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03)
결전
* * *
데일과 동료들은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유령선을 타고 내려다본 적군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이쪽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원을 가득 메운 군세와 점점 더 많은 힘을 빨아들이는 듯 발광하는 거대한 탑.
세상의 종말이 저곳에 있었다.
‘다시 봐도 많긴 하군.’
10만이 넘는 병력.
아군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숫자다.
숫자는 그 자체로 힘이며 위협이다.
3배 차이의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병사들은 위축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쪽에 무슨 선택지가 있겠는가.
결국. 싸우는 수밖에 없다.
데일과 에른스트, 아일라는 3군단 쪽으로 돌아가 작전을 설명했다.
회의는 길었지만 의외로 설명해야 할 건 짧았다.
어차피 대규모의 병력이 부딪히는 대회전에서 세세한 전술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모든 작전을 설명한 데일이 엄숙하게 말했다.
“마지막 싸움이 될 거요. 설령 이기더라도 많은 사람이 죽겠지. 유언을 준비해라. 각자의 신께 기도드리고, 삶을 정리하시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데일의 말을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전달했다.
데일과 함께 온 교단의 사제들은 병사들에게 다가가 마지막 기도를 주관했다.
데일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밤의 신도들이었다.
“부디 데일 경께서 함께 기도해주세요.”
에리얼이 없는 지금. 밤의 여신을 따르는 신도 중 가장 높은 사람은 데일이다.
데일은 신앙심이 없는 자신이 이런 역할을 맡아도 될지 잠시 고민했다.
‘뭐. 괜찮겠지.’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병사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하늘을 포근하게 뒤덮은 어둠이시여. 누구에게나 평등한 죽음이시여. 당신의 신도들이 최후의 싸움을 앞두고 있으니, 강한 적에게 맞설 힘을…….”
데일은 언젠가 에리얼이 하던 기도를 비슷하게 흉내를 냈다.
신도들도 눈을 감고 데일의 기도를 따라 읊었다.
그러자 묘한 일이 일어났다.
데일의 어깨 위에 무언가 사르륵 내려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존재감이지만, 분명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
데일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바, 방금 껀?”
“설마 여신님께서……?”
존재감은 금방 휘발되어 버렸다.
하지만 여신이 이곳에 잠시 들렸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없는 힘이나마 쥐어짜내, 자신의 마지막 신도들을 굽어살피고 간 게 아닐까?
“…….”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던 데일은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그 목소리가 하늘에 닿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마지막을 준비했다.
아껴놨던 모든 물자를 마음껏 풀었다.
술과 고기가 병사들에게 주어졌고, 병사들은 불콰하게 취하며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을 앞둔 특유의 비장함과, 이런 상황에서도 웃어 보이려는 사람들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가 흘렀다.
식사가 끝나자 병사들은 잠을 잤다.
몇몇 병사들은 되도록 이 단잠이 끝나지 않기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침내 때가 왔다.
하늘은 여전히 주황빛으로 빛나지만, 사람들의 생체 시계는 아침이 왔음을 알렸다.
데일은 사람들의 앞을 섰다.
이번 출진 연설에는 에른스트와 아일라, 마탑의 마스터를 비롯한 사람들이 차례대로 연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그 첫 번째 순서는 데일에게 돌아왔다.
황제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게 우스운 부분이었다.
데일은 단상에 올라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투구를 벗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병사들과 눈을 마주쳤다.
침묵의 힘.
모두의 집중이 최고에 이르렀다고 느꼈을 때, 데일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간 너무 많은 걸 빼앗겨 왔소. 악마가 이 땅에 처음 강림한 지 수십 년이오. 사람들은 조국을 잃었고, 고향을 잃었고, 가족과 친우,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신앙이 위협받았으며, 낮과 밤을 잃어버렸소. 그리고 저 간악한 무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통째로 빼앗아 가기 위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디려 하고 있소.”
데일이 이어 말했다.
“나는 그간 많은 사람을 보아왔소. 부모를 잃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고아를 보았고, 친우의 죽음에 남몰래 눈물 흘리는 용병을, 제국에 죽는 그 순간까지 충성하던 위대한 기사와 신념의 차이 때문에 자신의 손자를 죽여야만 했던 노장을 보았소.”
