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04
◈ 204. [STAGE 8] 운수 좋은 날
쿠일란은 새로 만든 SSR등급 장비 두 개를 찬 채로 슬라임 엠페러에게 삼켜졌다.
그것도 그냥 SSR등급 장비가 아니다. 네임드 흡혈귀 장군 마력핵으로 만든 완전 신상. 성능도 효과도 발군인 장비들이다.
이대로 소화되면 장비 째로 날아간다.
‘쓰알 장비 두 개면 저 산적놈들 임금 다 합친 것보다 더 비싸다고!’
당연히 구해야 할 거 아냐, 내 쓰알 장비님들!
그리하여 구출 계획이 성립되었다.
사실 게임에서도 종종 영웅 캐릭터들이 잡아먹히곤 했기에, 소화되기 전에 구해 본 경험이 몇 번 있었다.
계획은 금세 수립되었지만, 문제는 이 계획을 루카스에게 말했다간 펄펄 뛰며 말릴 게 뻔했기 때문에.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나는 슬라임 엠페러의 앞으로 이동했다. 루카스는 영문도 모르고 그런 나를 쫄쫄 따라왔다.
“루카스.”
“예, 주군.”
“걱정 안 해도 된다. 보험 챙겨 가니까.”
나는 품에서 마법 스크롤을 하나 보여 주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예?”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직후 나는 슬라임 엠페러의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휘둘러 마력의 칼날을 생성했다.
핑그르르!
보스급 슬라임 몬스터는 자신의 근접 범위 안에서 위협적 수단을 준비하는 적을 그랩 패턴으로 삼켜 버린다.
3턴 이상 아무런 행동도 안 하고 대기하거나.
혹은, 이렇게 대놓고 마법을 사용하거나 하면.
휘리리릭!
그러니까, 잡아먹힌다는 말이다.
단단하게 굳어 가던 슬라임 엠페러의 몸에서 촉수가 뿜어져 나오더니 내 팔다리를 붙잡았다.
놈의 거대한 입이 쩍 벌어졌고, 나는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주구우우우운-?!”
기겁한 루카스의 비명을 뒤로 하고, 나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이따보자고~”
꿀꺽!
나는 그렇게 슬라임 엠페러에게 잡아 먹혔다.
***
정신을 차리자 슬라임 뱃속이었다.
평범한 슬라임은 그냥 점액질 몸 안에 희생자를 가두고 녹여먹는데, 보스급 슬라임들은 몸 크기가 너무 큰 탓인지 위장과 비슷한 공동(空洞) 형태의 소화기관이 따로 존재한다.
이곳 자체가 소규모 던전과 같은 판정이다.
“우아아아! 미끌미끌해! 사람 살려어!”
“꺼내줘! 여기서 꺼내 달라고! 죽고 싶지 않아아!”
어두컴컴한 괴물 위장 안에는 먼저 잡혀 온 선객들이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시끄럽구만.
나는 인벤토리에서 [푸른 불꽃 횃불]을 꺼내 치켜들었다. 컴컴하던 괴물의 내장 안이 홱 밝아졌다.
“어라?”
“화, 황자가 왜 여기에……?”
갑자기 조명이 등장하자 당황한 산적들이 일제히 내 쪽을 보았다.
건장한 사내놈들이 다들 눈물콧물 범벅인 것이 썩 보기에 아름답진 못하다.
구석에 쪼그린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질질 짜던 쿠일란은 나를 발견하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설마, 황자 전하께서 직접 우리를 구하러 와 주신 거요?!”
나는 싱긋 웃어 주었다.
“아니, 나도 잡혔어.”
농담이었는데 산적들은 목 놓아 꺼이꺼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하이고, 바보놈들.
“구하러 온 거 맞으니까, 울음 뚝 하고. 형벌부대, 차렷!”
그래도 요 며칠 던전에서 굴린 게 효과가 없진 않았는지, 내가 차렷을 시키자마자 산적들은 울면서도 내 앞에 도열했다.
“잘 들어라. 앞으로 대략 7분 정도 뒤면 소화가 완료된다. 그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다 같이 걸쭉하게 녹은 스튜 꼴이 될 거다.”
이곳 바닥은 산성액으로 찰랑거리고 있다.
지금은 찰랑거리는 정도지만 점점 차오르다가, 시간이 되면 한 번에 대량의 산성액이 쏟아져 단숨에 우리를 녹여 버릴 것이다.
차렷 자세로 덜덜 떠는 산적들에게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슬라임 엠페러는 외피 쪽 재생력은 높지만, 내장은 공격하면 확실하게 대미지가 누적된다. 한쪽 방향으로 일관되게 대미지를 주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어.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쪽을 공격하도록.”
나는 적당한 방향을 지시했다. 어차피 딱히 약점이 있다기보다는, 한쪽 방향을 집중 공략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명령이 내려지자 산적들은 맹렬한 기세로 슬라임 엠페러의 내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다들 살고 싶은지 꽤나 필사적이다. 나도 마법 칼날을 앞으로 내뻗어 공격했다.
“그나저나, 황자 전하. 정말로 우리를 구하러 여기까지 들어온 거요?”
