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29)
4군단
* * *
대마법사라니.
“내가 아는 그 대마법사가 맞나?”
“사라진 영웅들을 생각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데일이 다시 물었다.
“그 대마법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있다고?”
“어디까지나 소문이 그렇다는 겁니다만…… 생각보다 많은 병사들이 넘어갔어요. 아주 터무니없는 소문은 아닐 겁니다.”
많은 악마를 베어낸 영웅들은 전선의 병사들에게는 신과도 같다.
만약 그런 영웅이 이끈다면, 기꺼이 따를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영웅들이 악마들이랑 손을 잡았단 말이 되지 않나?”
“믿기 어렵지만, 그럴 수도요. 영웅들의 거취는 워낙 소문만 무성한 일이라 확언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영웅들끼리 서로 싸우고 갈라졌다는 말도 있고, 악마들에게 투항했다는 말도. 심지어 그 악마들을 제압해서 수족으로 부린다는 말도 있어요.”
어느 게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영웅들은 황제와 마찰을 빚다, 결국 직접 제국을 멸망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아무것도 명확한 게 없다.
하지만.
‘만약 반란군을 주도하는 게 대마법사라는 놈이 맞다면.’
머지않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대마법사라는 자를.
나머지는 만나서 직접 쓰러트린 뒤, 목에 칼을 대고 질문하면 될 뿐이다.
너는 대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데일은 마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검을 뽑을 날이 머지않았다.
* * *
사흘간은 놀랄 만큼 평화로웠다.
평원에서 물러난 아르구르의 군세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병사들은 실로 오랜만에 휴식과 여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성에 있는 모두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평화로우니 오히려 껄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마치 폭풍 전 고요의 느낌이랄까.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 건 확실한데, 너무나 조용하니 가슴이 불안해졌다.
그런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서인지, 군단의 지휘관과 참모들은 연일 쉬지 않고 회의했다.
“외벽의 보강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솔직히. 아슬아슬했는데 살았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계속해서 병력을 들이칠 줄 알았는데. 혹시 성을 포기하고 지나치려는 거 아닐까요?”
“놈들이 여기를 지나치면 우리는 곧바로 병사를 보내 앞뒤로 공격하면 될 뿐이야.”
지휘관들도 왜 악마의 군세가 진격을 멈췄는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불안하더라도 기회는 기회. 이번 여유를 살려 최대한 여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렇게 종일 이어진 회의가 끝나고. 베른바르트는 목을 뚜둑 풀었다.
“후우. 정말이지. 나이 먹고 이러는 것도 못 할 짓입니다. 예전에는 나흘 밤낮을 새가며 싸워도 지치지 않았는데…….”
기사단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소.”
“오래 살아봤자 좋을 거 없다는 말이 공감이 갑니다. 진즉에 묫자리에 들었어야 할 노인네가 질기게 살아남아 못 볼 꼴만 보고 있으니.”
“몸은 좀 괜찮으시오?”
베른바르트는 가슴에 칭칭 감은 붕대를 두드렸다.
“상처는 대충 아물었습니다. 무리만 안 하면 다시 터질 일은 없을 겁니다.”
“다행이오. 군단장 같은 훌륭한 지휘관이 굳건히 버텨주어야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이길 테니 말이오.”
“하하하. 미하일 경께서 그리 말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두 노인들은 죽이 잘 맞는 편이었다.
그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데일은 그런 둘의 뒤에서 조용히 뒤따랐다.
그때. 모퉁이에서 빅토르 백작이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기사단장의 눈동자에 탐탁지 않은 감정이 떠올랐다. 베른바르트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최근 빅토르 백작이 보여준 추태 탓이었다.
‘병사들이 버릇없다고 처벌하려 했다고 했던가?’
군단장을 상대로도 격의 없이 지내는 병사들이 백작이라고 예의를 지켰을까.
전형적인 귀족인 빅토르는 그 무례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감히 상급자에게 저리 건방지게 굴어? 내 본보기를 보여주마. 저놈을 군법에 따라 엄히 처벌하라!”
그렇게 외친 빅토르는 병사에게 태형 10대를 내렸다고 한다.
소문으로는 아예 처형할 생각까지 했는데, 부관이 필사적으로 막아냈다고.
당연히 빅토르 백작의 그런 처사는 큰 문제가 되었다.
일단 전선의 병사들은 가뜩이나 이레네의 귀족과 황제를 싫어한다.