데일은 병사들과 눈을 맞췄다.
긴장한 병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 역시 각자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오. 다른 신앙, 다른 성별, 다른 신분, 다른 가치관, 다른 삶, 다른 꿈. 모든 게 다를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뜻을 품고 이 자리에 모였소. 바로 우리의 모든 걸 앗아가려는 저 괴물을 막아내는 것!”
데일이 오른 주먹을 하늘을 향해 내질렀다.
“내가 앞에 서겠소! 내 뒤를 따라오시오! 모두가 힘을 합쳐 끝까지 싸운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오!!”
연설을 마친 데일은 조용히 반응을 살폈다.
잠깐의 침묵.
이윽고 터져 나오는 우레와 같은 함성.
“우와아아아아!”
“반드시 이기자! 우리의 삶을 되찾자!”
“제국 만세! 데일 경 만세!”
“위대한 기사께 영원히 영광 있으라!”
용기와 두려움은 비슷한 성질을 지녔다.
용기는 전염된다.
모두가 함께 환호하자, 병사들은 마치 약에라도 취한 듯, 두려움을 모두 잊고 승리를 부르짖었다.
데일은 단상에서 내려와 다음 사람에게 양보했다.
아일라와 에른스트가 연달아 연설하고, 그때마다 뜨거운 반응이 일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뿌우우우!
두개골 속을 웅웅 울리는 섬뜩한 뿔피리가 온 황무지에 퍼져나 왔다.
하켄과 그 군대가 출진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쪽도 뿔피리로 화답했다.
덩치 큰 병사가 뿔피리를 불었고.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그 소리를 더욱 멀리 퍼져나가게 했다.
군대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언제나처럼 황실 기사단이 섰다.
데일 역시 해골마를 타고 그 옆에 함께 했다.
아일라가 투구를 머리에 쓰며 말했다.
“첫 돌격은 내가 할 거야.”
“옆에서 보조하겠다.”
“부탁할게.”
다른 기사들도 투구를 깊이 눌러쓰고, 투구 끈을 꽉 조였다.
수많은 전장을 누벼온 이 기사들의 눈동자에 두려움은 없다.
오직 전투를 기대하는 열망과 단단한 의지만이 빛날 뿐.
계속해서 전진하고 전진했다.
마침내 적의 군세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병사들도 하나 둘 전장에 선 걸 실감하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대체 저게 다 몇 명이야?”
솟아났던 용기는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두려움이 가득 찼다.
하지만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제자리에 버티고 서려 해도 뒷 열의 아군에 떠밀릴 뿐이니.
이제는 싸우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전진하던 군단은 저 탑의 쏘아내는 광선의 사정거리 밖에서 멈추어 섰다.
적들 역시 이쪽의 접근에 대비해 수비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망루도 보이고. 커다란 전쟁 병기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두 세력은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며 조용히 대치했다.
서로에 대한 비방이나 야유.
자신의 명분과 정당성을 선언하는 연설.
기사들 간의 결투조차 없다.
그저 조용히 응시할 뿐.
데일은 이 순간이 꽤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조용한 군대. 검게 죽은 대지. 주황빛으로 빛나는 하늘과 홀로 고고히 서 있는 거대한 탑.
어느 것 하나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통각이 없는 몸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뭐랄까. 게임이나 영화 같은 비현실로 느껴진다 해야 할까.
현실에서 정신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꿈을 꾸듯이.
“데일 경. 데일 경!”
“……음?”
“정신 차려. 이제 시작이니까.”
아일라의 다그침에 데일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황무지의 반대편. 하켄과 에스델의 군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일라가 검을 빼 들었다.
“기사단.”
그러고는 고함을 지르지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이, 차분히 말했다.
“돌격.”
아일라가 박차를 가했다. 그와 동시에 기사단원들도 말 엉덩이를 힘껏 때렸다.
그렇게 대륙의 모든 걸 건 결전이 시작되었다.
“이랴! 이랴!”
“마지막 싸움이다! 후회 없이 싸우자!”
흙먼지를 날리며 기사단이 돌격을 시작했다.
