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38
◈ 238. [Side Story] 지울 수 없는
몇 시간 전.
크로스로드 시내의 병영. 레이나의 방.
“시술도 거의 끝나가는군.”
쥬니어에게 마법 시술을 끝낸 레이나가 손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좀 어때?”
“어떻고 자시고…… 여전히 죽을 맛이에요…….”
쥬니어는 퀭한 안색으로 옷을 고쳐 입었다.
“지난번에 너무 무리했더니 아직도 마력로가 들끓어서…… 으윽.”
“엄살 부리긴.”
레이나가 손을 휘둘러 쥬니어의 맨살이 드러난 등을 짝 쳤다.
쥬니어는 으갹! 하는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왜 때려요! 아픈 환자한테!”
“마력로가 아픈 거지 등이 아픈 건 아니잖아?”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맞으니까 억울했다.
불만스레 눈을 흘기는 쥬니어를 향해 레이나가 피식 웃었다.
“명심해. 이 시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야. 앞으로 불편함도 줄어들고 수명도 늘어나겠지만, 심장에 새겨진 마력의 상흔은 완치가 어려워.”
쥬니어는 입을 꾹 다물고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레이나는 계속했다.
“너는 앞으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거고, 남들보다 단명할 거야.”
“악담 퍼붓는 거 아니죠, 지금……?”
“뭐, 그래도 전보단 낫잖아? 그치?”
확실히 레이나의 말대로였다.
본래라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죽을 목숨이었다.
마법을 쓸 때마다 피를 토하곤 했고, 속이 너무 아파서 약초를 담배처럼 태우며 밤을 새곤 했다.
여전히 무리하면 이렇게 아프고, 불현듯 밤중에 통증을 느껴 잠에서 깨곤 하지만. 명백하게 전보다 나아졌다. 시술을 도와준 레이나 덕이었다.
‘그래서…… 왜?’
이 여자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도와준 걸까?
쥬니어 혼자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보았지만, 레이나는 끝까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같은 소리만 할 뿐…….
“나는 다음 방어전을 치르고 나면 황도로 돌아갈 거야.”
쥬니어가 옷을 다 입고 일어서자, 레이나가 느닷없이 권유했다.
“혹시 같이 갈 생각 있어?”
“네?”
“네가 얻은 마법 성취도 직접 상아탑에 발표하고, 마탑 들어가서 연구도 좀 하고…… 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생각도 못 해본 제안에 쥬니어의 머리가 일순 멍해졌다.
세계 마법의 중심지인 제국 황도에서 마법 연구라니…….
평생 독학으로 마법을 익혀 온 쥬니어로서는 아찔하게 달콤한 제안이었다.
“…….”
그러나. 쥬니어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곳 괴수전선은 저를 처음으로 마법사로 대우해 준 곳이에요. 엄마도…… 이곳에 목숨을 바치셨고요.”
“흠.”
“언젠가는 떠날지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황자 전하께 받은 은혜를 다 못 갚았거든요.”
“그래? 아쉽게 됐네.”
레이나는 굳이 더 제안하지 않았다. 쿨하게 미소하며 어깨를 으쓱일 뿐.
“그럼 이 보약 같은 시술도, 귀한 가르침도, 며칠 지나면 더 못 받을 테니. 조금이라도 이 아줌마랑 자주 어울려 두는 게 좋겠지?”
“이 이상 어떻게 더 어울려요……?”
“같이 점심 먹고 카페 가서 수다나 떨자구. 네 마법 관련해서 이야기할 것도 있고.”
“저 몸 안 좋은데…….”
“마력로 부상이 침대 누워 잔다고 낫겠어? 먹고 마시고 편하게 쉬면 낫게 되어 있으니 잔말 말고 따라와.”
일방적으로 선언한 레이나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외투를 걸쳤다.
쥬니어는 두 손 들었다. 어차피 이 노마법사는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한다. 그리고 이쪽은 치료를 받은 입장이니…….
‘오늘도 끌려 다니게 생겼네.’
쥬니어는 레이나의 뒤를 따랐고, 레이나는 경쾌하게 앞장서 나가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음?”
그리고.
방문 앞에는 웬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미역처럼 치렁치렁 늘어진 짙은 갈색 머리칼의 남자였다. 우수에 잠긴 두 눈에는 음울한 빛이 깃들어 있다.
“레이나 경.”