그런 와중에 자기 동료가 별것도 아닌 일로 채찍을 맞았다?
병사들이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뻔했다. 폭동이 벌어질 뻔하자, 기사단장은 곧바로 빅토르 백작을 찾아가 꾸짖었다.
“병사들이 격의 없이 상급자를 대하는 건 군단장이 부대의 사기를 위해서 장려한 부분이네! 그대가 무어 그리 잘났다고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는 건가! 가뜩이나 고생하는 병사에게 겨우 이런 일로 채찍을 휘두르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하나!!”
그날부로 빅토르는 근신을 명받고,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회의에 끼워주지 않는다는 건 이후 수행될 작전에서도 배제되며, 공을 세울 기회마저 빼앗겨버리는 것이다.
전공을 세우기 위해 이 멀리까지 온 빅토르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처사.
당연히 그는 어떻게든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렇게 매일 같이 회의가 끝나고 기사단장을 찾아오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좋은 저녁이오 군단장. 그리고 기사단장.”
백작은 조금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군단장과 기사단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백작. 내가 한동안 막사 내에 근신해있으라 명하지 않았나? 자네가 돌아다니는 걸 보면 병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네.”
“저도 기사단장과 같은 의견입니다. 답답하더라도 되도록 움직이지 않아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으음. 그, 그건 알지만 워낙 좋은 계획이 떠올라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소. 이건 너무 획기적이라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수도 있는 작전이오.”
그렇게까지 말했지만 여전히 두 노인의 태도는 심드렁했다.
지난 며칠간 빅토르 백작이 내놓은 획기적인 작전이라는 건, 너무 도저히 써먹을 게 못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계획을 설명하던 빅토르 백작의 말을 기사단장이 중간에 끊었다.
“여기서 백인대 둘을 미끼로 내보낸 뒤…….”
“그만. 의견은 고맙네. 하지만 더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 막사로 돌아가 편히 쉬게나.”
“…….”
기사단장은 데일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어서 가세나. 할 일이 많으니.”
그리고 이게 빅토르의 역린을 건드렸다.
꾹 분노를 참고 있던 빅토르 백작이 폭발했다. 그는 손에 은 고리를 굳게 쥐고는 외쳤다.
“감히 나보다 그따위 사악한 이교도를 더 우대한단 말이오!”
“음?”
“내가 저 언데드 놈보다 못한 게 뭐요! 아! 이제 알겠군! 기사단장 당신도 사실 이교도였군!”
언데드라는 말에 데일은 저도 모르게 검을 손을 가져다댔다.
기사단장이 없었으면 당장 뽑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네 백작. 그리고 지금이 뭐 백 년 전인 줄 아나? 두 여신께서 화해하셨는데, 이교도고 뭐고가 뭔 상관인가.”
“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어떻게 황제 폐하의 검이라는 자가 그런 망발을!”
“자네. 아무래도 너무 흥분한 모양이야. 그만 들어가서 쉬게나.”
인상을 찌푸린 기사단장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 등에 대고 백작이 외쳤다.
“이래도 될 것 같소? 내 웬만해서는 이런 말까지 안 하려 했는데, 나를 이렇게 대해도 아무 일 없을 거라 보시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백작은 나름대로 권세 있는 귀족이다. 다른 귀족들과 연이 있었고, 가문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가만 안 있으면.”
“뭐?”
“가만 안 있으면 뭐 어쩔 텐가. 검이라도 뽑을 건가? 그렇다면 환영하네. 결투라면 언제든지 받아주지.”
기사단장이 흉흉한 기세를 흩뿌리자 백작은 주춤했다. 그 모습이 너무 추해, 보는 이로 하여금 측은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마침 잘됐다는 듯.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 계속 말해보지. 자네가 여기 데일 경보다 못한 게 뭐냐고? 자네가 행군 때 낙오자들을 직접 업고 걷기를 했나? 전장에서 나와 함께 선두에서 적을 분쇄하길 했나? 끝까지 뒤에 남아 아군이 성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기를 했나? 응! 단 하나라도 했냔 말이다!”
어지간히 열이 올랐는지, 기사단장은 반말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백작! 나는 무능한 자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능하면서 뻔뻔한 이들은 몹시 싫어하지! 너와 네 가문이 어떤 식으로 전공을 조작하고, 어떤 식으로 돈을 먹여 네 그 작위를 만들었는지 폐하께서 정녕 모를 거라 생각했나?”
