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comedic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39
제42화
학기 중에 절반가량을 병실에서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가운데 마침내 퇴원의 날이 다가왔다.
“후우…….”
아직 체내에 남아 있는 사기 때문인지 몸은 조금 저릿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앗, 스승!”
“그래, 노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전사 직군들은 원래 몸이 조금 튼튼한가?”
“들었어요. 스승. 스승이 마리를 구하셨다면서요?”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제 활약을 그대로 가로채시다니 스승은 역시 스승이네요.”
“……?”
뭐지? 칭찬하는 건가? 아니면 욕하는 건가? 방실방실 웃고 있는 표정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
이럴 때는 [관조]를…….
“그거 아시나요? 스승은 재밌는 버릇이 있어요.”
“…….”
순식간에 곁에 다가온 엘레노아가 양손을 뻗어 내 시야를 가린다.
가려진 건 시야일 텐데 어째서인지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스승은 사람을 의심할 때는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노아의 학습 능력은 상당하다.
주인공이기 때문일까? 게임에서도 그녀의 성장은 가팔랐다.
하지만 그게 사람의 버릇을 외울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방금 저를 의심하신 건가요?”
“아니…….”
“흐음?”
차단된 시야 속에서 엘레노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 없어서 식은땀이 흐른다.
“역시 그렇죠? 저는 스승을 믿고 있었어요.”
“어, 응……. 네 활약의 기회를 빼앗은 건 미안하다고 생각해.”
아니, 진짜로.
그 점에 한해서는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엘레노아가 앓고 있는 정신병이 어떤 건지도 알고 그녀가 주인공으로서 어떤 길을 나아가야 하는 건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엘레노아는 사람들에게 주목받을수록 성장하며 강해진다.
실로 관심 종자에 걸맞은 동력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녀는 타인의 관심 없이는 제대로 된 힘을 내기도 힘들다는 소리지만.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사실 스승이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게 딱히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저를 손에 넣고 다루는 패처럼 쓰신 건 조금 그랬어요.”
“생각해 보니 역시 내 잘못이 맞는 거 같아.”
그냥 게임 감각으로 그녀를 이용했던 내 잘못인 걸로 하자.
“농담이에요.”
“…….”
나는 대답하지 않을 거다.
저 농담이라는 단어에 대답하면 엘레노아의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뀔 거라는 것쯤은 뻔하다.
“사실 조금 무력감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랬어요.”
“…….”
“스승, 왜 대답 안 해요?”
살벌하다.
대답을 종용하는 모습이 섬뜩하기 그지없다. 나는 도대체 뭘 만들어 버린 거지?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래도 스승도 다치고 성녀님도 다치고 백양도, 마리도, 루시아도 그리고 권왕…… 은 안 다쳤지만 아무튼요. 제가 하고 싶었는데 저는 약하기만 하네요.”
“신경 쓸 거 없어.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학원장실에 있을걸요?”
“우리 그건 예외로 치자.”
그 불합리는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노아, 애초에 네가 명왕에게 가한 그 일격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여기에 서서 대화도 못 하고 있었을 거야.”
“그것도 모두의 도움이 있었던 덕분이잖아요.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왜 혼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지금은 아직 메인 스토리의 2장일 뿐이라는 걸. 아직 엘레노아가 혼자서 버텨 보려고 발버둥 치는 시기였다는 걸 잊어버렸다.
“……아무튼,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까.”
“스승은 정말로 제 도움이 필요하신 건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행히 곧바로 답할 수 있었다.
“그래, 너밖에 못 하는 일들이 있을 테니까.”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주인공인 그녀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 있다.
“예를 들면요?”
솔직히 그렇게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녀의 열쇠에 관해 말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이해자의 열쇠]는 강력한 능력이지만 그만큼 부담이 크다.자신의 열쇠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지금만 해도 [명왕]에게 치명상을 남기지 않았나?
R등급과 SR등급 사이의 실력을 가진 엘레노아가 열쇠의 본래 능력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할 때라던가?”
“그건……! 확실히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죠.”
솔직히 엘레노아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화제는 여기서 묻어 두자. 그게 서로를 위한 일이다.
“말 나온 김에 묻는 건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다.
“갑자기 화제를 돌리시네요?”
“…….”
아니, 자연스럽지는 않았나 보다.
이상하다? 완벽했던 거 같은데.