남자- 이번에 새로이 크로스로드에 고용된 용병, 카뮈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는군. 나를 기억하시오?”
잠시 당황해서 눈만 깜빡이던 레이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내가 나이를 먹었더니 기억력이 안 좋아져서…… 실례지만 누구신지?”
“못 알아보는 게 정상이오. 당신네 제국 마법병단은 원거리 포격전만 전문적으로 수행했잖소?”
카뮈는 싱긋 웃었다.
“희생자의 얼굴 같은 건 볼 기회가 없었겠지.”
“……?”
상대의 낌새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챈 레이나는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
그리고, 발견했다.
자신의 방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어야 할 부하들이 복도 저편에 피를 뿌리며 쓰러진 모습을.
카뮈는 느릿하게, 그러나 분명히,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는 15년 전, 당신에게 처와 자식을 잃은 남자요.”
스릉!
카뮈의 허리춤에 차인 칼집에서 두터운 장검이 뽑혀 나왔다.
동시에, 레이나는 뒤로 훌쩍 몸을 뛰며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투학-!
레이나의 손끝에서 강맹한 바람의 탄환이 쏘아졌다.
자랑은 아니었으나, 지근거리의 적이라면 킬카운트를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적을 쓰러뜨려온 대인살상마법이었다.
레이나는 눈앞의 남자 또한 단숨에 피를 뿌리며 제압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쩡-!
사라졌다.
카뮈가 검을 휘두르자, 레이나가 쏘아 낸 바람의 탄환은 빨려 들어가듯 소멸해 버렸다.
동시에 카뮈가 든 장검의 검신에 새겨진 룬 문자 하나가 하얗게 명멸했다. 레이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무기, 설마 스펠드링커(Spell-Drinker)……?!’
마법을 흡수하는 검이라니.
이런 고대 유물을 어디서 가져온…….
타앗!
다음 순간, 카뮈가 단숨에 땅을 박차고 레이나의 앞으로 쇄도. 거리를 좁혀왔다.
레이나는 다급하게 바람 마법을 캐스팅해 쏘아 냈으나, 모조리 카뮈의 검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레이나의 얼굴에 당혹이 스쳤다.
‘망할, 이거 위험한-’
레이나는 다급히 마력을 그러모아 몸 앞에 방어막을 쳤지만.
푹-!
카뮈의 장검은 대번에 그 방어막을 찢고, 여세를 몰아 레이나의 복부를 꿰뚫었다.
“커……흑?!”
“너희 마법사들을 끝장내기 위해서 평생 단련했지.”
피를 토하며 몸을 구부리는 레이나의 귓가에 카뮈가 차갑게 내뱉었다.
“거리를 주지 않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아무리 대단하신 마법사라도 이렇게 내 칼에 꿰여 주더군.”
입가로 피를 줄줄 쏟아 내던 레이나가 떨리는 눈을 들어 카뮈를 노려보았다.
“너, 넌…… 대체 누구야? 왜 나를…….”
“카밀라 왕국을 기억하나?”
카뮈가 조소하며 내뱉었다.
“15년 전 너희 제국이 짓밟은 북방의 소국이지. 나는 그 나라의 군인이었다.”
레이나의 눈이 부릅 뜨였다.
카밀라 왕국. 잊을 리가 있는가.
쥬피터와 레이나, 그리고 쥬니어. 세 마법사의 운명이 갈라진 곳이 그 나라였는데.
“그 작은 나라를 짓밟는 전쟁에서, 네놈들 제국 마법병단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내 나라의 사람들을 불태웠다.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을 태워 죽였지.”
“……!”
“네놈들이 마법으로 쓸어버린 마을 중 하나에는 내 아내와 자식들이 살고 있었다. 마을 째로 잿더미가 되어서 시체조차 찾지 못했어.”
찌른 장검을 더 깊게 밀어 넣으며 카뮈가 차갑게 읊조렸다.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서 편하게 죽을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마법병단 총대장 레이나 경?”
“크윽……!”
“내 나라와 내 가족이 당한 고통의 편린이라도 느끼고 죽어라.”
푸확-!
발로 레이나의 가슴팍을 차서 장검을 뽑아낸 카뮈는 장검을 위로 치켜 올렸다.
그는 그대로 레이나의 목을 치려고 했다.
번쩍!
그때, 벼락이 날아들었다.
카뮈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리며 자신의 장검을 치켜 올렸다.
