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23
제25화
“그러니까 오늘은 그 유명한 마도왕의 후계자인 스승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거로 만족할게요.”
이런 표정의 엘레노아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관조]를 활성화하고 있었을 때, 엘레노아의 표정은 늘 미약한 불안감에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늘 불안을 품고 있었다. 그만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그녀의 표리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
어설픈 웃음.
외면도 내면도 모두 어설픈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다.
본인도 말하면서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저 애매한 표정을 보면 이쪽까지 애매해질 것 같다.
그래도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있다.
엘레노아의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보내는 저 감정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시선을 원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게 사랑인지, 아니면 동경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기대고 싶다는 연약한 마음가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도 순찰을 해야 하니까 그건 힘들 거 같은데.”
엘레노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스승은 최악이에요.”
그녀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짐은, 앞으로 짊어지게 될 짐이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무겁다.
그만큼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뭐, 어느 쪽이 됐든.
“그 대신. 네가 내 근처에 있으면 꼭 너를 찾아내서 말을 걸게. 네가 사고 치기 전에 말이야.”
“그런가요…….”
그 짐에 손을 보태 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문제아들 감시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정도쯤은 문제 될 것도 없으리라.
모처럼의 파티가 아닌가?
원작에서도 이 부분은 별문제 없이 지나갔으니 이 정도 여유쯤은 괜찮을 거다.
“스승은 너무 얼굴만 믿고 가볍게 말하는 경향이 있네요. 언제까지고 얼굴만 믿고 그런 가벼운 약속을 남발하고 돌아다니면 나중에 저한테 찔릴지도 몰라요?”
“…….”
“농담이에요.”
……이상하다.
이게 왜 거짓말이지?
분명 농담이라고 했을 텐데? 농담이어야 할 텐데?
엘레노아가 농담이라는 말과는 상반된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본다.
마치 심해에서 건져온 바닷물처럼 어두운색을 띠는 눈동자에서는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그 완벽할 정도로 뒤틀린 표리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스승 장담하실 수 있으세요?”
“뭘……?”
“제가 사고 치기 전에 막아 낼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겠냐는 소리예요. 저는 당장에라도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서 주먹을 날릴 수도 있는데요.”
“……내가 경솔한 발언을 했어.”
엘레노아의 말이 맞다.
그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나는 그녀가 치는 사고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사고를 치는 걸 막겠다는 약속은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제게 말을 걸어 주세요.”
“그래, 그렇게 할게.”
“……사람들이 잔뜩 있고. 제가 그사이에 홀로 고립되어 있다고 해도 저를 찾아내 주실 거예요?”
“그래.”
“……제가 어둡고 좁은 장소에 눈도 귀도 가린 채로 감금돼서 말도 못 하는 상태로 고립돼 있다고 해도 저를 찾아내 주실 거예요?”
“그래, 설령 전쟁터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내가 너를 찾아내서 말을 걸어 줄게.”
“하하……. 말이라도 고맙네요.”
엘레노아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하는 말을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다.
[관조]가 있는 이상 그녀가 내 근처에만 있다면 그 어디에 고립되어 있든 찾아낼 수 있다.“마나에 맹세라도 할까?”
어쩔 수 없다.
M의 맹세라면 엘레노아 역시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 거다.
“스승이 마나의 맹세라는 신용을 빌미로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건 이미 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아니, 엘레노아는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평소에 마나의 맹세를 너무 들먹이고 다녀서 그런 걸까?
벌써 신용이 바닥이다.
“그러니까 이걸로 대신하죠.”
“…….”
엘레노아가 오른손을 뻗어 왔다.
주먹 쥔 손은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이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뭐지? 혹시 그쪽 M의 맹세를 하라는 건가?
찍으라고?
“약속이에요?”
하지만 이내 내 손을 이끌어 새끼손가락을 거는 순수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썩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쓰레기였다.
“……그래, 약속할게.”
“스승은 손이 크네요. 히히.”
나는 엘레노아와 약속을 맺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꼭 찾아내 주겠다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약속을.
* * *
꿈을 꾼다. 자각몽이다.