쐐기형의 대형으로 돌격하는 기사단의 역할은 적군의 방어진을 분쇄하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헤집어 놓는 것.
당연히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임무다.
하지만 위험은 곧 명예다.
가장 위험한 전장이 가장 명예로운 전장이다.
기사단은 명예로웠다.
“제국을 위하여!”
“미하일 경을 위하여!!”
황제 대신 전대 기사단장의 이름을 외치며 기사단이 달렸다.
그 사이에는 데일도 있었다.
적이 곧장 반응했다.
새까맣게 뭉쳐 있던 적 진영에서 형형색색 빛이 발발했다.
마력광이다.
에릭이라는 이름의 키가 유달리 큰 기사가 외쳤다.
“온다! 마법 폭격이다!”
그러자 기사들은 속도를 더 높였다.
머뭇거리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말을 모는 게 생존 확률이 높다는 걸 잘 알았다.
이윽고 마법이 기사단을 덮쳤다.
콰아아!
불꽃. 냉기. 번개.
가장 먼저 위협을 알렸던 에릭 경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버렸다.
마법에 직격당해 불타고, 엉망이 된 땅에 낙마하고, 투석기로 쏘아진 돌덩이에 맞아 찌그러진다.
거대한 탑에서 쏘아보낸 광선은 기사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린다.
하지만 기사단은 결코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묵묵히 돌진했고, 이윽고. 적의 최선봉과 맞닥뜨렸다.
가장 앞서 달려가던 아일라는 지금껏 움켜쥐고 있던 검을 들어올렸다.
아일라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 데일조차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데일은 분명, 아일라가 그녀의 스승을 떠올렸다고 생각했다.
다음 순간.
아일라가 검을 내려그었다.
쩌억!
방패를 들고 있던 적군이 방패째로 반으로 갈렸다.
쐐기가 적의 방어에 구멍을 뚫었다. 남은 건 그 구멍을 넓히는 것.
서로가 뒤엉켜 마법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 시점. 이 순간이야말로 기사들의 시간이었다.
투웅! 팍!
기사단이 말을 몰아 적진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갑을 입은 군마가 먼 거리를 질주해온 가속력 그대로 적병을 들이받자, 방패를 든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그럼에도 힘을 잃지 않은 군마는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방패병 셋을 밀쳐내고 나서야 비로소 돌격이 멈췄다.
그 순간 기사는 능숙하게 말에서 내려 무기를 휘두른다.
순식간에 사방에 뻗어오는 검과 창.
기사 역시 검을 뽑아 휘두른다.
쇠와 쇠가 부딪히며 비명을 내지른다.
기사는 능숙하게 검을 되돌려, 상대의 목을 절묘하게 찔러넣었다.
뒤에서 휘둘러져 오는 날붙이는 갑옷으로 막아낸다.
피가 튄다.
기사의 피는 아니다.
아직은 말이다.
대륙 제일의 기사들 앞에 일반 병사는 적수가 되지 못한다.
병사도.
어쭙잖은 악마의 하수인도.
이름 모를 괴물도, 기사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목이 달아났다.
이제 사태를 파악한 적군도 실력 있는 자를 내보냈다.
황혼의 광신도. 혹은, 악마의 오른팔격인 하수인들.
“싸워볼 만한 놈이 왔구나. 파르스토 님의 엄지손가락. 겐트.”
“펜텐 가문의 파울로다!”
양측의 고급 병력이 전장 곳곳에서 맞부딪혔다.
때로는 아군이 졌고, 때로는 적군이 졌다.
또 때로는 둘 다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싸움은 실로 치열했다. 실로 처절했으며, 영웅적이었다.
하지만 그 치열하고 처절하며 영웅적인 싸움은 이 수십만이 격돌하는 드넓은 전장에서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었다.
개인이 전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강력한 개인이라도 체력과 마력, 집중력이 고갈되면 끝이기 때문이다…….
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
그러한 정설에서 벗어난 이가 있다.
‘슬슬 시작하자.’
전장의 공포.
살육 기계.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가장 큰 위용을 보이는 언데드 기사.
마검을 든 데일이 적진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