벼락 마법은 카뮈의 장검에 흡수당했고, 장검에 새겨진 룬 문자 하나가 빛을 발하고 사그라졌다.
카뮈의 차갑게 식은 눈이 벼락 마법을 쏘아 낸 상대를 노려보았다.
쥬니어가 창백한 안색으로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멈추세요! 당장!”
“너도 마법병단이냐? 그럼 너도 죽을 뿐이다.”
“아니에요, 저도 카밀라 왕국 출신이에요! 당신과 동향(同鄕)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하고 일단 멈추세요!”
그러자 카뮈의 얼굴에 흐릿한 당혹이 스쳤다.
“카밀라 왕국 출신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저도 마법 폭격의 피해자예요.”
쥬니어는 소매를 걷어 자신의 왼팔을 드러내 보였다. 마법 폭격에 휩쓸려 입은 화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신의 심경은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니 조금만 진정하시고…….”
“카밀라 왕국 출신의 마법 폭격 생존자인데, 어째서 저 여자를 감싸는 거지?”
카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 여자, 레이나와 휘하 마법병단은…… 에버블랙 제국은! 우리 조국을 짓밟았다. 아무 죄 없는 민간인마저 마법 폭격으로 학살했어. 너는 그 당사자면서, 어째서 태연하게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거냐?”
“그, 그건…….”
쥬니어는 일순 말문을 잃고 더듬거렸다.
“그건…… 나는…….”
불현듯 어린 시절의 악몽이 뇌리를 스쳤다.
벼락과 토네이도가 작은 마을을 휩쓸던 그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던 그날. 새카맣게 타 버린 사람들의 시체와, 굉음과 비명. 먹먹한 탄내…….
“…….”
어째야 좋을지 몰라서 쥬니어는 우두망찰했고, 카뮈는 그런 어린 마법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투학! 투학-!
관통당한 배를 붙잡고 쓰러져 있던 레이나가 표독스러운 눈빛을 흘리며 손에서 바람을 쏘아 냈다.
카뮈는 재빠르게 장검을 휘둘러 마법을 모조리 흡수해 냈지만, 그때마다 장검에 새겨진 룬 문자의 빛이 하나씩 사그라졌다.
이윽고 모든 룬 문자의 빛이 꺼지고 나자, 카뮈의 장검은 더 이상 마법을 흡수하지 못했다.
퍼엉-!
뒤이은 바람 마법을 막아 내지 못한 카뮈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가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카뮈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쓰게 웃었다.
“이런, 망할…… 한눈이 팔려서…… 거리도 시간도 줘 버렸군……!”
펑! 퍼벙! 쿠당탕탕!
연이어 쏟아진 바람마법이 그를 완전히 제압했다.
“하아, 하아, 하아……!”
마지막 힘을 짜내 카뮈를 깔아뭉갠 레이나는 가쁜 숨을 내뱉다가 이윽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쥬니어는 허둥지둥 포션을 꺼내 레이나의 부상에 들이부으며 바깥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도,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이 다쳤어요! 어서-!”
***
현재.
“아이고…….”
에이더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아파오는 미간을 손 끝으로 꾹 눌렀다.
이번에 새로 뽑은 SR등급 전사 캐릭터 카뮈가 칼부림을 벌였고, 피습당한 레이나와 휘하 부하들, 그리고 쥬니어가 신전으로 이송되었다고.
“레이나 경은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으셨습니다만, 현재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휘하의 병사 네 분도 큰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쥬니어는?”
“다행히 몸에 상처는 안 입으셨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 보이시더군요. 지금은 병실에서 휴식 중이십니다.”
“…….”
미간을 더 세게 꾹꾹 누르던 나는 천천히 내뱉었다.
“카뮈는?”
“감옥에 구금되어 있습니다. 무장은 모두 해제하고 포박해 둔 상태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루카스에게 물었다.
“아군에게 고의를 가지고 무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혔다면, 군법 상으로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되지?”
“상해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사안이 엄중할 경우 사형까지 갑니다.”
루카스는 고저 없는 엄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게다가 이번에 피습당한 레이나 경은 황실 직속 마법병단의 총대장 되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을 죽일 목적으로 검을 휘둘렀다면…… 사형을 면하기 힘들 겁니다.”
“…….”
후우.
짧게 한숨을 뱉은 나는 몸을 일으켰다.
“우선 감옥으로 가자.”
내 군영 안에서 아군끼리 서로 죽이려 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카뮈와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