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7)
변화
* * *
도시를 뜨겁게 달궜던 결투의 열기는 거짓말처럼 빠르게 식었다.
제법 재밌는 화제였지만, 그에 대해 계속 씹어대기에 외곽구역과 빈민가의 삶은 너무 바쁘고 고달프다.
수색으로 사로잡은 위험 분자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정식이 아닌 약식 재판이었다.
절반 정도는 혐의가 입증되어 사형에 처했고, 나머지 절반은 무죄방면 되었다.
사람들은 이 결과에 놀라워했다.
당연히 감옥에 잡혀들어간 사람들 전부 목이 잘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설령 억울한 사람이 몇 생기더라도, 도시의 안위를 위해 당연히 희생을 강요하던 게 그간의 기조다.
어쩌면 경비대장 카달이 이번 사건으로 무언가 심정의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게 사람들의 추측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수색 작전은 일단 성공으로 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이후. 도시에 가해진 위협 행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화를 피하기 위해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걸까? 아니면 폭풍 전의 고요일까.
어쨌거나 도시는 오랜만의 평화에 젖어 들었다.
반면 데일은……. 그 나름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데서 지낸단 말이에요?”
엘레나가 카일라의 여관을 둘러보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혹 지붕이 무너질까 걱정이에요.”
“안 무너지거든요!”
카일라가 볼멘소리로 외치자 흠칫한 엘레나가 프라우에게 말했다.
“술집 여급이 이야기에 끼어들다니.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여급이 아니라 이곳 주인이랍니다 공주님.”
“네에?”
엘레나가 화들짝 놀라자, 카일라가 도끼눈을 떴다.
그런 엘레나에게 데일이 무심하게 물었다.
“그래서. 왜 찾아온 거지?”
“흠흠. 은혜를 갚을 겸 좋은 제안을 하러 왔어요.”
“제안?”
엘레나는 양 허리에 손을 짚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
겁에 질려 있던 얼마 전까지와는 다르게, 왕족 특유의 기품이 동작에서 배어 나왔다.
엘레나는 데일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데일 경. 경께 청사자 기사단의 단장 자리를 하사하겠어요.”
“…….”
마치 대단한 자리를 주는 듯한 태도에 데일은 어이가 없었다.
옆에 있던 프라우가 호들갑을 떨었네.
“청사자 기사단은 바이만 왕국에서도 으뜸가는 기사단일세! 한때 카를 폐하가 그 단장을 맡으셨었지. 이게 무슨 말인지 아나? 자네는 이제 바이만 왕국의 가장 뛰어난 기사일세!”
엄청나게 부럽다는 듯. 프라우는 그 맑은 눈을 반짝였다.
데일이 물었다.
“일단 묻겠는데, 기사단에는 나 말고 누가 있지?”
“나 역시 청사자 기사단원일세! 참고로 내가 부단장이네!”
“너 외에는 없나?”
“지금은 그렇네!”
프라우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데일은 미간을 좁혔다.
‘단 두 명밖에 없는데 기사단이라 부를 수 있는 건가?’
데일의 답은 정해졌다.
“거절하겠다.”
“!”
“!!!”
엘레나와 프라우 둘 다 눈을 부릅떴다.
특히 프라우 쪽은 반응이 너무 격해, 눈알이 빠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엘레나가 당황해서 물었다.
“이런, 이런 명예로운 직위를 왜?”
“명예 말고는 없으니까.”
그 명예가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데일은 손을 휘휘 저었다.
“볼 일 다 봤으면 돌아가라. 괜히 마법사 안 마주치게 조심하고.”
데일이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엘레나는 데일을 한차례 노려보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프라우 경.”
“예.”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겠어요.”
갑작스러운 결정에 프라우가 물었다.
“음……. 괜찮으시겠습니까? 여긴 너무 허름하고 더럽지 않습니까.”
“왕국에서 탈출할 때는 지붕조차 없는 곳에서도 야영해야 했다. 이 정도쯤이야.”
“허름하고 더러워서 미안하게 됐네요.”
카일라가 멀리서 툴툴거렸지만 엘레나와 프라우는 무시했다.
“그리고, 기사단장이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하지 않겠어요?”
“기사단장 안 한다니까.”
하지만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지금 엘레나가 가장 안전한 장소는 바로 데일의 옆일 것이다.
데일이 딱히 엘레나가 지내는 저택으로 갈 생각이 없다면, 엘레나가 이곳으로 옮기는 게 맞았다.
