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2)
탈영병
* * *
으레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기 마련이고, 원하지 않은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다.
닷새간의 이동 끝에, 데일이 마주한 것은 저 멀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백 명의 도적 떼다.
도적들이 앞선 패배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는지, 기어코 이쪽에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레베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주 당당하시군. 누가 보면 정규군인 줄 알겠어.”
하다못해 야음을 틈타 기습하는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평원에서 대기하고 있다니.
심지어 도적 주제에 은 방패가 그려진 멋들어진 깃발까지 펄럭이고 있었다.
저들은 자기들이 도적이라는 정체성이 약한 걸까?
데일은 상대의 전력을 빠르게 가늠했다.
“매복은 없고, 이백 명이 훌쩍 넘는군. 그중에서 한눈에 봐도 잘 무장한 건 100명이 조금 안 되는 것 같소. 나머지 150명은 갓 받아들인 신입으로 보이고, 조금이지만 기병도 있소.”
“……이 거리에서 그게 다 보인다고요?”
레베카가 놀란 얼굴을 하자,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모든 감각을 잃은 대신, 데일의 시각과 청각만큼은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데일은 저 멀리 평원에 대기하고 있는 도적 떼의 무장 상태와 병력의 질을 모두 파악했다.
‘작정하고 싸우려고 나왔군.’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일까?
꼼꼼히 살피던 데일은 적의 전열에 허름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걸 발견했다.
주로 노인이나 아이였다. 데일은 저들을 어디다 쓰려는지 알아챘다.
‘사로잡은 마을 주민들인가? 화살받이로 쓰려나 보군.’
젊은 여자나 남자는 그 나름의 쓸모가 있다.
하지만 노인과 아이는 그렇지 못하는데……. 저들은 기어코 써먹을 방법을 찾아내고 만 모양이다.
레베카도 사로잡힌 주민들을 발견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악마의 군대와 맞서기 위해 군인들은 지극히 효율적이고, 악독하게 싸워야 했죠. 저 탈영들은 자기들이 배운 걸 충실히 써먹을 생각인가 봐요.”
레베카는 가브리엘에게 시선을 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가브리엘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전투 대형으로!”
마차를 일렬로 늘어서 전진하는 건 불리하다. 가브리엘은 마차를 5열 종대로 바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전투 시에는 마차가 엄폐물의 역할도 해줄 것이다.
이제 싸움이 벌어질 것은 명백하다. 용병과 사병들 모두 웅성거렸다.
“저게 다 도적이라고?”
“뭔 숫자가…….”
“저런 놈들이랑 싸울 거라는 말은 없었잖아.”
특히 하켄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니 저거. 진형 짠 거 보니까……. 설마 군인 아닙니까?”
“탈영병이라는데.”
“!!”
하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주위를 둘러보고는, 걸음 속도를 늦췄다.
에스델이 반개한 눈으로 그런 하켄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의뢰 중간에 도망치면 하켄은 용병 길드에서 제명이 될 겁니다.”
“어, 어허. 도망이라니. 큰일 날 소리를. 난 그냥, 혹시나 뒤쪽에 있을 매복을 정찰하려는 것뿐이야.”
“아. 예.”
그렇게 적과 아군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이제는 화살이 닿을 거리에까지 이르렀다.
“멈추도록!”
가브리엘의 지시에 아군이 일제히 멈췄다.
양측은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도적 떼에서 신입에 속하는 이들은 곧 있을 전투의 흥분으로 안절부절못했다.
반면. 탈영병들은 차분히 서서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때. 도적 떼의 진형이 반으로 갈라져 양옆으로 물러났다.
중앙에 생겨난 길을 통해서 유난히 눈이 붉게 충혈된 드워프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평범한 인간 남성과 비슷하거나 살짝 작았는데, 드워프 기준으로는 엄청난 장신이었다.
드워프는 이쪽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나는 은 방패 도적단의 대장, 라팽이다! 지금 우리가 왜 이곳에 서 있는지, 너희들은 그 이유를 잘 알거라 생각한다!”
“하. 도적단에 붙이기에는 안 어울리는 이름인데.”
레베카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가브리엘에게 손짓했다.
그 의사를 읽어낸 가브리엘은 조용히 전투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팽은 계속 외쳤다.
