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8
◈ 028. [자유탐사] 말라붙은 배수로
무명의 뒤를 따라 도시의 성벽 외곽을 따라 걷기를 수십 분.
“저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의 뒤를 따라가선 안 됩니다! 함정일 겁니다!”
루카스가 5분에 한 번씩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슨 뻐꾸기 알람이냐? 칼같이 5분마다 삐약거리네.
“괜찮아, 괜찮다니까. 일단 따라가자.”
애써 어르고 달래며 나는 파티를 전진시켰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무명이 갑자기 다리를 멈췄다. 놀란 파티원들 모두가 따라 멈춰서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여기다.”
무명이 성벽 쪽을 가리켰다.
자세히 살피자 그곳에는 배수(配水) 시설이 있었다. 바짝 말라붙은 채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무명이 앞장서 배수구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로 들어가면 도시 안으로 통한다. 미끄러우니 조심하도록.”
허리를 숙이고 좁은 배수구 안으로 들어가 걷기를 5분여.
갑자기 공간이 확 넓어졌다. 허리를 편 나는 주위를 살폈다. 시스템 창에 이곳의 위치가 떠올랐다.
[제1구역 : 말라붙은 배수로]마침내 이 호수왕국 던전의 첫 번째 구역에 도착했다.
도시 전체의 배수시설이 모인 장소였다.
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모조리 말라붙은 채로, 구불구불한 배수관들이 복잡하게 얽혀 마치 미로처럼 뻗어나가고 있었다.
영구 조명 마법이 걸린 마법석이 천장에 박힌 채 공간을 환하게 밝혔다.
그 마법석 아래에는 내 저택 뒤뜰에 있는 것과 같은 돌무더기가 놓여 있었다.
다가가서 손을 올리자, 돌무더기가 빙글빙글 돌며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텔레포트 게이트가 활성화되었다.
거점.
몬스터가 들어올 수 없는 세이프 존(Safe Zone)으로, 보통 해당 구역의 첫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연결하면, 다음에는 이곳부터 바로 탐사를 이어갈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숨겨진 거점을 찾아 텔레포트 게이트를 연결하고, 탐험과 귀환을 반복하는 것이 자유탐사의 기본 루틴이 된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연결되는 것을 확인한 릴리가 눈이 돌아가서 내게 애원했다.
“저 여기서 돌아가면 안 돼요?! 네?!”
“응, 안 돼.”
여기까지만 길 뚫자고 풀 파티로 보급품 쟁여서 왔겠니? 적어도 한 구역은 다 깨고 가야지.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릴리를 달래고 있으려니, 저쪽에 선 무명이 무심하게 말했다.
“길안내는 여기서 끝이다. 이 뒤부터는 그대들의 의지로 나아가야 한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 무명.”
잠시 머뭇거리던 무명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경고해 두지. 이곳 호수왕국은 이미 완전히 악몽에 먹혔다. 전진하면 전진할수록 어둠은 짙어지고, 괴물들은 더욱 강력해질 거다.”
그동안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와는 달리, 이번에는 진심에서 우러난 염려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심연으로 향해야만 한다면, 한 가지만 충고하마.”
무명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속삭였다.
“절대로, 불을, 꺼뜨리지, 마라.”
“…….”
“그대들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바라지.”
그 말만 남기고 무명은 천천히 걸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이윽고 완전히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그런 무명을 경계어린 눈으로 보던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뭐였을까요, 저 여자는? 어떻게 이런 호수 아래의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죠?”
“글쎄…….”
그때 내 뒤에 바짝 붙은 데미안이 살짝 겁에 질린 목소리를 냈다.
“황자님. 이곳의 어둠은 이상해요. 제 눈으로도 너머가 보이질 않아요. 마치…… 어둠이 살아 있는 것만 같아요.”
“…….”
“그런데 저 여자는…… 횃불도 없이, 어떻게 이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거죠?”
나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이 게임을 가장 어려운 난이도로 클리어한 나조차도 모르는 비밀이 이곳 던전에는 비일비재했으므로.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또 만나게 될 거야. 그때 물어보자고.”
이곳 호수 밑바닥에서, 우리는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적으로든, 아군으로든. 어떤 형태든 간에.
***
첫 번째 거점에서 우리는 가볍게 정비를 마쳤다.