엘레나 옆에 이 시끄러운 엘프까지 따라오는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라. 그럼 장기 숙박 손님이 또 늘었네요?”
그제야 카일라의 얼굴에도 미소가 빙그레 걸렸다.
어찌나 기분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망할 위기였던 여관에 손님이 속속 들어차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왜인지 손님들이 하나 같이 데일과 연관된 사람 같지만…….
그때. 불콰하게 취한 하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데일 경! 응? 이 꼬맹이랑 귀쟁이는 누굽니까?”
아무래도 술에 취해 뵈는 게 없는 모양이다.
프라우가 고민도 없이 검을 뽑으려 하자, 데일이 그 손을 막았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니 친하게 지내라.”
“……데일 경이 그리 말하니, 한 번만 봐주겠네.”
엘레나도 마음에 안 드는 듯한 표정을 했지만, 데일이 그렇다 하니 수긍했다.
“저도 가볍게 벼락을 날리는 수준에서 참아보겠어요.”
“그러지 마라.”
그런 살벌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잔뜩 취한 하켄이 데일에게 말했다.
“제가 이번에 데일 경 덕분에 한몫 두둑히 벌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랜만에 비싼 술을 먹었는데……. 아니.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지.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엄청 중요한 말이었는데. 뭐였더라?”
“원한다면 생각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물리적으로.
“아! 기억났습니다! 가란드가 데일 경을 만나면 길드로 찾아와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데일이 하켄을 지나치자, 잔뜩 취한 하켄이 비척거렸다.
프라우가 그런 하켄을 붙잡으며 말했다.
“다녀오게. 이 곱슬머리 친구는 내가 잘 맡아주겠네.”
“으잉. 뭐라는 거야 이 귀쟁이가.”
프라우가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데일은 뭐라 하려다 그만두었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하켄은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죽이지는 마.”
“하하! 나를 뭘로 보는건가!”
데일은 고개를 끄덕여준 뒤, 여관을 나섰다.
곧바로 무언가를 두들겨 패는 듯한 소리와 하켄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이 울렸다.
데일은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앉아 늘어지게 하품하던 하티가 그런 데일의 뒤를 느릿하게 따랐다.
* * *
다시 들른 용병 길드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굵직한 일이 마무리되고, 주머니가 묵직해진 용병들이 휴식기를 가진 것이다.
수색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부지런한 용병 몇 명만이 의뢰를 찾아 서성였다.
그런 와중에 데일이 들어오자 시선이 한순간 집중되었다.
“엇.”
“어…….”
데일을 못 알아본 사람은 없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결투 이후. 데일은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데일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무시하며 접수대의 직원에게 걸어갔다.
그때. 용병 중 하나가 데일의 앞을 막았다.
“?”
시비인가? 참으로 간 큰 용병이다. 데일은 주먹을 들어 올리며 꺼지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용병이 정중하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데일 경.”
“음. 그래.”
생각보다 예의 바른 태도에 데일은 당황했다. 예의라니. 용병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결투 잘 봤습니다. 솔직히, 대단했습니다. 황실 기사단의 기사를 꺾으시다니요.”
정확히는 입단 예정인 기사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한 명의 전사로서 감탄했습니다.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것뿐인 듯. 용병은 얼른 뒷걸음질해 길을 터주었다.
데일은 자신을 쳐다보는 용병의 눈에 서린 호의를 발견했다.
고개를 돌렸다. 다른 용병들도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거친 삶을 살아가는 용병들은 강자를 존경하고 동경한다. 이번에 데일이 보여준 모습이 어지간히도 인상적인 모양이다.
‘아니.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까.
적의는 둘째치고, 데일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희석되었다 해야 하나.
갸우뚱한 데일은 용병들을 지나쳐 접수대에 섰다. 직원도 전보다 좀 더 진심이 묻어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예! 무슨 일이신가요!”
“가란드가 찾는다고 들었는데.”
“안 그래도 지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바로 올라가시면 돼요.”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계단을 올라 가란드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데일이 문을 열자 서류 더미. 아니, 서류의 산이 보였다.
서류 속에 파묻힌 가란드는 며칠간 철야 한 듯,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흑인도 다크서클이 진해질 수 있군.’
다소 불손한 생각을 하는 데일에게, 가란드가 손짓했다.
“앉으세요. 어디 보자…….”
가란드는 서류 더미를 힘껏 밀어 버렸다. 서류가 우수수 무너져 내리자 데일이 앉을 자리도 생겨났다.
가란드가 머쓱하게 말했다.
