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0)
바이만
* * *
아이렉은 곧장 경비대장 카달에게 향했다. 카달은 아이렉을 알아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범죄자가 이렇게 대놓고 다가오다니, 뭐 잡아가달라고 시위라도 하는 건가?”
“범죄자라니. 나는 지극히 합법적인 사업만 벌이는 사람이오.”
카달은 코웃음을 쳤다.
“하. 빈민가 주민들이 어디서 무기를 얻었을지 빤히 보이는데, 뻔뻔하게도 거짓말하는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오!”
버럭 소리친 아이렉이 포위당한 공주를 가리켰다.
“일국의 공주를 입증되지도 않은 혐의로 체포할 수는 없소!”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거야.”
카달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 역시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잔뜩 짜증이 난 상태였다.
아이렉은 당당하게 말했다.
“재판을 신청하는 바요.”
“뭐?”
“도시법에 따르면 모든 시민은 재판받을 권리가 있소. 나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겠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마법사들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되도 않는 수작질이군. 도시법에 따르면 빈민가의 주민들은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재판받을 권리 따위는 없어.”
아이렉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공주님께는 권리가 있소. 도시에 집이 있으니 말이오.”
“뭐?”
“5구역에 공주님의 자택이 있소. 공주님은 평소에 그곳에 생활하시다, 잠시 도시 밖으로 놀러 왔을 뿐이오.”
아이렉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품을 뒤져 자택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를 꺼냈다. 소유권자에는 엘레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설마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두었던가? 그렇다고 하나 집문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니.
‘독한 놈이군.’
마법사들은 속으로 치를 떨었다.
아이렉이 이어서 말했다.
“따라서 공주님께는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으며, 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구속을 거부할 권리 또한 있소.”
마탑의 마법사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일을 크게 만들지 마라.”
“글쎄. 그쪽이 먼저 자초한 일 아니겠소?”
고개를 홱 돌린 마법사가 카달에게 말했다.
“재판은……. 인정하겠습니다. 법이 그렇다면 따라야 하지요. 하지만 평범한 범죄가 아닌 반란 모의 혐의입니다. 이대로 풀어줄 생각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지켜보던 카달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고심에 빠졌다.
그러다 한참 후, 결정을 내렸다.
“알겠다. 그럼 공주의 신변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평의원 한 명이 보호 및 감시하는 거로 결정하겠다. 보자……. 가란드 정도면 괜찮겠나?”
마법사와 아이렉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가란드면 특별히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 일 없이 중립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일을 맡긴다면 그가 제격이다.
카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재판이라니. 하여튼 귀찮은 일들만 골라서 일어나는군.”
그렇게 내뱉은 카달이 외쳤다.
“모두 예를 갖춰 공주를 용병 길드까지 안내하라! 저 엘프 검사는……. 정당한 저항을 한 것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예!”
체포가 아닌 안내. 대우가 확연히 달라졌다.
용병들이 뒤로 물러나고, 경비대원들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다가갔다.
그제야 엘프 검사도 무기를 거두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엘프 검사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하지만 엘프가 기절하거나 말거나, 아이렉은 엘레나에게 다가가 꾸짖었다.
“공주님. 제가 나서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안해요. 대화가 가능할 줄 알았어요.”
“이야기는 다 들으셨겠지만, 일단 경비대를 따라가십시오.”
“알겠어요…….”
데일은 멀찍이 떨어져서 시무룩해하는 엘레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가 게임에서 보았을 때랑은 많이 달라졌다. 조금 더 의젓해졌다 해야 할까.
‘많이 컸군.’
이럴 때마다 데일은 묘한 감상을 느끼곤 했다.
가란드나 엘레나처럼 게임 속에서 보았던 인물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그런 인물들을 직접 마주하는 건 여러모로 기묘한 감각을 선사해주었다.
현실과 게임.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흐려진다 해야 할까?
이미 게임 속에 들어온 순간부터 더 놀랄 일이 어딨겠느냐마는.
신기해하는 시선을 느낀 걸까?
엘레나도 고개를 들어 데일을 보았다.
소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
아이렉과 데일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누굴 보고 아버지라는 것인가.
데일은 대꾸조차 안 했고, 아이렉은 엘레나를 달랬다.
“자.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어서 가십시오. 저도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으응. 알겠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데일을 흘끗거린 엘레나가 경비대와 함께 떠나갔다.
아이렉이 서둘러 데일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일이 더 귀찮아질 모양이네. 그래도 급한 불은 껐어.”