물로 목을 축이고, 보존식도 한입씩 먹었다.
“저, 저저저, 집에 무사히 갈 수 있는 거죠……?”
울상이 된 채 덜덜 떠는 릴리를 제외하고는 다들 멀쩡해 보인다.
그런 릴리를 쥬피터가 부드럽게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말게나, 아가씨. 이 할미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까.”
“저, 정말요? 쥬피터 경께서 저를 지켜주실 건가요?”
“그럼, 나만 믿으라고.”
저 할머니가 웬일로 훈훈하게 저러나 했더니,
“대신 보호비로 1천 아델만 내려무나.”
아니나 다를까 삥을 뜯고 있다…….
“낼게요! 지금 바로 현금으로 드릴게요!”
허겁지겁 지갑을 꺼내려는 릴리를 나는 다급히 막았다. 스톱, 스토옵!
“어이 쥬피터! 애한테 무슨 돈을 갈취하는 거야!”
“쳇, 걸렸네.”
쥬피터는 구시렁거리며 물러섰다. 이 수전노 할망구가 진짜!
한숨을 내쉰 나는 릴리를 달랬다.
“정말로 걱정하지 마, 릴리. 다들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저, 정말이죠, 전하……?”
첫 탐사구역이다. 실제로도 난이도가 상당히 낮다. 애초에 많이 위험했으면 거동이 불편한 너까지 데려왔겠니?
릴리를 진정시킨 나는 시스템 창을 유심히 살폈다.
[제1구역 : 말라붙은 배수로]– 클리어 진척도 : 노멀룸 0/3 보스룸 0/1
– 획득 보물상자 : 0/2
제1구역, 말라붙은 배수로.
첫 탐사구역답게 구조는 간단하다.
세 개의 일반 방(Room)과 한 개의 보스룸으로 구성된, 간단한 던전이다. 길을 헤맬 필요도 없도록 일직선이다.
플레이어는 거점에서 시작해 출구인 보스룸까지 던전을 진행해야 한다.
일반 방은 꼼수를 써서 스킵해도 되지만, 보스룸은 반드시 전투를 통해 클리어해야 한다.
“좋아, 다들 준비됐지?”
정비 시간이 끝나고, 나는 파티원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 파티의 수준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깰 수 있을 거야. 가자!”
우리는 일렬로 서서 거점을 나섰다.
가장 앞에 루카스, 두 번째에 나. 그 뒤로 릴리, 쥬피터, 데미안 순이었다.
거점을 벗어나자마자 무지막지한 어둠이 몰아닥쳤다. 어둠은 마치 파도처럼 거칠게 밀려왔다.
파티원 모두가 반사적으로 손에 들린 횃불이며 랜턴 따위를 위로 홱 치켜 올렸다.
쏟아지던 어둠이 그제야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
“…….”
파티원들 사이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힘주어 말했다.
“전진하자.”
우리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구불구불한 배수관이 끝없이 이어진 통로였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곳임에도, 어째선지 축축한 음습함이 감도는 듯했다.
횃불을 들어 벽의 관을 살피며 루카스가 신음했다.
“하수관이 연결된 복도……군요.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요?”
“곧 끝나.”
내 말대로 곧 길이 끝나고, 널찍한 방이 펼쳐졌다. 이 탐사구역의 첫 번째 방이다.
이 게임의 던전은 기본적으로 방과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방에서는 적과의 전투나 아이템 발견, NPC와의 조우 등 랜덤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곳 첫 번째 방의 이벤트는…….
치익!
키릭! 키릭!
전투다.
우리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시궁쥐 십여 마리가 벽과 바닥, 심지어 천장에서 기어 나왔다.
“히이이이익?! 쥐이이이이?!”
릴리가 더더욱 기겁했다. 너 은근 약한 게 많구나…….
[말라붙은 배수로 – Room 1]– 적을 전멸시켜라!
– Lv.3 거대 시궁쥐 : 14체
레벨3짜리 몬스터다. 숫자가 많아서 방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적은 결코 아니다.
“루카스. 전위를 맡아라. 공격으로 나서지 말고 수비에 집중. 위치를 지키면서 가까이 오는 놈들만 막아 내.”
“예, 전하.”
