좌석을 IL-2는 더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스탈린은 이 또한 허가했다.
T-43이 등장함에 따라 생산이 중단되었던 T-34 역시 생산이 재개되었다.
실전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도출되었으며 생산성까지 좋지 않았던 T-43은 생산이 중단되었고, T-43의 양산을 위해 배분되었던 물자와 인력은 모두 T-34 몫으로 돌려졌다.
KV-2와 KV-3도 논의 끝에 양산 중지가 결정되었다. 화력 하나만 믿고 굴리기엔 두 전차의 가성비는 너무나 떨어졌다.
“서기장 동지. 전에 지시하셨던 T-34에 85mm 주포를 탑재하는 사안 말입니다.”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워 회의 내내 인상을 쓰고 있던 스탈린은 보로실로프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어찌 되었소? 결과물이 나왔소?”
“예. 현재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으며 테스트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203mm 자주포도 완성되어 테스트를 거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작금의 T-34와 KV-1에 달린 76mm 주포만으론 독일 파쇼들의 전차들을 상대하기 어려우니 말이오. 그리고 몰로토프 동무. 영국 대사와의 회담은 어찌 되었소?”
스탈린의 지목을 받은 몰로토프는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스탈린의 짜증과 분노를 받아내느라 땀이 마를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예, 서기장 동지. 영국 대사로부터…..”
“…..그렇소?”
몰로토프의 말이 끝나자 스탈린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그제야 스탈린은 한시름 덜었다는 듯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제라도 그런 소리를 들으니 다행이로군.”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프랑스에서, 그리고 말레이에서 자존심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총리 처칠은 상처입은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애를 썼다.
그는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인도를 보호하고 인도양의 재해권을 지키기 위해 해군을 보냈다.
그리고 유럽에서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져만 가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비록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 양심에 찔리….기는 개뿔. 방법이 조금 뭣해도 대영제국과 세계의 질서를 위한 일이니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처칠은 굳게 믿었다.
국민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지금은 반대해도 나중에 가면 전부 다 이해해줄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그런데 독일을 압박하기로 한 소련이 덩치만 큰 물근육일 줄은 몰랐다.
핀란드에서도 체급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2년이나 지났으니 조금은 달라졌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소련은 2년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게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결과만 놓고 보면 오히려 퇴보한 게 아닌가 싶었다.
겨울전쟁 때는 그래도 꾸준히 전진하며 핀란드를 압박했지만, 여기서는 역으로 본토가 공격받을 위기에 처했다.
비록 사상적으론 적이나 독일이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스탈린의 손을 잡았던 처칠은 이마를 쳤다.
저딴 병신들과 함께 독일 놈들과 싸워야 한다니.
보통의 지도자라면 여기서 생각을 고쳐먹고 발을 뺐겠지만, 처칠은 보통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누군가. 전함 두 척 때문에 적국을 만들고, 가만히 있는 중립국을 공격해 영국의 외교적 고립을 자처하고서도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떠들고 다녔던 남자가 아닌가.
처칠은 소련의 한심한 전투력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독일과의 전쟁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상식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조차도, 최소한 소련만을 동맹으로 둔 상태론 독일과 전쟁을 치르긴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는 영국과 함께 독일과 싸울 동맹을 찾았다.
잘 싸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유럽에서 독일군과 호각으로 싸울 군대는 존재하지 않으니.
단지 독일군의 전력을 조금이나마 분산시키고, 베를린의 시선을 돌릴 고기방패가 필요했다.
“반갑습니다, 총리 각하.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군요.”
“마지막으로 서로 만났을 때가 5년 전이었으니 말이오.”
영국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과 바돌리오는 웃으며 악수했다.
“시간은 넉넉하지만, 내가 궁금한 게 많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더라도 이해해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영국 외무장관께서 이탈리아에는 무슨 볼일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