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우리가 싸울 것은 (2)
1943년 3월 12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허허허.”
이뇌뉘는 히틀러의 초청으로 다시 베를린으로 가서 그를 만났다. 5개월 만의 재회였다.
2차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된 지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여전히 독일은 축제 분위기였다.
신 총통관저로 오는 동안 이뇌뉘는 베를린 시내에 가득한 하켄크로이츠기와 승전을 축하하는 대형 전단들을 볼 수 있었다.
거리를 걷는 베를린 시민들의 얼굴에서도 전시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여유가 넘쳐흘렀다.
독일이 정말로 소련을 무너뜨리고, 드넓은 러시아 영토를 손에 넣자 터키 일각에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진작에 독일을 도와 대소전에 참전했더라면, 터키도 승전국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뇌뉘의 강력한 지지층인 군부조차 비슷한 반응이었다.
군부는 독일이 참전을 요청했을 때 수락했어야 했다며, 그랬다면 카프카스를 받아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는데, 이뇌뉘도 겉으로 표현만 하지 않을 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못 이기는 척 참전했더라면…….
이뇌뉘는 터키가 독일을 위해 여러 편의를 봐줬으니, 지금이라도 어필하면 콩고물이 조금 떨어지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회담이 시작되고 1시간 넘도록 그런 논의가 일언반구도 없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카프카스는 깨끗하게 단념해야지 싶었다.
“소련이 무너졌으니 이제 독일에 남은 유일한 적국은 영국뿐입니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터키가 독일을 도와 참전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그렇지. 아직 영국이 있었지. 히틀러의 제안에 솔깃해진 이뇌뉘가 물었다.
“구체적으로 터키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터키 앞에 있는 키프로스는 예로부터 터키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영국이 장악하고 있죠. 터키군이 키프로스 섬을 공격한다면 독일은 터키의 키프로스 합병을 돕겠습니다.”
히틀러는 키프로스가 터키의 지배를 받기 훨씬 이전부터 그리스인들이 이주해서 살던, 그리스에 더 가까운 땅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뇌뉘를 위해 일부러 터키의 땅이라고 말했다.
터키 독립전쟁에서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터키군은 승리를 거둬 터키의 독립을 사수해냈지만, 영국은 터키에 키프로스는 포기하고 영유권 주장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고 터키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터키에 키프로스는 포기하려야 포기할 수 없는 땅이었다.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거니와 수백 년 가까이 터키의 영토로 남았던 곳이었기에 터키로선 이곳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 상당했다.
단지 힘이 되지 않아서 조용히 있을 뿐, 키프로스를 되찾기 싫어하는 터키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히틀러의 입에서 직접 키프로스 합병을 돕겠다는 말이 나오자, 이뇌뉘의 눈이 반짝거렸다.
히틀러는 이뇌뉘와의 첫 만남에서도 그에게 터키가 참전한다면 카프카스와 키프로스를 차지하게끔 돕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뇌뉘는 히틀러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 결과 카프카스는 터키의 것도 아닌 독일의 영향을 받는 독립국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영국이 만만찮은 상대이긴 하나 이번에도 히틀러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터키는 키프로스를 장악할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게 될지도 몰랐다.
카프카스를 지배할 기회마저 놓쳤는데 키프로스까지 놓친다면 국민은 물론이고 군부조차도 그에 대한 지지를 계속 유지할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터키군의 상태가 영국과 붙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
위험을 감수하고 키프로스라는 달콤한 먹잇감을 삼킬 것이냐
끝까지 중립을 지킬 것이냐.
이뇌뉘는 고민했다.
“만약 터키가 참전한다면, 독일은 어디까지 도울 예정입니까?”
“독일 공군이 터키군의 키프로스 상륙을 지원하겠습니다. 지중해의 유보트들도 영국 해군을 공격할 예정이고요.”
“음…….”
무적의 독일 공군이 함께라면 영국 해군과 공군의 방해는 걱정하지도 않아도 될 것이다. 키프로스 섬에 주둔 중인 영국군의 수는 1개 사단 남짓.
히틀러의 장담대로 독일 공군이 영국 해공군을 제압하고 터키군이 섬에 상륙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일주일 안에 키프로스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
“좋습니다.”
결심을 굳힌 이뇌뉘가 고개를 끄덕였다.
“터키는 독일과 함께하겠습니다.”
***
1943년 3월 15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참전을 약속한 이뇌뉘는 키프로스 섬 침공과 관련하여 나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후 터키로 돌아갔다.
터키가 참전을 결정했으니 남은 건 이제 스페인뿐.
스페인은 독소전쟁에 참전하였지만, 영국과는 아직 중립을 유지 중이었다.
나는 참전을 망설이는 프랑코를 설득하기 위해 리벤트로프를 마드리드로 보냈다.
터키에 이어 스페인까지 참전한다면 영국은 지중해 패권을 지키기 위해 본토 사수를 위해 그간 아껴놓은 전력을 본토 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칠이 식민지에 환장하는 제국주의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른다.
식민지 사수를 위해 중동, 인도 등지로 보내지는 영국군의 숫자가 많을수록 아군이 영국에 상륙해서 싸워야 할 적군의 수가 줄어들 테니까.
