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97)
황혼
* * *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탑에서 주황빛이 끝없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하늘로 솟아올라, 온 사방을 향해 퍼져나갔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황혼의 추종자들은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아아!”
“인간의 시대가 오리라!”
눈물을 쏟아내며, 기쁨을 울부짖는 광신도들.
그 광기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황혼은 차분히 서 있었다.
누군가는 황혼이 미쳤다고 말한다.
미치광이에, 머리가 돌아버린 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니다.
황혼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
가끔은 하찮은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황혼은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자였다.
그렇기에 숱한 위기를 넘어 이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한 걸음 남은 건가.’
황혼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하수인이 다가왔다.
어디서나 볼법한 평범한 노인의 생김새를 한 사내였다.
“경하드립니다. 이제 정말로 목표를 이루시는군요.”
“경거망동하지 마. 아직 성공한 게 아니야.”
“하지만 이미 계획은 완성 단계입니다. 누가 당신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황혼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있어. 나를 유일하게 막을 수 있는 한 사람이. 그가 반드시 올 거다.”
“…….”
“왜 그런 표정을 짓지?”
노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해봐. 책망하지 않을 테니.”
“그저 방금 황혼께서 짓고 있는 표정이 꼭…… 그가 오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기를 바란다라. 당연한 말을. 그의 영혼은 이 의식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당연히 와 주어야지.”
노인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황혼은 가슴에 틀어박힌 룬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많은 위기가 있었다. 덕분에 대업이 너무나 늦어졌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돼. 눈앞의 성공에 홀린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법이니.”
“명심하겠습니다.”
“명령을 내리겠다. 남아 있는 인간들이 이곳으로 병력을 보내겠지. 그들을 막아라. 내가 의식을 완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황혼이 탑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탑에서는 빛으로 된 줄기가 촉수처럼 뻗어나와 황혼의 몸을 관통했다.
황혼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강력한 힘과 전능감을 느꼈다.
한 꺼풀 더 인간이라는 탈에서 벗어났다.
황혼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할 수 있겠나?”
노인은 한 치의 주저 없이 답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 * *
데일이 신전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처음 보게 된 건 머리를 부여잡고 덜덜 떠는 늙은 사내였다.
“아으. 아으으!”
복장을 보니 이곳 신전을 관리하는 사제였다.
그는 끔찍한 광경이라도 목도한 사람처럼 몸을 벌벌 떨어댔다.
눈가에는 물기가 맺혔고, 다리는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데일이 그런 사제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시오.”
벌벌 떨던 사제는 고개를 들었다.
두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데일을 알아본 것이다.
“데, 데일 경? 맞습니까?”
“맞소.”
그러자 사제가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와, 데일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크, 큰일입니다!”
“일단 진정하고.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붕붕 고개를 끄덕인 사제가 호흡을 골랐다.
여전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여신께서. 여신께서 위기에 빠지셨습니다. 저희에게는 들립니다! 그분이 고통에 신음하는 목소리가! 황혼! 그 가증스러운 자가 기어코 이 세상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습니다!”
“……여신이랑 얘기하고 싶소.”
“아아. 이쪽으로 오십시오!”
사제는 기도실로 데일을 들여보내주었다.
데일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예를 표했다.
“왔습니다.”
대답이 없다.
데일은 혹시나 해 목소리를 높여 여신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크게 불러도, 여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하나.
[…….]데일은 여신의 존재를 느꼈다.
분명 데일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다.
하지만 여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전과 같이 단어의 형태조차 내려주지 못했다.
‘여신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졌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안 그래도 바쁘니,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일은 잠시 고민하다 여신에게 말했다.
“예전에 당신이 말했었죠. 이 여정의 끝에서,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아무래도 그 끝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결전이 다가왔다.
이기든, 지든.
어떤 식으로든 결말은 나오리라.
“이전부터 얘기하고 싶었지만,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만큼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당신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데일은 여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밤의 여신은 언제나 데일에게 호의를 보였고, 진짜 아들처럼 대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데일은 그 호의 아래에 의도가 깔려 있다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치 않는다.
“당신이 저를 이용해서 원하는 걸 이루려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당신의 힘이 필요했으니, 당신을 믿지는 않아도 계속 당신을 이용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걸 주고받는 그런 계약 관계.
이 세계의 신앙이란 그런 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데일은 훌륭한 신도였을 수도 있으리라.
“애초에 당신을 믿는 건 제게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신이 없는 세계에서 왔고, 당신은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일이 없으며,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건 당신의 책임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은 악마가 대륙을 집어삼키는 걸 방치했다.
방치라는 말은 너무한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여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지상으로 개입하기 위해 희생해야 할 힘이 아까워서일 수도 있다.
지금의 혼란이 오히려 신앙에 더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실망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황혼의 사상에 공감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데일은 이 여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고, 때로는 의심했으며, 조금 한심하고 무책임하다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순수하지만은 않았다고 하여, 저에 대한 당신의 호의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설령 다시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으니 지금 말해두겠습니다.”
