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9)
두 명의 드워프
* * *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의외로 하켄이었다.
“어어, 데일 경! 얘기는 들었습니다! 도둑놈들이랑 한바탕 했다면서요!”
하켄은 여관 문을 열며 다짜고짜 그리 외쳤다.
테이블을 닦고 있던 카일라는 데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누구예요?”
“용병.”
하켄은 성큼성큼 다가와 카일라에게 주문했다.
“맥주 한잔. 아, 물론 데일 경이 사시는 거다.”
그 놀라우리만치 뻔뻔한 모습에 헛웃음을 지은 데일이 물었다.
“너무 당당해서 말도 안 나오는 군.”
“에이, 저희 사이에 술 한 두잔 정도는 사주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 요즘 지갑 사정이 쪼들려서 그런데 한 번만 봐주세요.”
“가란드한테 많이 받았을 텐데?”
악마 하수인을 처치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길드에서 포상금이 넉넉히 나왔을 터.
하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시잖아요. 용병일 하다 보면 돈 나갈 일이 참 많다 보니…….”
용병이 돈을 어디서 탕진할지는 뻔했다. 술을 퍼마셨거나 도박을 하거나 아니면…….
데일은 진지하게 조언했다.
“창관은 적당히 드나드는 게 좋을 거다. 돈도 돈이지만, 병에 걸릴 수 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카일라가 경멸의 표정을 보내자 하켄이 황급히 부인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 하켄을 뭐로 보시고! 저 요즘은 그렇게 자주 안 갑니다.”
예전에는 자주 갔다는 소리다.
민망해진 하켄은 카일라가 내온 맥주를 쭉 들이켰다.
“크으으. 근데 맛이 영 별로네. 다른 주점 가면 이거보다 훨씬 괜찮은 맥주가 있는데.”
“맛없어서 죄송하게 됐네요!”
카일라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머리를 긁적인 하켄이 데일에게 소곤거렸다.
“근데 이 집은 여급이 엄청 당돌하네요.”
“여급이 아니라 주인이다.”
“엑. 그런가요?”
하켄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자, 카일라가 찌릿 노려보았다.
데일은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왜 온 거야.”
“예? 아니, 뭐. 우리 사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찾아오고 그런 사이인가요? 서운하네요 데일 경.”
데일이 조용히 주먹을 들자, 깨갱한 하켄이 실실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도적 길드 하나를 완전히 털어버렸다면서요? 왜 그런 거예요? 지금 다들 그 얘기로 난리예요.”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겨우 도적 길드일 뿐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을 기울일만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데일 경이 뭘 모르시네요. 검은 뱀 형제단은 제국만큼이나 역사가 긴 조직이라고요. 비록 지금은 이빨이 다 빠졌어도, 얽혀 있는 세력도 많고 나름 저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곳이었죠. 그런 곳을 하루아침에 청소해버렸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요.”
“음. 그렇군.”
그런 조직인 줄은 몰랐다.
그 두목이 나름 독특한 기술들을 사용하긴 했지만……. 데일에게는 딱히 위협적이지 못 했다.
하켄이 눈동자에 흥미를 빛내며 말했다.
“다들 난리예요. 쓰레기 도적놈들한테 정의의 철퇴를 내렸다니, 흑기사가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느니, 뒷골목 전쟁의 시작이라느니. 그래서. 다짜고짜 그놈들을 작살낸 이유가 뭡니까? 용병 의뢰는 아니었을 거 아닙니까.”
데일은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그런 학살을 벌인 이유에 갖다 댈 그럴듯한 변명은 여럿 있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었다.”
“음. 그게 다입니까?”
“그게 다다.”
잠시 멍하니 있던 하켄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역시 데일 경이십니다! 아주 화끈해요.”
데일은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흥이 오른 하켄은 은근슬쩍 맥주를 한 잔 더 시켰다.
데일은 모른척해 주었다.
맥주를 쭉 들이켠 하켄이 말했다.
“아무튼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뭐가.”
“이제 사람들이 데일 경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여기저기서 데일 경을 찬양하는데 제가 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수십 명을 죽였는데 오히려 찬양해준 다라…….
묘한 기분이다.
데일은 이럴 때마다 도덕 기준이 많이 다른 세계에 왔다는 걸 실감하곤 한다.
낯선 세계에 홀로 떨어졌다는 고독함.
데일은 물이 든 잔 속에 흐릿하게 비친 자기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물이 일렁일 때마다 데일의 모습도 이리저리 찌그러졌다.
촤악!
데일은 잔 속의 물을 바닥에 쏟아, 그 안에 비친 자신을 지워버렸다.
별로 궁상이나 떨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
‘뭐, 나쁘지 않겠지.’
어쨌든 이번 일에 대해 사람들은 비교적 좋게 평가해주는 모양이다.
그를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질까?
취한 하켄이 데일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데일 경. 도시에서는 웬만하면 투구 좀 벗고 다니세요. 기껏 잘생긴 얼굴이 있으면 써먹어야지!”
“뭐?”
“맨날 투구만 눌러쓰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기겁해서 피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투구를 벗고 다녔다면서요? 그러니 사람들이 보는 눈도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몸에 입은 타격이 커 투구를 완전히 재생하지 못한 상태로 도시에 들어섰다.
하켄의 주장에 엿듣고 있던 카일라도 작은 목소리로 ‘옳소옳소’ 외쳐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찬양을 했다는 게…….
‘설마 외모 때문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영 묘할 것 같았다.
데일은 카일라에게 맥주를 갖다 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쭉 들이켰다.
이젠 맛을 느낄 수도, 취할 수도 없는 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술 한잔이 고팠다.
* * *
다음날 데일은 가란드에게 간단히 사건에 대해 보고했다.