이집트,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반영 게릴라들은 영국군의 무자비한 토벌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와 인도에서는 IRA와 자유 인도 군단이 게릴라전을 벌이며 영국군을 농락하고 있었다.
특히나 자유 인도 군단 장병들에게 쥐여준 MP3008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성능은 조악하지만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인도 여기저기에서 복제 생산되어 지금도 영국군을 향해 불을 뿜고 있었다.
바다사자 작전까지, 아니 이후에도 이들이 계속해서 활약해주길 바라고 있다.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말고도 우크라이나와 자유 러시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병력 파견에 찬성을 표시했다.
지금까지 파병에 찬성한 국가들이 파견하겠다고 한 병력을 모두 합친 숫자는 대략 18만 명.
이 중 3만 명은 바다사자 작전 당일에 독일군과 함께 영국 본토에 상륙해 해변에서 영국군과 싸울 예정이다.
알바니아는 국왕 조구 1세가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한 적이 있는 관계로 영국을 공격하는 일에 동참하긴 어렵다고 사정을 해와서 이해해줬고, 벨기에,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발트 3국의 군대는 동부 자유 러시아와 소련의 새 국경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은 관계로 이들도 제외되었다.
유럽에 있는 에티오피아군 병력도 마찬가지.
이탈리아의 연합국 가입으로 푸대접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영국에 마음의 빚이 있는 조구 1세와 다르게 셀라시에는 영국에서 받은 푸대접에 한이 맺혔는지 독일의 요청이 있다면 에티오피아도 영국에 선전포고하고, 영국령 소말릴란드를 공격하겠다고 비밀리에 전해왔다.
그러나 나는 이를 사양하고 대신 프랑스령 소말릴란드의 방어를 부탁했다.
영국이 프랑스령 소말릴란드를 점령하면 유보트들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더 이상 기뢰를 뿌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바다사자 작전을 위해 아군이 준비해야 할 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물자와 병력을 하역시킬 항구, 그것도 조립식 인공항구였다.
상륙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걸로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다. 내륙으로 진격해 적과 싸워 수도를 장악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고로 상륙작전 이후 영국 본토 내부로의 신속한 진공을 위해서는 군수물자의 원활한 보급이 필수적이다.
전방의 부대로 물자를 원활하게 보급하려면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해안보다는 시설이 잘 갖춰진 항구를 통해 물자를 하역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건 중학생도 아는 사실.
그런데 해안가에 격전이 벌어지는데 항구라고 무사할 리 없다.
전투 중에 피해가 갈 수밖에 없고, 아예 영국군이 아군이 이용 못 하도록 폭파하거나 아니면 항구에 틀어박혀 농성할 경우 적잖이 곤란해진다.
따라서 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이 그랬던 것처럼 인공항구를 건설해 물자를 하역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인공항구를 어떻게 만들지도 미리 다 생각해놨다.
이 역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이 써먹은 ‘멀베리 항구’의 제작법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멀베리를 개발한 마운트배튼(얼마 전 IRA에게 인수분해당한 그 사람 맞다)은 멀베리 개발에 1년 이상의 시간을 소요했지만 나는 미래의 지식 덕에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멀베리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낡은 수송선들을 썰물 때 해변 인근의 얕은 바다에 일렬로 정렬시킨 뒤 가라앉힌다.
상부 구조물만 수면 위에 남게끔, 길이는 1.5km 정도로.
그다음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연합군은 이걸 ‘피닉스’라는 암호로 불렀다-를 썰물 때 바다에 빠트려 방파제를 조성하고, 암호명 ‘봄바르돈’인 물에 뜨는 방파제를 만들어 항구의 또 다른 보호막으로 삼는다.
마지막으로 암호명 ‘웨일’로 불리는 25톤 중량의 잔교들을 배열해 잔교마다 한 척의 전차상륙함을 접안시킬 수 있다.
해당 잔교에는 셔먼, 크롬웰 같은 중형전차들은 물론이고 연합군이 보유한 전차 중에 가장 무거운 중량을 자랑하는 처칠 전차도 무리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노르망디에 만들어진 두 개의 멀베리 항구는 멀베리 A와 멀베리 B로 불리며 각각 미군과 영국군에 의해 관리되었는데 멀베리 A는 완성된 지 열흘 만에 폭풍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하지만 멀베리 B는 무사히 보존되어 유럽전선 종결까지 10개월 동안 250만 명의 병력과 50만 대의 차량 및 전차, 400만 톤의 물자를 하역시켰다.
“……다 받아적었소?”
“예, 총통 각하.”
“전문가인 저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떠올리시다니 역시 총통 각하께선-”
“다 적었으면 얼른 가보시오. 시간이 없소이다, 시간이.”
아부는 질릴 정도로 많이 들었으니 이제 됐다. 1분 1초가 아쉬운 판국에 낯뜨거운 찬양이나 들으며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 북한의 돼지 새끼들과 나는 다르거든.
