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36
◈ 236. [자유탐사] 온천 시설 (3)
결론부터 말하자면.
귀신은 아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오오! 괴수 아니에요, 귀신도 아니고! 모험가에요! 살려주어!”
휴게실.
물에 흠뻑 젖은 채, 긴 연녹색 머리의 여인이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있다.
왼쪽 눈 아래에 눈물점이 세로로 세 개나 찍혀 있어 특이한 인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약간 울상을 짓고 있는 듯한 느낌.
젖은 연녹색 머리칼 사이로 비죽 솟은 긴 귀가 보인다. 나는 신음했다.
“엘프잖아……?”
엘프를 싫어하는 릴리가 있었다면 귀신 봤을 때보다 더 기겁했겠지만, 어쨌든 몬스터는 아니다.
‘몬스터보다 더 나쁠 수 있겠지만…….’
NPC는 때로는 괴수보다 더 위협적이다.
나는 루카스에게 눈짓했다. 루카스는 즉시 검을 뽑아들었다.
“이 안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대답하라.”
루카스가 엄한 목소리로 묻자, 엘프 여인은 히이익- 소리를 내더니 사정을 설명했다.
“마, 말씀드렸다시피, 모험가입니다! 이곳 던전을 탐사 중이었어요……!”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NPC 파티’인가.
NPC 파티.
흔히들 ‘공략조’라고 부르는 존재다.
우리처럼 진입한 지 1년도 안 된 뉴비 파티가 아니라, 수 년에서 수십 년째 던전 클리어를 위해 헤딩 중인 NPC 모험가 파티가 몇 개 있다.
이들은 진행 상황에 따라 아군이 되기도, 적이 되기도 한다. 잘 풀리면 아예 휘하로 편입도 가능하고.
‘아직까지 마주친 적 없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는군.’
그리고 나는 던전에서 활동 중인 모든 NPC 파티의 면면을 알고 있다. 게임에서도 지독하게 얽혀 댔으니까.
그중 엘프로 구성된 파티는 하나뿐.
‘엘프 여왕 직속의 성배탐사대.’
100년 전, 인간과의 전쟁으로 이종족의 왕국들이 몰락하던 시기.
엘프 여왕은 불리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친위대원들에게 한 가지 밀명을 내렸다.
과거 요정왕국의 국보였으나 도난당한 마력원인 성배(Holy Grail)를 찾아오라 시킨 것이다.
성배만 있으면 요정왕국의 실전된 고대 마법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나 뭐라나.
그래서 친위대원 5인은 성배탐색에 나섰고, 그 성배가 있는 유력한 장소로 이곳 호수왕국의 지하던전을 도출해 냈다.
그렇게 던전에 뛰어든 것이 100년 전.
이미 엘프 왕국은 멸망했고, 명령을 내린 선대 여왕마저 목숨을 잃었건만.
여전히 임무를 포기하지 못하고 성배를 찾아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듯이 던전 심부 공략을 이어 나가고 있는 불쌍한 엘프 파티 5인.
이들이 바로 성배탐사대다.
‘그런데 왜 혼자? 게다가 왜 온천 시설에 들어와 있던 거야?’
의아해진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기겁한 엘프 여인은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와 제 동료들은 6구역의 던전을 공략 중이었어요. 저희 파티가 찾는 물건이 6구역에 있다는 정보를 들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악몽 군단장과 그 부하들이 나타났어요…….”
엘프 여인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서열 9위 웨어울프 군단의 ‘늑대왕’과 그 부하들이 직접 모험가 파티 사냥을 다니고 있었어요.”
“……!”
“저희도 나름대로 숙련된 파티라고 자부하지만, 설마 군단장이 직접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해서.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고요.”
직후 엘프 여인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그런데 저희를 박살 내놓고는, ‘우리가 찾는 놈들이 아니군’ 같은 소리를 하지 뭐예요! 뭐냐고요! 그럴 거면 왜 공격했냐고!”
그 말에 문득, 예전에 무명이 해 주었던 경고가 생각났다.
– 악몽 군단장 중 일부가 너를 노리고 있다.
– 호수왕국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놈들은 더 수월하게 네 흔적을 찾아내고, 추적자들을 보낼 것이다. 최악의 경우 군단장이 직접 너를 죽이려 나타날 수도 있다.
악몽 군단장 놈들이 나를 찾아 죽이려 하고 있다고 했지.
‘설마 우리 파티를 찾아서 던전 안을 뒤지고 있나?’
