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23
◈ 323. [Side Story] 화양연화(花樣年華) (5)
암살부대의 요원들이 기민하게 별궁 내부로 파고들었다.
루카스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별궁의 복도를 따라 걸으며, 루카스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세레나데와, 알베르토와, 또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 별궁에서의 아름다운 유년기를.
부모를 잃고 이곳에 온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 주었던 더스티아도.
형이라고 부르라며 대신해서 화살을 맞던 애쉬도.
반짝이며 아름다웠던 날들이.
침입자들의 군홧발에 짓밟힌다.
“…….”
루카스는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여 있던- 애쉬가 선물로 준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칼날이 바깥 공기를 맞는 소리가 나자, 루카스의 앞에서 걷던 암살부대의 리더가 의아하게 돌아보았다.
루카스는 새파란 눈 아래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암살부대의 리더를 노려보았다. 리더가 혀를 찼다.
“이제라도 우리를 막겠다는 거냐?”
“…….”
“그러려면 애초에 문을 열지 말았어야 한다. 어린 꼬마야. 네가 문을 열어서 뱃속에 이미 칼이 들어왔는데, 이제 와서 뭘 하려는 거냐?”
“그런 게 아니야.”
루카스는 사납게 씹어 뱉었다.
“나는 분명 당신들을 도왔어. 페르난데스 전하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그러니까, 페르난데스 전하는 내 가문 사람들을 살려 줘야 해. ……그것과 별개로, 나는 이곳에서 사고로 죽는 거야.”
더스티아가, 애쉬가 오늘 죽어야 한다면.
자신도 이곳에서 죽겠다고, 루카스는 마음먹었다.
“야수화 혈청의 부작용으로 폭주한 나는,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고…… 당신들을 공격하는 거지.”
“이봐 꼬맹이, 헛소리 그만해. 그 칼만 도로 집어넣으면 없던 일로 해 주겠-”
하지만 리더가 뭐라 하기도 전에, 루카스는 야수화 혈청이 담긴 주사기를 자신의 목덜미에 꽂았다.
혈청은 주사되자마자 마법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루카스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온몸의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루카스는 허리를 숙이고 몸을 떨었다.
“크하, 아악……!”
뒤이어 소년의 흐트러진 금발 사이로 새파란 두 눈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 아래로 흐르는 눈물은 불꽃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약속은 지켰잖아? 그러니까…… 마지막 정도는, 애쉬 전하를 위해서, 죽게 해 줘.”
“…….”
혀를 찬 리더는 선행하던 부하들에게 손짓한 뒤, 자신의 품에서 두 자루 단검을 뽑아 쥐었다.
“제2황후와 황자 제거는 너희가 맡아라. 나는 이 불쌍한 꼬맹이를 손봐줘야 하니까.”
벌어진 입가로 허연 입김을 흘리던 루카스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하사받은 검을 앞으로 내세운 채, 짐승처럼 도약했다.
***
별궁 입구의 홀.
“어마마마! 제발 정신 차리세요!”
1층 입구에 선 채 애쉬는 비명을 질렀다. 애쉬는 3층 난간에 선 더스티아를 보고 있었다.
동아줄로 이뤄진 매듭을 목에 건 채, 더스티아는 3층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험하다니까요, 어마마마! 어서 내려오세요!”
애쉬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하필이면-아니, 마치 이러기 위해서인 듯-알베르토까지 오늘 강제로 휴가를 주어 내보낸 상황이었다.
매일같이 간병을 오던 세레나데도 오늘은 없었다.
애쉬는 두 손으로 빌다가 이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더스티아에게 빌었다.
“나랑 산다고 했잖아요, 엄마! 제발! 그러지 마요, 제발……!”
“애쉬.”
더스티아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광증에 시달리기 전의 모습처럼.
“헛소리 같겠지만 잘 들으렴. 엄마는 오늘을 수천 번은 겪었단다. 그래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두 알아.”
“알겠어요. 엄마. 알겠으니까, 일단 내려와서 얘기해요……!”
“내가 죽어야, 네가 일족의 저주를 물려받고, 오늘 살아남을 수 있어. 그래. 이 방법뿐이야.”
평화롭고 따뜻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애쉬. 이런 저주를 물려줘서 정말로 미안해. 우리 아들. 하지만 이래야 네가 살아…….”
미소 짓는 그녀의 눈 아래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엄마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
“안 돼요, 엄마! 안 돼!”
“사랑한단다.”
더스티아는 난간 아래로 뛰어내렸다.
“안 돼애애애-!”
애쉬의 비명과 함께, 더스티아의 메마른 몸이 허공에 매달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스티아의 자살은 금방 끝났다.