“수고했소.”
“나는 바로 가봐야겠네. 준비할 것이 많으니. 그래서 떠나기 전에 작은 부탁이 있는데.”
“무엇이오.”
“저 친구 좀 잠시 맡아주겠나?”
아이렉이 가리킨 곳에는 만신창이가 된 엘프가 쓰러져 있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뼈도 몇 대 부러진 게 지금까지 안 죽은 게 용할 지경이었다.
“나보고 저 엘프를 챙기라는 말이오?”
데일은 대놓고 싫은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투구를 눌러쓴 탓에 아이렉에게 잘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아니면 지금 아이렉이 너무 정신없어서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거나.
“워낙 제멋대로인 놈이네. 엘프가 다 그렇지 않나? 솔직히 나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놈인데……. 정신을 차리면 허튼짓 좀 하지 않게 자네가 좀 붙잡아두게. 사례는 두둑이 하겠네!”
“아니…….”
아이렉은 데일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은 데일은 땅에 쓰러진 엘프를 흘끗 쳐다봤다. 내심 이대로 숨이 끊어졌으면 하고 바랐지만, 엘프의 목숨은 질겼다.
엘프는 끙끙거리는 신음을 흘리며 자기가 아직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데일은 엘프의 한쪽 발을 붙잡고 질질 끌었다.
돌부리에 연거푸 머리를 부딪쳤지만, 상관없을 거다.
엘프의 생명은 잡초만큼 질기니.
그렇게 여관까지 이동한 데일은 대충 바닥에 엘프를 내려놓았다.
놀란 카일라가 물었다.
“어? 누구예요? 세상에, 많이 다친 거 아니에요?”
“적당히 사제 한 명 불러 치유해라. 금액은 토모 상회에 청구하면 된다.”
“으음.”
카일라는 사제를 불러왔고, 사제는 간단히 치유 기적을 읊은 뒤 붕대를 칭칭 감아주었다.
사제의 말에 따르면 팔뼈도 부러지고, 군데군데 상처가 깊어 한동안 요양해야 한단다.
데일이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엘프를 적당히 빈방에 던져둔 데일은 침대에 누웠다.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던 하루다.
수색. 아이렉. 바이만 왕국. 그리고 엘레나. 그가 게임 속에서 마주하던 인물들.
데일은 홀로 침대에 누워 상념에 빠져들었다.
오늘 머릿속에 특히 맴도는 건 게임 속 기억들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바이만 왕국 방어전.’
바이만 왕국 방어에 참여한 건 그가 기사 캐릭터를 육성하고 있을 때였다.
데일은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억이 선명해지며,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내 전혀 다른 풍경이 생생하게 변했다.
데일은 이걸 꿈이라 불렀다.
‘여긴.’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쯤 무너져내린 성벽 위였다. 곳곳에 피 웅덩이가 고여 있고, 못 치운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기억에 있는 장소다.
‘바이만 왕국의 수도.’
데일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온 평원이 새까맣다.
악마의 군세가 이쪽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괴물들은 하나 같이 두 눈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새까만 평원에 수많은 안광이 반짝이는 광경은, 마치 은하수를 연상케 했다.
몇몇 감성적인 이들이 악마의 군세를 ‘별의 군대’라 부르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성벽 위의 병사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병사들은 음울한 얼굴로 조용히 신을 향해 기도했다.
제국에서의 지원은 제때 오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병력만으로는 저 군대를 막아낼 수 없다.
오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바이만 왕국은 멸망할 것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다.
데일은 멍하니 성벽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에게 우람한 덩치의 사내가 다가왔다.
푸른 머리와 눈. 범상치 않은 갑옷. 형형한 눈빛.
바이만의 마지막 왕이 그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잘해주었네 아렌. 덕분에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어. 자네가 아니었다면 왕국은 진즉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야.”
아렌. 그래. 분명 데일은 그런 이름을 캐릭터에게 붙여주었다.
데일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그런 자네에게 미안하지만,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네. 여전히 성안에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백성들이 많다네. 그중에는 내 딸 아이도 있지.”
데일은 눈을 감았다. 왕이 무엇을 부탁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와 내 병사들은 왕국과 함께 최후를 함께 할 걸세. 하지만 외부인인 자네는 그럴 의무가 없네. 부디 자네는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해주게.”
기억 그대로라면 이제 선택지가 떠오를 것이다.