저번처럼 [침식도]가 한계치를 넘어섰기 때문은 아닐 거다
이번에는 30%의 벽을 아직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꿈은 무엇일까?
그저 20%를 넘었다는 점에서 주기적으로 기억을 전달받는 걸지도 모르고 단순한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가 다르다.
이번 꿈은 단순히 오즈의 기억이라고만 치기에는 이상했다.
이건 나와 오즈. 둘이 동시에 꾸는 꿈인 걸까?
그래, 나는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거울에는 여전히 차갑고 오만한 인상을 지닌 오즈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
그래,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다.
우스갯소리로 개연성이라고 표현할 만한 외모.
마치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싸늘한 눈동자.
무표정하지만 어딘가 오만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런 오즈의 얼굴에.
[관조]로 내다보는 그 얼굴에.마치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가면이 씌워져 있는 것 같았다.
* * *
독기가 빠진 엘레노아를 달래며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약속을 맺은 다음 날. 주말이 찾아왔다.
아마 다른 학생들은 전날 즐겼을 파티의 영향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을 거다.
평소라면 마법의 연습을 하거나 요일 던전에 들어가서 골드라도 모았을 테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보다 돈은 이미 충분하다.
오즈라는 존재의 개인 자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많은 편이었기에 주말의 요일 던전에 들어갈 필요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무래도 운이 없어서인지 10개의 상자를 찾아내면 그 중 빈 상자가 9개였다.
인건비도 안 나오더라.
쓸데없이 넓은 방에 널어놓은 은 82개.
오늘은 수요일의 요일 던전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을 정제해 볼 생각이다.
[명왕]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라면 포션의 도움 없이는 힘들 거다.이번 계획을 생각해 보면 마나가 아무리 많은 오즈의 육신이라고 해도 버거울지도 모른다.
“음…….”
게임에서는 연금술이라는 시스템으로 불렸지만, 연금술은 내 생각보다도 더 복잡한 학문이었다.
시험에서도 그 악랄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그게 초급이란다. 학문의 난이도 차가 너무 무섭다.
“재료를 사야 하는데…….”
당연하지만 만으로는 포션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를 정제하기 위한 재료와 촉매들이 있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저 재료들은 학원 내부에서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파는 곳은 있지만 연금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아니라면 구매할 권한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배움을 원하는 자들을 위해서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에서는 재료 중에서도 고품질의 효율을 가진 재료가 랜덤으로 출현했다.
그래, 이것도 랜덤이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관조로 확인하면 뭐라도 보일 거 같은데…….”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본다는 [관조]라면 어떨까?
어쩌면 고효율의 물건들을 쓸어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을 간과하기도 조금 그렇다.
지금에야 의 결계 안쪽에서 안전하게 있다지만 밖을 나선다면 상황이 다르다.
나는 노려지고 있다.
[용제]의 비호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영역 내부에서만 이뤄진다.즉 의 바깥까지는 그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무래도 그녀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패악을 부린 놈들이 많아서 선을 그었다는 것 같다.
“결국,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야 된다는 건데…….”
사람 많은 대낮에 나를 습격하는 녀석들이 있을 리는 없다.
아니, 설령 있다고 해도 제국의 도심지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는 멍청한 짓은 할 수 없으리라.
어디까지나 은밀한 방법이 한계일 테니 [관조]를 지닌 내 빈틈을 노리기는 힘들 거다.
“흠…….”
촤륵─
이 인근을 표시하는 지도를 펼쳐본다. 꼴에 판타지 세계라고 지도는 엄청나게 비쌌다.
온갖 마도구가 있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지도가 유난히 고가인 걸 보니 가치의 기준을 모르겠다.
물론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 내게는 상관없는 문제다.
나는 매일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남자다.
고기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하나를 더 주문해서 먹고 남길 수 있는 남자라는 소리다.
봐라, 내가 이렇게나 사치스러운 사람이다.
“이동 루트 에반데…….”
아무리 봐도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두 곳이나 거쳐야 한다.
물론 돌아서 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이동해야 한다면 시간이 너무 지체될 거다.
