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8)
형제단
* * *
데일은 죽은 도적의 머리에서 단검을 빼내며 물었다.
“네가 이놈들 두목인가?”
아바프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앞의 상대가 자기가 처리하라고 지시했던 흑기사임을.
그 흑기사가 도리어 부하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한 숫자를…….’
설마 싸그리 당할 줄이야.
어디서 계산이 잘못된 것일까?
데일의 시선과 마주친 아바프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한 조직의 수장답게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그래. 내가 검은 뱀 형제단의 푸른 독사. 아바프다.”
‘푸른 독사?’
아바프의 머리는 푸른 바다색이었다. 참으로 직관적인 별명이 아닌가 싶었다.
데일은 이번에는 아바프의 옆에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주었다.
금빛 자수가 새겨진 검은 로브를 걸친 청년이었는데, 황금빛 눈동자에는 왜인지 데일에 대한 호의가 가득했다.
눈이 마주치자 청년이 다짜고짜 다가와 데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너무 갑작스럽고, 무해한 움직임이라 데일은 반응하지 못했다.
청년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명성이 드높은 데일 경을 이렇게 직접 보다니, 감격스러운데요? 재수 없는 교단 놈들의 신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가슴이 통쾌하던지! 아,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얄의 아들 하킴입니다. 딱 봐도 흑마법사인 게 눈에 보이죠?”
‘뭐야 이 새끼.’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수다는 그렇다 치고. 태도가 너무 친근하다.
‘쑥대밭이니 뭐니. 에리얼이 하던 얘기랑 비슷하군.’
터무니없는 소문이 이래저래 많이 퍼진듯했다.
데일은 이 나사 빠진 청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도 저놈이랑 한패인가?”
“예?”
하킴은 아바프를 슬쩍 쳐다본 뒤,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단 지금은 그렇죠?”
“알았다.”
철퍽!
데일은 그대로 하킴의 머리를 내리쳤다. 마법사가 굳이 거리를 좁혀주었는데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하킴의 머리는 간단히 뭉개져 버렸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다음 순간이다. 머리가 으깨진 하킴의 몸이 스르륵 녹아내리더니, 끈적한 고깃덩이가 되어버렸다.
동시에 아지트의 뒷문이 벌컥 열리며 또 다른 하킴이 들어왔다.
“하하하! 듣던 대로 화끈하시군요! 역시 남자다우십니다! 이 하킴, 데일 경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 하킴의 모습에 아바프가 당황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데일은 하킴의 수법을 꿰뚫어 봤다.
‘고기 인형 주문.’
예비 육체를 만들어내 본체 대신 조종하는 흑마법이다.
몸이 약한 흑마법사에게는 참으로 유용한 마법이고,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엿 같은 주문이다.
“네크로맨서였나?”
하킨이 화색을 띠었다.
“어? 방금 그것만으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흑마법에도 조예가 있으신가요? 역시 데일 경이십니……!”
푹! 빠르게 날아온 단검이 하킴의 얼굴 한가운데에 박혔다.
이번에도 하킴의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뒷문이 열리며 다시 하킴이 들어섰다.
하킴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데일 경? 화끈하신 건 좋지만, 대화를 좀 하면 안 될까요?”
데일은 대답 대신 롱소드를 굳게 쥐었다. 쓴웃음을 지은 하킴이 중얼거렸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죠. 일단 팔다리를 자르면 대화할 수 있겠죠?”
하킴이 슬쩍 뒷걸음질해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자 우르르하는 발소리와 함께 앞문과 뒷문으로 무언가가 뛰어들어왔다.
“우어어.”
“우으.”
언뜻 보면 사람이다.
엘프, 드워프, 인간, 그 조합도 다양하다.
하지만 하나 같이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몸에서는 지독한 썩은 내가 난다.
망자들이었다.
‘살아있는 시체 주문.’
시체 병사들을 보며 아바프가 외쳤다.
“잠깐! 이게 다 뭐요! 내 부하들이 저 흑기사와 싸울 때, 시체 병사도 함께 싸우게 한 것 아니었소? 근데 이것들은 다 뭐요!”
아바프는 당연히 하킴이 시체 병사를 보내 자기 부하와 함께 싸울 줄 알았다.
그렇기에 승리를 확신한 것이고.
하지만 지금 이만한 숫자의 시체 병사가 여기에 있다는 건…….
“설마 나를 속인 것이오!”
“응? 그랬었나?”
머리를 긁적이던 하킴이 쾌활하게 말했다.
