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14
114
“그건 정말 나쁜 일이군요.”
“경제의 측면에서 술은 사치품이니, 때에 따라 다른 사치품처럼 세금을 매기는 일은 괜찮다. 그러나 지배층이 세금을 늘이고자, 사람들이 직접 기른 곡식이나 과일로 술을 담그는 일조차 억압한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왜 술의 신이 막내동생인 내게까지 부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일은 형 혼자만으로는 할 수 없었다. 신성 모독이라 보기엔 그들이 국정이라는 구실을 댈 수 있고, 무엇보다 다른 신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신들 중에서도 라스카라사 여신은 너 다음으로 늘 내게 친절했다. 술을 예술가들의 벗이라고 부르면서. 하지만 나를 노엽게 한 왕들과 귀족이 가난한 이들의 술에서 빼앗은 세금으로 대규모 공연을 수반하는 연회를 베푼다면, 예술의 여신은 그들 편을 들겠지.”
그랬다. 그 왕들이며 귀족들이 꼭 사도가 아니라도, 가혹한 세금이 전쟁이나 다른 분야에 이용된다면 그 신들에게 유리하니까. 당장 술의 신이 내리는 처벌에 간섭하지 못하더라도, 훗날 그들의 영역에서 앙갚음할 터였다.
“아민타스 형,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실 내가 리우트프란 왕자에게 말한들, 그리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가 과연 신의 사도가 될지도 의문이고, 나의 환심을 사려 한들 그런 요구를 한다면, 과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호감은 바로 사라질 테니까.
그래도 술의 신은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고 있었고, 나는 그런 형을 도울 터였다.
“고맙구나.”
아민타스 형은 환하게 웃더니,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날 도우려는 거냐?”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야 형이 부탁했고─”
“정말 그것뿐이냐?”
아민타스 형은 웃으며 물었다. 마치 나를 격려하듯. 내가 솔직하게 대답하도록.
“…형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요. 그들의 땅에서 그들이 키운 곡식과 과실로 형님의 위대한 발명품이자 예술품을 그들 또한 즐기며, 이미 고단한 삶에서 그들이 누릴 그 어떤 행복도 빼앗기지 않게끔 해야죠.”
“…그들이 나의 사람이라고? 그들은 돈 없이는 술을 빚지도 마시지도 못하는데?”
“…어,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형은 그들을 위해 나섰잖아요. 그러니 형의 사람들이죠.”
“그렇다면, 만일 이 문제에서 나와 의견이 반대인 신이 가난한 이들에게 더 도움이 됐다면, 내 청을 거절했겠니?”
“네.”
술의 신은 술처럼 감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고로, 그들은 너의 사람들이구나.”
“형이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야, 하하.”
나는 형의 다정한 말에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아직 너를 모르는 이들도 있지 않겠니?”
“그렇죠. 그렇지만 저는 그들의 신이에요.”
나는 그들을 위해 싸우고 있으니까. 내가 그들을 만나 본 적 없어도, 그들이 나를 만나 본 적 없어도, 내가 피땀 흘려 세운 나의 진리가 우리를 하나로 잇는다.
“우리 모두 사람들의 신이죠. 사람들 모두가 신들의 사람들이듯.”
나는 조금 생각한 후 결론 내렸다.
그러자 아민타스 형은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풍요의 뿔을 들어 술을 따랐다.
술의 신은 술잔도 술에 따라 변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투명한 유리잔이었다.
그 유리잔에 차오른 술은 붉은 기운을 띠다가 맑아졌다. 다시 붉어지다가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술의 신이 이번은 어떤 술을 따를지 결정하지 못한 듯이.
“너는 아까 내 편을 들지 않겠다고 했었다.”
“…네.”
형이 기분이 상했나?
“테오파노.”
“네, 아민타스 형님.”
“형.”
“네, 형.”
“너는 사람이건 신이건 올바른 부탁만을 들어준다.”
“네, 형.”
“그렇다면 그 부탁을 들어준 대가 또한 받아야 한다. 줄 것이 없는 거지들에게서라도 너를 향한 믿음을 받아야 한다.”
“네, 형님, 아니, 형.”
“그리고 신이 상대라면, 지금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마라. 사람들을 위하는 네 뜻은 네 마음에 품어라. 네 뜻을 위해 애썼을 뿐이니, 대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상대가 유도하지 못하도록.”
나는 그렇게 말하는 술의 신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가장 오래 숙성한 술의 빛깔이었다. 가장 맛있고 가장 독한 술.
-술의 맛은 그 도수에 비례하지.
형이 내게 처음으로 술을 가르쳐 주며 했던 말.
여전히 내 잔의 술은 붉었다가 맑았다가, 빛깔이 변하고 있었다. 그 온도도 변했다. 붉을 때는 뜨겁기까지 하다가, 맑을 때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혹은 그 반대기도 했다.
형의 눈빛과, 술의 빛깔을 들여다보노라면, 또 다른 형도 떠올랐다.
학문의 신이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그토록 과감할 수 없는 신. 지금 이 깊디깊은 눈빛을 한 술의 신이 그 무시무시한 복수를 참으로 냉철하게 행했듯.
