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30)
아르구르
* * *
“놈들이 온다!!!”
거짓말 같던 평화는 그 외침으로 너무나 간단히 깨져버렸다.
갓 해가 져 온 세상에 그림자가 드리운 저녁. 저 멀리 평원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군세가 그 특유의 눈동자를 아름답게 빛내며 몰려왔다.
별의 군대.
땡땡땡땡!
요란한 종소리가 성 내에 울려퍼졌다.
회의실에 있던 군단장이 말했다.
“그래. 드디어 오는군. 모두 자기 자리로!”
“예!”
지휘관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데일도 빠르게 움직였다.
데일이 맡은 건 동쪽 성벽이었다.
지난 전투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곳이었고, 이번에도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곳이었다.
데일은 일부러 이곳에서 싸우겠다고 지원했다.
“허. 더럽게 많기도 하네요. 저놈들은 뭔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자기들끼리 애라도 낳나.”
하켄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런 대군을 앞에 두고도 딱히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간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늘어. 어지간한 일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면 다른 병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고참병들은 여유로워 보였지만, 경험이 적은 병사들은 손을 파르르 떨었다.
데일의 옆에 서 있던 병사도 그러했다.
아직 젖살이 남아 있는 앳된 청년이었는데, 창을 쥔 손을 위태로울 정도로 떨어댔다.
데일이 물었다.
“실전은 이번이 처음인가?”
설마 데일이 직접 말을 걸어줄 줄은 몰랐는지, 병사는 황송해하며 말했다.
“예? 예. 밥 잘 준다는 얘기만 듣고 덜컥 입대했는데. 솔직히 좀 후회되네요 하하. 그래도 밥은 맛있었지만.”
“그런가.”
“그. 경이랑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도 밤의 여신님을 믿거든요. 엄청 영광이에요. 돌아가면 가족들한테 자랑해야겠어요.”
이 신참 병사는 밤의 신도인 모양. 그는 간절한 눈으로 데일을 올려다보았다.
“사, 살아 돌아갈 수 있겠죠?”
잠시 고민하던 데일이 답했다.
“정신만 제대로 차리면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예.”
반드시 살아갈 수 있다고. 빈말로라도 그렇게 말해주길 원했지만, 야속한 데일은 그리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병사는 창을 불끈 쥐고 전방을 응시했다.
적의 진군이 빠르다.
거리가 시시각각 좁혀져 왔다.
수만의 적군이 이쪽을 향해 내달리니,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꿀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마법사들은 준비하시오!”
전선에서 오래 구른 지휘관이 외쳤다.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문이 완성된 순간.
지휘관이 외쳤다.
“발사!”
화아아!
낙뢰와 불꽃이 전장을 휩쓸었다.
강력한 마법은 대지에 깊은 상처를 냈고, 한 번에 수십의 적군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바다에 물 한 바가지를 부은 꼴이다.
상대의 숫자가 너무 많다.
지휘관이 다시 외쳤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중단하고, 바로 위치를 옮기시오!”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기진맥진해진 마법사들을 업고 빠르게 달려갔다.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들의 입장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게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곧바로 상대편의 반격이 마법사들이 있던 곳으로 날아왔다.
콰앙!
불이 붙은 거대한 바윗덩이가 성벽을 강타했다.
바위는 성벽과 부딪히며 여러 파편으로 나뉘었고, 파편은 곧 병사들을 덮쳤다.
“크아악!”
“방패 내리지 마!”
“사, 사제님을 불러줘…….”
바위 파편은 서너 개가 데일에게도 날아왔다. 데일은 주먹을 내뻗어 그대로 파편들을 후려쳤다.
파편이 부스러기가 되어 공중에 흩뿌려졌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신병이 감탄을 흘렸다.
“와. 와아…….”
데일은 전장을 응시했다. 바위가 날아온 곳을 찾아헤맸다.
적군이 바글거리는 전장이지만, 데일은 등급이 오르면서 ‘부정한 감각’이 ‘어둠의 감각’으로 진화했다.
향상된 시각은 금방 바위를 쏘아낸 원흉을 찾아냈다.
“투석기인가?”
상당히 커다란 투석기였는데, 대체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중간중간 눈알이나 사람의 얼굴 형상이 돋아나 있었다.
그 투석기에 바위를 얹고, 마법사로 보이는 놈들이 바위에 불을 붙였다.
가끔은 바위가 아니라 자기 아군을 붙잡아다가 날리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 투석 공격이 아군에 상당히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점이다.