밧줄에 걸린 목뼈가 부러졌고, 질식하기도 전에 목숨이 끊긴 것이다.
끼익- 끼익-
밧줄에 목이 걸린 채,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더스티아의 시신.
그 몸에서 흐릿한 회색 마력이 빠져나와, 멍하니 서서 눈물만 흘리는 애쉬에게로 흘러들어 깃들었다.
-찰칵.
시계태엽이 맞물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쿨럭, 쿨럭?! 크으으, 쿨러억!”
바닥에 무너진 애쉬는 격하게 기침하며 몸을 떨었다.
이윽고 덜덜 떨리던 몸이 진정되며,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 속에서 애쉬의 새카만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아.”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애쉬의 목소리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빌어처먹을. 이 감각은 몇 천 번, 몇 만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네.”
열다섯 소년 특유의 청량감은 어디에도 없고.
세월에 잔뜩 찌들어버린 듯, 쉬고 지친 목소리였다.
“회귀 시점을 조금 다른 때로 잡아도 좋잖아……. 왜 돌아오면 항상 이때인 거야.”
슬픔 대신 공허함이 가득한 눈으로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애쉬는 메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어머니? 회귀할 때마다 당신의 시체를 올려다봐야 하는 아들의 심정도 좀 헤아려 주세요…….”
뺨을 적신 눈물을 귀찮다는 듯 대강 닦아 내고.
애쉬는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너네도 참 지긋지긋하다.”
어느새 암살부대의 요원들이 1층 홀로 쏟아져 들어와 있었다.
숫자는 대략 이십여.
하나하나가 사람 죽이는 데에 이골이 난 살인기계들이 천천히 애쉬를 포위했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 애쉬가 앞으로 손을 내밀더니, 까닥였다.
“들어와, 씨발새끼들아.”
소년의 입가에는 삭막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기분도 X같은데 화풀이나 좀 하자.”
“……?”
도리어 암살부대의 요원들이 당황했다.
전투능력이라고는 일절 없는, 게다가 맨손인 어린 황자가. 자신들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미쳐 버렸다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오늘 이곳에서 죽을 운명인데.
요원들은 일제히 품에서 칼을 뽑아들고, 그들이 죽여야 할 대상을 향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
암살부대 리더가 휘두른 단검 두 자루는 모두 루카스의 몸에 박혀 있었다.
한 자루는 어깨, 한 자루는 옆구리.
그리고, 루카스의 검 또한 암살부대 리더의 몸에 박혀 있었다.
왼쪽 가슴.
심장이었다.
리더는 루카스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 했다. 루카스는 그것을 눈치챘고, 일부러 이용했다.
공격을 허용해도 치명적이지 않을 부위에 일부러 공격을 맞아준 뒤, 그 틈에 필살의 일격을 꽂아 넣은 것이다.
리더는 강자였지만, 소년의 응축된 의지와 집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만 치명상을 허용하고 말았다.
“쿨럭, 쿨럭! ……이거, 제대로 당했군…….”
벌린 입으로 피를 쏟던 리더가 쓰게 웃으며 무너졌다.
“역시…… 맥그리거는, 맥그리거라는 건가…….”
풀썩.
리더의 몸이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루카스는 새파랗게 타오르는 눈으로 그의 죽음을 확인한 뒤, 휘청거리며 별궁으로 향했다.
어깨와 옆구리 말고도 많은 공격을 허용했다. 온몸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당장이라도 의식이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루카스는 걸었다.
더스티아와 애쉬의 옆에서 죽을 셈이었다.
‘하다못해, 함께…… 죽게 해 주세요…….’
피에 물든 발자국을 남기며 루카스는 이를 악물었다.
정원에서 별궁의 입구까지.
추억이 쌓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야수화 상태라 짐승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루카스는 울먹였다.
돌아가고 싶다.
그날들로.
꽃처럼 아름답던, 그날들로…….
루카스는 마지막 힘을 다해 발을 옮겨서, 별궁의 1층 홀로 들어섰고.
“……?”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암살부대 요원들은 모조리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죽어 쓰러졌다.
그리고 그 시체의 무더기 위에-
“늦었잖아.”
애쉬가 앉아 있었다.
옥좌에 앉은 지옥의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을 피로 적신 채. 여유롭고 황량한 미소를 짓고서. 반갑다는 듯 루카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배신자 새끼야.”
“무, 슨……?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루카스는 멍하니 말을 더듬었다. 애쉬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회귀할 때마다 똑같은 놈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해 오는데, 못 이기는 게 병신 아닐까?”
“황자, 전하……? 맞으, 세요……?”