데일은 천천히. 그리고 힘을 주어 발음했다.
“감사합니다.”
데일은 자리에 일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표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라 해도, 데일이 이곳까지 온 데에는 여신의 도움이 컸으니.
[…….]여전히 기도실 안은 고요하다.
하지만 데일은 왠지 여신이 자신의 모습을 전부 보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늘어트리며 호들갑을 떨지 않았을까?
아니면 주책맞게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밤의 여신이 차갑고 도도하다는 인상을 가진 사제들이 충격에 빠질 모습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감사는 전해졌다.
“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저한테 힘을 내려줄 여력이 있으십니까? 이번에 흡수한 생기가 제법 있어서.”
대답은 없었다.
데일은 그걸 거절로 읽었다.
‘힘든가 보군.’
데일은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데일은 기도실을 떠났다.
기도실에는 죽음처럼 차갑고 서늘한 적막만이 맴돌았다.
* * *
밤의 여신은 더 이상 힘을 내려주기 힘들다.
‘정확히는, 힘을 내려주려면 그만큼 희생해야 할 상태인 거겠지.’
신들이라고 전능한 존재는 아니며 제약에 묶여있다.
이제 데일에게 힘을 내려주려면 희생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렸고, 지금까지 여신들은 그런 식으로 자기 힘을 사용하는 데에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이제 여신의 힘으로 더 강한 힘을 얻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조금 아쉽긴 하군.’
데일은 본인의 성장이 결코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잠들어 있던 시간을 제외하면 약 1년 반.
그간, 데일은 단순히 ‘빠르다’라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
엘프들에게 쫓기고, 조금 강한 몬스터와 악마가 아닌 그 하수인에게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게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데일이 혼자서 황실 기사단을 전부 꺾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놀라울 정도의 변화.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냐? 묻는다면 대답은 확고했다.
‘부족하겠지.’
황혼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게임에서 보았던 상위 서열 악마들보다는 강할 것이다.
그러니 악마를 휘하에 부리는 것일 테니.
하지만 지금 데일이 그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힘들다. 현실적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다.
게다가 꼭 여신의 힘을 받아야만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장 황실 기사단과의 결투는 데일의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루드비히의 가르침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
숫자로 찍히는 능력치 외에도 데일에게는 많은 게 있는 셈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최대한 기량을 갈고닦아야겠군.’
데일은 거리를 걸었다.
이번 전투의 후처리로 병사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부상자를 수습했고, 건물에 붙은 불을 진화했다.
요새는 엉망이었다.
멜피스의 졸전 탓도 있지만 엘레나 탓도 무시할 수 없다.
병사들은 도시를 갈아버리던 토네이도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엘레나에게 책임을 지우자는 말은 거의 없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엘레나가 황혼의 병력을 일소해버린 전공을 세운 것.
둘째. 엘레나의 신분이 고귀한데다가 데일과 친하다는 것.
셋째. 이제 곧 황혼과의 싸움에서 엘레나의 힘이 중히 쓰일 거라는 것.
덕분에 엘레나는 황혼과의 결전에서 열을 다해 싸우는 걸 조건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병사들도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토네이도 자체에 죽은 사람은 없기도 하거니와, 적이었을 때는 두려운 ‘마녀’라도 같은 편이면 든든한 ‘마법사’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저 하늘의 빛이 사람들의 힘을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으레 변화에 금방 적응하기 마련이라, 온 하늘이 주황빛에 덮여도 금방 익숙하게 생활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이제 그게 불가능하다.
저 빛은 모두의 생기를 거둬가고, 온 대륙에 죽음을 뿌릴 것이다.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속을 지배했다.
“정말로 세상이 끝나려나…….”
“신들께서 우리를 구해주시겠지?”
그렇게 실의에 빠진 이들의 눈에 데일의 모습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데일 경!”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황혼을 무찌를 수 있는 거 맞죠? 그렇죠?”
간절함.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곳에 여신의 기사가 있다.
수많은 위업을 쌓으며, 사람들을 구한 흑기사가.
그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싸움을 이겨왔다. 강적들을 꺾어왔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그래 주기를 원했다.
“…….”
기대가 무겁다.
이전부터 말했지만, 데일은 자신을 향한 적대적인 시선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호의적인 관심도 별로 달갑지 않았다.
이런 기대감은 더더욱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데일은 여기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확신을 주는 것.
데일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곧바로 황혼과 싸우러 갈 거다. 대륙의 모든 아군이 함께 싸울 거고, 너희들도 함께하게 되겠지. 그러니 지금 미리 준비해두어라.”
한 병사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가. 이길 수, 있을까요?”
“…….”
데일은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데일은 확신에 찬 어조로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을 해주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데일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약속을 했으니 데일에게는 저 말을 지킬 의무가 생겼다.
그렇게 마지막은 빠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