“형이니까 한 말인데? 형한테는 그래도 되잖아.”
문득, 너무나 어리숙한 말이 이미 취한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형의 술이 차가워지다 못해,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이 도르르 굴러 내렸듯.
형은 술잔을 들어 입을 가렸다. 어느새 희푸른 자기 잔이 된 그 술잔이 형의 입술을 가렸다.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었다.
-술잔으로 웃음을 감추는 법을 가르쳐 줄까? 너한테만 알려 줄게.
-응, 고마워. 근데 웃음을 왜 감춰?
-술 마시고 웃는 웃음은 울음이 될 때가 있거든. 그러니 눈물이 흐르기 전에 멈춰야 해.
생각하니, 그 말을 처음 했었던 형도 어렸었다. 어렸던 나보다는 컸지만, 그래도 아직 어렸었다. 지금처럼 우아하고 세련되며 강력한 신이 되기 전의 형.
그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순간, 형이 더 높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맑은 눈물이 세 방울, 술잔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내가 뭘 본 거지, 눈을 깜박이는 순간, 술의 신이 내게 그 술잔을 내밀었다.
그 안의 술은 붉지도 맑지도 않았다. 모든 보석을 갈아 놓은 듯, 형용할 수 없는 빛깔이, 꿈결 같았다.
“마셔라.”
나는 그 말을 따랐다.
“언젠가, 지치고 우울할 때, 좌절과 절망에 빠질 때, 이 술이 네 마음에 불꽃을 피우리라. 너는 황홀경을 누리리라. 그리하여 환희 속에서 직관을 얻으리라.”
술의 신이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술이 너무 독하고, 아, 너무나……!
-술 마시고 울면 안 돼?
-그럼 바보 같잖아.
몸이 높이 날아오르는 동시에 깊이 가라앉았다.
-형은 울어도 바보가 아니야.
그때, 형이 무어라 대답했더라…….
어둠이 서서히 나를 감싸왔다. 이불처럼 포근할 정도로…….
“자거라, 내 사랑하는 동생 테오파노.”
다정한 속삭임과 함께,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너무나 개운하게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살면서 어제 최고로 많은 술을 마셨는데도, 숙취는 전혀 없었다. 아침부터 기운이 넘쳤다.
“테오파노 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하하, 어제 형님과의 술자리가 즐거웠다.”
내 사도들도 다른 사도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라스카라사 누나를 찾아갔다.
“무얼 걱정하니, 내가 질 것 같니?”
라스카라사 누나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그저 심판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하려는 거예요.”
아민타스 형이 내 심판을 원해도 누나가 끝까지 인정하지 말라고.
“심판이라, 맡고 싶긴 하나 보구나?”
예술의 여신은 심술궂게 웃었다.
“괜히 동생을 자극하지 말고요. 이제 저 그런 데 안 넘어가요.”
“그 말은 라프트레이에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너는 그를 제일 따랐고, 늘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지. 다른 신들이 그렇게 느끼는 아버지에겐 아무 생각 없이 재롱이나 떨면서 말이야.”
“어렸을 때 얘기라니까요.”
“두고 보면 알 일이지. 그리고, 네가 후원하는 극단 말인데, 아레테의 그 모든 이름난 극단을 두고, 망한 극단을 골라잡다니, 제 정신이니?”
“라스카라사 누님, 저는 이 모든 겨루기에 신물이 났어요. 연극도 겨루고, 누나와 형도 겨루고, 그런 풍조에 과감하게 저항하는 뜻에서 한 선택이에요. 선택 자체가 예술이죠.”
나는 열심히 둘러댔지만, 누나에겐 소용없었다.
“그 극단을 아민타스가 오기 전에 선택한 줄 내가 모를 줄 아니?”
“누님, 전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후원자고, 그 작품 의도를 존중해서 내린 해석이에요. 그런데 누님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고결한 일을 이렇게 물고 늘어지다니, 혹평 전문 비평가 같네요. 예술의 여신으로서 체통을 지키셔야죠.”
“테오파노!”
누나가 가장 싫어하는 소리를 한 후, 나는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데커가의 수장이라고?”
레오파라와 아타울프가 소개한 사람은 백발이 성성하고 눈매가 매서운 노부인이었다.
웬만한 귀족보다도 화려하게 차려입은 노부인은, 아레테의 축제가 아니더라도 늘 그렇게 입는 듯했다.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는 평민에게 부과되는 벌금쯤은 턱턱 내고 사는 거겠지.
“테오파노 신이시여, 메데커가의 수장인 이사벨 메데커가 인사 올립니다.”
노부인은 엄숙한 얼굴로 말하면서 예법에 따라 정중하게 절했다.
그런 예법을 모르는 평민들에겐 단순하게 인사받았던 나는 노부인에게도 무릎이 아플 일은 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건 귀족들의 인사고, 메데커는 아무리 위세를 떨쳐도 아직 귀족은 아니니까.
하지만 자신처럼 하지 않는 이들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던지며, 위풍당당하게 격식을 차려 절하는 노부인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나조차도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 입 다물었다.
“만나서 반갑다, 메데커의 수장이여. 그대가 나를 찾아온 연유가 무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