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09
◈ 309. [Side Story] 의좋은 형제 (2)
대륙 중부에는 한 줄기 강이 흐르고 있다.
대륙의 남서부와 북동부를 구분 짓는 이 강의 이름은 이리스(Iris).
황도 뉴 테라가 인접한 내해(內海)를 지나 동부의 외해(外海)까지 흘러내려가는 큰 강으로, 대륙 중부를 풍요롭고 비옥하게 만들어 준 문명의 젖줄이다.
대륙 중앙을 남김없이 탐욕스럽게 먹어치운 에버블랙 제국에게 이 강은 황도 뉴 테라의 실질적 지배권역이자,
외침(外侵)을 허용할 수 없는 절대방어선이기도 하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그 강의 서편으로 일련의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제국의 적을 앞장서 찌른 창이자, 외적을 막아 낸 방패.
제국군 제1군단.
창설 이래 단 한 번도 국경지대에서 벗어난 적 없어 ‘국경의 순례자’라 불리는 이들 부대가, 지금 황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
그 선두에 선 제1군단 사령관이자 제국 군권통솔자, 그리고 제1황자.
라르크 ‘아발란체’ 에버블랙은 강이 보이자 천천히 말의 속도를 줄였다. 휘하 기사들과 병력도 따라서 천천히 멈춰 섰다.
라르크는 묵묵한 시선을 들어 앞을 보았다. 그의 앞에는 이리스 강을 가로지를 수 있도록 지어진 거대한 다리가 있었고,
척! 척! 척!
다리를 점령한 일련의 병력이 있었다.
황도방위군.
황도 뉴 테라의 외곽 방비, 그리고 내부 치안을 책임지는 황실 직속 상비군.
제국 군권통솔자인 라르크도 명령을 내릴 수 없는 독립부대로, 그들의 지휘관은.
“오랜만입니다, 형님.”
페르난데스 ‘엠버키퍼’ 에버블랙.
제국 행정대신이자 암부 아이기스 특무대의 사령관. 그리고 제2황자.
페르난데스는 말안장 위에서 라르크에게 인사해 보였다. 완전무장한 형과는 달리, 평소처럼 반듯한 문관(文官)의 옷차림이었다.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아직 브링어 공국 전역이 안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모노클 속에서 제2황자의 검붉은 눈동자가 웃음기를 머금고 살랑였다.
“아니면, 설마 저도 모르는 새에 브링어 공작을 참(斬)하시고 용혈을 강탈하신 겝니까?”
“…….”
“설혹 그렇다 해도 제1군단 전체를 이끌고 돌아오시다니. 아시지 않습니까? 황도에서 군사 활동이 가능한 것은 황도방위군뿐입니다.”
라르크는 침묵했다. 낭랑한 목소리로 내뱉는 동생을 가만히 응시할 뿐.
“굳이 이런 말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형님.”
페르난데스는 말하기 저어하다는 듯 망설였지만, 곧 매끄럽게 선언했다.
“이 강 안쪽은 황도의 영역입니다. 그 병력을 이끌고 이 다리를 넘으시는 순간, 역모를 꾸민다는 의심을 사실 수밖에 없습니다.”
“…….”
“형님께서 그런 오해를 받으시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불초 아우가 부득이하게 이렇게 길을 막았습니다. 이해해 주시겠지요?”
“페르난데스.”
계속해서 묵묵히 입을 다물고 동생을 응시하던 라르크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황도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느냐?”
“네? 불온한 움직임이요?”
“그래. 그래서 내가 직접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고자 이렇게 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페르난데스가 이윽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암약세력 말씀이십니까? 그 불온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 제가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 암약세력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라르크가 툭 내뱉자, 페르난데스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모두 아이기스 특무대와…… 너의 자작극이라면?”
“형님. 누구에게 그런 헛소리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페르난데스는 옅은 한숨과 함께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이 동생이 지난 7년간 뼈를 깎으며 해 온 업무를 단숨에 없던 일로 만드시면, 조금 섭섭합니다?”
“……미안하지만 페르난데스, 너와는 더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푸르릉-
라르크가 탄 거대한 군마가 거친 콧김을 뿜어냈다. 그런 말의 갈기를 쓸어 진정시키며 라르크가 서늘하게 읊조렸다.
“아바마마를 뵈어야겠다. 어디에 계시느냐?”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바마마께서는 여전히 상흑수 에버블랙에 접속해 계십니다.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요.”