“총통 각하. 구데리안 원수가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구데리안은 이전에 지시한 5호 전차 B형 판터 II의 생산 현황 소식에 대해 보고하러 왔다. 사격, 주행을 포함해 모든 테스트를 안정적인 성적으로 완료하고 양산이 결정된 판터 II는 기존 판터들을 생산하던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판터 공장들의 생산라인 변경은 차질없이 진행 중이고, 판터 G형의 양산은 다음 주 내로 완전히 중단될 예정입니다. 여기 이 표와 문서를 봐주시면-”
“음, 음.”
독소전쟁이 종결되지 않았다면 판터 II 생산을 위해 판터의 양산을 일정 기간 중단하는 일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당장 물량이 차고 넘치는 소련조차 실제 역사에서 T-34/76 생산라인을 T-34/85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전차 양산이 잠시 중단돼 전선의 전차비가 1:1에 가까운 수준까지 떨어지는 위기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소련보다 사정이 좋지 않았던 독일은 생산라인 효율화를 위해 전차 생산을 중단하는 일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랬다간 당장 전선에 있는 모든 기갑전력이 괴멸하고 알보병들만 남게 될 판이었으니까.
“-따라서 5월 전까지 최소 200대 이상의 판터 II를 양산 및 배치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좋군. 나쁘지 않아.”
4호와 판터를 대신해 차기 독일 기갑전력의 주력으로 자리매김할 판터 II는 차체 정면 100mm에 측면은 60mm, 포탑 전면은 150mm 두께의 장갑을 발라 전체적인 방호력은 어지간한 중전차 수준이었다.
여기에 주포도 티거 II, 야크트판터에 탑재된 KwK 43 전차포를 개량한 KwK 43/1 주포를 탑재해 중형전차 수준에서 최고의 화력까지 갖췄다.
주포 제퇴기의 성능 강화로 머즐 브레이크를 달 필요가 없어진 것도 기존 판터와 구분되는 차이점이다.
그러나 얻은 게 있으면 그만큼 잃는 것도 있는 법.
장갑이 두꺼워진 만큼 중량도 39t에서 45t으로 무려 6t이나 증가해 중전차로 분류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다.
거기다 경량화를 위해 폐쇄기 크기를 줄여 88/71이 원체 큰 포인 만큼 포탄도 덩달아 컸기에 탄약 적재량도 줄어들었다.
판터 G형이 65발의 포탄을 적재할 수 있는 데 비해 판터 II는 남는 공간마다 포탄을 쑤셔 넣어도 최대 50발이 한계였다.
또 이 경우 피격 시 탄약이 유폭할 가능성이 올라가므로 별로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니었다.
“통상적으로 전투 두 번만 치르면 보급이 필수적이겠군. 보급부대의 역할이 커지겠소이다.”
“그래도 영국은 러시아보다 좁으니, 제공권을 빼앗기지 않는 한 보급 자체에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88/71 주포를 장착한 판터 II가 나왔으니 야크트판터 역시 생산중단이 결정되었다.
그러게 내가 만들지 말자는데도 굳이 만들더니, 1년도 안 돼서 생산중단 엔딩으로 끝나버렸다.
그래도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차체들이 아까운 관계로 기존에 생산된 차체 300대는 그대로 야크트판터로 만들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88/71 대신에 티거 II에 탑재할 예정이었던 105mm 68구경장 주포도 이제 막 시제품이 완성되어 테스트에 들어갔다.
이놈 역시 테스트가 끝나는 대로 판터 II의 슈말투름 포탑에 장착된 스테레오식 거리 측정기가 장착된 신형 포탑에 탑재될 예정이었다.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름도 미리 정해뒀다. 6호 전차 C형 티거 III.
또 다른 명칭은 제버찬티거(Säbelzahntiger, 검치호랑이).
“이제 다 끝난 겁니까?”
“예. 오늘 안건은 이게 전부입니다.”
“수고했소.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오늘 점심은 무엇으로 하시겠소?”
“바이스부어스트(Weißwurst, 바이에른 및 슐레지엔 지방에서 주로 먹는 하얀 소시지)에 으깬 감자 정도로 할까 생각 중입니다.”
“그렇군. 난 연두부 샐러드에 슈니첼, 김치로 할까 하는데.”
“아직도 그 소이탄 같은 괴상한 음식을 드십니까?”
구데리안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전에 내가 먹는 김치가 궁금했던 구데리안이 한 번 먹어본 적 있는데, 입에 넣자마자 바로 뱉어내고 우유로 입을 ‘소독’했다.
자기 딴에는 조금 매운 자우어크라우트 정도로 생각했는데, 차원이 다른 매운맛이란다.
21세기 한국에서 이 정도 맵기는 매운맛 축에도 못 끼는데.
“그 맵고 짜기만 한 배추쪼가리 절임이 뭐가 좋으신지 저는 대체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원수가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나름 익숙해지면 먹을 만하오. 느글거리는 속도 진정시켜 주고.”
“차라리 샐러드를 먹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당으로 가는데 저 멀리서 크라우제와 바이츠제커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 잘됐군. 외무차관도 식사하러 가시겠소?”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그런데 보고드릴 일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핀란드의 만네르하임이 총통 각하와 회담을 하고 싶다고 전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