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71)
하켄
* * *
라만티스는 당황했다.
뒤쪽에서 적군이라고?
‘저 방향은 알브헤임인데. 대체 어디로 온 거지?’
데일은 이미 한 발 쏜 발리스타를 내려놓은 뒤, 다음 발리스타를 손에 들어 그대로 라만티스를 겨냥했다.
퉁!
시위의 장력이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쇠화살이 다시금 날아들었다.
라만티스는 뒤로 풀쩍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데일은 마검을 휘두르며 악마들의 진영을 헤집은 뒤. 라만티스의 앞에 섰다.
하켄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데, 데일 경. 역시 살아 있었군요.”
“늪지 마을에 남겨둔 쪽지를 봤다. 그나저나 결투라니. 제정신인가?”
“그게. 사정이 있습니다.”
“에스델이나 다른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그것도 사정이 있습니다.”
“나중에 듣겠다.”
라만티스는 이 갑작스러운 개입에 당황하는 대신, 도리어 흥미를 빛냈다.
“오호. 그대가 데일인가?”
“듣던 대로 강맹한 기운이군. 거기 얼간이랑은 확연히 달라.”
“즐거운 싸움이 되겠어.”
데일은 그런 반가운 인사에 짧게 답했다.
“역겹게도 생겼군.”
“뭐……?”
“하켄. 사령관을 맡고 있다지? 내가 이놈을 맡을 테니, 공격 명령을 내려라.”
“아, 알겠습니다.”
정신 차린 하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뒤.
아군 진영을 향해 황급히 달려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있던 병사들에게 하켄이 외쳤다.
“전군 공격! 데일 경께서 오셨다!”
“데일?”
“그 흑기사 데일?”
아는 이름의 등장에 병사들이 웅성거렸고, 참모들은 크게 감탄했다.
“설마 사령관은 처음부터 이걸 다 계획하고?”
“아하. 결투를 받아들인 것도 전부 계략이었구나.”
“정말 소름 돋을 정도의 치밀함이다……!”
“됐으니 어서 진격하라고!”
하켄의 명령에 진격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갔다.
뿔피리가 전장을 울렸고.
예상치 못한 지원군에 사기가 오른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땅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이길 수 있다!!”
병사들과 악마의 하수인들이 어우러지고. 격전이 펼쳐졌다.
데일이 이끌고 온 밤의 군단은 악마의 뒤통수를 치며 제대로 휘젓고 있었다.
무르하탈의 강력한 언데드 군세가 상대를 덮치고.
리자드맨과 도적 떼가 기회를 노리며 칼을 휘둘렀다.
펑! 퍼펑!
짐마차에 싣고 온 대포가 이따금 불을 뿜기도 했다.
대포의 화력 자체는 마법사에 비해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저 굉음만으로도 상대를 위축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혼전을 슥 훑어보던 라만티스는 피가 끓어 못 참겠다는 듯. 기다란 혀를 내빼 차크람을 핥았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생각이지?”
“우리는 인내심이 많지 않아.”
“안 그래도 얼른 죽여줄 생각이었다. 너희를 죽여야 네 똘마니들이 힘을 잃을 테니.”
데일은 라만티스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라만티스. 싸움을 삶의 업으로 삼는 악마. 엘프 같은 놈.’
마침 적절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일은 지금 자신의 힘과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달해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라만티스는 참 적절한 상대다.
다른 악마처럼 해괴한 마법을 부리거나 비열하고 추잡한 꼼수를 부리는 대신, 라만티스는 자신의 힘과 기술로 승부 보는 타입이다.
원 없이 싸워보기에 딱 알맞았다.
“그럼 가겠다. 우리는 라만티스. 강자를 사랑하고 영원한 투쟁…….”
“나는 데일이다.”
데일은 라만티스의 소개를 끊고, 곧장 마검을 뻗어 들어갔다.
급하게 말을 멈춘 라만티스가 네 개의 차크람을 포개 마검을 막아냈다.
카각!
엄청난 힘이 실린 일격에 라만티스가 뒤로 밀려났다.
“과연 다르구나!”
“저 하켄이라는 놈과 달리, 네 명성은 헛된 게 아니었군!”
“처음부터 제대로 가겠다!”
라만티스가 차크람을 공중을 향해 붕 던졌다.
그러자 4개의 차크람이 환하게 빛나더니, 8개로 늘어나는 게 아닌가?
라만티스는 4개의 차크람을 투척한 뒤, 나머지 4개는 손에 쥔 상태로 데일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빛나는 여덟 칼날이 죽음의 궤적을 그렸다.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은 공격이다.
갑옷을 방어력을 믿었다가는 그대로 잘려 나갈 터.
데일은 집중했다.
차크람의 궤적을 읽었다.