그래서 모험가 파티가 보이는 족족 공격 중인 건가? 그 과정에 이들 엘프 성배탐사대가 휘말린 거고?
“이후 놈들은 저희를 납치해서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어요. 그 와중 운 좋게 제 포박만 느슨했던 덕분에, 저 혼자만 탈출할 수 있었고요…….”
엘프 여인이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밧줄에 쓸린 흔적이 붉게 남아 있다.
동료를 내버려두고 혼자 빠져나온 것이 수치스러웠는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예전에 켈리베이도 이런 말을 했었지.
– 던전 심부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야.
– 떠돌이 망자 놈들도, 나한테 장비를 의뢰하고 안으로 들어간 모험가 녀석들도, 죄다 오랫동안 안 보이는 걸 보면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는 있는 모양인데.
NPC 파티가 실종되고 있다고.
‘그 모든 일이 악몽 군단장 놈들의 짓이었나? 나를 찾으려고 NPC 파티를 공격 후 납치하고 있다?’
설마 이들 성배탐사대뿐만 아니라, 다른 NPC 파티도 납치되고 있다면?
‘……이들의 납치에 나의 책임 또한 있는 게 아닌가?’
고민에 잠겨 있는데, 엘프 여인이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탈출은 했는데, 지치고 다친 상태라.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복귀할 여력이 없어서.”
“이곳 온천 시설로 몸을 피했다는 거군.”
“네. 여기서라면 재정비가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제 직업이 암살자라서, 은신이 주특기거든요. 입구의 몬스터를 피해서 여탕에서 요며칠 회복하고 있었던 거예요.”
엘프 여인은 에반젤린의 눈치를 흘깃 살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들어오길래, 혹시 적인가 해서 온탕 안으로 잠수해 숨었다가…… 숨이 막혀서 나왔더니, 엄청 놀라시더라고요…….”
“그야 갑자기 탕 속에서 누가 솟아오르면 놀랄 만하지…….”
에반젤린은 아직도 저쪽에 떨어져서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경계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아무튼 사정은 대강 알겠어.”
나는 루카스에게 손짓해서 검을 치우게 했다. 겨눠진 검이 치워지자 엘프 여인이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들이 공격받은 이유가 아무래도 우리인 듯하니, 도와줄 당위성을 느꼈다.
내가 묻자 엘프 여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희 파티를 구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나는 손으로 턱을 쓸었다.
이들 성배탐색대는 이곳 던전의 NPC 파티 중에서는 제일 약한 편이지만, 어지간하면 우리 쪽에 호의적인 몇 안 되는 정상인 모임이다.
은혜를 베풀어두면 추후 공략에 도움이 될 거다.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아?”
“아마도 놈들의 본거지인 7구역 ‘늑대굴’로 끌고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7구역인가…….
아직 6구역은커녕 5구역 던전도 다 클리어를 못한 마당에, 꽤 멀다.
무엇보다 웨어울프 군단의 본거지라면 놈들이 주둔하고 있을 텐데, 그곳에 쳐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큰 일이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이번 방어전 때, 크로스로드로 쳐들어오는 웨어울프 군단의 소탕이 완료되면.
놈들이 본거지로 사용하던 곳도 방비가 약해질 것이다. 그때 구출이 가능해지겠지.
‘문제라면 포로들이 그때까지 버텨 주느냐인데…….’
띠링!
그때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악몽 군단에게 납치당한 NPC를 구출하십시오.
– 위치 : 7구역 ‘늑대굴’
– 보상 : ???
– 남은 기간 : 30일
굳이 눈앞에 친절하게 퀘스트 창을 띄워 주는군. 에이더 녀석.
속보이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꽤 중요한 정보가 시스템 창에 적혀 있다.
‘퀘스트 만료 기한이 30일. 적어도 30일은 포로들이 생존해 있는 건가.’
굳이 죽이지 않고 잡아간 이유가 있겠지. 아마도 괴수들에게 신문이라도 당하고 있을 거다.
그걸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앞으로 30일.
‘다음 방어전은 앞으로 27일 뒤니까…….’
좋아,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된다.
나는 엘프 여인에게 이쪽 사정을 설명했다.
내가 남부 방어선의 수장이며, 4주 뒤 웨어울프 군단이 도시로 쳐들어올 것이고, 그때 놈들을 격퇴한 뒤에 함께 동료들을 구하러 가주겠다고.
엘프 여인은 한 달 뒤라는 말에 울상을 지었지만, 어쩌겠어. 이게 현실적으로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이다.