“어, 흠. 아무튼. 아리에타나 다른 사람들은 어때? 너도 같은 병실에 있었을 거 아니야?”
“그렇네요…….”
엘레노아는 할 말들을 정리하기라도 하는 듯 관자놀이를 검지로 찌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선 백양은 저를 지켜 줄 때 허리를 다쳤는지 아직도 입원해 있어요. 나중에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다 주려고요.”
역시 엘레노아다.
백양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할 거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게 편견에 사로잡힌 모습 그 자체다.
“루시아는 경상이라 저보다도 먼저 퇴원했어요. 그래도 도와줬으니까 나중에 싱싱한 물고기를 사다 주면 되겠죠?”
“백양은 둘째치고 그건 화를 내지 않을까 싶어.”
그녀가 인텔리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아는 나로서는 엘레노아의 편견에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그리고 성녀님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상인 아리에타의 차례가 왔다.
티아는 심각한 편이라고 말했다.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지만 아직 퇴원하지 못한 건 분명하리라.
“모르겠어요.”
“뭐?”
“혼자 다른 방에 이송됐거든요.”
다른 방이어야 했을 이유가 있었을까? 나는 그녀들 모두가 같은 방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사기에 물든 자 근처에 다른 환자들이 있다면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기에 당한 그녀들은 모두 같은 방이라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마리는요.”
“마리는 됐어. 이미 본인이랑 대화도 나눴으니까.”
“……언제요?”
“저번에 눈 떴을 때 바로. 그러니까 아마 6일 전인가?”
“그런가요? 이상한 일이네요. 그때 마리는 저한테 처음으로 왔다고 말했었는데.”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내 착각이었던 것도 같네.”
“기억력 좋은 스승이 착각을요? 재미있는 소리를 하시네요.”
엘레노아는 가끔 이런 식으로 핵심을 찔러 온다.
그보다 이 정도로 타인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엘레노아가 나보다도 기억력이 좋지 않을까 싶다.
“스승. 저 일이 생각나서 가 봐야겠어요. 마리가 보고 싶네요.”
“그, 그래.”
“아, 그리고 성녀님은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응?”
엘레노아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아리에타에 대한 얘기를 다시금 꺼내 놓기 시작했다.
“제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으음……. 그러니까 굉장히 실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 온 걸 봤어요.”
“의사?”
“글쎄요? 성직자일 수도 있겠죠.”
“실력 있어 보이는 건 어떤 기준인 건데?”
“……감?”
“그래, 감이구나.”
엘레노아는 저렇게 보여도 왕족이다. 아니, 정확히는 왕족이었다고 해야겠지만…….
아무튼 그녀가 저런 식으로 얼버무린다는 건 공주였던 시절부터 알고 있던 상대라는 뜻이다.
“일단 이 얘기는 비밀이에요? 만약 제 착각이었다면 창피해지니까 스승만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 나만 알고 있을게.”
“둘만의 비밀이라는 것도 뭔가 비밀 조직 같아서 재밌네요.”
“한결같은 감성이구나.”
엘레노아는 그 말을 끝으로 평소처럼 활기차게 떠나갔다.
아리에타에 대한 일을 굳이 저런 식으로 돌려 말해 준 건 그녀 나름의 배려인 게 분명하다.
엘레노아가 봤다는 실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건 뻔하다.
“교황이 벌써 도착했나?”
전대 성녀이자 현세대의 교황. 그리고 [선교자의 열쇠]의 주인.
루치아 도미네.
그녀가 벌써 에 도착한 것 같다.
* * *
홀로 격리돼 있는 아리에타의 병실에 찾아온 사람은 한쪽 눈을 안대로 감싸고 있는 노년의 여성.
“이거 참…….”
그 노년의 여성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못마땅하다는 듯이 아리에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리에타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순수한 신성력의 결정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인간이다.
그렇기에 사기나 마기에 저항하기도 쉽지만 반대로 사기나 마기에 침식당하게 됐을 때도 남들보다 피해가 컸다.
보통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성력을 전부 써 버리다니 그렇게 빨리 죽고 싶었니?”
그래, 그녀의 존재가 텅 비어 버리지 않는 이상에는.
아리에타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녀는 신성력을 제외한 다른 에너지원은 일절 품지 못했다.
보통 다른 성직자였다면 신성력의 빈자리를 마나가 채웠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잠식’의 특징을 가진 사기의 침입을 남들보다도 쉽게 허용하고 마는 거다.
