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1)
바이만
* * *
엘프는 호전적인 종족이다.
엘프 사회는 소수의 사제 계급을 제외하면 구성원 모두가 뛰어난 전사이자 사냥꾼이며, 전투의 달인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한 자루의 검이라 생각하는데, 삶이란 그 검을 끝없이 두드려 날카롭게 벼려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 두드리는 방식이란 실로 단순하다. 끝없이 싸우며 강자와 맞붙는 것.
엘프들이 아군과 적을 막론하고 실력자에게 싸움을 거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엘프라는 종족 자체를 꺼리는 이유였다.
“악! 아악! 이 녀석! 그만!”
데일의 명령에 하티가 충실히 달려들자, 당황한 엘프 검사가 허우적거렸다.
반격을 하고 싶은데, 부상 탓에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엘프 검사가 데일에게 외쳤다.
“데, 데일 경! 늑대를 좀 멈춰주지 않겠나? 강한 전사라면 몰라도, 짐승한테 죽고 싶지는 않다네!”
“조용히 있겠다고 약속한다면.”
“약속하네! 약속할 테니 멈춰주게!”
데일은 하티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영리한 하티는 곧장 뒤로 물러났다.
한시름 놓은 엘프 검사가 눈을 반짝였다.
“예로부터 짐승은 강한 전사를 따른다고 했는데……. 이런 거대한 늑대의 인정을 받다니. 데일 경의 역량은 상상 이상이군.”
“앉기나 해라.”
“알겠네.”
엘프 검사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얼른 근처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멀찍이서 지켜보던 카일라가 물었다.
“그……. 이제 괜찮은 거 맞죠?”
“그래.”
“식사라도 내올까요?”
엘프를 흘끔 쳐다본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프는 오직 데일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당최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하다.
“데일 경. 소원이 하나 있네.”
“별로 안 궁금하다.”
“데일 경이랑 한 번만 검을 섞어보고 싶네. 이 부상이 나으면, 한 번만 결투를 해주지 않겠나?”
“아니.”
“역시!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았네! 전사라면 응당 그래야지!”
이 엘프. 사람 말을 듣질 않는다.
한숨을 삼킨 데일은 본론을 꺼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나?”
“음?”
어리둥절해하는 엘프에게 데일이 대강 상황을 설명했다.
공주가 재판을 받게 될 거라는 것. 지금은 용병 길드에서 보호 및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 기절해 있는 엘프를 돌봐달라고 아이렉이 데일에게 부탁했다는 것.
엘프는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아. 일이 그렇게 되었군. 아이렉 그자는 마음에 안 들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일을 해주었어.”
“당분간 얌전히 있어라. 어차피 재판에서 네가 도울 일도 없을 테니.”
“어떻게 그러겠나. 나는 바이만의 기사일세. 끝까지 공주님을 지킬 의무가 있어.”
기사라고?
데일은 엘프의 얼굴을 살폈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프라우. 청사자 기사단의 프라우라고 하네.”
“음.”
이름을 들으니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분명 바이만 왕국에서 탈출할 때, 엘레나를 호위하던 기사 중에서 프라우라는 애송이 엘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자요. 일부러 넉넉히 담았어요.”
생각하는 사이 카일라가 음식을 내왔다. 양고기와 감자를 넣은 수프였다.
“음! 무슨 일이든 일단 배부터 든든히 채워야지. 고맙네 여관의 여급이여!”
“여급이 아니라 주인이거든요?”
음식이 나오자마자 프라우는 허겁지겁 퍼먹기 시작했다.
제법 큰 그릇에 담은 수프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프라우는 다 먹고도 부족한지, 손가락을 쪽쪽 빨다가 데일의 그릇을 쳐다보았다.
“…….”
비 맞은 개처럼 애처로운 눈빛이다.
데일은 그릇을 내밀었다.
“먹어라.”
“!!”
화색을 띤 프라우가 외쳤다.
“고맙네! 역시 그대는 훌륭한 전사일세!”