‘저런 걸 계속 놔두다가는 성벽이 걸레짝이 되겠는데.’
병사들의 피해도 피해지만, 성벽이 입는 타격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단단한 성벽이라도 저런 거에 얻어맞으면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데일이 직접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켄. 뭐 던질만한 거 없나?”
“던질 거요? 돌멩이 같은 거?”
“기왕이면 큰 거.”
“아까 날아온 바위 중에 부서지지 않은 게 하나 있던데 뭘 하려고…… 설마?”
데일은 하켄이 가리킨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말대로 용케 부서지지 않은 바위가 바닥에 박혀 있었다.
데일은 바위를 양손으로 붙잡고, 힘을 주었다.
드득.
바닥에 박혀 있던 바위가 둥 떠올랐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데일이 외쳤다.
“다들 물러나라!”
주위에서 멍하니 있던 병사들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데일은 바위를 단단히 붙잡은 뒤, 몸을 빙글 돌렸다.
한 바퀴. 두 바퀴. 그리고 충분히 힘이 실렸다고 판단이 든 순간.
바위를 손에서 놓았다.
바위가 하늘을 날았다.
병사들의 고개가 바위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 그들이 본건…….
콰앙!
바위가 투석기에 그대로 직격했다.
“아니. 투석기를 투석으로 요격했다고?”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데일은 전장을 다시 살폈다.
제대로 얻어맞은 투석기는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다시 고쳐서 쓰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투석기가 많았다.
‘어림잡아도 스무 개는 넘어 보이는데.’
게다가 꽤 아슬아슬한 거리에 있어 이곳에서는 요격하기 힘들었다. 앞서서 투석기를 부순 건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때.
한차례 함성과 함께 저 멀리서 황실 기사단원들이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게 눈에 보였다.
마법사 같은 적의 주요 전력을 헤집어 놓으려는 걸까?
방어만 고집해서는 승리할 수 없는 법이다. 기사단장이 참으로 적절한 때에 지시를 내려주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데일도 성벽에서 힘껏 도약했다.
“어, 어디 가십니까!”
하켄이 붙잡으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날아오른 데일은 그대로 성벽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쿵! 높이 날아오른 만큼 땅에 부딪혔을 때의 충격이 거셌다.
데일의 착지점에 있던 적이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악마의 하수인들은 이내 데일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
데일은 겁을 먹지 않고 달려드는 이 괴물들이 오히려 기껍다.
새로운 힘을 시험해볼 기회다.
마력이 빠져나간다.
데일 아래서 꿀렁이던 그림자가 돌연, 사방으로 뻗어나가 주위를 뒤덮었다.
검은 안개의 상위 기술.
새벽 안개.
“캬악?”
“크르륵.”
하수인들은 주위를 뒤덮는 어둠에 당황했다. 당장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공포가 등을 타고 흐른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산채로 생기가 빨려 나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멈출 수가 없다. 끝끝내 마지막 남은 생기마저 강탈해갔다.
그리고 안개가 걷히자, 남은 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생기가 모두 빨려버린 시체뿐.
데일이 자기가 만들어낸 참상에 매우 만족했다.
‘나쁘지 않군.’
드디어 기술들이 강력한 화력을 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력은 왕창 잡아먹었지만.
데일은 거침없이 적군 사이를 헤집었다.
흑기사가 왜 전장의 공포인지를 직접 선보였다.
그렇게 빠르게 달려 도착한 곳에 투석기가 있었다.
마침 하수인과 마법사가 모여서 다음 바위를 쏘아 보내려고 준비하던 참이다.
그들과 데일의 시선이 마주쳤다.
“크륵?”
이놈은 대체 누구고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는 표정이 하수인의 얼굴에 스쳐지나갔다.
데일은 그런 하수인을 무시하고 투석기를 부여잡은 뒤, 힘을 주었다.
우지끈!
별다른 어려움 없이 투석기가 박살이 났다.
망연자실한 하수인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데일은 놈을 흘끗 쳐다본 뒤, 마법사로 보이는 하수인만 죽이고는 곧장 떠났다.
일일이 죽이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데일은 전장을 누비며 투석기와 마법사만 노려 제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사들이 다시 성벽으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이목이 이쪽에 전부 쏠리면 골치 아프다.
데일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그대로 성벽을 타고 올라왔다.
병사들은 휘둥그레진 얼굴로 데일을 쳐다봤다.
하켄이 대표로 물었다.