시간이야 많지만 그러다가 밤이라도 되면 암살자들과의 광란의 댄스파티가 시작되겠지.
그렇다면 최소한 방패가 될 사람이 필요하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수호자 직업군에 해당하는 사람은 둘밖에 없다는 거다.
소속인 올리비아 블루와 소속의 백양이다. 둘 다 내게 좋은 감정이 있지는 않다.
올리비아와는 교류가 없는 편이었고 백양은 나를 혐오한다.
통탄할 노릇이다.
“너무 인간관계를 조졌나?”
어제 엘레노아와의 일도 있다 보니 괜히 씁쓸해진다.
얕보여서는 안 되다 보니 평소 위압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씁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테네브리스에 연락해 볼까?”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방 한구석에 처박아 둔 물건을 찾자 먼지가 쌓인 수정구가 나타났다.
‘양방향 통신용 수정구’라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핸드폰이다.
디자인이 병신 같다.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 넣자 통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전생에서도 들었던 익숙한 벨 소리였다. 이왕 핸드폰처럼 만들 거였다면 조금 더 여러 기능을 넣어 줬다면 좋았을 텐데.
게임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여러 사람이랑 통화할 수 있게 만들었으면 최고였을 거다.
“허, 헛?! 통신? 어……? 오즈 왕자? 어어……?”
“자나?”
“아, 아닌데? 안 자는데?”
잠에서 막 깨어난 듯 수정구 너머로 멍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잠을 퍼질러 자고 있어?
“주말이라고 늘어지게 잠이라도 자고 있었나?”
“고, 고양이 수인에게 있어서 잠은 원래 참기 힘든 법이지.”
이제 와서 그럴싸하고 신비로워 보이는 변명을 해 봤자 의미 없다.
다른 의미로 신비로워질 뿐이다.
“그보다 놀라운걸?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오즈 왕자.”
“됐고. 수호자 한 명 알선해 줄 수 있을까?”
“바로 본론인가? 섭섭하군.”
그 말도 맞는 거 같다.
내가 너무 사무적으로 대한 걸까? 이러니까 내가 친구가 없지.
“뭐, 그게 당신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나저나 수호자라…… 외부에라도 나갈 생각인 건가?”
“그래, 근처에 잠입한 놈들 가운데에 혹시 있나?”
“잠입한 중에서는 없지만……. 아니, 어쩌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잘하면 수호자뿐만 아니라 전사도 한 명 더 알선할 수도 있겠어.”
“설마 나한테 쓸데없이 빚을 지우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음? 아니, 이번 일에 한해서는 오즈 왕자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도대체가 무슨 속셈인지.”
“글쎄? 설마 내가 함정을 팔 거라고 걱정이라도 하는 건가? 생각보다 담이 작은걸?”
“…….”
장난스러운 어조.
지금 수정구 너머라고 저러는 걸까? 내가 [관조]만 활성화해도 꼬리를 매만지느라 정신이 없을 녀석이 오늘따라 여유로워 보인다.
이래서 수정구는 사용하기 싫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관조]인데 그게 무용지물이 된다.
“……좋아, 오늘은 그 도발에 넘어가 줄게.”
“기대해도 좋을 거야. 오즈 왕자. 아주 재미있어질 테니까.”
“그럼 언제까지 보내 줄 수 있지?”
“음……. 아마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 같군.”
“그럼 9시까지 교문 앞에서 접선하기로 할까?”
“아니, 그건 너무 빠를 것 같군. 조금만 더 내게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는데?”
“그럼 10시까지로.”
“그러지. 그럼.”
수정구에서 마나를 제거한다.
협상이 성사됐으니 이 이상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관조]가 있을 때다.
10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으리라.
“……잠깐만.”
그런데 뭔가…… 뭔가 이상하다.
루시아는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에라도 알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소속이 아닌 타인과의 의견 조율이 그렇게 톱니바퀴 맞물리듯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제일 이상한 건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고 한 점이다.
따라붙기라도 할 생각일까?
“뭔가 불안한데…….”
* * *
“훗…….”