음식을 주는 것과 훌륭한 전사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프라우는 음식을 쉬지 않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구놔주나. 경은 호시 하이에프인가?”
“다 씹고 말해라.”
음식을 꿀꺽 삼킨 프라우가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경은 혹시 하이엘프인가?”
데일이 정색하며 말했다.
“나를 모욕할 생각인가?”
“음, 내 말 어디에서 모욕을……? 아니. 별건 아니고. 그대의 딱딱 끊어지는 듯한 억양이나 말투가 하이엘프들이랑 비슷해서 말이네. 그러고 보니 데일이라는 이름도 하이엘프 식 아닌가?”
데일은 대답 대신 투구를 벗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그가 인간이라는 걸 확인한 프라우가 당황했다.
“어? 아니었군. 당연히 억양 때문에 하이엘프인 줄 알았네.”
“그야 그들에게서 언어를 배웠으니까.”
“어렸을 때 하이엘프랑 같이 지냈나?”
정확히는 어렸을 때가 아닌,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데일에게는 달갑지 않은 기억일 뿐이다.
데일이 대답하지 않자 프라우도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는 이야기 주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아무튼. 일단 공주님을 만나볼 생각이네.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마음대로 해라.”
“같이 가겠나? 사실, 공주님이 그대에게 호기심이 좀 있다네. 소문을 들었거든.”
“소문?”
프라우는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빈자들에게 기꺼이 식량을 나눠주는 흑기사. 실로 명예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도시 안에 살 때는 다소 소문이 와전되었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빈민가에서 며칠 살다 보니 소문이 전부 사실이란 걸 깨달았네. 그대가 흑기사라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고.”
데일이 물었다.
“그건 설마 바이만의 국왕이 마지막에 흑기사가 되어버린 것 때문에 그런가?”
데일의 말에 프라우가 화색을 띠었다.
“아. 알고 있었나? 백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앙마저도 포기하다니. 참으로 숭고한 선택이었지. 몇몇 머저리들은 타락했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폐하를 존경한다네. 실로 존경할 만한 전사였어.”
그리운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던 프라우가 현실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나는 그대와 만나기 위해 용병 길드로 종종 찾아갔다네. 주위가 시끌시끌하니, 그대처럼 명예로운 기사가 호위를 맡아주었으면 싶었지. 한데, 운이 나빴던 건지 계속해서 엇갈리더군.”
그야 데일은 최근 접수대로 향한 적이 없으니, 마주치기 쉽지 않았을 거다.
프라우는 긴 이야기를 질문으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나와 함께 가겠나?”
곰곰이 이야기를 곱씹던 데일은 문득,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데일은 고개르 끄덕였다.
“그래. 얼굴이라도 한번 보지.”
* * *
엘레나는 길드 사무소의 꼭대기 층에 구금되어 있었다.
사무소에 도착하니, 가란드와 아이렉이 대화하고 있었다.
둘은 데일을 보더니 반갑게 맞았다.
“아. 왔습니까?”
“……프라우 경도 왔군.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럴 수는 없지. 공주님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네.”
프라우와 아이렉은 서로를 찌릿 노려보았다.
사이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당연한가?’
실리를 추구하는 아이렉과 호전적인 프라우.
사이가 좋은 게 더 이상한 조합이었다.
데일은 가란드에게 물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소.”
“곧바로 재판이 열릴 겁니다. 왕족이니 약식 재판도 아니고, 정식으로 열어야겠죠. 평의원들이 모두 모일 겁니다.”
외곽구역의 재판권은 평의원들에게 있다.
평소에는 재판을 열지 않고 약식으로 판결해버리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컸다.
평의원 일곱이 모두 참여하는 정식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이번 일은 상위 구역 귀족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합니다. 그야, 그 바이만 왕국의 마지막 왕족 아닙니까.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아이렉이 말을 받았다.
“보는 눈이 많고, 관심이 클수록 좋네. 마탑에서 수작을 부릴 여지가 줄어들 테니.”