“나는. 나는…….”
“정신 차려라 백작! 전장터에 필요한 건 무능한 신도가 아닌, 유능한 이교도다! 여기 있는 데일 경의 반이라도 따라오도록!”
지금껏 참아왔던 말을 아낌없이 토해낸 기사단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가세나. 소리를 내질렀더니 배가 몹시 출출하군.”
군단장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꽤 권세 있는 귀족이라 들었는데요.”
“괜찮소. 폐하께 한소리 좀 듣고 말지. 뭐하나 데일 경? 빨리 오게나.”
두 노인은 멍하니 서 있는 백작을 지나쳤다.
데일도 그 옆을 천천히 지나갔는데, 백작은 증오 어린 눈길로 데일을 노려보았다.
“너. 너! 용서 못 한다 이교도야. 내 반드시 너를…….”
기사단장에게 야단맞고, 애꿎은 데일에게 그 적의를 돌리다니? 기사단장은 뭔가 복수해보기에는 너무 강한 상대라 그런 것일까?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게 나온다라.
‘한결같아서 좋군.’
하지만 데일은 다른 기사나 귀족처럼 백작에게 빌빌 기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아악! 이, 이거 놔!”
“다음에 한 번 더 언데드라 불러봐라.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말이다.”
데일의 눈이 빛을 뿜어냈다.
정신 지배.
정신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빅토르는 완전히 몸이 굳어버렸다. 깊은 공포감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데일은 그런 백작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앞서서 기다리는 두 노인에게로 걸음을 향했다.
모두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백작은 그제야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천하의 빅토르가. 이런 굴욕을.”
으득 이를 간 빅토르가 일어나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성 내에는 병사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중에는 밤의 신도로 보이는 자들도 더러 보였다.
‘저렇게 당당히!’
대놓고 밤의 신도임을 드러내면서 활보하다니.
이레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당장 가서 주제를 알라며. 알아서 찌그러져 있으라며 저 이교도들을 다그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여기서 더 사고를 쳤다가는, 그때는 정말 기사단장이 가만있지 않으리라.
설상가상.
병사들의 시선도 따갑다.
“저놈은 뭔데 저기 서 있는 거야.”
“들었어? 자기한테 건방지게 대했다고 채찍질한.”
“아. 그 새끼? 지가 귀족이니까 뭐라도 된 줄 알았나?”
“에이 기분만 잡쳤네. 카악 퉤.”
이리스 성은 좁다. 소문은 금방 퍼져나간다.
이미 빅토르가 벌인 일은 4군단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쏟아지는 적의에 빅토르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억울했다. 너무 억울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이 하찮은 것들이! 신이시여. 이 빅토르가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부디 목소리를 들려주십시오!’
빅토르는 은 고리를 굳게 쥐고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 기도가 응답받는 일은 없었다.
상관없다. 백작은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도할 생각이었다.
강한 믿음이 언젠가 보답받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기도는 머지않아 어느 한 불청객에 의해 방해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사분.”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였다. 밖으로 드러난 입매는 호선을 그리고 있다.
한눈에 봐도 수상쩍다.
하지만 왜일까.
그 목소리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깊은 힘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 목소리를 계속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힘이…….
백작이 당황해 물었다.
“너, 너는 누구냐.”
“제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신사분께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백작이 홀린 듯이 물었다.
“부당한 대우?”
“예. 당신은 매우 유능하신 분입니다. 고귀한 핏줄에 흠잡을 데 없는 경력. 모두가 떠받들고 예우를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주위에 있는 멍청이들은 그걸 못 알아보고, 오히려 당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니. 이것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너…… 차, 참으로 맞는 말이구나!”
어떻게 이렇게 자기 마음에 쏙 드는 말을 해줄 수가!
그런 열렬한 반응에 사내는 씨익 웃었다.
“어디. 시간이 되신다면 저랑 얘기나 좀 하시렵니까?”
“물론이다!”
“그럼 따라오시죠. 변변치 않지만, 차라도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백작은 마치 사탕을 약속받은 아이처럼 순진하게 사내의 뒤를 따랐다.
어느 샌가부터 백작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사라졌다. 그저 사내를 따라 흐느적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그런 백작을 인도하는 사내의 로브 속에서는 두 눈동자가 보석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