“너희들은 내 부하들을 죽였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라팽을 무시하며 가브리엘이 지시를 내렸다.
“사격 준비.”
활과 볼트를 든 사병들이 사격을 준비했다.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친 라팽이 고함을 질렀다.
“달려 이 새끼들아!”
그러자 도적들이 사로잡은 주민들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며 외쳤다.
“달려!”
“살고 싶으면 달려라!”
도적들은 머뭇거리는 포로를 무자비하게 칼로 찔렀다.
겁에 질린 노인과 아이들이 아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을 허우적댔다.
“고, 공격하지 마세요!”
“우리는 도적이 아닙니다!”
사병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가브리엘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가브리엘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말했다.
“더럽게 구는군. 어쩔 수 없다. 그냥 쏴라.”
“예……. 예? 하지만.”
“저놈들이 포로일지, 변장한 도적일지 어떻게 알아! 당장 쏴!”
사병들은 눈을 질끈 감고 시위에서 손을 놓았다.
쐐액!
“억!”
“커억!”
후두둑 쏟아지는 화살들에 포로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그제야 도적들은 방패수들을 앞세워 이쪽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그들의 얼굴에서 포로들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자기가 화살을 맞지 않은 것에 기뻐할 뿐.
놈들은 노인과 아이의 시체를 스스럼없이 짓밟고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데일은 보았다.
가브리엘이 사격을 명한 것부터 도적들이 시체를 밟고 전진하는 것까지.
무기질적인 눈에 그 모든 광경을 담았다.
그리고 검을 쥐며 생각했다.
‘전부 합쳐서 250명이라……. 어쩌면 이번 상행이 끝나면 등급이 오를 수도 있겠군.’
그 순간, 데일의 마음속에서 도적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데일이 검을 들고 전투를 준비하자, 그 옆에 서 있던 하켄이 중얼거렸다.
“라팽. 라팽. 라팽……. 설마 거인 라팽?”
데일이 되물었다.
“아는 놈인가?”
“이름 정도는 들어봤습니다. 저는 2군단에 있었고, 저놈은 4군단 소속이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전장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장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 건.”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얘기군.”
“예.”
강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저놈을 처치하면 만족스러운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데일이 전장을 가늠하는 사이, 양측의 병사들이 드디어 중앙에서 격돌했다.
“전부 죽여!”
“밀리지 마라! 진형을 유지해라!”
“버텨!”
방패를 든 방패수들이 우악스럽게 버텼고, 그 뒤에서 창병들이 연신 창을 찔러댔다.
숫자는 상대가 우세하다.
하지만 이쪽에는 도적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 있다.
교단의 사제들이다.
“빛이여. 당신의 어린 양에게 악에 맞설 힘을…….”
“상처 입은 자들에게 자비를…….”
사제들의 축복에는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것 외에도, 마음속에 용기를 불어넣는 힘도 있다.
강력한 힘을 얻은 아군들은 용기백배해 적들을 밀어냈다.
설령 상대의 무기에 상처를 입더라도, 곧장 사제들이 치유해버렸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에스델의 활약이다.
에스델은 혼자서 동시에 여러 명에게 축복을 걸거나, 깊은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해버렸다.
이전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성장한 것이다.
“대, 대단한데.”
“성녀를 대신할 교단의 유망주라니…….”
아름다운 여사제의 활약 덕에 아군의 사기가 더욱 올랐다.
전열이 거세게 적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적의 전열은 탈영병 출신인 고참들이 맡고 있었는데, 그들은 생각보다 강한 기세에 당황하고 있었다.
지난번 전투에서는 가브리엘의 실수 탓에 사제들이 제대로 활약할 기회가 없었다.
때문에 도적들은 아군에 이 정도로 사제가 많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노련한 전사들이다. 이보다 더한 일도 많이 겪어보았다.
결국, 전쟁이란 끝까지 버티는 쪽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도적 떼의 고참병들은 이를 악물고 전열을 사수했다.
그렇게 중앙이 맞붙는 사이.
도적들 쪽에서도 움직임을 보였다.
우측에 빼놓은 10여 명의 기병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은 능숙하게 말을 몰며 아군의 측면과 후방을 호시탐탐 노렸다.
