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8)
늪
* * *
‘대체 왜 하이엘프가 이런 남쪽 늪에 있는 거야.’
데일은 기본적으로 모든 엘프를 싫어하지만, 그중 특히 더 싫어하는 엘프들이 있다.
바로 하이 엘프. 혹은 고산 엘프라 불리는 이들이다.
설산을 누비는 이 거친 엘프들은 호전적이고 야만적이다.
강한 이가 있다면 한판 뜨자며 무기부터 드는 작자들.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야만인들과 마주치는 건 사양이다.
데일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하이엘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사뿐히 달리던 하이엘프는 그대로 지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돌연. 하이엘프가 걸음을 멈췄다.
“…….”
하이엘프는 눈을 감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기다란 귀가 아래위로 쫑긋거렸다.
“강자의 냄새가 난다.”
하이엘프가 휙 고개를 돌렸다.
공교롭게도 데일이 누워있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하이엘프는 등에 멘 활을 꺼낸 뒤. 시위에 화살을 걸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너는 누구지? 이런 곳에 있을 만한 놈은 아닌데.”
데일이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데일은 입을 열지 않았다.
죽은 척해서 상대를 그냥 보낼 생각이었다.
……이미 반쯤은 죽어있었지만.
하지만 하이엘프는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데일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죽은 척해도 소용없다. 숨을 쉬지 않아도. 너는 분명 살아있다.”
“…….”
“셋 셀 때까지 말하지 않으면 화살을 쏘겠다. 셋.”
“알겠다. 알았으니, 활은 내려놔라.”
퉁!
시위에서 화살이 떠났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화살이 데일을 두들겼다.
하이엘프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미안하다. 갑자기 말해서 놀랐다. 그러게 왜 사람을 깜짝 놀래키나.”
데일은 벌써 이 엘프를 죽이고 싶어졌다.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지만.
하이엘프는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움직이지 못하고, 늪에 파묻힌 데일을 이리저리 살폈다.
“신기한 몸이군. 언데드?”
“흑기사에 대해 모르나?”
“흑기사?”
하이엘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진짜 모르는 모양.
“밤의 여신에게 힘을 내려받은 반인 반언데드다. 교단으로 치면 성기사 같은 개념이고.”
“그렇군.”
“이해했나?”
“아니. 잘 모르겠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데일은 새삼 이 하이엘프를 다시 살폈다.
엘프답게 꽤나 아름다운 외모였다. 하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건 그 복장이다.
사슴 가죽을 통째로 벗겨내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고, 속에도 짐승 가죽을 대충 잘라 만든 원시적인 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은 당연히 맨발.
‘야만인이 따로 없군.’
하이엘프라도 문명에 녹아든 이들은 제대로 된 의복을 갖추었다.
반대로 말하면. 눈앞의 이 하이엘프는 문명과는 영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하이엘프의 얼굴에 딱히 적대적인 감정은 없다는 정도일까?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일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바로 앞에 다가온 하이엘프가 데일의 투구를 벗겼다.
그리고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오오! 이 투구! 꽤 괜찮은 물건이군. 고맙다.”
“……난 준다고도 안 했는데?”
약탈과 사냥은 하이엘프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하이엘프는 데일의 말을 무시하고. 데일의 투구를 멋대로 가져가 머리에 쓰려고 했다.
하지만 투구에 서린 음산한 기운에 화들짝 놀라, 곧장 투구를 바닥에 던졌다.
“뭐, 뭐야 이건! 투구를 쓰니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다. 영혼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야 밤의 신성이 깃들어 있을 테니까.”
“쯧. 모처럼의 수확이었는데. 아쉽군.”
하이엘프의 호기심이 급격하게 식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데일은 얼른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있다.”
“부탁?”
“나는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몸을 회복하려면 시체가 필요하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상관없다. 시체를 좀 구해다 줄 수 있겠나?”
“으음. 어려운 일은 아니군. 근데.”
하이엘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왜 힘들게 사냥한 사냥감을 너한테 건네주어야 하지?”
딱히 거래를 위해 포석을 까는 건 아니다. 데일을 약올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이 하이엘프는 순수하게 궁금했고, 질문한 것이다.
자신이 왜 데일을 도와야 하는가.
“원하는 게 있나?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들어주겠다.”
“흠. 원하는 거라.”
“원한다면 결투를 해주어도 좋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다만. 나는 실력이 있는 편이니까.”
엘프란 족속은 스스로를 검으로 여기며, 그 검을 단련해나가는 걸 삶의 목표로 삶는다.
강한 적수나 괴물과의 싸움은 언제나 엘프 전사들의 피를 끓게 했다.