평소였다면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마탑을 상대로 재판에서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의원들도 마탑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아무리 마탑이 있다 해도 평의원들도 주위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타당한 증거 없이는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을 거네. 우리는 어디까지나 누명을 쓴 거니, 당연히 그런 증거는 없을 거고. 변호만 제대로 준비하면 돼.”
아이렉이 희망차게 말했다.
설령 상대가 마탑이라도 이길 자신이 있어 보였다.
프라우가 끼어들었다.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거다. 만약 공주님께 위험이 생긴다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야.”
“경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하니, 경은 제발 좀 얌전히나 있게나. 괜히 일을 망치지 말고.”
흥! 하고 콧숨을 내쉰 프라우가 말했다.
“공주님은?”
“꼭대기 층에 계시다. 세바스가 시중들고 있을 거네.”
세바스는 아이렉을 보좌하는 노신사의 이름이었다.
프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바스라면 믿을 수 있지. 일단 올라가 보겠네. 경도 함께 가게나.”
프라우가 엘프 특유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데일도 그 뒤를 따르려 했는데, 가란드가 잠시 불러세웠다.
“경. 저들을 돕기로 하신 겁니까?”
가란드는 데일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데일은 부인했다.
“별로. 애초에 내가 재판을 돕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 같소만. 나는 법에 무지한 사람이오.”
“음. 그러시군요.”
“왜 그러시오.”
가란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조심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일은 끼어봤자 골치만 아플 겁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구경하는 게 제일 현명하지요.”
“마탑 때문에 그렇소?”
“꼭 마탑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일은 백이면 백. 아주 더럽게 흘러가거든요.”
구태여 더러운 판에 다가가지 말고, 멀리서 구경하는 게 현명하다는 조언.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계단을 올랐다.
공주가 구금된 방 앞에는 경비병 둘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프라우와 세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 같이 들어가게나.”
프라우가 권유하자 세바스가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음. 프라우 경이라면 몰라도 저쪽은……. 공주님의 안위를 생각하면 좀…….”
“칼도 잡지 않는 자가 감히 전사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건가!”
프라우가 길길이 날뛰자, 세바스가 흙 씹은 얼굴을 했다.
그러고는 포기한 듯,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진작 그랬어야지.”
허가를 받은 프라우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던 엘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아. 프라우 경. 그리고…….”
시선이 데일에게 머물렀다.
소녀는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흠흠. 만나서 반가워요. 경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어요.”
억지로 만들어낸 듯한 근엄한 목소리였다. 엘레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음. 어제 내가 보인 추태는……. 부디 잊어주세요.”
상관없는 사람에게 아버지라 불렀으니, 부끄러울 만도 할 터.
“딱히. 신경 안 쓴다.”
자연스러운 반말에 엘레나가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마워요.”
엘레나가 안도했다. 데일이 그런 엘레나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다.”
“궁금한 거요?”
엘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데일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얼마나 강력한 마법을 다룰 줄 알기에 마탑에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엘레나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갑작스러운 얘기네요. 혹시 제 마법을 보고 싶다는 말인가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나가 지닌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카를이 아닌, 엘레나를 택했던 과거의 선택이 옳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곤란해하던 엘레나는 이내 양손을 펼쳐 보였다.
다음 순간. 공간에 마력이 휘몰아쳤다. 엘레나는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마력은 이내 물의 형태를 취했고, 물은 용의 형상을 취했다.
수룡.
물로 이루어진 용은 좁은 방안을 유유히 비행했다.
데일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용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엘레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수룡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새하얀 섬광이 주위를 한차례로 뒤덮었다.
빛이 가시고. 다시 확인한 수룡의 몸에는 전류가 흐르며 빛나고 있었다.
두 가지 마법의 조합.
일전에 보았던 한스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고등 기술에 데일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이런 묘기를 부리는 엘레나는 전혀 힘들지 않고, 그저 즐겁기만 한 듯.
그 나이에 걸맞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데일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마법에 관한 엘레나의 재능은…….
‘위험할 정도로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