“수색 작전 이후 뒤처리할 게 많아서 말이죠.”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이럴 때마다 현역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대단한 영웅들과도 손을 맞췄던 그 시절이……. 아.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 될까요?”
시간이 없다는 건 이 주위에 널린 서류의 산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짬을 내준 것도 가란드로서는 큰 호의를 베푼 것이리라.
“나한테 할 말이 무엇이오?”
“길드 상부 회의에서 결정이 났습니다. 데일 경을 동패로 승급해도 될 것 같다는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동패를?”
“유례없을 정도로 빠른 승급 속도지만……. 사실. 그간의 실적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봤자 동패인걸요. 진즉에 승급했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가란드의 말을 곰곰이 듣던 데일이 물었다.
“조금 갑작스럽군. 이번 일은 길드와는 관련이 없지 않소.”
암흑가의 주민들을 지킨 건 에리얼의 부탁이었다. 크리스틴과의 결투도 길드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승급이 결정되었단 말인가?
“왜냐하면, 상부에서 데일 경에 대한 평가를 바꿨기 때문이죠. 믿을 수 없는 반 언데드에서, 그럭저럭 믿을만한 반 언데드로요.”
“왜 그렇소.”
“왜긴요! 데일 경이 자제심을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솔직히 참아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크리스틴과의 결투 도중. 데일은 빈사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데일은 그런 상황에서도 주위 사람들을 해치지 않았다.
그 점을 길드의 상부에서는 높게 산 것이다.
아니. 길드의 상부뿐만이 아니다.
아까 보았던 용병들에게서 두려움과 적의가 사라졌던 게 떠올랐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데일을 다시 보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반가운 소식이다.
동패를 달면, 이제 상위 구역에도 출입할 자격이 생긴다. 데일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데일이 물었다.
“언제쯤 승급할 수 있겠소.”
“음. 길드 규정상, 실적이 모두 찼으면 상위 등급에 걸맞은 어려운 의뢰를 한 번 더 수행해야 승급할 수 있습니다.”
데일의 투구를 긁적였다.
“그런 규정은 처음 들어보오.”
“하하. 그럴 겁니다. 이게, 3년 전에 용병왕께서 용병들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직접 만드신 규정이라…….”
용병왕. 그 거슬리는 이름이 또 들린다.
데일이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가란드가 선수를 쳤다.
“어쨌건. 데일 경께서는 의뢰를 하나 맡아주시면 됩니다. 동패 용병이 받을 만한 의뢰를요.”
“음. 그런 거라면. 추천해줄 의뢰가 있소?”
“마침 데일 경을 찾는 분이 있습니다만……. 아마 조만간 본인이 직접 찾아갈 겁니다. 들어보시고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럼 전, 이만. 바쁜지라.”
그렇게 말한 가란드는 다시 서류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마 더 말을 걸기도 미안할 만큼, 일이 보였던지라 데일은 조용히 집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대체 누가, 언제, 찾아온단 말인가?
정보가 부족한 탓에 데일은 꼼짝없이 여관에 틀어박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관에서는 할 일이 없다.
데일은 습관적으로 헝겊을 꺼내 무기를 닦았다.
그 바로 옆에 앉아서 프라우 역시 검과 손도끼를 꺼내 헝겊으로 닦고 있었다.
지나가던 카일라가 중얼거렸다.
“둘이 행동하는 게 어쩜 똑같네요.”
데일은 멈칫했다. 세심하게 검을 닦는 프라우를 훑어보았다.
시도 때도 없이 무기를 닦는 습관이 어디서 왔는지 떠올라 버렸다.
그런 데일의 시선에 프라우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다르게 해석한 듯, 자랑스럽게 검과 도끼를 들어 올렸다.
“하하! 경이 보기에도 훌륭한 무기지 않나! 내 자랑이라네! 이 검의 이름은 비토. 손도끼의 이름은 다렌이라고 하네. 멋지지 않나?”
프라우가 묻지도 않은 말을 멋대로 재잘거렸다. 데일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굉장히 엘프스러운 작명이군. 이상한 이름이다.”
“내 부모님의 성함을 따왔네.”
“어쩐지.”
“……보통은 이럴 때 사과를 하지 않나?”
데일은 무심하게 다시 고개를 내렸다. 무기나 마저 닦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다시 들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오는군.’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꽤 많은 수가 몰려온다.
맥주가 맛없는 카일라의 여관에 단체 손님이 올 턱이 없으니, 분명 데일이 기다리는 사람일 것이다.
이내 여관 문이 열렸다.
데일은 그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의문스러워했다.
“음?”
예상치 못한 인물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