의뢰가 아닌 만큼 딱히 보고해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지금 데일은 용병 길드 소속이니만큼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었다.
가란드는 심각한 얼굴로 데일이 말해준 일들을 종이에 적었다.
“그렇군요. 전쟁 마법사로 보이는 네크로맨서에 베테랑 쇠뇌수들이 함께…….”
눈매를 꾹꾹 누른 가란드가 중얼거렸다.
“아바프는 예전부터 욕심이 많은 친구였죠. 그는 늘 조직을 키워 성벽 안에 자리 잡고 싶어 했습니다.”
데일은 카일라의 여관을 차지하려던 지미 패거리를 떠올렸다.
“그냥 성안에 건물을 사면 되는 거 아니오? 그 정도 돈은 있었을 텐데.”
“자리 잡고 싶다는 건 단순히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시 내에 세력을 키워 평의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죠.”
7인의 평의회.
막강한 권한을 가진 평의원들은 이 외곽 구역의 실세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좌석을 차지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평의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건 다른 평의원을 밀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른 평의원을 밀어낸다는 건…….”
“전쟁을 벌인다는 뜻이군.”
“예. 그렇습니다. 아바프가 평의원이 되어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싶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아바프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꿈에 비해서 능력이 한참 부족한 사내였다.
그래서 아바프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외부와 손을 잡았다.
“전쟁 마법사까지 보냈으니,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전선의 장군들과 관계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아무리 전선이 소강상태에 빠졌다 하나, 주요 전력들을 은근슬쩍 후방으로 보내다니.
악마들이 언제고 다시 진격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걸까.
‘아니면 악마들이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건가?’
데일이 물었다.
“장군들의 목적은 무엇이오?”
가란드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정말로 이쪽을 향해 전쟁을 준비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황제 폐하께 항의의 뜻으로 무력 시위를 벌이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피해를 보는 건 그 사이에 끼인 우리란 점이 억울할 따름이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외곽 구역에 가장 먼저 피해가 생긴다.
그러면 평의회가 머리를 모아 일을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애초에 그걸 위해서 구역을 분리한 것이기도 하고.
가란드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쓸어 넘기다, 데일을 보고 미소 지었다.
“한동안은 꽤 혼란한 시국이 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몸값이 치솟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말해주시오.”
“신뢰와 실력을 모두 갖춘 용병입니다. 바로 데일 경처럼요.”
혼란할수록 무력은 빛을 발하며, 신뢰는 더더욱 큰 값어치를 가진다.
“혼자서 조직 하나를 궤멸시키다니. 이번 일로 데일 경의 무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증명되었죠. 특히 데일 경은 도시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아직 얽혀 있지 않잖습니까? 그러니 더 탐을 낼 수밖에요.”
“너무 고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소만.”
아바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앞으로 두고 보시죠. 데일 경은 금방 저 위로 올라갈 겁니다. 그때는 부디 저, 가란드를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호들갑을 떠는 걸까, 아니면 진심으로 말하는 걸까.
데일은 덤덤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 * *
그날 저녁. 여관으로 들어온 데일은 당황했다.
여관 안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다.
분주히 움직이던 카일라가 데일을 반갑게 맞았다.
“아, 오셨어요? 왜 그러세요. 엄청 놀란 표정이시네.”
“이상하군. 대체 왜 손님이 있지?”
“여관에 손님이 있는 게 당연하죠! 여기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톡 쏘아붙인 카일라가 다시 맥주잔을 이리저리 나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서 데일은 여기 모인 이들이 일반적인 손님이 아님을 알아챘다.
‘하켄도 인정할 정도로 맛없는 맥주를 돈 내고 먹는다? 이상하군.’
데일이 자리에 앉자 가게 안이 손님들은 데일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저게 그…….”
“확실히 멀쩡해 보이긴 하는데.”
“좀 더 지켜봐야겠어.”
“근데 이 집 맥주 맛이 좀 이상하지 않아?”
가란드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느 세력에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저들은 데일을 가늠해보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불과 하루아침에 이렇게 큰 관심을 끌게 된다니.
은밀한 시선에 귀찮아진 데일은 이들을 쫓아내려다가, 행복한 얼굴로 일하는 카일라를 보고는 그만두었다.
모름지기 가게에는 손님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파리만 날리는 꼴은 보기 좋지 않다.
데일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방으로 바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저 염탐꾼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이다.
가게가 또다시 텅텅 비면 카일라는 잔뜩 실망하겠지.
데일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대충 분위기를 잡고 앉아 있으면, 섣불리 다가오는 놈들도 없을 거다.
하지만 예상이 깨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누군가 다가와 데일의 이름을 불렀다.
“데일 경.”
익숙한 목소리다.
데일은 시선만 들어 눈앞의 상대를 확인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땅딸보.
데일이 악마 하수인에게서 구출해냈던 드워프, 발튼이다.
발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하오. 요양하느라 한동안 밖에 나가질 못했소.”
“몸은 좀 괜찮나?”
“보다시피 팔팔하오.”
발튼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팔뚝에 단단한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다행이군. 그래서. 왜 찾아온 거지?”
“왜 찾아오긴! 그때 은혜를 갚는다 하지 않았소!”
“은혜?”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발튼은 의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원하시오. 무기, 아니면 도구? 뭐든 맡겨만 주십시오. 전에 말했듯, 나는 뛰어난 기술자인 동시에 대장장이요. 원하는 건 뭐든 만들어드리겠소.”
자부심 가득한 말에 곰곰이 고민하던 데일이 물었다.
“대장장이면서 기술자라 했지?”
“그렇소.”
“그렇다면 나를 개조할 수 있나?”
데일의 말을 듣고 발튼이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뭘 개조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