데일의 제안에 하이엘프는 혹한 기색이었다.
“확실히. 너에게서는 강한 전사의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하지만 지금 너는 약하다.”
“?”
“강한 전사는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남에게 도움을 받아 위기를 헤쳐나온다면. 그건 더는 강한 전사가 아니다. 강한 전사가 아니라면, 내가 왜 결투를 해야 하지?”
“??”
뭔 개소리야.
데일은 당장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엘프들의 생각을 문명인의 기준으로 이해해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데일이 을이고 저쪽이 갑이다.
화를 삭여야 한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는 거지?”
“기다리겠다.”
“뭐?”
“네가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결투하겠다.”
“…….”
결국.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였다.
‘넌 내가 몸이 멀쩡해지면 보자.’
“혹시 방금 속으로 내 욕하지 않았나?”
“……그럴 리가.”
쓸데없이 감만 좋은 엘프였다.
결국. 하이엘프는 자기 할 말을 마치고는 쌩하고 사라졌다.
데일은 다시 늪 안에 파묻힌 채로 지내야 했다.
밤이 오고. 별이 뜨고. 달이 지고. 다시 아침이 온다.
혼자서 명상으로 보내던 데일은 슬슬 지루함을 느꼈다. 아무리 데일이라도 인내심에 한계는 있기 마련이니.
데일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위를 관찰하는 데에 집중을 쏟기 시작했다.
주의를 기울이면, 이 고요한 늪에도 생명들이 약동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썩은 물에는 벌레들이 알을 깠고. 그런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부리가 노란 새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 새들을 잡아먹기 위해 표범이나 맹수 따위가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데일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늪의 일부가 되어. 그 모든 과정을 두 눈에 남았다.
어느 날은 개구리 한 마리가 데일이머리 위에 앉아 개굴개굴 울어댔다.
짝을 찾는 것일까?
개구리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요란한 구애의 노래는 포식자를 끌어들였다.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쌩 하고 개구리를 낚아채 갔다.
가끔은 리자드맨 같은 상위의 몬스터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가끔은 이리와 표범 같은 맹수들이 목숨을 걸고 영역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고요해 보이던 늪은, 그 나름대로 치열하고 필사적인 경쟁의 장이었다.
인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게 때로는 누군가를 죽이며, 또 때로는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
그 자연의 순환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어이없는 말이지만, 데일은 무언가 편안함을 느꼈다.
‘이것도…… 나쁘지만은 않군.’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데일은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조부가 죽은 그날 이후로 처음으로 느껴보는 심적 여유다.
조부가 그토록 말하던 해탈이라는 경지일까? 다만. 그런 데일의 정신적 성취를 방해하는 이가 있었다.
“거기서라!! 내 점심아!!”
사슴 한 마리가 쌩하고 지나간 뒤. 그 뒤를 하이엘프가 쫓는다.
사슴은 필사적으로 뛰었다. 하이엘프도 그 못지않게 필사적이었다.
그녀는 언제 발이 빠질지 모르는 늪 길을 사뿐히 뛰었다.
그렇게 추격을 계속하다 등에 멘 사냥용 활을 꺼냈다. 화살을 시위에 걸었고. 주저 없이 쏘아 보냈다.
팍!
사슴의 목덜미에 정확히 화살이 꽂혔다. 사슴이 힘없이 고꾸라졌다.
‘달리면서 활을 쏘는 묘기라.’
저런 게 가능한 건 타고난 전사인 하이엘프들밖에 없으리라.
하이엘프는 바닥에 쓰러진 사슴을 향해 다가갔다.
피를 뺀 뒤 능숙히 해체했고.
칼로 살을 잘라내, 그대로 입에 가져갔다.
“음. 싱싱하군.”
하이엘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과 하이엘프의 시선이 마주쳤다. 하이엘프는 고기를 몸 뒤로 가렸다.
“안 줄 거다.”
“기대도 안 했다.”
하이엘프는 매일 데일이 있는 곳을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갔다.
데일이 회복되었는지. 다시 강한 전사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거란다.
데일은 이제 하이엘프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고집스러운 하이엘프들은 한 번 뱉은 말을 꺾는 법이 없으니까.
‘그래도…… 실력이 나쁘지는 않군.’
역시 하이엘프라 할까. 그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웬만한 기사들보다도 훨씬 강하지 않을까?
데일이 보기에 이 하이엘프는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였다.
우선 하이엘프는 보통 북쪽의 고산지대에 살지, 이런 덥고 습한 늪지에 살지 않는다.
