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9
◈ 029. [자유탐사] 말라붙은 배수로 (2)
0부터 7까지 쓰인 패널 세 개가 세로로 빠르게 회전하더니, 차례로 멈췄다. 띠링. 띠링. 띠링!
그리고 나온 숫자는…… 차례로 1, 2, 1.
121 대미지!
투쾅-!
내 주먹에 스친 거대 시궁쥐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날아온 방향의 반대로 그대로 날아갔다.
“…….”
주먹을 내지른 채 나는 얼떨떨하게 굳어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거 보통 백의 자리는 잘 안 뜨잖아…….’
걸핏하면 십의 자리도 안 뜨고 일의 자리만 뜨는 똥템인데.
웬일로 백의 자리까지 떠서 거대 시궁쥐를 원킬 낼 수 있었다.
“저, 전하? 괜찮으십니까?”
“어어, 뭐. 괜찮아…….”
놀라서 달려온 루카스는 내 몸 상태를 살피더니, 내가 멀쩡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방금 그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저 몬스터를 한 방에……?”
내 주먹에 맞은 거대 시궁쥐는 저 멀리 날아가서 곤죽이 되어 있었다.
루카스는 물론이고 데미안도, 쥬피터와 릴리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템빨이라고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이 아이템을 어떻게 얻었는지.
또 이 아이템의 작동 원리는 뭔지. 모두 설명하려니 막막해졌다.
‘스테이지를 깰 때마다 시스템의 보정으로 인벤토리에 상자를 지급받는데 그걸 까서 나왔다고 설명할 수는 없잖아…… 게다가 이 무기는 휘두를 때마다 룰렛을 돌려서 대미지를 정한다고? 그걸 어떻게 말해?’
그래서 대충 둘러댔다.
“황자 펀치야.”
“예?”
“황자 펀치라고, 황자 펀치. 오케이?”
“예……? 황자 펀치……?”
“황족들은 비상 상황에 몰리면 슈퍼 파워를 낼…… 수도 있다고. 가끔. 응!”
맥락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한 설명이다. 이쯤하고 넘어가 주라.
파티원들은 통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내가 구태여 말하려 하지 않자 넘어가 주었다. 다들 눈치가 빨라서 좋아.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고 얼른 다음 방으로 향했다.
[말라붙은 배수로 – Room 2]– 이 방은 비어 있습니다.
두 번째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몬스터도 없고, 이벤트도 없고, 어떤 오브젝트도 없었다.
하지만 비어 있다고 곧이곧대로 믿고 그냥 가면 안 되지. 나는 파티원들에게 명령했다.
“숨겨진 게 있을 거야. 샅샅이 수색해 봐!”
파티원들은 반신반의하며 흩어져서 방을 수색했다. 이윽고,
“앗, 여기 뭔가 있는데요?”
데미안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우오오오, 역시 천리안! 믿고 있었다고~!”
소리치며 데미안의 옆으로 달려갔다.
방의 한쪽 벽에 작은 위장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문을 열어 보자, 안에는 조그마한 보물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상자를 꺼내 든 데미안이 활짝 웃었다.
“보물상자네요, 황자님!”
“잘 했어. 하지만 조심해, 보물상자로 위장한 함정일 수도 있…….”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달려든 쥬피터가 보물상자를 홱 낚아채더니, 바로 열어 버렸다.
야 이 돈미새 할망구가! 함정이면 어쩌려고!
덜컥!
다행히도 함정이 아니라 진짜 보물상자였다. 안에는 보석과 금화가 조금 들어 있었다.
“햐아…….”
가느다란 감탄을 뱉으며 보석을 꺼내 살피던 쥬피터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우리가 모두 빤히 바라보자 정신이 좀 든 모양이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그려. 돈냄새만 맡으면 참을 수가 없어서.”
상자가 보이면 일단 열고 보는 ‘황금광’ 특성이 터진 듯하다.
나는 골치가 아파 와서 미간을 쓸었다. 앞으로는 함정도 자주 만날 텐데, 이 할머니를 어떻게 제어한다?
“자자, 보물상자는 여기 전하께 돌려드리지요.”