페르난데스가 싱긋 웃었다.
“바깥세상의 일 따위, 아실 수 있을 리가 없지요. 피안(彼岸)의 저편에서, 이신들과 끝나지 않는 전투를 하고 계실 테니.”
“…….”
라르크는 눈을 꾹 감았다.
그래……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국정을 볼 수 있었다면.
이 제국이 나라의 내부에서부터 갉아 먹히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나라의 바깥일은 형님께, 안의 일은 저에게. 아바마마께서 믿고 맡기시지 않았습니까. 그럼 저희가 잘 해내야겠지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대로.”
“…….”
“마지막 경고입니다, 형님.”
페르난데스가 손을 휘젓자,
고오오오오-!
하늘 저편에서 날아온 한 척의 비공함이 페르난데스의 뒤편으로 둥실 떠올랐다.
황도방위군 소속의 비공함이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하늘을 나는 배의 거체에서 흉악한 엔진음이 거칠게 울렸다.
“아직은 돌이킬 수 있습니다. 형님께서 나라의 바깥을 지키시고 제가 나라의 안을 다스리면 됩니다. 아바마마께서 바라신 대로, 우리는 의좋은 형제로 남을 수 있습니다.”
“…….”
“병력을 물리십시오. 그리고 형님께서 있으셔야 할 곳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하면 이번 일을 비밀로 하겠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결코 모르실 겁니다.”
그러자 라르크는 후, 숨을 들이쉬더니.
“나는 라르크 ‘아발란체’ 에버블랙이다-!”
사자후를 뿜어냈다.
어찌나 커다란 고함이었는지 이리스 강의 강물이 반대편으로 출렁이며 물결칠 정도였다.
기함한 황도방위군 병사들이 뒤로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위대한 황제 폐하의 첫째 아들이며, 적통(嫡統)한 계승자이며, 적법(適法)한 군권통솔자다.”
스릉-!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든 라르크가 호랑이처럼 으르렁댔다.
“나의 황도행을 막을 권리는 너희에게 없다. 너희야말로 길을 비켜라. 내가 직접 황도로 가서, 진짜 역도를 찾아내 참할 것이다.”
“…….”
“페르난데스. 네가 진정 결백하다면, 나를 믿고 길을 내라. 진실을 밝혀내고 만일 내가 틀렸다면, 나 스스로 합당한 벌을 받을 테니.”
페르난데스는 쓰게 웃었다.
라르크는 진실로 그럴 인간이었고, 믿을 수 있는 인간이었으나.
‘내가 아니라고.’
자신이 결백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라르크의 의심이 모두 맞았다. 황도에 암약세력 따위 처음부터 존재한 적도 없었으며, 페르난데스는 역모를 꾸몄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눈치챈 라르크가 황도로 달려온 것이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거지? 누가?’
페르난데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눈앞의 눈사태를 막아 내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길을 비키지 않는다면.”
제1황자의 장검이 빛을 번뜩이며 앞으로 겨누어졌다.
“나를 막는 너희 모두를 역도로 간주하겠다.”
무패의 기사.
최강의 인간.
눈앞에 선 제1황자의 전적(戰績)도, 또 제1황자의 제국을 향한 충심과 헌신도 황도방위군이 모를 리 없건만.
그들은 비키지 않고 각자의 무기를 앞으로 치켜세웠다.
황도로 향하는 외군(外軍)을 막는다.
그것이 이들의 존재의의이기에.
“열어라-!”
타앗!
라르크가 말의 배를 차자, 거대한 군마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땅을 박찼다.
흰 망토를 나부끼며 돌진하는 제1황자의 뒤를 기사단이 바짝 따랐다.
그 뒤에서 제1군단의 병사들이 소리 없이 차가운 시선을 흘리며 내달려왔다.
두두두두두!
좁은 다리로 돌진해 오는 형과 기사들을 보며 페르난데스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형님.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2황자가 하늘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기이이이잉-!
날카로운 엔진음과 함께, 비공함이 뒤의 쓰러스터에서 불을 뿜었다.
마력로에서부터 솟구쳐 나온 마법의 불꽃이 단숨에 비공함의 본체를 가속, 그 크고 무거운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게 했다.
철컥, 철컥!
제1군단을 향해 날아드는 비공함의 전면부가 변형하더니, 마나 대포 수십 문이 포구를 드러냈다.