그리고 하이엘프는 기본적으로 부족을 이뤄 생활한다.
실력을 기르기 위해 대륙을 방랑하는 떠돌이도 있지만,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실력을 쌓았다면. 이제 자랑도 하고, 남들의 칭송도 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뛰어난 하이엘프 전사는 이 늪지대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상하군.’
데일은 하이엘프 사회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었다.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처음으로 마주했던 게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그런 데일이 보기에 이 늪지대의 하이엘프는 실로 이상한 존재였다.
그래서 주위를 구경하는 김에 이 하이엘프도 관찰했다.
하이엘프는 매일같이 사냥을 위해 뛰어다녔다.
먹는 양이 어지간히 많은 모양.
사냥감을 찾아 분주히 뛰어다니고, 때로는 사냥한 짐승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맹수들과 싸우고, 때로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참으로 원시적이지만, 어찌 보면 충실한 삶.
하이엘프는 이 늪의 생태계에 완벽히 녹아들어 있었다.
……데일이 보기에는 짐승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데일은 그렇게 주위를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슬슬 데일의 마음이 대자연에 녹아들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던 어느 날.
기회는 불현듯 다가왔다.
“거기서라!!!”
오늘도 하이엘프가 호탕하게 외치며, 늪을 달렸다.
그녀가 쫓는 건 토끼 무리였다.
토끼 세 마리가 깡충깡충 뛰며 급히 도망 다녔다.
토끼와 하이엘프는 빠르게 데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도망쳤던 토끼 한 마리가 데일의 앞에 되돌아왔다.
하이엘프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왔던 곳으로 요령 좋게 되돌아온 것.
‘제법 영리한 놈이군.’
토끼는 지쳤는지. 비틀거리며 데일을 향해 다가왔다.
말없이 누워 있는 데일은 이미 이 늪지대의 배경 중 하나였다. 바위나 나무 따위와 다름없었다.
데일은 토끼를 멍하니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기회다.’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벌레나 개구리 몇이 다가왔을 뿐이다.
이 정도의 짐승이 다가온 건 처음이다.
데일이 기회를 엿보자 토끼가 흠칫했다. 그러고는 불안한 기색으로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이런.’
순간 데일이 뿜어내는 기세를 알아차린 걸까.
데일은 얼른 마음을 안정시켰다.
지금껏 이 늪지대에 파묻혀서 얻은 해탈의 경지.
명경지수의 마음.
생각을 비우면, 지금의 데일은 바위와도 다름없다.
데일이 마음을 가라앉히자, 토끼는 다시 안심하고 데일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데일은 눈을 감고. 청각만으로 토끼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눈을 떴다가는 마음이 평온이 깨져 토끼를 놀라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토끼가 충분히 가까워진 그때.
‘지금!’
데일은 쥐꼬리만큼 남은 마력을 움직였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 정도의 마력을 회복하는 데에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술이 저 토끼에게 닿는 데에만 집중했다.
“!”
화들짝 놀란 토끼가 곧바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마력이 토기의 머리에 닿는다.
영혼 지배.
짐승의 의식을 지배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눈이 탁 풀린 토끼가 데일을 향해 걸어왔다.
데일은 토끼를 물어뜯었다.
마력이 사라져 지배가 풀린 토끼가 화들짝 놀라 버둥거렸다.
하지만 데일은 토끼를 절대 놓치지 않고, 조금 남은 생기까지 전부 빨아들였다.
데일의 몸 일부가 회복했다.
두 다리가 생겨났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앙상한 다리다.
토끼가 가진 생기가 너무 적었다.
‘아직 한참 부족해.’
데일은 아쉬워했다.
하지만 느리게라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데일은 천천히 움직이며, 보이는 짐승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처음에는 개구리 따위의 작고 잡기 쉬운 동물부터 노렸다.
그렇게 해서 몸이 더 회복하자, 그 다음에는 더 큰 동물을 사냥했다.
토끼와 쥐를 노렸고. 둥지에서 쉬고 있던 새들을 노렸다.
데일은 그간 유심히 지켜봐 왔던 이 늪지대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쉼 없이 사냥을 계속했다.
바위의 위치에서 개구리로. 개구리에서 토끼로.
토끼에서 표범의 위치까지.
생태계의 지위를 순식간에 올려 나갔다.
마침내 표범과 리자드맨을 사냥해 흡수했을 때.
데일은 온전한 기량의 7할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 생태계의 최정상에 군림하는 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오오! 드디어 회복한 건가!”
하이엘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일의 회복이 진심으로 기꺼운 모양.
데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데일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좀 맞자.”
되갚아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