“알겠습니다. 제 동료들은 강인한 이들이니, 최대한 버티기를 기도해야겠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이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우리 파티의 탐사도 최대한 ‘늑대굴’ 쪽으로 길을 트는 것을 우선할게.”
“그렇다면 제가 그 탐사를 돕겠습니다!”
엘프 여인이 벌떡 일어섰다.
“여기서 오래 굴러서 이것저것 꽤 빠삭하거든요! 특히 길안내 및 정찰에는 자신 있습니다!”
아닛, 이게 웬 횡재야? 30일짜리 단기 고용이기는 해도 NPC 캐릭터 하나를 무급으로 파티에 편입할 수 있게 생겼다.
“좋아. 그때까지 서로 협력하자.”
공짜 캐릭터 만세! 앞으로 한 달 동안 마구마구 굴려 주마!
나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엘프 여인은 동그래진 눈으로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손을 까딱였다.
“악수하자고, 악수. 이제 협력관계니까.”
“아…… 아하! 악수!”
자신의 옷에 손바닥을 슥슥 문지른 엘프 여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양손으로 내 손을 맞잡았다.
“죄송합니다. 인간의 인사 방식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방식이야 아무렴 어때. 아무튼 서로 돕게 됐으니 잘 지내 보자고.”
어색한 악수를 끝내고 나는 턱짓했다.
“나는 애쉬라고 한다. 너는 이름이 뭐지?”
“베르단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애쉬님.”
엘프 여인- 베르단디가 순진하게 미소했다.
하지만 눈물점 때문일까? 웃고 있어도 어쩐지 울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베르단디라고?’
상대의 이름을 들은 나는 적잖이 놀랐다.
SSR등급 암살자 캐릭터 베르단디. 이 여인이 바로 성배탐색대 파티의 리더다.
‘어째 맹해 보여서 더 저등급의 다른 캐릭터인줄 알았는데…… 네임드 NPC였잖아?’
바로 그때.
꼬르르륵.
“윽……!”
배에서 거창한 소리를 낸 베르단디가 울상을 지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호, 혹시 죄송한데 뭐 먹을 거 없을까요……? 제가 며칠 굶어서…….”
“…….”
나는 가방에서 구운 달걀과 꿀물을 꺼내서 주었다. 내가 먹고 싶어서 챙겨 온 거지만, 굶주린 이에게 더 요긴할 테니…….
“맛있어! 너무 맛있어요! 이게 얼마 만에 먹는 달걀이야!”
베르단디는 거의 울면서 내가 건넨 구운 달걀을 먹어치웠다.
“바깥세상의 식재료는 여기서 귀하거든요! 보통 식사는 호수왕국 사람들이 남긴 보존식으로 때우는데…… 흑흑, 맛있었다 오늘 밥은…….”
“……다음에 올 때 식재 좀 더 챙겨 올 테니까. 말만 해.”
무급으로 파티에 동원하게 됐는데, 밥 정도쯤은 챙겨줄 수 있다.
“세계수 맙소사! 어찌 이리 자비로우실 수가! 그, 그럼 다음에 오실 때!”
베르단디가 눈을 반짝이며 간청했다.
“해바라기 씨앗 좀 가져다주세요!”
“…….”
뭔 햄스터 같은 부탁을 하나 싶지만, 엘프의 식성이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다는데 갖다 주지 뭐.
행복한 얼굴로 꿀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베르단디를 보고 있자니, 문득 같은 엘프인 그림자 부대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임무를 받고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세 명도,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난 두 명도.
그 녀석들도 처음에 식사를 챙겨 줬을 때, 그렇게 행복해 했었는데.
“…….”
생각에 잠기는데, 쿠일란이 텅 빈 계란판을 내려다보며 어두운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기대했는데, 구운 계란…….”
“……돌아가면 새로 구워 줄게.”
“역시 황자 전하! 부하들을 잘 챙겨 주시는구만!”
당연하지, 짜식아. 적어도 먹는 걸로는 서럽게 안 해. 밥만 잘 나와도 퇴사욕구가 확 줄어든다잖아.
그러자 데미안과 루카스가 말없이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나는 혀를 찼다.
“너희도 먹고 싶었구나?”
“네…….”
“예!”
데미안은 부끄러워했는데, 루카스는 쓸데없이 씩씩했다.
“그래, 너희도 돌아가면 바로 구워 줄게…….”
그때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고 쭉 당겼다. 그쪽을 보자 에반젤린이었다. 너는 왜?
에반젤린이 뭉근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도 구워 줄 거죠?”
아니 너는 혼자 챙겨 와서 먹었잖아! 이 둥근 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