아군 사수들이 활과 볼트를 날렸지만, 그럴 때마다 기병들은 조롱하듯이 거리를 벌렸다.
기병들은 능숙하게 아군의 전력을 깎아나갔다.
레베카가 탄식을 내뱉었다.
“이럴 때 기병만 있었다면……!”
기병을 상대하기 좋은 건 같은 기병이다.
레베카의 말에 가브리엘은 움찔했다. 그 기병을 말아먹은 장본인이었으니까.
그때 데일이 나섰다.
“내가 가겠소.”
“네? 경이 대체 뭘…….”
데일은 대답 대신, 기병이 활개 치는 아군의 좌측을 향해 성큼성큼 뛰어갔다.
언제든 뒤를 찌를 수 있는 기병은 미리 제거해 놓는 게 편하다.
자칫하면 아군의 진형이 무너지고. 그 틈을 돌파해 사제들을 직접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기병들이 아군을 농락하며 헤집어놓고 있었다.
데일은 옆에서 창을 들고 서 있는 용병에게 손을 내밀었다.
“빌리겠다.”
“예? 이, 이건 제건데요?”
“잠시만 빌리겠다고.”
데일이 짜증을 섞어 말하자, 용병은 황급히 데일의 손에 창을 들려주었다.
창을 쥐고 그 무게를 잠시 가늠한 데일은, 이내 오른팔은 뒤로. 왼팔은 적을 향해 쭉 뻗었다.
잠깐의 조준. 그리고 투척.
쐐애액!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 창은 그대로 기병의 가슴에 적중했다.
“컥!”
사슬 갑옷 탓에 꿰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기병이 그대로 낙마했다.
활개 치던 기병들은 일제히 데일을 쳐다봤다.
“저놈이…….”
“조심해.”
데일은 그들이 곧바로 도망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낙마한 동료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데일을 주위로 넓은 간격을 두고, 빙빙 돌기 시작했다.
‘신참들은 몰라도, 탈영병들끼리는 의리가 끈끈하군.’
실제로 그들은 같은 백인대였던 지라 호흡이 잘 맞았다.
데일은 어지럽게 빙빙 도는 기병들을 보며 손도끼를 꺼냈다.
손안에서 요령 좋게 도끼를 굴린 데일은 다음 순간.
가장 가까이에 있던 기병을 향해 도끼를 던졌다.
“어딜!”
대비하고 있던 기병은 당장 버클러를 내밀어 도끼를 쳐내려 했다.
‘기습이 아니라면 이 정도쯤은 막아낼 수 있다!’
깡!
버클러와 도끼가 맞부딪혔다. 자신만만하던 기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끼에 실린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
“큭!”
그대로 균형을 잃은 기병이 말 아래로 낙마했다.
다른 기병은 그 모습에 당황했지만, 동료가 벌어준 틈을 헛되이 하지는 않았다.
기병 둘이 양방향에서 데일을 향해 쇄도했다.
앞서서 달려드는 기병은 다릿심만으로 몸을 고정한 뒤, 양손으로 검을 쥐었다.
검에는 말이 달리는 힘과 무게가 그대로 실렸다.
그는 팔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데일의 눈을 어지럽혔다.
데일은 그 궤적을 차분히 읽어냈다. 검격에서 얼마 전 맞붙었던 강적이 떠올랐다.
‘크리스틴.’
검술의 원류가 같은 걸까? 동작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크리스틴에 비한다면…….
‘형편없다.’
어디에서 어디로 공격할지 눈에 빤히 보인다.
크리스틴이라면 분명 저렇게 공격하지는 않았을 거다.
데일은 상대의 공격이 향해 올 방향을 예측하고, 미리 검을 내뻗었다.
다음 순간. 상대는 정확히 예상대로 행동했다.
“!”
당황하는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데일은 그대로 검을 들어 올려, 드러난 상대의 목을 올려 베었다.
기병은 본능적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지더니, 이내 피 분수가 튀었다.
기병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데일은 곧바로 기병의 몸을 낚아채, 몸을 돌렸다.
뒤쪽에서 달려들던 또 다른 기병이 커다란 양날 도끼를 수직으로 내려치려 하고 있었다.