“뭐 그런 거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사람 머쓱하게. 부하야 또 모으면 되는 거잖아요?”
“아니 무슨…….”
“그것보다 자, 싸워봅시다!”
하킴이 그리 외치자, 대기하고 있던 시체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데일은 벼락처럼 롱소드를 휘둘렀다. 한번 검광이 번뜩이자, 시체 셋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목을 잃은 시체 병사는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오오? 목이 잘린다고 멈출 친구들이 아닌데……. 그 검! 특별한 힘이 담겨 있군요!”
데일은 말없이 검을 휘둘렀다.
하킴이 무안하게 중얼거렸다.
“나 누구랑 대화하니?”
데일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시체 병사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앞문과 뒷문으로 시체 병사들이 끝없이 들어왔다.
그들은 어떻게든 데일을 붙잡아 두기 위해 육탄 돌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시체 병사들에게 데일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데일은 끝없는 싸움에도 지치지 않았으며, 시체 병사들의 이빨과 손톱은 단단한 갑옷에 흠집조차 내지 못 했다.
언데드에도 격이 있었다.
하킴이 들뜬 얼굴로 중얼거렸다.
“과연 소문 그대로입니다. 멋있군요! 하지만 영 좋지 않은데……. 아바프. 잠시만 데일 경을 붙잡아 두세요.”
“뭐요?”
“제가 주문을 쓸 시간을 벌라고요.”
“알았소…….”
아바프는 떫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킴이 마음에는 안 들어도 일단은 손을 잡아야 한다.
아바프는 시체 병사들 사이에 은밀히 숨어들었다.
시체 병사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지만, 아바프는 아무리 좁은 틈이라도 숨어들 수 있었다.
기척을 지운 아바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영 빈틈이 안 보이는군.’
온몸을 갑옷으로 감싼 저 기사에게는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투구에 뚫린 눈구멍 정도.
‘시간만 끌자.’
시간을 벌면, 나머지는 하킴이 알아서 할 것이다.
하킴은 전장에서도 오래 살아 남아온 전쟁 마법사였고, 전장에는 데일보다 끔찍한 존재들이 득실거린다.
분명 데일에게 타격을 입힐 방법이 있으리라.
탓!
기회를 엿보던 하킴이 시체 병사를 밟고 탄력적으로 튀어 올랐다.
그는 손에 든 단검을 투구의 눈구멍에 정확히 겨냥했다. 칼날이 뱀처럼 구불구불한 단검이었다.
이전보다 민감해진 데일의 감각이 그 기습을 알아챘다.
검에서 왼손을 떼 앞으로 뻗었다. 그대로 아바프의 팔을 쥐려 했다.
아바프의 반응은 재빨랐다.
미련 없이 단검을 놓은 아바프는 데일의 단단한 팔에 양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마치 뼈가 없는 동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여 팔에 찰싹 달라붙는 게 아닌가.
‘체술?’
데일도 이런 기묘한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조직 내에 전해져 오는 특별한 비전인 듯하다.
데일은 팔에 매달린 아바프에게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그 공격을 뱀처럼 유연한 몸놀림으로 피해낸 아바프가 외쳤다.
“어, 언제 완성되는 것이오!”
“하하! 기다리셨습니다!”
웃음을 터트린 하킴이 손뼉을 짝! 하고 부딪쳤다. 주위에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데일은 생각했다.
과연 하킴은 무슨 주문을 준비하는 걸까.
머릿속에 네크로맨서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마법 목록이 스르륵 지나갔다.
동시에 시선은 쉬지 않고 주위를 관찰했다.
사방에는 시체 병사가.
바닥에는 자신에게 머리가 쪼개져 평범한 시체가 되어버린 시체 병사들이 한가득.
데일의 머릿속에 정답이 도출되었다.
‘시체 폭발.’
마법을 간파한 데일은 곧바로 밖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키가 작은 시체 병사 하나가 그런 데일을 막았다.
익숙한 생김새의 노움.
“…….”
레온이었다.
데일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그 다음 순간.
시체 병사를 포함한 시체들이 일제히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어서 마력이 터져나가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돌로 지어진 아지트가 순식간에 날아갈 정도의 성대한 폭발이었다.
시체 폭발은 범위 내의 시체 수에 그 위력이 비례하므로, 아무리 데일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터.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하킴은 돌연, 감탄을 흘렸다.
“어라? 이렇게까지 몸이 단단하다고? 제가 알던 다른 흑기사들과 비교해도 이건 놀라울 정도…….”