비공함은 사거리까지 접근한 뒤 포격하고 자리를 이탈할 셈이었다.
압도적인 화력과 믿을 수 없는 기동성, 그리고 수십 겹 중첩된 방어 마법이 제공하는 초월적 방어력.
화력과 기동성, 방어력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무결점의 병기. 이것이 현대 마법공학의 결정체.
한 척 가격이 소규모 국가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는 비공함이었다.
그런 전략병기가 대기를 찢으며 접근해 오는데도 라르크는 눈 하나 깜짝 않았다. 도리어 그는 비공함들의 정면으로 짓쳐 들어갔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라르크의 애마는 명마 중의 명마였다.
거친 투레질과 함께 말이 대열에서 벗어나 앞서나갔고, 라르크는 비공함이 코앞에 도달하자 그대로 안장을 차고 솟아올랐다.
투투투투투!
비공함의 전면부에서 마나 대포 수십 문이 불을 뿜었다. 대포알 크기의 마탄 수백 발이 비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번쩍!
콰과과광!
라르크가 가로로 일검을 내리긋자, 모조리 허공에서 폭산했다.
비공함의 콕피트에 앉은 파일럿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이 라르크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라르크는 검을 고쳐 쥐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미안하다.”
탓!
비공함의 몸 위에 올라탄 라르크의 검끝이 비공함의 선수(船首)에 꽂혔다.
검끝에서 새파란 검기가 일렁였고, 검기와 방어마법이 서로 충돌해 사방으로 시뻘건 불똥을 튀겼다.
하지만 결국 승리한 쪽은 라르크의 검이었다. 장검은 방어마법을 쪼개고 비공함의 몸 안에 깊숙이 박혔다.
라르크는 꽂힌 검을 붙잡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츠카가가가각-!
라르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비공함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내달렸고, 꽂힌 검은 그대로 비공함의 등을 갈라 냈다.
타앗!
검을 회수한 라르크가 사뿐한 동작으로 뛰어내려, 자신의 말안장 위에 올라탔을 때.
콰과과과광!
저편으로 추락한 비공함이 산산이 폭발하며 커다란 불꽃을 피워 냈다.
이 어처구니없는 무위에 수도방위군의 모든 병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허탈하게 지켜보던 페르난데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좀 너무한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페르난데스의 앞으로 라르크가 이미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
황도방위군은 전멸했다.
라르크 일신의 무력도 어마어마했지만, 제1군단과 황도방위군의 전투력 차이도 현격했다.
일생을 국경지대에서 외적과 싸우며 살아온 제1군단과, 황도에 머무르며 치안 유지에 힘써온 황도방위군.
전투경험과 숙련도에서 명백한 간극이 있었다.
이 부족한 전력을 메꾸는 것이 비공함 등의 최신예 기술이었으나, 라르크의 검에 일도양단 당한 지금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라르크는 황도방위군의 대부분을 죽이지 않고 제압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자는 참살했지만, 순순히 항복하는 자들은 모두 생포했다.
그는 여전히 이들을 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만 묻자, 페르난데스.”
제압이 완료된 황도방위군의 사이에서, 라르크가 차갑게 물었다.
“다른 모든 것은 이해해도, 이것만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직접 묻고 싶다.”
페르난데스 또한 포박되어 있었다.
2황자는 처음부터 변변한 저항을 않았다. 비공함이 추락하고 전세가 기울자, 얌전히 두 손 들고 형을 기다렸다.
라르크는 그런 동생에게 검을 내세운 채 다가서며 부드럽게 질문했다.
“왜냐?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일을 꾸몄느냐?”
“……형님은 이해하시지 못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온건한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페르난데스는 쓰게 웃었다.
“형님처럼 온전하고, 정의롭고, 세계가 따스하다는 걸 믿는 ‘착한’ 사람들은…… 이 세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뭐?”
“그런 의미에서는, 차라리 애쉬가 저랑 이야기가 통하겠네요.”
이 자리에 없는 막내 동생을 떠올린 페르난데스가 킥킥 웃었다.
“그 녀석은 언제나 알고 있었거든요…… 이 세계가 근본부터 뒤틀려 있다는 것을.”
“그게 대체 무슨 소리…….”
라르크는 그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푹!
자신이 앞으로 겨눈 검에, 대뜸 달려든 페르난데스가 스스로의 목을 찔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