열심히 주먹을 휘둘러 내벽을 때리던 쿠일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왜? 놀랍나?”
“놀랍다기보다, 이유를 모르겠는걸.”
펑! 퍼버버버벙!
쉬지 않고 주먹과 발을 휘두르며 쿠일란이 나를 흘깃 보았다.
“우리는 당신에게 있어 한낱 버림패일 뿐 아닌가? 당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구해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너한테 새 장비를 두 개나 만들어 줬잖아. 그게 보통 귀한 건줄 알아? 회수는 해야 할 거 아냐.”
“고작 장비 때문에 황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건다고? 그거야말로 사리에 안 맞지.”
“…….”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지못해 말해 주었다.
“사람을 구한다.”
“?”
“괴물을 죽이고, 사람을 구한다.”
살짝 낯부끄럽지만, 이게 내 진심.
“이것이 이곳 전선에서 내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기치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구한다고……?”
쿠일란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떨렸다.
“우리는 죄수로 이뤄진 형벌부대일 뿐인데? 그런 우리도 구한다고?”
“형벌부대는 사람 아니냐?”
퉁명스레 되묻자, 쿠일란은 자신의 붉은 머리를 가리켜 보였다.
“내 머리색 보면 알 거 아뇨. 나는 이종족 피가 섞인 혼혈이요. 그것도 가장 천대받는 수인족의 피가 섞인…….”
“이종족은 씨발, 사람 아니야?”
퍽! 퍼억!
마력의 칼날이 박살 났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다음 칼날을 소환했다.
“내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있다면, 내 힘으로 구할 수 있다면, 그러면 구한다. 그것뿐이야. 힘들어 죽겠는데 토 달지 마.”
“…….”
그런 나를 멍하니 보던 쿠일란이 중얼거렸다.
“당신, 그렇게 안 봤는데, 터무니없는 바보로군.”
“칭찬으로 듣지.”
“입으로는 온갖 허울 좋은 명분을 들먹이는 이들은 많이 봐왔지만, 자기 신념 지키겠답시고 괴물 뱃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이는 처음 보는군. 게다가 그 신념이 ‘사람을 구한다’라…….”
내 마력칼날이 꽂힌 곳을 쿠일란의 주먹이 때렸다.
쿠일란의 주먹이 떨어지자, 그곳에 내 마력의 칼날이 꽂혔다.
우리는 어느새 호흡을 주고받으며 약속이라도 한 듯 한 포인트를 차례로 번갈아 타격하고 있었다. 괴물의 내장이 퍽퍽 파여 들어갔다.
“왜, 이제 좀 내가 멋있어 보이나? 진심으로 믿고 따르고 싶어졌어?”
“솔직히 존나 멋있긴 한데…….”
쿠일란은 신음하며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살아 나가야 믿고 따르든 엎드려 부르스를 추든 할 것 같은데. 이대론 우리 다 뒈지게 생겼수다.”
어느새 산성액이 발목을 넘어 무릎 아래까지 차올라 있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기껏해야 3분 정도일까. 그리고 위벽을 뚫기에는 대미지가 부족한 상황.
‘별 수 없군.’
좀 아꼈다가 나중에 주려고 했는데, 지금 바로 투입해야겠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했지, 쿠일란?”
나는 인벤토리에서 꺼내든 장갑을 쿠일란에게 던져 주었다.
“증명해봐.”
엉겁결에 장갑을 받아 든 쿠일란이 의아해하며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금속 징이 박힌 까만 가죽 장갑이다.
“이건…… 뭐요?”
“[럭키 스트라이크].”
히죽.
나도 모르게 입가에 썩소가 맺혔다.
“이 세계 최강의 운빨 장비다.”
SSR등급 격투가 무기, [럭키 스트라이크].
0~777 사이의 대미지를 슬롯머신으로 랜덤하게 뽑아내는, 운빨 무기의 극치.
내가 이 무기를 봉인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낮은 대미지가 나올 확률이 높아서도 있지만.
대미지 슬롯 판정에서 000, 펌블(Fumble)이 뜰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000 판정이 뜰 경우, 공격자인 내가 오히려 막대한 대미지를 받는다. 저번에는 왼팔의 모든 뼈가 박살이 나 버렸지.
이런 리스크가 너무 커서 봉인해 뒀었는데, 하지만 쿠일란이라면?
“네 [강운]이라면, 충분히 써먹어볼만 한 장비지.”
쿠일란이 보유한 특성, [강운]은 판정에서 대실패를 없애 준다.
다시 말해서, [럭키 스트라이크]의 최대단점인 000대미지, 펌블이 뜰 확률을 없애 준다.
대미지가 널을 뛰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팔이 산산조각 날 리스크는 없이 싸울 수 있다는 뜻이다.
“뭐 얼마나 대단한 장갑이길래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는 건 거절 안 하는 성격이거든.”
장갑을 꽉 고쳐 낀 쿠일란이 사납게 웃으며 주먹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내 운이 좋으냐고 물으셨수? 하하, 당연히 겁나게 좋지!”
주먹에 붉은 기운이 휘감기더니- 힘차게 앞으로 뻗어졌다.