[당신은 이곳에 남아 카를 바이만과 끝까지 싸울 수 있습니다. 그는 불굴의 전사이자 명예로운 기사이므로, 그를 살릴 수만 있다면 악마와의 전쟁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다음 선택지가 떠올랐다.
[생존자들을 이끌고 도망치세요. 당신이 돕지 않으면 생존자들은 악마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추가 임무: 공주의 목숨을 살려, 바이만의 의지가 끊기지 않게 해주세요. 엘레나 바이만은 천재적인 마법 소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의 생존은 훗날,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파도가 될 것입니다.]데일이 선택한 건 후자였다.
물론, 카를 바이만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상황은 없다. 그는 명예롭고 올곧으며, 하위 서열 악마와 홀로 맞붙을 수 있는 위대한 기사다.
비록 누군가 창작해낸 게임 속 허구의 인물일지라도, 데일은 이 사내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이 전장에는 무려 중위급 서열 악마가 둘이나 있다. 이길 확률은 한없이 낮으며, 생존은 꿈만 같은 일이다.
전자를 고르는 건 미친 짓이었다.
선택을 내리자, 입이 제멋대로 움직여 말을 뱉었다.
“사람들을 이끌고 탈출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라면 믿을 수 있네. 자네는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기사이니.”
카를은 한시름 놓은 얼굴로 말했다.
“부디 내 딸을 지켜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분기점을 지나쳤습니다. 훗날 당신은 이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맞닥뜨릴 겁니다. 반드시.]눈앞에 떠오르는 문구를 무시하며 데일은 걸음을 옮겼다.
짐 보따리를 짊어진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어린 공주도 있었다.
호위기사의 손을 잡고 덜덜 떨고 있는 공주에게 데일이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 * *
데일은 꿈에서 벗어났다. 신기한 기분이다.
사람이었던 시절의 기억들을 선명하게 경험하는 건 몇 번이고 해 봤다.
하지만 모니터 너머로 보았던 게임 속 광경을 마치 직접 체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데일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힘인 걸까?
그나저나…….
‘훗날 이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반드시 맞닥뜨린 다라.’
결국, 에피소드의 마지막에서 카를 바이만은 끝까지 악마의 군세에 맞선다.
그는 생존자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힘이 필요했다.
카를은 신들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딸을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칠 수 있다고. 그러니 힘을 달라고.
그에 밤의 여신이 응답하시니, 역사상 가장 강력한 흑기사가 탄생했다.
한때 카를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흑기사는 홀로 악마 둘을 상대해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 군세까지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악마의 하수인들은 도망치는 생존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고, 결국 근처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남은 건 겨우 절반 남짓.
그 이후로 게임의 주인공은 긴박한 전선의 상황을 돕기 위해 바로 떠나야 했다.
공주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반밖에 지키지 못한 셈이다.
그때 데일이 다른 선택을 내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카를을 살릴 수 있었을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그때 다른 선택을 내렸으면, 엘레나는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엘레나 바이만의 생존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거라 했던가……. 애매한 표현이군.’
엘레나라는 파도가 적을 덮칠지, 아군을 덮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 파도는 벽에 가로막히려 하고 있다.
재판의 결과에 따라 엘레나의 운명이 결정된다.
데일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이어가며 밤을 지새웠다. 그가 상념에서 벗어난 건 해가 갓 떠오른 새벽이었다.
아래층이 유달리 소란스러웠다.
취객이 난동이라도 부리는 걸까?
데일은 무기를 챙겨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보았다.
붕대를 칭칭 감고 무기를 든 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엘프를.
“여기가 어디지! 나를 왜 납치한 건가! 공주님은? 오호라, 실력으로 나를 이기지 못하니, 비겁한 수를 쓰는구나! 그래, 어쩐지 뒤통수가 욱신거리는 게, 필시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군!”
카일라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하는 얼굴로 엘프를 바라보다, 데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프 검사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데일을 보자, 그 얼굴이 오랜 친우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환해졌다.
“아! 혹시……. 그대가 데일 경이군. 그렇지?”
이 엘프가 자신을 알다니?
데일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맞다.”
“뛰어난 전사여! 그대와 검을 한번 겨뤄보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그 날이 오늘일 줄이야!”
잔뜩 신이 난 엘프는 금방이라도 데일에게 검을 휘두를 셈이었다.
대꾸하기도 짜증이 났다. 데일은 밖을 향해 말했다.
“하티.”
그러자 영리한 늑대가 직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데일은 엘프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