“어. 음.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뭐하고 오신겁니까?”
“투석기를 네 대 부숴놨다. 더 부쉈어야 하는데.”
“……아니. 그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 아닌가요?”
하켄의 말에 병사와 지휘관도 일제히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 투석기의 약 2할을 부쉈는데, 대단하지 않을 리가.
마법사들의 느낄 위협도 줄어들고, 성벽이 입을 피해도 훨씬 덜할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만족하지 않았다.
‘이거로는 부족해.’
여전히 적은 너무 많다. 이런 대규모 전장에서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은 너무나 적다.
이렇게 투석기나 적의 마법사를 제거하는 게 데일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혼자서 전장의 판도를 바꾼다는 건 꿈같은 일이다.
‘아니.’
있었다. 개인 혼자서 전장을 주무를 수 있는 존재를.
하늘에 떠 있는 달이 그 모습을 감췄다.
저 하늘 너머에서 거체를 지닌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뭉툭한 부리가 툭 튀어나온 머리. 이마에 돋아난 두 쌍의 뿔.
힘껏 펄럭이는 네 겹의 날개.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 있는 꼬리까지.
19위의 악마이자 별의 바다를 거슬러 오르는 자.
절멸의 아르구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노, 놈이 왔다!”
“으. 으으.”
정신력이 약한 병사들은 주저앉았다. 아르구르는 그런 인간들을 비웃듯, 하늘을 우아하게 유영했다.
‘저 거대한 몸뚱아리가 대체 어떻게 하늘에 뜨는지 모르겠군.’
황제가 부유 마법에 환장하는 이유가 저것 때문일까?
아르구르의 등장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성벽 아래서 달려들던 하수인들은 지금까지는 봐주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미친 듯한 기세로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막아! 절대 올라오게 둬서는 안 돼!”
“창 찔러…… 으아아악!”
갑작스럽게 날아온 괴조가 병사를 하나 낚아채 그대로 날아오른 뒤, 지상을 향해 떨어트렸다.
아르구르의 공중 부대가 참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쪽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병사들은 발리스타를 하늘을 향해 쏘아댔다. 큼직한 쇠 화살이 하늘을 꿰뚫었다.
이어지는 접전.
아르구르는 직접 참전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하늘을 여유롭게 비행했다.
마치 이쪽을 비웃는듯한 태도다.
그런 상황에서 양측은 치열하게 싸웠다. 죽고 죽이는 소모전.
성벽과 방어시설을 끼고 싸우는 데다, 평균적인 병력의 질도 더 높은 아군은 힘겨워도 제법 잘 방어해냈다.
적의 숫자가 훨씬 많았지만, 이쪽은 경험 많은 정예병들인 것이다.
게다가 아군의 기사단장이나 마법사 같은 고급 전력도 아르구르를 견제하기 위해 여력을 아끼고 있지만, 아르구르도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왜지? 저놈은 영악하지만 겁쟁이는 아니야. 오히려 호전적이지. 이런 식으로 싸울 기회를 마다할 리는 없어. 일부러 저렇게 다 보이게 날아다닐 놈이…… 시선을 끈다?’
데일은 곧장 첨탑 중 하나에 올라서 더 넓은 시야를 전장을 살폈다.
적들이 빼곡히 들어찬 평원. 달조차 희미해 어둠에 잠겼지만, 데일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데일은 북쪽 방향에서 또 다른 군대가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악마의 군세? 아니다.
데일은 시력에 집중해 그들을 상세히 확인했다.
아군과 비슷한 복장. 비슷한 무기.
‘반란군.’
4군단에서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이 이쪽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당연히 좋은 의도로 오는 건 아닐 것이다. 이곳 이리스 성을 완전히 함락시킬 작정이다.
‘저놈들을 이끄는 게 군단장의 손자라고 했나?’
손자가 조부를 기어코 죽이러 오다니. 참아줄 수 없다.
게다가 저들은 대마법사와도 무언가 관계가 있을 터.
하지만 우선 이 사실을 윗선에 보고하는 게 우선이다.
이런 어둠 속에서 저들의 접근은 아직 데일 외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군단장에게 알려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데일은 첨탑을 뛰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때.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고함이 들렸다.
“남쪽 성문이 열렸다!”
앞으로 한참은 더 버텨줘야 할 성문이 뚫렸다.
‘아니. 뚫린 게 아니라 열렸다고?’
데일은 곧바로 첨탑을 뛰어내려 남쪽 성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