“데미안, 저격해라. 이놈들은 두개골이 단단하니 눈이나 목을 노려.”
“네, 황자님.”
“쥬피터, 릴리. 화력을 아껴. 루카스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놈들만 공격해.”
여기서 마법사들의 마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쥬피터와 릴리는 뒤로 빼고 루카스와 데미안에게만 전투 명령을 내렸다.
장검을 뽑아든 루카스가 앞에 섰고, 데미안이 석궁을 들어올렸다. 쥬피터와 릴리는 한 걸음씩 물러섰다.
그럼 나는 뭐하냐고?
그냥 구경이나 해야지, 뭐. 나는 뒷짐을 지고 편히 섰다.
치이익!
키리리릭!
거대 시궁쥐 떼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시뻘건 안광을 흩뿌리며.
그에 맞춰 데미안이 석궁을 쏘았다.
푸슛! 푸슛!
매끄럽게 허공을 찢고 날아간 화살들이 정확하게 시궁쥐의 눈에 박혔다.
키엑?!
쿠당탕!
일격에 절명한 시궁쥐의 시체가 둔탁하게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거듭 말했듯이, 데미안의 저격은 정확하지만 빠르지는 않다.
화살이 세 번째 시궁쥐를 거꾸러뜨렸을 때, 나머지 놈들은 이미 루카스에게까지 도달해 있었다.
“흐읍!”
루카스가 검을 길게 횡으로 휘둘렀다.
번쩍-!
검광과 함께 선두의 시궁쥐가 목이 베여 쓰러졌다.
루카스의 레벨은 이미 29. SSR등급 캐릭터답게 스탯 성장률도 발군이다.
이미 스펙 면에서 시궁쥐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번쩍! 번쩍-!
검광이 어둠을 가르고 번뜩일 때마다 시궁쥐가 한 마리씩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거대 시궁쥐들은 루카스의 방어선을 넘지 못했고, 루카스의 검격과 데미안의 저격에 맞아 하나씩 착실하게 쓰러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마지막 시궁쥐까지 모두 정리되었다.
루카스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고, 데미안은 한숨을 뱉으며 석궁을 내려놓았다.
나는 씩 웃었다.
“다들 수고했어~ 별거 없지?”
“그러게요. 긴장한 거에 비하면 쉬웠어요.”
데미안이 살짝 지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동안 상대한 적들은 검은 거미 군단에 리빙 아머 군단이었다.
그 흉악한 놈들에 비하면야, 이 시궁쥐들은 귀여울 지경이다.
그때 쓰러진 시궁쥐 시체들을 점검한 루카스가 내게 소리쳤다.
“총 열세 마리입니다, 전하. 마석을 채취할까요?”
“아냐. 등급도 낮고 몇 개 나오지도 않을…… 응?”
말하다 말고 나는 멈췄다. 열세 마리라고?
분명히 정보창에는 열네 마리였는…….
치익-!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
기겁해서 위를 올려다보자,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시뻘건 두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마지막 거대 시궁쥐였다. 천장의 어둠에 숨어서 접근한 뒤, 그대로 내게 달려든 것이다.
아마도 내가 가장 레벨이 낮아서 표적이 된 모양이다.
“황자님?!”
“이런, 늦……!”
데미안과 루카스가 당황한 소리를 내질렀다.
쥬피터와 릴리가 마법을 날리기에도 늦었다.
시궁쥐와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마법을 썼다간 나까지 휘말릴 터였다.
‘어째야 하지? 어떡해야-’
그때였다. 문득 내 손에 차인 장갑에 생각이 미쳤다.
SSR등급 운빨무기, 럭키 스트라이크.
그러고 보니 이걸 착용하고 있었지.
상황은 긴박했고, 결단은 재빨랐다.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
아무리 변수를 배제하며 게임을 해도, 결국은 운명의 여신에게 코인토스를 맡겨야 할 순간이 온다.
그게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앞으로 주먹을 힘껏 내뻗었다.
내 주먹이 시궁쥐의 턱에 닿았고,
띠리링.
그 순간 시야 한 구석에 슬롯머신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뭐야?!
0부터 7까지 쓰인 패널 세 개가 세로로 빠르게 회전하더니, 차례로 멈췄다. 띠링. 띠링. 띠링!
그리고 나온 숫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