“왜냐하면, 당신처럼 대단한 사람이 나 같은 떨거지를 살리려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나는 이미 운이 좋지!”
펑!
쿠일란의 주먹이 슬라임 위장의 벽에 닿는 순간, 내 시야 구석에 대미지 슬롯이 핑그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0, 2, 4!
24대미지. 평균적인 격투 무기의 대미지보다도 낮은 수치가 떴다.
하지만 쿠일란의 주먹은 재빠르다. 벼락처럼 주먹을 회수한 쿠일란은 좌우 주먹을 폭풍처럼 앞으로 내뻗었다.
펑!
0, 2, 1!
펑!
0, 1, 7!
펑!
0, 1, 4!
펑! 펑! 퍼버버벙!
수십 발의 펀치가 괴물의 위벽을 두들긴다.
‘9대미지, 7대미지, 6대미지, 4대미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대미지는 오히려 줄어들어 간다.
앞으로 이 위장에 산성액의 파도가 들이닥치기까지 1분도 안 남은 상황. 이미 산성액은 우리의 허리까지 차올라 있다.
0, 0, 1!
0, 0, 1!
0, 0, 1!
쿠일란의 주먹은 이제는 계속해서 1대미지밖에 뜨지 않는다.
‘럭키 스트라이크 저거, 시행횟수에 반비례해 대미지가 낮아지도록 보정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설혹 시스템상 그런 역보정이 들어간다 해도,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뚫고 돌파할 수 있어야 진짜 강운(强運)이다.
진정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라면.
쿠일란은 바로 지금 증명해야 한다.
퍽! 퍽! 퍼어엉!
이제 우리가 삼켜지기까지 30초도 안 남은 상황.
“나는, 기적의 쿠일란이다…….”
산성액이 가슴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뒤로 홱 당겨진 쿠일란의 주먹이 선명한 붉은빛을 내뿜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 것 같으냐아아-!”
쏘아진 쿠일란의 주먹이 강맹하게 위벽을 후려쳤고,
띠링-!
대미지 슬롯이 핑그르르 돌아가더니, 이윽고 세 자리 숫자를 만들었다.
7, 7, 7!
……진짜로 떴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시스템 창을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외쳤다.
“잭팟-!”
[Congratulations!] [☆★☆JACKPOT!★☆★]펑! 퍼버벙!
시스템 인터페이스 주위로 대박을 축하하는 폭죽이 화려하게 폭발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투하악-!
쿠일란의 주먹이 형형색색의 빛무리를 뿜어냈고, 무지막지한 돌풍과 함께 괴물의 위벽을 갈기갈기 찢어 구멍을 냈다.
구멍 바깥은 성벽 위였다. 구멍이 난 위벽을 통해 산성액이 밖으로 울컥울컥 쏟아져 나갔고, 안으로는 환한 햇볕이 쏟아졌다.
“우와아아아!”
“살았다아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헐레벌떡 슬라임 엠페러의 뱃속에서 빠져나왔다.
슬라임 엠페러는 배에 난 커다란 구멍을 순식간에 수복하고 있었다.
산성액 범벅이 된 채로 구르다시피 튀어나온 나는 냅다 고함을 질렀다.
“쥬니어! 갈겨-!”
대기 중이던 쥬니어는 즉시 궁극기 [원소 해체]를 발동했다.
슬라임 엠페러의 위에 천사의 링 같은 헤일로가 떠오르더니 하얗게 빛났고, 일대에 환한 빛무리가 내리쬐었다.
쩡-!
다음 순간 거울에 금이 가듯 허공에 균열이 생기더니, 산산이 조각났다.
동시에 슬라임 엠페러의 주위 모든 마력 원소가 일시에 ‘해체’되었다.
이것이 [원소 해체].
대상 1체의 마력 스탯을 마이너스까지 갉아 버리는 궁극의 디버프 마법.
이제 슬라임 엠페러는 마력 방어력이 0 이하로 떨어졌기에, 모든 마법 공격에 트루 대미지를 입고 추가 대미지까지 입는다!
“레이나! 뭘 멍때리고 있어!”
이 궁극마법을 입을 떡 벌리고 구경하는 레이나에게 나는 버럭 소리쳤다.
“해치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레이나가 두 팔을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
사방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형태의 바람이 쏟아졌다.
정교한 칼바람은 주위의 병사들을 피해서 정확하게 슬라임 엠페러에게 직격했다.
마법병단 대장의 전력을 다한 공격마법을, 마법 방어력이 마이너스로 깎인 상황에서 맞았다.
부오오오오……!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몸을 떨던 슬라임 엠페러는 사방으로 젤리 덩어리 같은 진액을 쏟아내더니, 이윽고 탄력을 잃고 흐물흐물하게 늘어져 쓰러졌다.
보스킬, 성공이었다.
“하이고…… 살았다.”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바닥에 늘어져 털썩, 주저앉았다. 쿠일란도 내 옆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오늘은 운이 좋군…….”
쿠일란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 산적왕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이 산성액에 절여져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울긋불긋한 꼴로도, 쿠일란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러게, 오늘은 운이 좋군.”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억세게 운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