루시아는 마나가 끊어진 수정구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다행히 오즈는 그녀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지금까지 오즈의 그 위압적인 눈에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
“이렇게 목소리만 들어보면 또 나쁘지 않은데 말이야.”
루시아는 수정구 너머로는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덕분에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이제는 오즈의 부탁을 들어주는 한편 그녀의 스트레스를 복수의 형태로 발산할 차례다.
‘이건 휴일에 일을 시키려 한 벌이야. 오즈 왕자.’
루시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꼬리가 기대된다는 듯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선 루시아는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다소 헝클어진 검은 머리와 쭈뼛거리는 꼬리, 잠버릇 탓인지 잔뜩 구겨진 잠옷이 보였다.
정리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시아는 오히려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노아!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뭣?! 루시아가 벌써 일어났다고? 평소에는 점심때까지 잤을 텐데 혹시 내 주변 사람들이 바뀌고 있는 건가?! 어제 오즈 스승도 어딘가 이상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보다 빨리 나 좀 도와줘.”
잠시 후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엘레노아가 그녀의 방문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직도 의심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런데 뭘 도와주라는 거야?”
“일단 백양도 불러 줄래? 상담할 일이 있는데.”
“응! 알았어!”
엘레노아가 활기찬 모습으로 떠나가는 걸 보며 루시아는 머리를 정리했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들이 너무나도 기대되어서 콧노래가 나왔다.
“흐아암……. 무슨 일인가요오?”
잠시 후 잠이 덜 깬 듯한 백양이 엘레노아의 손에 이끌려 왔다.
그녀 역시 루시아와 마찬가지로 잠이 많은 편이었다.
“있지? 나 지금부터 데이트에 가야 하는데 혹시 어떤 옷이 어울릴지 골라 줄 수 있어?”
“데이트……?”
“오오?”
루시아는 둘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조소했다.
저 흥미가 넘쳐난다는 듯한 표정을 보아하니 미끼를 던지자마자 상대가 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 누구랑?! 누구랑 데이트 가는 건데?”
“와아~ 축하드려요오. ……그래서 누구란 가는 건가요오?”
오싹오싹하다.
한 명은 순수한 흥미와 함께 노골적인 장난기가 숨어 있었고 다른 한쪽은 음흉함이 느껴졌다.
둘 다 성인군자는 못되리라.
“응! 오즈 왕자랑 데이트야!”
그리고 루시아의 말이 떨어진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건……. 엘레노아의 표정이 상상 이상인데.’
그중 엘레노아의 반응은 특히나 격렬했다.
마치 텅 비어 버린 듯한 눈동자를 보니 옆에 있는 눈과 얼음을 다루는 백도깨비보다도 차가워 보였다.
“……내가 도와줄게.”
“저도 도와드릴게요오.”
루시아는 예상 이상의 반응에 자신이 자초한 일임에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 * *
“오즈 왕자님! 안녕하세요!”
뭐야.
“제가 조금 늦었나요?”
뭔데.
“데이트! 기대할게요!”
뭐냐고 이런…… 미친?
“이건 또 뭔 수작질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는 게 어때? 오즈 왕자.”
“수호자랑 전사를 알선해 준다는 건 어떻게 된 건데?”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올 거야.”
“뭔…….”
루시아의 말에 [관조]를 활성화한 채 주변을 둘러본다. 익숙한 기척이 둘 느껴졌다.
“이 나잇대의 소녀에게 연애 문제라는 건 흥미가 안 갈 수 없는 법이지…….”
“너 미쳤어……?”
루시아가 준비한 수호자와 전사는 호위가 아니었다.
동급생의 뒤를 밟는 짓궂은 학생들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느낌이 달랐다. 표정이 달랐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도 저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미친…….”
태어나길 쾌락 범죄자인 엘레노아와 사람이 있으면 장난을 쳐야 하는 습성을 가진 도깨비 백양.
문제아 중에서도 특히나 위험한 부류에 속해 있는 습격자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깽판을 칠지 생각해 보면 벌써 두통이 몰려온다.
“진짜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