흙먼지를 뚫고 데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바프의 몸을 방패 삼아 폭발을 헤쳐나온 데일의 몸은 엉망이었다.
갑옷은 강한 충격에 이곳저곳이 찌그러졌고, 투구는 어디론가 날아가 그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데일은 오른팔에 안은 레온을 놓지 않았다.
하킴은 애써 농담을 던져보았다.
“그 노움 시체가 맘에 드셨나요? 괜찮다면 데일 경이 가지셔도 됩니다.”
“…….”
우득!
데일이 하킴을 걷어차자, 하킴은 종이 인형처럼 가볍게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하킴의 몸이 녹아내렸다.
데일은 레온을 바닥에 내려놓고 정신을 집중했다.
‘고기 인형의 범위는 넓지 않아. 근처에 있을 거다.’
하킴은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놈이다. 데일은 감각을 일깨워 그 냄새를 추적했다.
예민해진 감각은 머지않아 하킴의 기척을 발견했다.
데일은 그곳으로 향했다.
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쥐죽은 듯 가만히 있던 하킴이 머쓱하게 물었다.
“어라? 어떻게 찾으셨지?”
주먹을 내리치자 하킴이 녹아내렸다.
데일은 그런 식으로 하킴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남아있던 다섯 개의 고기 인형을 모두 처치하고서야, 하킴의 본체에 이를 수 있었다.
하킴은 죽음을 앞두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에 흥미를 빛냈다.
“아무래도 제가 데일 경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아요.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아주 인상적이에요!”
데일은 대답 없이 검을 들었다.
하킴이 웃으며 물었다.
“저 말이죠.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데, 혹시 협상할 여지가 있을까요? 아, 이건 어때요. 제 뒤에 누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과연 누가 저를 이곳으로 보내, 도시를 불태우고 싶어하는 도적과 손을 잡게 했을까요?”
데일은 끝까지 나불대는 이 사내가 짜증이 나, 툭 내뱉었다.
“안 궁금해.”
“아. 드디어 대답해주시네요! 전 또 데일 경이 저한테 화가 나서 대화도 안 해주는 줄 알고 걱정…….”
서걱!
데일은 검을 휘둘렀다. 하킴의 머리가 데구르르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그 몸이 녹아내리는 일은 없었다. 하킴은 완전히 죽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끄럽게 재잘대던 목소리가, 아직도 머리를 웅웅 울렸다.
‘정신 나간 새끼.’
밤의 여신을 따르는 이들 중에는 하킴 같은 인간이 많을까?
그렇다면 그들이 배척받는 건 단순히 이교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데일은 하킴과 아바프의 생명을 거두었다. 별달리 쓸모 있는 기억을 얻지는 못했다.
아바프에게서는 광장에서 처형당하는 부친의 모습이.
하킴에게서는 노예로서 인체 실험을 당하는 기억이 보였을 뿐이다.
감흥은 없었다.
사연 없는 인간은 없고, 핑계 없는 무덤 역시 없는 법이다.
데일은 내려놓았던 레온을 다시 양손으로 붙잡아 올렸다. 고통으로 부릅떠진 그 눈을 조용히 감겨주었다.
데일은 나직이 말했다.
“돌아가자.”
여전히 비가 거세다.
데일은 머리에 흐르는 빗방울을 맞으며 무심하게 걸었다.
데일은 오늘, 다시 한번 사람에게 실망했다. 구태여 이 인간성이라는 것을 지켜야 하는 의구심은 덤이다.
‘개자식들이 너무 많군.’
이 일이 데일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또, 데일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어떻게 바뀔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있다.
오늘 이후로, 그 누구도 데일을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다.
* * *
쏟아져 내리는 빗속에서 검은 갑옷의 기사가 멀어져 간다.
충분히 거리가 멀어지자, 건물 지붕 위의 한 공간이 마치 커튼이 걷히듯 양옆으로 밀려났다.
기묘하게 왜곡된 공간 속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특징 없는 노인.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건 그의 손에 들린 큼지막한 수정구다.
수정구 속에는 푸른색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눈동자는 데일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노인은 눈동자가 데일을 더 잘 볼 수 있게 앙상한 팔을 하늘 높이 들어야 했다.
마침내 데일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어.”
노인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건 혼잣말이었다.
수정구 속 인물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가워요. 나의 친우. 나의 가족. 나의 사랑. 나의 주인. 금방 만나러 갈게요.”
말을 끝낸 직후. 다시 공간이 커튼처럼 걷히며 노인의 모습을 가렸다.
그리고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 노인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