“교…… 황…… 님?”
아리에타가 자신을 향한 잔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래, 아리에타. 너는 어떻게 된 게 만날 때마다 버릇없이 누워 있는구나?”
“아…….”
“일어나라는 소리 아니니까 그대로 누워 있으렴.”
[교황] 루치아는 입에 담배를 꼬나물더니 투덜거렸다.그녀는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듯이 아리에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리에타는 고른 숨을 내뱉으며 그 손길에 저항하지 않았다.
“어디 평화로운 곳에 보내 놓으면 괜찮을까 싶었더니 신께서는 네게 끊임없이 시련을 내리는구나.”
“하하…….”
루치아는 마치 부모처럼 아리에타를 걱정했다. 당연한 일이다.
성녀라는 칭호에 깃든 무게는 다름 아닌 성녀였던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법이니까.
품고 있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신앙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성녀는 그에 걸맞은 시련들을 맞이하게 된다. 루치아도 마찬가지. 그녀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 희생들을 넘어선 끝에 교황이 됐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교황의 자리가 그녀의 종착점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아이는…….’
루치아는 아리에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안대에 가려진 자신의 눈을 매만졌다. 그녀는 품은 힘의 대가로 한쪽 눈을 잃었다.
그렇다면 아리에타는 어떨까?
‘눈 하나와 둘. 단순히 계산해도 내 두 배는 더 힘든 길을 걷겠지.’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계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루치아 역시 치가 떨리도록 이해하고 있었다.
고작 눈 하나 차이가 아니다.
아리에타는 그녀와 달리 양쪽 눈과 함께 빛을 잃은 거다.
빛을 설파해야 하는 존재가 빛을 볼 수 없다.
“벌써부터 이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견디려고 그러니?”
“어쩔 수 없었어요…….”
“아리에타? 내 앞에서 거짓말은 소용이 없단다. 설마 내가 너를 모를까? 다른 아픔에 기대 거짓말을 하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야.”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녀는 무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신의 눈은 지극히 객관적이다.
애초에 그런 성정을 지닌 사람이기에 성녀가 될 수 있었던 거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지.’
루치아는 한숨을 내쉬며 신술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의식을 붙잡고 있던 아리에타의 눈을 감기게 했다.
“언젠가는 너도 이 힘을 짊어져야 할 때가 오겠지.”
루치아는 잠든 아리에타의 이마 위로 검지를 올린 채 중얼거렸다.
“……열려라.”
아리에타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사기는 [명왕]의 사기다.
열쇠의 힘이 깃든 그 사기는 그녀의 신성력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있었다.
차라리 마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희석이라도 됐겠지만 아리에타는 좋은 의미로든, 안 좋은 의미로든 너무 순수했다.
그렇기에 [명왕]의 사기가 옅어지지 않았던 것이리라.
“순백의 날개.”
그렇다면 그 사기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열쇠의 힘이 필요할 터.
“우욱…….”
열쇠의 힘을 사용한 루치아는 입을 틀어막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 손바닥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불쌍한 것.”
루치아는 무릎을 꿇은 채로 마치 기도하듯이 중얼거렸다.
“너만은 달랐으면 좋으련만.”
역대 교황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선교자의 열쇠]는 막대한 신성력을 머금은 물건이었다.
“누구보다도 짙은 신성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너라면…….”
신성력은 마냥 친절한 힘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가 없는 힘은 없다. 너무 찬란한 빛은 눈을 멀게 한다.
[선교자의 열쇠]는 막대한 신성력의 대가로 소유자를 죽였다.“이 힘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역대 교황의 의복은 모두 붉은색 소매를 달고 있었다.
선혈을 닦아 내기 위함이었다.
희망을 줘야 하는 교단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니까.
동시에 그건 역대 교황 중 열쇠의 힘을 감당할 수 있던 존재가 없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내가 죽기 전에 성장하려무나.”
아리에타는 아직 미숙하다.
그건 성녀로서도 그랬고 인간으로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런 건 본디 시간이 해결해 주는 법이다.
그러니 어른인 루치아의 역할은 아리에타를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나도 최대한 장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 테니.”
그녀야말로 열쇠의 주인이며 성녀였으며 교황이 된 존재.
[KP 기다림의 성녀]루치아 도미네
그녀의 정체성은 교황보다 성녀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 미숙한 아리에타를 위해서라도 교황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