쥬피터는 보석과 금화를 내게 건넸다. 아니 그런데 할머니, 주머니에 몇 개 슬쩍하는 거 봤거든요?!
대충 눈감아주기로 한 나는 보석과 금화를 갈무리하고 다음 방으로 향했다.
[말라붙은 배수로 – Room 3]– 적을 전멸시켜라!
– Lv.5 거대 시궁쥐 : 12체
다음 세 번째 방도 몬스터가 출현했다.
몬스터들의 레벨이 오르긴 했지만, 이번에는 일말의 방심도 없이 전투를 수행해서 무피해로 모두 잡아 낼 수 있었다.
‘황자펀치를 두 번 쓰고 싶지는 않다고!’
쓰러진 시궁쥐들의 시체 숫자를 꼼꼼하게 헤아리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능하면 앞으로 영원히 쓰고 싶지 않아!
“자, 다음은 마지막. 보스룸이다.”
보스룸에 진입하기 전, 가볍게 정비 시간을 가졌다.
편하게 앉아서 보존식을 까먹는 파티원들에게 나는 빙그레 미소했다.
“이것만 클리어하면 귀환할 테니까, 다들 힘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릴리의 기세가 굉장했는데, 결연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집에 가고 싶나 보다…….
세 번째 방을 벗어나서 하수도를 조금 걷자, 앞에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틀림없는 보스룸이다.
파티원들과 시선을 맞춘 뒤, 나는 선두에 선 루카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루카스는 힘차게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고막을 긁어 내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천천히 보스룸의 문이 열렸다.
***
우리는 차례로 방 안으로 진입했다.
그동안의 방들과는 비교가 안 되게 넓은 곳이었다.
벽에 얽힌 배수관들도 크고 두꺼웠고, 방을 둘러싼 어둠과 불길함도 훨씬 깊었다.
무엇보다, 피 냄새.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욱한 혈향이 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으로 코를 막았다. 우욱, 뭐야?
“……!”
랜턴을 들어 주위를 살피자, 그제야 피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널따란 방의 곳곳에는 시궁쥐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우리가 앞의 방에서 해치웠던 거대 시궁쥐들이었다.
쥐라고는 해도 엄연히 몬스터인데, 이것들이 수백 마리씩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무수한 쥐 시체의 무더기 가운데에서.
《쥐…….》
그동안의 쥐들과는 비교할 수 없게 거대한 쥐가,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쥐들이…… 끝이 없어…….》
거대한 쥐의 양손에는 피범벅인 시궁쥐가 한 마리씩 들려 있었다.
거대한 쥐가 아무렇게나 두 손을 휘두르자, 들려 있던 시궁쥐 두 마리가 공처럼 멀리 던져졌다.
털썩! 털썩!
새로운 시궁쥐 시체가 시체의 산 위에 쌓였다.
이곳에 있는 시궁쥐들을 죽인 것이 이 초거대 쥐인 모양이다.
《쥐를 잡아야 해. 쥐를 박멸해야 해. 쥐를 청소해야 해. 호수왕국을 청결히. 청결히. 청결히!》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틀림없이 초거대 쥐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데미안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하고 있어……?”
데미안의 목소리를 들은 초거대 쥐의 귀가 움찔 떨렸다.
《뭐야…….》
그리고 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직도 살아남은 쥐가 있었나……?》
초거대 쥐의 시뻘겋게 빛나는 두 눈과 마주친 내 파티원들이 헉 소리를 냈다.
거대한- 실로 거대한 쥐였다. 신장은 3m는 넘어 보이고, 동족의 피로 범벅이 된 털은 검붉었다.
흉악한 이빨과 발톱은 칼날 같았다.
“아무래도 저 말하는 쥐 친구가 이곳의 보스 몬스터인 듯한데…….”
내가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쥐가 있어, 온 사방에, 쥐가 있다고! 아무리 죽여도 끝없이 쥐가 나와! 빌어먹을 쥐새끼들이!》
초거대 쥐가 발광하며 고함을 질렀다.
안 그래도 거대한 발톱이 흉측하게 뻗어 나오고, 가시가 박힌 꼬리가 바닥을 긁었다.