분위기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평소의 순연하고 착해빠진 소년은 흔적도 없고,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피비린내와 먼지 내음을 풍기는 한 줄기 삭풍(朔風) 같은 남자였다.
“황자 전하? 그럼. 황자 전하 맞지.”
피식 웃은 애쉬가 천천히 시체의 언덕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 배신자. 네가 죽여야 할 황자는 여기에 있다. 어서 물어뜯지 그래? 아니면 광견병에 걸려서, 네가 죽여야 할 상대도 못 알아보는 건가?”
애쉬의 새카만 무저갱 같은 두 눈이 선명한 적의를 뿜어냈다.
루카스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야, 나는, 형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형이라고 부르지 마. 씨발. 두드러기 돋을 것 같으니까.”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고, 애쉬가 성큼성큼 루카스에게 다가왔다.
“네가 오늘밤 저 문을 열지만 않았어도, 어머니께서는 살아계셨을 거야.”
더스티아의 시신은 이미 애쉬가 수습해서 1층에 내려둔 상태였다.
그제야 더스티아의 죽음을 확인한 루카스의 눈이 터질 듯 크게 뜨였다.
“네가 네 가문을 살리겠답시고 내통하지만 않았어도, 내 어머니께서는 훨씬 더 오래 사셨을 거다……! 그럼 나도 이 빌어처먹을 회귀를 조금이라도 늦게 시작했겠지!”
덜덜 떠는 루카스의 바로 앞까지 걸어온 애쉬가 사납게 으르렁댔다.
“전부 네 탓이다, 루카스. 전부.”
“아, 아으…… 으아아…….”
애쉬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자신이 그를 배신한 것은 틀림없는 진실이었기에, 루카스는 결국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
루카스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검이 들려 있었다.
애쉬는 팔을 홱 뻗어 루카스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 손에 들린 검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새끼야, 덤벼! 나를 찌르라고! 그러려고 온 거잖아!”
루카스의 검끝이 애쉬의 목으로 날아들었고,
푹!
루카스는 황급히 자신의 왼팔을 그 사이에 끼워 넣어, 검을 막아냈다.
검이 꽂힌 루카스의 왼팔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애쉬는 그런 루카스를 짜증스레 흘겨본 뒤, 옆으로 홱 밀쳤다.
쿠당탕!
루카스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고,
챙그랑-!
이미 암살부대의 리더와 싸우느라 잔뜩 금이 가 있던 검이 끝내 산산조각 났다.
박살 난 검의 잔해와 자신이 쏟아낸 피웅덩이 가운데에서, 루카스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흐느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
“죽여주세요, 전하…… 저를 죽여주세요…….”
야수화의 반동과 과다출혈로 루카스의 의식은 점차 흐려졌다.
마지막까지 사과의 말을 뱉다가 루카스는 결국 혼절했다.
그런 루카스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던 애쉬는 긴 한숨과 함께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병신 새끼 같으니…….”
애쉬는 옆의 찬장에서 붕대를 꺼내오더니, 놀랍도록 능숙한 솜씨로 루카스의 상처에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자신의 피투성이 두 손에도 붕대를 감고, 애쉬는 찬장에서 찾아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치익-
흡연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마치 일평생 담배만 피운 사람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후우…….”
길게 연기를 뿜어내며 몸을 뒤로 돌리자,
“어떻게, 사태가 끝난 것 같네요오?”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한 마법사가 느릿한 동작으로 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느닷없는 등장이었지만, 이미 예상했다는 듯 애쉬는 태연하게 담배를 씹으며 한껏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우리 에버블랙의 위대하신 ‘선지자’ 님 아니신가. 항상 한 박자 늦으시네.”
“하하. 선지자라니. 그런 낯간지러운 호칭은 됐습니다아.”
오백 년 전 홀연히 나타나 에버블랙의 부흥을 도운 마법사.
검은 가시나무를 마법의 등대로 바꾸고, 제국의 건설을 주도한 ‘선지자’.
그가 천천히 로브의 후드를 벗자- 덥수룩한 회색 머리칼과, 안쪽이 보이지 않는 두꺼운 안경을 쓴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를 노려보며 애쉬가 연기를 훅 뱉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빌어처먹을 디렉터 새끼야.”
그러자 배시시 웃어 보인 선지자- 에이더가 특유의 늘어지는 목소리로 지껄였다.
“짧은 휴가는 즐거우셨습니까아, ‘세이브 슬롯’ 님? 그럼 이제, 이번 회차의 ‘게임’을 시작해봅시다아.”
직후, 에이더는 씁쓸하게 말을 고쳤다.
“아니…… 우리에게 허락된, 마지막 회차의 게임을요.”