언뜻 불규칙하고 기하학적으로 보이는 궤적이라도, 모두 완벽히 계산해 던진 공격일 터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가 부딪혀 튕겨 나갔을 테니까.
잘 계산된 공격이라면, 그 계산을 파훼할 지점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데일은 그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냈다.
콰콱!
수직으로 내려벤 마검이 차크람 셋을 동시에 떨어트렸다.
튕겨나간 차크람이 다른 차크람과 부딪혔고. 불티를 허공에 흩날리며 튕겨나갔다.
“……허.”
“한 방에 튕겨낼 줄은 몰랐는데.”
라만티스는 감탄했다.
하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곧바로 빛나는 차크람을 되돌려, 다시 공중에 던졌다.
그러자 8개였던 차크람이 이번에는 16개로 늘어났다.
라만티스는 직접 접근해오는 대신. 이번에는 네 개의 팔을 이용해 차크람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데일은 검을 휘둘러 차크람을 튕겨냈다. 라만티스는 멈추지 않았다.
차크람을 다시 되돌려 공중에 띄우고 던지기를 반복했다.
16개였던 차크람은 다시 32개가. 32개였던 게 다시 64개로.
빛나는 원반이 끝없이 쏟아진다.
도저히 눈으로 다 읽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차크람을 보며 데일은 생각했다.
‘일일이 쳐내서는 안 되겠군.’
데일은 마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뒷발을 앞발 앞으로 옮기고. 다시 앞발을 뒷발의 앞으로 옮겼다.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 데일의 몸이 순식간에 가속해 마치 팽이와도 같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팅! 팅! 팅! 팅!
원반이 빠르게 회전하는 칼날에 튕겨나갔다.
그 우악스러운 기술에 라만티스는 잠깐 멈칫했지만, 다시 팔을 움직였다.
이건 자존심 대결이었다.
라만티스는 무수히 늘어나는 원반을 끝없이 던져댔다.
데일이 반드시 실수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데일은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발휘해, 결코 실수하지 않았다.
끝없이 쏟아지는 빛의 원반과 검의 폭풍이 부딪히며 주위에 불티를 아름답게 흩날렸다.
그리고 돌연.
자신을 날아오는 수백 개의 빛나는 빛의 원반을 향해 데일이 망토를 펼쳤다.
망토에 새겨진 푸른 사자가 현실로 튀어나오고는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데일에게 쏟아지던 수백 개의 차크람이 정확히 방향을 바꿔, 원주인에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법 반사.
“뭐……!”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지만, 과연 라만티스는 경험 많은 전사였다.
그는 몸을 웅크려 뒤로 힘껏 물러났다.
파바박!
몸에 빛나는 차크람이 틀어박혔지만 어떻게든 급소만은 회피했다.
하지만 그냥 보고 있을 데일이 아니다. 성큼성큼 걸어간 데일이 마검을 수직으로 내려베었다.
라만티스의 얼굴에 마검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드리웠다. 라만티스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마검이 왜인지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졌다.
마치 별이 머리로 떨어지는 듯한 위압감.
라만티스는 네 개의 팔을 급히 교차했다. 단단한 피부와 뼈로 막아내리라 생각했다.
우그극.
그러기에 데일의 힘이 너무 강했고, 마검이 너무 날카로웠다.
4개의 팔 중 두 개가 잘려 나가자 라만티스는 그제야 방어가 의미 없음을 깨닫고 데일에게 달려들었지만…….
“이놈!!”
서걱.
마검을 되돌린 데일은 깔끔하게 검을 휘둘렀다.
요즘 한창 수련하고 있는 가로베기.
반으로 토막 난 라만티스가 바닥을 굴렀다.
“대체 무슨…….”
“이런 터무니 없는 실력을 가진 전사가 또 있다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해 라만티스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승부가 난 셈이다.
데일은 마검을 내려놓고 몸 상태를 살폈다.
갑옷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수백개의 빛의 원반을 모조리 쳐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를 생각하면 별 거 아닌 피해다.
그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생각보다 쉬운데.’
그가 강해진 걸까?
확실히. 데일의 강함은 두르핀에게 죽을 뻔한 이전보다 훨씬 강하고, 수련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악마를 홀로 사냥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너무 수월하지 않은가.
‘내가 강해지기도 했지만…… 악마가 약해지기도 했다?’
데일은 라만티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컨디션이 안 좋은가?”
“전사를 모욕할 생각인가?”
“깔끔하게 죽여라!”
격렬한 태도에 데일이 설명을 덧붙였다.
“모욕하려는 게 아니다. 뭔가. 내가 아는 라만티스라는 악마는 이것보다 훨씬 강대했던 거로 기억해서 말이다.”
강대했다는 말에 조금 기분이 풀린 라만티스가 말했다.
“……그래. 그랬었지.”