시뻘건 안광은 이제 빛을 뿜어내는 수준이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아아아아!》
끔찍한 포효와 함께 보스 몬스터가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사람처럼 두 다리로 내달리고, 두 팔은 공격을 위해 거칠게 휘두르며.
띠링!
때맞춰 시스템 창이 업데이트되었다. 나는 얼른 확인해 보았다.
[말라붙은 배수로 – Boss Room]– 보스를 물리쳐라!
– Lv.15 자이언트 랫맨
하수도 관리자 팔레이그.
저 랫맨의 이름인 모양이다.
‘왜 랫맨한테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런 사소한 의문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쿵! 쿵! 쿵! 쿵!
보스전이 시작되었고, 초거대 쥐는 단숨에 우리를 향해 육박해 왔다.
‘오더를 내려야…….’
나는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전술을 정리하고, 파티원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
“끼야아아악! 쥐이이이이-!”
릴리가 눈물을 쏟아 내며 특대 화염을 뿜어내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화르르르륵!
내가 지금까지 본 릴리의 화염 마법 중에서 가장 큰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어찌나 큰 화염인지 조금 떨어진 내 피부까지 화끈할 정도였다. 앗 뜨거!
키에에에에엑!
이쪽으로 달려오다가 불기둥에 직격당한 랫맨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가까이 오지 마아아아아!”
그런 랫맨을 향해 릴리는 계속해서 불길을 뿜어냈다. 활활활…….
“…….”
“…….”
그 무시무시한 불기둥 앞에서 나머지 파티원들은 뻘쭘하게 서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잠시 뒤, 릴리가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불길을 멈추자, 새카맣게 타 버린 초거대 쥐가 보였다.
키릭, 키리릭…….
막대한 대미지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스 랫맨은 살아 있었다. 놈은 여전히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런 랫맨을 향해 쥬피터가 이미 손끝을 겨누고 있었다.
“그쯤하고 쉬라고.”
쥬피터의 손끝에 샛노란 마력이 모였다.
“굿나잇.”
쿠과과과광!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그대로 보스 랫맨의 온몸을 관통했다.
《쥐를…… 청소해야 하는…….》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보스 랫맨의 얼굴이 힘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금방 끝났네.”
두 마법사의 협공에 보스 몬스터가 허무하게 잡혀 버렸다.
초반부 몬스터답게 마법 내성이 없다시피 했다. 평범하게 물리 공격으로 잡으려 했다면 이것보다는 고전했을 텐데.
보스킬을 확인한 릴리가 내 소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제 집에 가는 거죠, 전하?!”
“으응, 곧…… 그런데 너 좀 무섭다…….”
“온 사방에 쥐 시체인데 안 무섭겠어요, 그럼?!”
하지만 여기서 나가려면 저기 쌓인 쥐들의 시체 사이를 지나야 한다.
쥐 시체의 산과 보스 랫맨을 지나 우리는 방의 안쪽으로 향했다.
릴리는 이제 그냥 두 눈을 꽉 감고 쥬피터가 휠체어를 끌었다. 그래, 그게 서로 편하겠다.
방의 가장 안쪽에는 커다란 보물상자가 놓여 있었다.
쥬피터가 즉시 하나뿐인 눈을 반짝이며 튀어나가려 하길래, 나는 짧게 명령했다.
“루카스, 쥬피터를 붙잡아.”
“예, 전하.”
“아니! 아직 아무 짓도 안 했잖습니까, 전하! 아이, 이거 놔! 노인을 공경해야지, 루카스 경!”
루카스가 쥬피터를 붙들고 있는 동안, 나는 단숨에 상자를 열었다.
보스 보물상자는 함정인 경우가 없다. 무조건 보상 아이템이 들어 있다.
‘뭐가 들었냐!’
상자를 열자 푸른빛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온 것은,
“오!”
투박한 칼집에 들어가 있는 장검이었다.
칼집에서 슬쩍 뽑아 보자, 톱날처럼 비죽비죽한 칼날이 보였다.
나는 자세한 스펙을 살폈다. 좋은 템이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