데일은 죽은 기병의 몸을 앞으로 뻗었다.
양날 도끼가 기병의 몸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대로 꿰뚫지는 못했다.
사슬 갑옷을 껴 입은 기병은 좋은 방패였다.
“이 자식이!”
동료를 방패로 쓰는 데일을 보며 기병이 분노를 터트렸다.
하지만 첫 공격이 실패한 순간 이미 승부는 정해졌다.
데일은 그대로 유물 장갑을 기병의 허리에 대, 충격파를 발산했다.
팡! 하는 충돌음과 함께 기병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움직임을 멈췄다.
깔끔한 승리.
데일은 죽은 두 기병의 생기를 곧바로 흡수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실력이 늘었나?’
단순히 신체가 빨라지고 단단해지고 그런 느낌이 아니다.
싸우는 기교.
정확하게는 검을 다루는 기교가 늘었다.
크리스틴과의 싸움이 깨달음을 준 것일까? 그런 것 치고는 성장 폭이 큰데…….
데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전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그저 만족스러울 뿐.
기병들도 그제야 이 흑기사가 예상보다 버거운 적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을 데일이 아니다.
데일은 능숙하게 갈고리를 집어 던졌다.
“엇!”
갈고리가 가장 후미에 있던 기병의 사슬 갑옷에 걸렸다.
데일은 밧줄을 잡아당겨 그대로 기병을 바닥에 메쳤다.
주저 없이 기병의 목을 벤 데일은 바로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주인을 잃고 머뭇거리는 말이었다.
데일은 고민도 없이 말 위에 올라탔다.
―히히힝!
흑기사의 음산하고 차가운 기운에 말이 화들짝 놀라 앞발을 들었다. 어떻게든 데일을 떨어트리려 했다.
하지만 데일은 균형을 잡으며, 말의 엉덩이를 가볍게 후려쳤다.
“진정하고. 달려라.”
그런다고 말이 진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달리기는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말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다른 기병들과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기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자기들 말을 뺏어 타다니!
데일은 대답 대신 갈고리를 다시 던졌다.
기겁한 기병이 창을 세워 갈고리를 튕겨내려 했다.
‘이미 연습했던 거다.’
이전, 프라우을 상대로 갈고리 투척을 수련할 때. 프라우는 자꾸만 무기로 갈고리를 쳐내려 하곤 했다.
때문에 데일도 그에 대비책도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데일은 갈고리에 연결된 밧줄을 살짝 잡아당겼다. 궤도가 틀어진 갈고리와 밧줄이 창을 휘감았다.
“이익!”
기병은 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턱도 없었다.
날뛰는 프라우에 비하면 너무나 약했다.
기병은 곧바로 끌어당겨 지는 데일의 힘에 그대로 말에서 떨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여섯이 당했다.
동료 절반을 잃고 나서야 기병들은 데일이 맞설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조드가 당했어!”
“사, 산개해!”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데일은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을 하나씩 추격해 죽일 생각이었다.
데일이 말을 몰았다.
그리고 아군 병사들은……. 데일이 혼자서 기병을 전멸시키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라팽은 전장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좋지 않았다.
아군이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그나마 유리했던 건 기병의 차이였지만, 그조차 어떤 흑기사에 의해 제지되었다.
이러다 대열의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그대로 전체가 붕괴할 것이다.
하지만 라팽은 신경 쓰지 않았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에게는…… 특별한 무기가 있으니까.
라팽은 음울한 색을 띠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원통형 도구를 어루만졌다.
대포와 똑같은 생김새.
하지만 크기는 일반 대포보다 작다. 양손으로 들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다.
라팽은 유물 대포의 겉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기기괴괴하게 생긴 문자가 대포의 겉면에 새겨져 있었다.
라팽은 이 문자를 읽을 수 없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생각했다.
아름답다고.
가슴속에 강한 충동이 생긴다.
어서 이 무기를 시험해보고 싶다.
라팽은 유물 대포를 들었다.
서로 얽혀 있는 병사들을 향해, 홀린 듯이 대포를 겨누었다.
“네 아름다움을 저놈들에게도 보여봐라.”
라팽이 마지막으로 대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유물 대포가 하늘을 향해 녹색 불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