“본디 우리는 우주를 떠돌며 숱한 강자들과 싸워오던 전사다. 이것보다 더 강했었지.”
“그럼 왜 지금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지?”
“힘을 빼앗겼다.”
“누구한테서?”
“황혼.”
라만티스가 이를 으득 갈았다.
“놈은 딱 우리가 저항하지 못할 만큼의 힘을 빼앗아.”
“우리를 놈의 발아래에 뒀지.”
데일이 물었다.
“황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군? 너희들은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소릴!”
“힘을 되찾는 그 날, 우리는 황혼에게 복수할 것이다!”
데일은 라만티스와의 대화에서 얻은 정보를 곰곰이 종합했다.
‘확실히 사이가 안 좋군. 황혼이 악마는 아닌 건가? 게다가 힘을 빼앗았다라…… 어떤 식으로 힘을 빼앗는 거지?’
긴 고민 끝에 문득 떠오른 가능성 하나.
혹시 황혼은 데일과 비슷한 방식으로 강해지는 게 아닐까?
상대의 생기와 잔혼을 흡수하는 데일처럼 말이다.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다.
하지만 데일은 이 가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고민이 길어지자, 눈치를 보던 라만티스가 반 토막 난 몸을 슬그머니 이어붙이려 했다.
콰직!
데일은 마검을 머리통에 박아 넣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라만티스가 쓰러지자 전장에 즉각적인 변화가 일었다.
라만티스의 추종자들이 그 힘을 크게 잃은 데다가 혼란에 빠졌다.
그 혼란을 틈타 기세를 올린 아군이 파도처럼 들이닥치자, 적군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건 잔당을 추격 토벌하고, 뒤처리를 하는 일뿐이다.
데일은 우선, 라만티스의 시체에 입을 가져다 댔다.
‘라만티스의 피를 마시면 정신력 능력치가 오르던가?’
악마의 피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데일은 라만티스의 피를 마셨다.
푸른색의 끈적이는 피가 식도를 넘어가자, 데일은 기분이 한결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앞서 마셨던 다른 악마의 피처럼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뭔가 변하긴 했군.’
다음으로는 생기와 잔혼을 거둘 시간이다.
라만티스의 몸에 건틀릿을 박아 넣었다.
막대한 생기와 함께 끔찍한 기억들이 난잡하게 흘러들어왔다.
데일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악마는 이게 문제다.
큰 성장을 담보하는 만큼, 정신에 대한 타격도 적지 않다.
하지만 라만티스의 피가 준 효과를 여기서 느낄 수 있었다.
정신력 능력치가 도움이 됐다.
다른 악마 때와 달리.
데일은 악마의 생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대부분 거둘 수 있었다.
물론. 한동안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은 필요했다.
영혼이 찢겨나간 라만티스가 내지르는 비명이 머리를 웅웅 울리니.
어쨌거나 만족스러운 수확이었다.
아마도. 아니, 거의 확실히 등급이 오를 것이다.
이제 새로운 기술도 배울 수 있을 터.
‘이곳에 밤의 신전이 있으면 좋겠는데.’
마침 하켄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데일이 핀잔을 줬다.
“그래도 명색이 사령관이란 놈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설렁설렁 지나다녀도 되는 건가?”
하켄이 씨익 웃었다.
“저 하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부하들이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여주면 돼요.”
“……듣기로는 라만티스의 공세를 일곱 번이나 막았다는데. 그런 식으로 했다고?”
“되던데요?”
데일은 하켄이 사령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말아먹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하켄의 부하들이 너무 유능했다.
“물론. 그것도 이제 끝이죠. 이제 데일 경이 왔잖아요? 팔자에도 없는 사령관은 그만둬야겠어요.”
“아니. 계속해라.”
“?”
유능한 인력들이 하켄을 중심으로 뭉쳐 있다.
늑대왕 하켄.
설령 그게 꾸며낸 모습이라 해도, 굳이 진실을 밝혀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이 하켄을 믿고 있다면, 그것도 이용해야 해.’
데일의 설명에 하켄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그래요 뭐. 이제 악마도 뒤졌으니…….”
“그래. 그럼 대충 정리할 건 다 한 것 같고. 도시 안에 밤의 신전이 있나? 기도를 좀 드리고 싶은데.”
“아. 제가 사령관이 되고 가장 먼저 한 게 신전을 세운 겁니다.”
“그러면 그곳에 일단 들르겠다.”
“그래요? 저는 경이 휩쓸린 이후의 일에 대해 얘기나 나누려 했는데…… 급하시면 이따가 하죠.”
데일은 걸음을 멈췄다.
당장 신전으로 가 힘을 얻느냐, 아니면 동료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느냐.
별거 아닌 고민을 의외로 꽤 깊이 갈등한 끝에, 데일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이야기부터 하지. 당장 급할 게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